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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혹은 대담

1월호

서울문화재단 문화정책위원회 열린 토론 시리즈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모색하다
서울문화재단 문화정책위원회에서 개최하는 열린 토론 시리즈 ‘서울문화정책, 함께 모여서 이야기하기’에서는 ‘예술과 도시’ ‘새로운 예술지원제도의 필요성’ 등에 이어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주제로 수다회를 진행했다. 문화예술 관련 이슈가 연일 쏟아지는 가운데 예술가와 일반인, 행정가가 이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각각 온도차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예술은 왜 공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 어떤 사회적 가치를 지니며 시민과 함께할 수 있을지, 다양한 의견이 오간 수다회의 일부를 지면에 옮긴다.

단체사진

사회 |
강윤주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토론 |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심보선 시인, 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이용관 한국예술경영연구소장
이원재 서울문화재단 문화정책위원,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김혜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임미혜 서울문화재단 예술교육본부장
장소 |
성북예술창작센터

최근 대학생들과 함께 예술에 대한 사회적 지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예술가라는 이유로 복지 혜택을 보는 데 합의할 수 있나’에 대한 논의였는데 대다수가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저는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지원을 당연하게 느꼈던터라, 그 의견이 놀라웠습니다. ‘예술과 사회’ 그리고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지원’에 대해 예술가와 예술 정책 담당자 그리고 예술계 외부의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되는데요. 그 간극을 들여다보는 것은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윤주 교수 사진강윤주 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공적 자산이 예술에 투여되고 분배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예술의 사회적가치에 집중해왔는데, 본질적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용관 소장 사진이용관 한국예술경영연구소장
예술가가 하고 싶은 걸 하는 데 가치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주장해 인정받는 게 아니라 문화정책 속에서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용관
2010년부터 3년 동안 서울시 소속 예술단체에 대해 공연 평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시향과 서울시 소속 9개 성인예술단(극단, 뮤지컬, 무용, 오페라, 합창, 국악, 관현악)을 대상으로 관객 조사를 비교한 것인데, 여기서 서울시향은 다른 서울시 예술단체에 비해 관객의 연간 공연 관람 횟수와 공연 몰입도, 만족도, 충성도가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정명훈 예술감독의 영향, 단원들의 수준 향상 등 다양한 부분에서 노력한 결과가 있겠지만, 말하고 싶은 점은 예술 자체의 매력과 함께 마케팅과 예술교육 등의 영향이 있을것이라는 점입니다. 충성도가 높은 관객은 일반 시민보다는 예술에 가치를 많이 두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케팅과 예술교육을 통해 예술의 가치를 이해하는 관객을 계속해서 확보해나가야 합니다.
노명우
아까 대학생들에게 예술가 지원에 대한 반응을 듣고 놀랐다고 하셨는데 저는 오히려 당연하게 느꼈습니다. 저는 예술가가 아닌 입장에서 말씀드릴 수 있을 텐데, 전공이 사회학이다 보니 외부자의 시선에서 ‘예술에 관한 특별한 지원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고, 또 항상 ‘그렇다’고 대답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엔 굉장히 많은 직업과 분야가 있고, 어려운 사람이 많습니다. 예술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거죠. 사회적 지원이 이뤄진다면 그 영역에 있는 사람은 좋겠지만 예술가가 아닌 입장에서는 왜 사회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죠.
예술계 외부의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필요합니다. 예술에 대한 지원이 커질수록 이것은 치열한 논쟁이 될 겁니다. 비예술가, 외부의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예술 복지에 대한 혐오 논쟁이 이뤄질 수도 있죠. ‘예술만? 우리 철학자 혹은 사회학자는?’ 하게 되니까요. 결국은 ‘예술에 사회적 가치가 있느냐’ 하는 문제로 확장되는데 이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예술이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예술에 사회적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 예술계 외부의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는 예술이 사회적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는 것이고, 보호와 지원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죠.
어떤 대상이 가치를 지닐 때 거기엔 도구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쓸모가 뭐냐’와 관련해서는 예술이 답할 수 있는 게 드문데요, 그렇다 보니 ‘무용성의 유용성’ 가치를 반복해서 이야기하죠. 권력이나 종교적 목적의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의 자기 목적성을 가지고 자치 도구성을 지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죠. 그런데 이 주장이 여전히 이 시대에 쓰일 수 있는지, 비예술인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사회에서 비인기 학문 역시 ‘왜 보호받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하지만, 철학과가 폐지되어선 안 된다는 주장을 할 때 늘 궁색하게 하는 말이 ‘쓸모없는 것 같지만 쓸모없음이 가장 의미 있는 쓸모 있음’이라는 것이죠. 21세기 변화된 흐름 속에서 이를 되풀이하는 게 설득력을 가질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예술이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음은 분명하지만, 예술의 경제적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우습게 보지 말라는 주장을 할 것이 아니라 ‘예술은 경제적 가치는 없지만 그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포지티브하게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자기주장이 필요합니다.

노명우 교수 사진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예술은 경제적 가치는 없지만 그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포지티브하게 이야기하고,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자기주장이 필요합니다.

심보선 교수 사진심보선 시인, 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예술의 사회적 가치는 어쩌면 예술가 혹은 재단이 보지 못하는 시민의 생활 속에서 조금씩 실현되고 있지 않을까요. 결국 예술의 놀이적 가치겠죠.

심보선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담론화할 수 있는가, 그 담론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한편으로 듭니다. 그래서 참 어렵습니다. 이러한 논의는 한국의 사회·역사적 맥락을 따져보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예술이라는 것이 그 자체의 자율성에 의해서가 아닌 일종의 반독재 투쟁 속에서 정당성을 얻었다고 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예총(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과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죠. 예총이 만들어진 것 자체가 동원 논리에 의해서였는데, 예총의 대표는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서 선출됐어요. 모든 자원은 예총을 통해 분배됐고요. 반면 민예총은 반독재 투쟁이라는 맥락에서 만들어진 집단이었고 절대로 국가체제에 포섭되지 않았죠. 그러다가 1993년에 사단법인이 됐고 그때부터 국가의 지원금을 받기로 하면서 ‘사회적 가치’라는 논리를 만들어야 했고, 민예총에서 문화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거죠. 다시 말해서 국가와의 싸움 속에서 정당성을 확보한 예술가 및 예술단체들이 사단법인이 돼서 지원금을 받아야 되고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왔을 때, 그때부터 무엇을 어떻게 담론화하고 정책으로 만들어야 할지 혼란이 있었죠. 민주화가 되고 문민정부를 지나면서 국민, 시민을 위한 문화정책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사실 그 시스템은 동원 체제 그대로인 거예요. 저는 그동원 체제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예술에 대한 담론이나 사회적 가치는 예술가, 예술단체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담론이 여전히 국가와의 싸움 혹은 일부 모더니즘 자율성 담론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요.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서 지역에서 시민과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해보는 과정이 없었던 거예요. 아이러니하게도 예술가들은 지원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기획서 쓰고 정산하느라 담론을 할 여유가 없었던 거죠. 물론 최근 젊은 예술가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담론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 또한 예술노동 중심이고요.
예술의 사회적 가치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예술가 혹은 재단이 보지 못하는 영역에서, 시민의 생활 속에서 이미 조금씩 실현되고 있지 않나 싶어요. 그것은 결국 예술의 놀이적, 호모-루덴스적 가치겠죠. ‘이대로는 못살겠다, 즐겁게 살자, 관계를 만들어보자’라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모더니즘적 담론, 저항 담론, 혹은 힐링, 삶의 질 담론 등과 직간접적으로 관계 맺으면서 이미 구현되는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저는 그런 것에 관심을 갖고 찾아다니는 편입니다.
이원재
오늘은 예술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도 얘기하고 싶었지만, 사실 좀 더 좁혀보면 그 간극은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예술의 가치에 대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이렇게 강했던 시기가 있었을까 생각해봤어요. 국가권력부터 시작해서 예술을 가장 많이 동원하고 적극적으로 호명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죠. 무관심한 게 아니라 오히려 마을 단위부터 문화융성, 창조경제를 이야기하면서 예술가들을 기능적 가치로 인정하는 것 같아요.
심보선
포털 사이트에서 일하는 시인 후배가 해준 이야기인데, ‘예술’에 관한 빅데이터를 조사하면 연관 키워드로 ‘창조적’ ‘창의’ 등 긍정적인 것이 많이 나오는 반면 ‘예술가’로 하면 부정적인 것이 훨씬 많이 나온다더군요. ‘가난하다’ ‘잘난척 한다’ 같은 것들이요.
이원재
예술의 가치와 다르게 예술가와의 괴리가 유달리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예술에 대한 신화는 견고한 것 같지만 예술가에 대한 신화는 한국에 없는 것 같아요. 예술가만이 아니라 게임도 그래요. 부모들은 자식이 문화 콘텐츠 같은 돈을 벌 수 있는 스마트한 업종에 가는 것을 원하는 듯하지만 정작 그것을 하는 것은 굉장히 싫어하죠.
강윤주
성과물, 환금성에 대한 존중은 있는데 이것을 하는 사람들에게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은 결여되어 있는 거겠죠.
이원재
심보선 시인의 말씀 중 예술가들이 동원 체제에 대항한 예술을 했다는 맥락에 대해 좀 덧붙여볼게요. 저는 한국의 예술가들은 예술에 대해 싸워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느껴요. 지금도 민중, 노동자 분야에서는 열심히 활동하는 작가가 많은데, 정작 예술가 자체의 권리는 정책이나 제도 영역으로 넘어와 있어요. 예술의 가치에는 강한 예술가들이 이를 사회적 가치로 만드는 것에 대한 자기 정책이나 자기 생존, 자기 존재에 대한 고찰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임미혜
예술가가 사실은 문화예술의 주체가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생략된 주체처럼 느껴져요. 저도 예술을 전공했지만 예술경영을 공부하고 일하는 예술행정가의 입장에서 말씀드리게 되는데요, 정부나 기관에서 예술의 역할을 규정하게 돼요. 예술의 사회적 가치가 담론은 아니지만 담론처럼 굳어지는 것은 예술가들이 생략되지 않은 주체로서 자기 작업에 대한 강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제도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제도를 따라가기 때문인 것 같아요. 결국 예술의 사회적 가치는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근원적 질문과 연계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듯해요.
예술은 사회를 반영하는 가장 좋은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술가들한테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하고 싶은걸 얘기해달라고 했을 때는 대부분 사회를 반영하기보다 작가 개인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느끼기엔 사회를 반영하는 입장이기보다 현재 하고 싶은 작업의 일환으로 제안한다는 거죠. 예술가들이 자기의 권리나 상징투쟁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물론 예술가가 자기 작업을 하는 것이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요.
추가해서 사회적 가치를 힐링, 소통, 공동체적인 삶 등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특히 예술교육은 수단적인 역할에만 국한되어 얘기되는 경우가 많아요. 실용적이거나 결과적 가치에만 매몰되는 것은 예술이 사회를 반영한다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가 지켜지기보다는 선택으로 남겨져야 할 문제까지 예술가들이 선택하지 않고 따라가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죠.

이원재 소장 사진이원재 서울문화재단 문화정책위원,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예술가들이 제도권을 따라가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 이중적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이들이 지원정책에 안주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봅니다.

이용관
공감되는 게, 예술가가 하고 싶은 걸 하는 데 가치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주장해 인정받는 게 아니라 문화정책 속에서, 이미 가치가 인정되고 정해진 것 속에서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임미혜
최근 검열 논란이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고 싶은 모든 것이 예술이라는 건데 ‘지금 이게 사회적 가치가 있는가’ 라고 묻는 게 검열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기관에서 일하면서 느낀 것들을 말한 것인데요. 여전히 아쉬운 지점은 예술가들이 제도권 안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회의를 갖고 있든, 정책기관 입장에서 봤을 때는 예술가들이 운동을 통해 예술의 영역을 넓히는 데 힘을 쏟기보다 제도권 예술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준을 따라가는 쪽이 많다는 거죠.
이원재
글쎄요, 저는 한국 예술가들의 자기 예술 주도성이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문화기관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봐요. 한국의 문화정책이 사실 지난 10년 동안 충분한 정책적 토론이나 제도 영역 안에서의 전문적인 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체계적이지 않은 과정으로 형성되어온 거죠. 여태 예술가 자체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그저 철저한 동원 체계나 예술 생태계 그 자체의 필요만 있었을 뿐이죠. 최근에도 문화예술 관련 인력을 많이 양성하고 있지만 여기에도 정책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들이 한쪽으로는 제도권을 따라가는 동시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 이중적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그와 관련해 예술가들이 자기 권리를 만들기보다 생존을 위한 지원 정책에 안주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임미혜
네, 저도 같은 이야기를 한 것인데요. 문화기관이 정책의 하수나 매개로서 작동하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큰 틀에서 예술계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예술가의 힘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건 권리라기보다 의무일 수도 있고요.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이란 결국 정책이나 제도로 규정되지 않는 새로운 흐름과 운동을 만들어내는 것 이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제도 순응적으로 보이는 것도 현재 예술계 현상 중 하나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김혜인 연구위원 사진김혜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예술가들이 제도권을 따라가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 이중적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이들이 지원정책에 안주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봅니다.

노명우
분야는 다르지만 활동이 프로젝트 베이스로 되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은 인문사회 분야에서도 똑같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학문에 비유해 얘기해보면, 학문 분야에서 활동이고 이를 수행하는 사람은 학자죠. 학자가 ‘내가 누구인가’ 자기 주체성을 붙이지 않은 채 학문 활동을 하는 것은 가능하거든요. 즉 ‘예술이라는 주체적 활동’과 ‘그 활동을 행하는 예술가’에 대한 생각 사이에 접점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예술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은 채 프로젝트 베이스로 활동하면서 예술을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죠.
심보선
그런데 프로젝트를 해도 몸을 써야 하잖아요. 프로젝트를 할 때는 하고 싶지 않은 걸 하는, 스트레스 받는 몸이 되는데 결과물은 그럴듯하게 나와요. 최선의 결과물이 나오지만 그 몸은 프로젝트 과정에서 소진되죠. 이 소진되는 몸은 다른 데로 갈 수밖에 없어요. 가끔 농담하길, 교수들은 프로젝트 하다 지쳐서 독서클럽을 만들고, 예술가들은 프로젝트 하느라 힘들어서 예술동호회에 가입한다는 거예요. 피곤에 찌든 몸은 어딘가로 가야 하고 이를 해방시킬 계기를 찾는데, 그걸 찾는 곳이 두리반, 콜트콜텍, 최근의 테이크아웃드로잉인 것입니다.
이용관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예술행정가나 기획자들이 이판을 너무 많이 짜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디어를 내 예술가에게 제공하는 식인데 다른 방법은 없을까, 처음부터 예술가가 모여 아이디어를 내고 행정가가 돕는 것은 어떨까 싶기도 하고요.
과거에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할 때 경제적 측면, 일자리 창출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거기엔 한계가 있고, 결국 예술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루어져 그에 따라 정책이 만들어지고 사업도 나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죠. 사회적 가치에 대한 원론적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가치 있겠지만, 예술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제대로 해볼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이용관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예술이 공공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회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 너무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본질적 가치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저도 본질적 가치가 연결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문화정책 불모지에서 공적 자산이 예술에 투여되고 그것이 바로미터를 가지고 분배되기 시작하면서, 그 근거를 찾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집중해왔는데, 예술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서도 병행해서 생각해야 건강한 토론이 될 것 같습니다.

심보선
한국의 문화 생태계에는 소위 공공 영역이라고 하는 기관이 너무 많고 의존도도 매우 높은 게 사실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공공이 좋은 기획을 할 때에도 그것 역시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입하는 것과 기획하는 것은 한끗 차이죠. 아무리 선한 의도의 프로젝트라 할지라도 예술의 본질적 가치에는 결국 몸이 있다고 생각해요. 몸은 예술을 통해서 해방되고 싶어 하는데 공공 영역이 좋은 의도로 개입했을 때도 이들은 부딪칠 수 있어요. 좋은 기획만으로 끝나지 않고 이 기획에 어떤 부수적인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원재
근대 서구 이전에 예술은 자유인들의 놀이이자 그 자체가 원래 삶의 기술이었는데 사회구조가 변화하면서 정치적인 것이 됐죠. 국가에서는 예산을 지원하기 때문에 예술의 가치를 입증해야 하고, 삶과 가까운 다양한 장르의 예술은 근대 예술 체계와 부딪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게 더 본질적인 것이다’ 하면서요.
임미혜
다양성을 갖고 투자하기에는 재원이 너무 한정적이에요. 결국 누군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거죠. 물론 그 간극을 확인하고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공통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고요.

예술가와 정책기관에 대해 이야기가 오갔는데요, 예술가와 시민을 생각해본다면 대표적으로 도시재생 과정에 예술가가 참여하는 방식을 떠올릴 수 있죠. 예술가의 시민 밀착형 프로젝트가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안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현실적으로 지역 재생 같은 데 참여한다면 예술가가 좀 더 멀티플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반 사회에서 예술가의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는 방식에는 어떤 것이 더 있을지,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일반 시민이 느끼기 위해서는 예술가들이 무얼 더 할 수 있을지 얘기해보면 좋겠습니다.

임미혜 예술교육본부장 사진임미혜 서울문화재단 예술교육본부장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이란 제도로 규정되지 않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제도 순응적으로 보이는 것도 하나의 현상입니다.

심보선
제주도로 이주한 예술가가 많은데, 거기 예술가들이 모여서 어떤 프로젝트를 한다고 알려지는 순간 커뮤니티에 독립적인 요소가 없어져요. 기관이나 행정에 관계된 이들이 개입하려고 하고요. 그래서 어떤 예술가들은 프로젝트라는 걸 숨기죠. 무슨 마을이다, 어쩌고 하기 시작하면 마을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되니까요.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빈집 프로젝트’라는 걸 진행한 적이 있는데, 지역에서 조금씩 진행되니 옆집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보기에는 젊은 친구들이투닥거리고 애쓰는 게 걱정되는 거예요. 그게 돈이 되겠냐,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며 먹을 것도 갖다주시고요. 그 사람들이 수공예품을 만들어서 마켓을 열었는데 사람들이 몰렸죠. 재밌는 현상이, 이 동네 주민들이 마켓의 손님이 아니라 손님을 맞이하는 입장, 즉 젊은이들을 도와주는 양상이 됐어요. 그렇게 프로젝트인 걸 숨겼을 때 청년들과 마을 주민과의 관계가 만들어졌죠. 그런데 그게 잘되니까 시장님이 방문하게 됐어요. 이런 과정에서 돈이나 이권의 문제가 부각되는 맥락이 생겨요. 아주 사소한 거라도 이것이 되겠다 하는 순간 사소하게라도 돈과 이권이 부각되고 그것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거죠.
김혜인
연구자로서 예술이 갖는 효과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가 왜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동원적, 도구적인 가치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는지 살펴보면, 효과가 작은 가치도 상대적으로 잘 보일 수 있게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봐요. 말하자면 아주 추상적이거나 아주 사소하게 보이는 것의 가치이더라도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입증할 수 있는 여러 기준의 잣대를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폭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문화예술교육이 고답 상태에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예술의 가치, 힐링, 공동체 경험을 체화해주는 것 외에 무슨 가치가 있는지에 해당하는 부분을 아직 입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일련의 시도가 있은 후에는, 문화부에서 그런 요청을 받아본 적이 없고 다른 재단이나 지원기구도 정책적으로 투자해보려는 것이 없었죠. 서울문화재단이 지금 방향을 정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다만 잘못된 방향을 설정하지 않도록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술과 사회에 대해, 사회정책과 맞닿은 예술만 봤으면 이야기가 쉽게 진행됐을 텐데 예술의 사회적 가치라는 게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그게 무엇일지에 대해 논의하다 보니 많은 의견이 오갔고, 개인적으로도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토론에서도 문화정책 수립에 참고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 각계의 참여자 분들과 논의를 이어서 진행하겠습니다. 오늘 많은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문화+서울

정리 서수경, 이아림
사진 김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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