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 서교동 서교예술실험센터
6월의 첫 번째 목요일 오전, 홍대입구역 7번 출구로 나와 나에게는 무척 익숙한 길로 들어선다. 한참 전 일이긴 하지만 예전에 활동하던 동호회의 연습실이 이 근처에 있던 관계로 나는 주말마다 주로 이 동네에서 놀았다. 주말의 홍대 앞은 지금은 믿어지지 않는 열기로 가득했다. 어울마당로를 따라 걷는 길은 10여 년 전에 비해 많이 변해 있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홍대 앞 거리 풍경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느낌이다.
홍대 앞 문화예술 생태계를 연결하는 예술 플랫폼
오늘은 이 길을 따라 서교예술실험센터를 방문하는 날이다. 매달 첫 번째 목요일 오전 11시에 열리는 <서울 스테이지11>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인디밴드의 성지와 같던 홍대의 장소성을 살린 음악 공연이 서교동의 서교예술실험센터 1층 예술다방에서 열린다. 오늘은 잭킹콩JACKINGCONG이라는 젊은 밴드의 공연이다. 트럼펫이 포함된 5인조 밴드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일찍부터 수많은 사람이 서교예술실험센터 앞에 모여 있었다. 서교예술실험센터는 30년 동안 서교동사무소로 사용하던 공간을 고쳐 2009년부터 운영 중이며, 2013년부터는 민관 거버넌스 모델인 ‘공동운영단’을 중심으로 예술인과 서울문화재단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서교예술실험센터는 홍대 앞 문화예술 생태계를 연결하는 예술 플랫폼으로 홍대 앞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수많은 예술가를 대상으로 매년 새롭고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고, 전시·공연·상영회·토크콘서트·세미나 등이 열리는 공간을 제공한다. 1층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예술다방과 전시장이 있으며 지하 1층의 다목적공간과 2층의 세미나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젊음의 거리 홍대 앞, 지난밤의 열기와 환희가 종적을 감춘 자리에 텅 빈 거리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 사이로 제법 눈부시게 달아오른 오전 햇살이 차오른다. 사람들로 꽉 들어찼을 밤의 시간이 끝난 뒤 지나가는 사람이 드문드문 보이는 오전 시간은 홍대 거리의 또 다른 모습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다. 상인들이 지난밤의 수고를 잊고 아직 휴식을 취하고 있을 시간에 홍대 앞을 걷는다. 홍대입구역 7번 출구에서 시작해 당인리발전소까지 1.5km가 조금 넘는 길은 오전이 좋다. 오후의 인파로 북적이는 활기 넘치는 길도 좋지만 오전의 한적한 길은 홍대 앞의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인디밴드로 상징되는 공연예술, 거리의 버스킹, 플리마켓에서 판매되는 각종 공예품이 떠오르는 홍대 거리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든 기찻길의 추억을 만난다. 폐선이 된옛 경의선 철길 자리에 들어선 경의선 숲길과 책거리뿐만 아니라 홍대입구역 7번 출구에서 시작되는 어울마당로가 원래 기차가 다니던 기찻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1970~1980년대부터 이 지역에 거주한 마을 주민이나 그 시절 홍대를 다닌 학생들은 아마도 기찻길에서 쌓은 각별했던 추억이 적어도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기찻길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문화 거리
한강변 당인리발전소는 1930년에 준공됐다. 지금은 서울화력발전소라고 부른다. 대한민국 최초의 화력발전소다. 그 화력발전소에 필요한 무연탄을 공급하던 철도 노선이던 당인리선은 용산선의 지선으로 서강역에서 출발, 세교리역· 방송소앞역·당인리역까지 4개 역 2.4km 구간이었다. 무연탄뿐만 아니라 여객 운송도 담당했던 당인리선은 당인리발전소가 석탄 대신 가스연료를 이용하면서 1980년 폐선됐다. 그 기찻길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어울마당로는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 ‘홍대패션거리’ ‘홍대예술의거리’ ‘홍대축제거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홍대 앞을 대표하는 문화 거리가 됐다. 물론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주차장길’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이 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있기 전, 주말이면 무명의 뮤지션이 앰프와 기타 하나 들고 나와 노래하고 춤추는 거리였고, 사람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젊고 예쁜 시간을 사진 속에 담는 거리였다. 홍대 정문으로 향하는 홍익로를 지나면 예전 철길을 따라 좁고 길게 형성된 독특한 형식의 건물이 200m 넘게 이어진다. 흔히 ‘서교365’라고 하는 이 건물은 과거 시장골목이라고 부르던 길과 지금은 주차장길로 부르는 어울마당로를 양쪽에 끼고 폭 2m에서 5m 정도의 좁고 긴 형상으로 홍대 앞 독특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복잡한 형상에는 홍대 앞 서교동 사람들의 온갖 시간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 홍대 미대생과 건축학도의 작업실, 그들이 밥 먹고 술 마시던 선술집이 있던 이 좁고 긴 건물에 지금은 휴대전화 케이스, 액세서리, 예쁜 모자, 옷을 파는 가게와 인생의 비밀을 풀어줄 것 같은 타로 가게가 잔뜩 들어와 있다. 철길을 따라 1970년대에 형성된 이 건물은 한때 철거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마을 주민, 인근 상인, 건축가와 예술가 등의 노력으로 50년이라는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형태로 여전히 자리에 남아 있다.
경의선 책거리에서 시작한 산책은 최근 문화복합공간으로 재탄생한 당인리발전소로 향한다. 그리고 서교365 건물이 끝나는 지점에 ‘홍대 문화예술관광특구’라고 적힌 귀여운 캐릭터의 조형물이 기타를 들고 서 있다. 홍대 앞은 지난해 문화예술관광특구로 지정됐다. 이 조형물이 단순히 인스타그램 피드를 위한 포토존 역할로 끝나지 않고 진정한 문화와 예술의 거리로 거듭날 홍대 앞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 지난 2년간의 팬데믹으로 수많은 공연장과 뮤지션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홍대 앞은 수많은 인디 뮤지션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당인리발전소는 지하로 들어가고 그 위에 마포새빛문화숲이라는 공원이 조성됐다. 목요일 오전의 어울마당로는 지난밤의 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글·그림 정연석_《서울을 걷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