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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7월호

김태용·민규동 감독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아이들이 그렇다. 달아나고 싶지만 늘 발 한쪽이 학교라는 공간에 결박돼 있다. 발에 묶인 팽팽한 끈 길이만큼 벗어날 수 없어 학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옥이 돼 아이들을 가둔다. 그렇게 갇혀버린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가해자·피해자·방관자의 모습으로 얼굴을 바꾸고 우정인지 사랑인지 모르는 감정사이에서 의리를 지킬지, 배신이라도 해서 숨 한번 쉬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린다.

미성숙이라는 겁

신체검사가 있는 날, 민아(김규리)는 수돗가에서 빨간 노트를 줍는다. 효신(박예진)과 시은(이영진)의 교환일기다. 효신은 튀는 언행과 국어선생과의 소문 등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다. 민아는 일기를 통해 두 사람 사이를 되짚어 가는 관찰자가 된다. 신체검사를 하는 날, 효신이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하고 일기장을 통해 효신과 시은을 느끼기 시작한 민아는 자꾸 효신과 심정적으로 점점 더 가까워진다.
학교 밖 세상은 분주하고 빨리 흐르겠지만, 학교에 갇힌 소녀들의 삶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리게 흘러간다. 박제가 된 소녀들의 시간 속에서 두 소녀 효신과 시은의 사이는 우정보다 더 짙은 사랑의 감정에 가깝다. 두 소녀만이 오롯이 공유하는 개인의 시간과 수많은 소녀가 거칠게 살아가는 공통의 시간 사이에는 시차가 너무 크다. 집단과 개인, 그 분절된 시간을 이어주는 것은 관찰자인 민아다.
세기말의 흉흉한 정서가 떠돌던 그 시절, 1999년 12월 24일에 개봉, 20세기의 마지막 공포영화로 기록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사실 장르영화로서 공포의 농도가 낮은 편이다. 영화는 ‘괴담’이 아닌 ‘여자’ 고등학생을 이야기한다. 그시절 모두가 겪어봤을 오해와 사랑받고 싶은 갈증이 학교에 갇힌 채 부유한다.
이미 죽어버린 아이의 영혼이 학교를 미처 떠나지 못했을 거라는 이야기는 무서움을 포기한 대신 처연함으로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 시절, 소녀들이 겪어야 하는 가장 두렵고 잔혹한 공포는 서로의 마음을 끝내 할퀴고야마는 미성숙함이라고 영화는 줄곧 묵도하지만 소녀를 탓하지는 않는다.

결국 성장하지 못한 우리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상상 가능한 저주나 원혼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의 편견과 채찍에 맞서 살아남아야 하는 소녀들의 생존 본능이 날카롭게 콕, 송곳처럼 마음을 찌른다. 갇힌, 혹은 버림받은 사춘기 소녀들이 겪을 수 있는 섹슈얼리티의 혼란과 질투가 오가는 이야기는 처연하고 섹슈얼리티보다 훨씬 더 내밀하고 깊은 동질감을 포괄한다. 그리고 시은과 텔레파시로 소통 가능한 민아는 사라진 효신을 대신해 시은과 더 깊은 연대감으로 엮일 가능성을 열어둔다.
상처 입은 소녀들은 물 없는 돌 위를 헤엄치는 물고기 같다. 아직 덜 자란, 버림받은, 그리고 살아남아야 하는 소녀들은 핏빛 소동을 겪은 후에도 한 치도 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공포다. 그리고 세상과 맞서다 죽은 아이와 살아남은 아이들의 이야기는 이상적 결말에 이르는 법 없이, 그 절망의 순간이 그냥 현실이라는 점을 생채기처럼 아로새긴다.

씨네2000 대표 고 이춘연을 기리며

영화제작사 씨네2000을 이끈 이춘연은 1994년 심리 스릴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평가받는 <손톱>(1994)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미술관 옆 동물원>(1998) 등 실험성과 작품성을 함께 인정받은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 중 1998년 시작된 <여고괴담> 시리즈는 사회문제를 공포의 형식으로 되짚는 학원 괴담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으며, 빼어난 신인 감독과 신인 배우의 등용문이 됐다. 새로운 시리즈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가 지난 6월 개봉했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

감독 김태용, 민규동

출연 김규리(민아 역), 박예진(효신 역), 이영진(시은 역), 공효진(지원 역)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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