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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전시실의 ‘쉬운 글 해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벽에 걸린 작품과 그 옆에 자리한 작품 설명 라벨. 여기까지는 평범한 전시실 풍경이다. 그런데 나지막한 위치에 처음 보는 라벨이 하나 더 붙어 있다. 관람객 누구나 편하고 쉽게 정보를 접하도록 한 ‘쉬운 글 해설’은 좀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작품을 설명해준다. 이 친절한 해설 뒤에는 모든 이들이 동등하게 정보에 접근하고 경험하도록 ‘쉬운 정보’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이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쉬운 정보’ 만들기에 관해 주명희 총괄본부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에 비치된 ‘이해하기 쉬운 전시 해설’ 책자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10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중요한 법령과 정책 정보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해 배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기존 국내 장애인 관련 법령에는 없던, 발달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보장한 유일한 법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영국·호주 등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운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2015년에서야 발달장애인법이 생기면서 제도화가 시작됐습니다. 발달장애인은 보고 듣고 이동하는 것과 관련한 신체적 불편함은 없지만 어떤 정보나 의미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느껴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나 음성 해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나 문자 통역처럼 발달장애인 역시 정보 접근성을 보장받아야 하지만 지금까지 그러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다양한 정보를 접할 경험 자체가 부족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쉬운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쉬운 정보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정책 현장의 실무자들은 쉬운 정보를 직접 만들기 위해 따로 시간이나 노력을 들이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죠. 이러한 고민과 필요성을 바탕으로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이 생겨났습니다. 저희는 발달장애인과 정보 약자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고 확대하는 데 기업의 목표를 두고 있어요. 쉬운 표현으로 쓰인 글만 아니라 글의 이해를 돕는 이미지, 가독성을 고려한 디자인, 보기 편한 제작 형태까지 접근성에 관한 모든 요소를 총체적으로 고려해 ‘쉬운 정보’가 만들어집니다. 영어로는 ‘easy read’, ‘accessible information’ 등으로 표현하는데요. 소소한소통이 생각하는 ‘쉬운 정보’는 그중 후자인 접근 가능한 정보accessible information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읽고 이해가 가능한지를 넘어서, 접근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에요. 발달장애인이 해당 정보에 접근해 동등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지가 ‘쉬운 정보’에서 ‘쉽다’의 기준이 됩니다.

소소한소통에서 제작해 무료 배포한 모두를 위한 쉬운 정보 제작 안내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매거진 ‘쉽지’

‘쉬운 정보’를 제작하는 작업은 크게 기존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바꾸는 것, 기획부터 쉬운 정보 콘텐츠를 만드는 것으로 나뉩니다. 전자의 경우 자료를 충분히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하죠. 중요한 내용을 고르고 불필요한 부분은 덜어내면서 가공할 정보의 범위를 산정하고, 그에 맞춰 전체 구성을 짭니다. 이후 원고를 다시 쓰고, 디자인하는데요. 결과물의 종류에 따라 디자인 방식이 달라지겠지만, 기본적으로 가독성과 판독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나면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이해 정도를 확인하는 감수 과정을 거치는데요. 의도한 대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지, 어렵게 느껴지는 지점은 없는지 파악하고 의견을 반영해 수정을 거칩니다. 후자의 경우 기획부터 발달장애인 대상 인터뷰나 조사를 통해 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구성을 구체화합니다. 해당 기획이 정말 필요한 정보인지, 그보다 우선으로 제공할 세부 내용은 없는지 실질적 활용성을 고려하는 것이지요. 중요한 제작 지침 중 하나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전달하기보다 중요한 정보를 선별적으로 접근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한 번에 습득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는 제한이 있고, 특히 발달장애인은 이러한 상황에 더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에요. 또 비장애인이 저마다 문해 수준이 다른 것처럼 발달장애인 독자 역시 그 대상이 다양하기에 제작 과정에서 여러 수준과 경험을 두루 고려하고 있어요. 오히려 어린이, 고령자, 발달장애인,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 특정 경험이 처음인 사람 등등 다양한 대상을 포괄할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정하죠. 나이로 단순 산정하는 수준보다, 대상과 활용 목적을 고려해 폭넓은 독자층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시 해설과 같은 문화예술 콘텐츠를 다룰 때는 ‘작품(대상)의 감상 포인트 전달’과 ‘정확한 정보 제공’이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정보를 접하는 것이 문화예술을 ‘감상’하는 것으로 이어지려면 독자에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존재해야 하니까요. 문장을 다듬는 과정에서 작품 즉, 콘텐츠의 매력까지 덜어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문장이 개개인의 감상 영역을 침범해서도 안 되고요. 작품에서 꼭 봐야 할 부분을 놓치지 않게 안내하되 정답을 가르치려 하지 않도록, 적당한 이정표 혹은 힌트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걷기, 헤매기》 전시실에 게재된 쉬운 글 해설

이렇게 만들어진 ‘쉬운 정보’가 바르게 쓰이도록 마무리 단계에서 감수 과정을 거칩니다. 비장애인 관점에서 아무리 쉽다고 해도 실제 정보를 접하게 되는 당사자가 보기에 그렇지 않다면, 그 정보는 무용하니까요. 발달장애인마다 장애 특성도, 경험치도, 문해 수준도 다르기에 감수자 풀을 다양하게 구성합니다. 현재 ‘쉬우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발달장애인 감수위원이 15명 정도 계시고, 그 밖에도 발달장애인과 만나는 기회를 자주 갖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쉬운 정보’를 완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잘 쓰이는지가 저희에게 중요한 문제거든요. 소소한소통은 ‘쉬운 정보’가 단순히 법의 테두리 안에서 운용되는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의 일상 가까이에서 다양한 유형으로 확대되기를 기대하며 여러 시도를 해오고 있습니다. 아직 ‘쉬운 정보’를 모르는 이들을 위해 그 필요성을 알리는 캠페인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는데요. 어려운 표현은 쉽게 풀어 제공하고, 일상에서 발견한 어려운 말을 제보할 수 있도록 ‘어려운말 쉬운말’ 누리집(sosoeasyword.com)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2년부터는 미술관·박물관과 함께 전시 해설 영역에 ‘쉬운 정보’를 적용하고자 활발히 협업하고 있어요. 저희의 경험과 지식이 더 많은 문화예술 현장에 확산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두를 위한 전시 정보 제작 가이드’를 만들어 자사 누리집에서 무료로 배포하고요. 이런 노력이 가닿은 것인지,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점차 다양한 영역의 파트너들이 협업을 요청하는 것을 보면서 접근성에 관한 논의가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발달장애인법을 통해 ‘쉬운 정보’를 제공할 것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쉽다는 기준을 어디에 둘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까지는 아직 지침이 제도화돼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보 접근성을 개선해야 하는 필요성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공공 영역만 아니라 우리 생활 가까이에 존재하는 기업이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도 하는데요. 비장애인 제공자 중심이 아니라, 경계를 두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고민하고, 실행하는 일이 더욱 늘어나기를 기대합니다.

정리 김태희 [문화+서울] 편집팀
사진 제공 소소한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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