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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김우옥이 말하는 연극의 생명력

“여태껏 연극 연출하면서 일 년에 세 편을 올리는 건 처음이에요.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고 바로 연습을 들어가니, 시작 일주일 전에 ‘이거 큰일 났다’ 싶더라고. 그런데 또 연습실에서 배우들을 보면 기질이 나와요. 연출가의 본능 같은 거지.”

마주 앉았을 때 가장 먼저 인상적인 것은 그의 눈빛이었다. 예전 우리 나이로 구순 九旬. 웃음 띤 얼굴, 유머러스한 말투와 별개로 김우옥의 눈은 그가 말하는 “연출가의 기질과 본능”으로 매섭게 빛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초대 원장을 지낸 실험연극의 대가. 지난 6월 연극 <혁명의 춤>을 한예종 레퍼토리 공연으로 올렸고, 기성 배우들과 함께 8월 17~27일 용산 더줌아트센터에서 다시 공연했다. 그리고 10월 6일부터 딱 나흘간,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 무대에 <겹괴기담>을 선보인다. 올해에만 세 번째 연극이다.

지난해 늘푸른연극제에 이어 1년 만의 재연. <혁명의 춤>과 마찬가지로 미국 전위연극의 대가이자 김우옥과 깊은 인연이 있는 마이클 커비Michael Kirby, 1931-1997의 구조주의 연극 작품이다. 김우옥 연출은 첫 질문을 하기도 전에 “이제 작년에 한 것과 어떻게 다를 것인지 묻겠지만…” 하며 한발 앞서 스스로 답하기 시작했다. “어제, 농담처럼 무대감독하고 이런 얘길 했어요.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하고 6명의 배우가 등장하는데, 역할을 바꿔 버리면 어떨까?’ 배우들은 힘들겠지만 긴장감이 생기고 관객은 더 흥미로워 할 테니까.” 다행히 연습이 2주 밖에 남지 않은 상태라 ‘배역 바꾸기’는 없던 일이 됐다.

ⓒ진영기

배우들은 가슴을 쓸어내렸겠습니다. 우리는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럼 연극이라는 건 뭐냐. 상식적인 상황에서 뜻밖의 이상한 무슨 일이 터질 때 ‘극적’이라고 하잖아요. 그렇게 비일상의 극적인 신기함, 놀라움과 당혹감을 극장에서 관객에게 보여주는 좋은 장치가 연극인 거죠. 그래서 좀 더 연극성이 강한 <겹괴기담>을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보통의 연극 관객에겐 <겹괴기담> 자체가 놀랍고 당혹스러울 것 같습니다. 조금 친절하게 작품을 설명해주신다면요. 놀라기보다는 당혹스러워하지, 하하. 무대에 6개의 불투명한 막이 쳐져 있어요. 5개의 공간이 나오죠. 그 양 끝에 객석이 있어요. 양 끝에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한쪽에 앉은 관객에겐 가까운 쪽은 크게, 먼 쪽은 작게 보이죠. 그런데 이야기가 시작하면서 한 칸씩 움직여요. 멀리 보이던 건 가까이 오고, 가까이 보이던 건 멀리 가고. 관객이 유념할 것은 두 개의 이야기는 같은 이야기라는 거예요.

같은 이야기라고요? 인물은 달라요. 하지만 일어나는 건 똑같은 일이에요. 관객은 그걸 못 느끼고 다른 이야기 두 개가 벌어진다고 생각해서 헷갈리고, 그걸 쫓아간다고 머리를 쓰다 보면 전체를 놓치게 되는 거예요.

괴기담이 겹쳐 있어서 ‘겹괴기담’인 거군요. 괴기담은 도깨비나 귀신이 나오는 무서운 얘기잖아요. 너무 흔하잖아. 그런데 이 괴기담은 무섭지 않게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엄청 무서워요. 내재한 상황들이 섬뜩하게 하는 고급스러운 괴기담이라고 할까요. 근데 이게 어떻게 진행되는가 하면….

이야기를 미리 알고 봐도 괜찮은 건가요? 상관없어요. 이 연극을 보는 건 이야기를 파악하기 위해서가 아니거든. 첫 장에선 비 오는 밤에 어떤 사고가 일어나 길을 잃어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요. 그럴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나타나는데, 한 사람은 시각장애인이고 한 사람은 말을 못해요. 두 번째는 그 비 오는 밤에 쉴 수 있는 안식처로 데려가지. 가는 과정에서도 사건이 한 번에 하나씩 일어나요. 5개 공간의 양쪽에서 같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한 칸씩 이동했으니 이제 가운데에서 만났겠죠. 이 세 번째 장면은 도착한 집에서 벌어져요. 거기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먹이’를 놓고 벌어지는 다툼, 도망치는 사람들이 있죠. 스포일러가 아니에요. 알고 보면 훨씬 재미있을 거예요.

1982년과 83년, 2000년에도 공연하셨죠. 그때 반응은 어땠나요? 그때는 아는 사람들도 날 피하더라고, 하하. 어땠냐고 물어볼까봐 당혹스러웠던 거지. 그런데 작년에 공연했을 땐 달라졌어요. 한마디도 않던 평론가들이 보러 오고 나한테 ‘좋았다’고 얘기하더라고. 완전히 달라졌어요.

이 연극을 받아들이는 관객의 태도에 변화가 생겼군요. 우리가 연극이라고 하면 알게 모르게 ‘연극은 이런 거다’라는 형식이 정해져 있죠. 이 작품은 그걸 완전히 깨뜨리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당혹감이 있어요. 통상 연극은 막이 올라가면 1막에서 정보를 좀 주고, 2막에서 사건이 터지기 시작해, 3막에서 종결되는 뻔한 방식이죠. 지금도 대부분 연극이 그렇고. 관객은 결론이 나오면 그걸 보고 ‘좋았네’ ‘나빴네’ 얘기해요. 그건 결국 연극의 줄거리가 ‘재미있다’ 혹은 ‘없다’에 관한 거예요. 여기서 의문을 가질 수 있죠. 왜 연극의 줄거리는 같은 방식으로만 제시돼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줄거리를 따라갈 바에는 그냥 희곡으로 읽어버리든가. 소설을 각색한 거면 소설을 읽으면 되지. 왜 비싼 돈 내고 극장에 가서 2~3시간 괴로워하며 연극을 보냐는 질문이죠. 게다가 나로선 놀라운 현상인 것이, 이 연극을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야. 나도 깜짝 놀랐다고. 그들이 ‘새롭다’고 해요.

거의 50년이 된 작품을 젊은 관객들은 ‘새롭다’고 느끼는군요. 뉴욕에서 1978년에 올라간 작품이거든요. 왜일까. 50년이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연극이라는 게 너무 뻔한 거예요. 줄거리 알려고 가고. 배우 발성이 안 좋으면 알아먹을 수가 없으니 친절하게 자막을 띄워요. 배우들은 글자 하나 틀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요즘 배우들은 ‘자막과 경쟁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막 보고 대사 까먹었다고 할까봐 배우는 더 신경쓰죠. 연극이 대체 뭐길래, 자막과 한 글자 틀리지 않고 이야기만 전달하는 매체여야 하느냐. 그런 면에서 <겹괴기담>은 파격이에요. 이야기는 간단해요. 다만 그 이야기를 조각으로 만들어 해체하는 거죠. 관객이 ‘이게 뭐지?’ 생각하게 되는, 서로 다른 조각을 쫙 보여주는 거죠. 마지막엔 퍼즐 맞추듯이 작품이 완성돼요. 굉장히 재미있는 아이디어지요.

완전한 블랙박스 구조인 쿼드의 공간이 작품과 딱 어울릴 것 같습니다. 원래 여기 있던 동숭아트센터는 내가 동랑청소년극단에서 <방황하는 별들> 시리즈1985-1991를 공연한 극장이에요. 몇 년 전 예술청에 들렀다가 동숭홀을 리모델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마침 제자가 극장 감독으로 일하고 있던 터라 잠시 구경했는데, 멋진 블랙박스가 되어 있어 깜짝 놀랐어요. 개관 전이라 이름도 없을 때였는데, 보자마자 이곳에서 <겹괴기담>을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랬는데 올해 <겹괴기담>을 초청하고 싶다는 쿼드의 연락을 받은 거예요. 기가 막힌 운명이죠.

길게 양 끝에 객석을 배치하는 작품 특성상 많은 관객이 보지는 못하겠네요. 무대 전체 길이가 7미터예요. 딱 그만큼의 관객만 볼 수 있죠. 아마도 80~90명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쉬워하는 관객이 많겠습니다. 80~90명 들어올 수 있으면 다행이지. 이번에 공연한 <혁명의 춤>도 무대 때문에 관객이 한 번에 80명밖에 못 들어가거든요. 근데 그러면 또 좋은 점도 있어요. 객석 숫자가 적은 걸 사람들이 아니까 금방 매진이 돼요, 하하하. 이번에도 매진되면 내년에 또 초청해줄 거 아니에요? 내년에는 아주 <혁명의 춤>과 <겹괴기담>을 시리즈로 딱 묶어서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봐요, 하하.

줄거리를 따르지 않고 파편적으로 제시되는 형식이 요즘 유행인 숏폼short-form 콘텐츠 같아서 젊은 세대가 익숙하게 느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MZ세대가 영상을 즐긴다고 할 때 그 영상이라는 건 결국 그림자예요. 화면에 뜨는 영상이죠. 하지만 이 연극은 살아 있는 사람이 자기 눈앞에서 움직이는 게 그대로 영상으로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죠. 난 이게 굉장한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이번 <혁명의 춤>에 대해서도 영화와 영상 창작자들이 큰 관심을 보였어요.

가장 실험적인 연극이 오히려 가장 첨단의 매체와 통하는 거군요. 나는 지금 연극의 최대 적은 연극인들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연극을 자기들이 하던 그대로밖에 알지 못해요. 그러니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를 진행하고 마지막에 악당이 죽으면 ‘아, 그놈 잘 죽었다’ 만족하는 데 그쳐요.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복합적으로 꾸며나가는 조직과 구조를 소화하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혁명의 춤>도 연극과 거리가 먼 사람들, 기존 연극에 매달리지 않는 사람들이 보고 ‘충격적이다’, ‘재미있다’고 하는 것 같아요.

전통적 의미의 연극보다 다원예술에 더 가까운 느낌도 듭니다. 이야기라는 건 이미 존재하고 있어요. 그걸 더 절실하고 감동적으로 만들기 위해 연극이 필요하죠. 그냥 줄거리뿐인 평면적인 걸 원한다면 연극을 볼 필요가 없지. 공간이 있어요. 거기에 빛이 들어오고 소리가 들어와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내요. 거기서 왜 내러티브 외의 다른 물리적 요소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나요.

ⓒ진영기

1960~70년대 미국에서 저항적 청년문화와 함께 태동한 실험연극이 지금 한국에서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는 것도 기묘한 일입니다. 그때 미국에서 실험연극을 했던 우리는 브로드웨이의 기업적 기성 연극으로는 변화하는 현실, 우리가 말하고 싶은 사회적 문제를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우린 브로드웨이 연극 하나도 안 봤어요. 물론 돈이 없어서, 다 가난하니까 못 본 것도 있지만, 하하. 그렇지만 근본적으로는 기질적으로 반복되는 뻔한 이야기의 상업적 기성 연극을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30대 들어 연극 공부를 시작하셨죠. 내가 미국에 연극 공부하러 간 게 1969년이에요. 30대 중반이었죠. 보통은 10, 20대에 연극을 시작해요. 스스로 물어봐요. ‘만약 내가 30대 중반에 미국에서 연극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서울에서 연극을 했다면 실험연극에 심취했을까?’ 아니었을 것 같아. 연극을 한번 제대로 해 보겠다고 갔는데 연극 배경은 전혀 없고, 객석에서 보는 관객일 뿐이었어요. 그리고 2년 만에 연극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는데, 재미가 없는 거야. 그때 뉴욕대학교 박사 과정에 들어가게 됐죠. 교수들도 실험극 권위자였고, 실험극을 하는 동료들과 어울려 연기도 하면서 그 안에 녹아들었어요. 그래서 가능했던 것 같아.

50년 전 실험연극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할까요. 이제 ‘실험’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 그 시기 뉴욕에서 새롭게 시도했을 때 ‘실험’이었던 거니까.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김우옥이 들여다봤을 때, 이 실험은 여전히 우리 사회, 우리 연극에 필요한 거예요. 천편일률적으로 보일 수 있는 연극들 속에서, 뭔가 다른 틀의 연극이 아직은 생명력이 있더라, 또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생명력은 생각보다 더 강하더라는 것이죠.

나이가 들면 바꾸기보다 지키고 싶고, 평가받기보다 평가하고 싶어지는 것 아닐까요. 왜 여전히 실험연극을 하고 계신 겁니까. 그건 내가 대답할 수 없지 뭐. (하늘을 가리키며) 저 위에다 대고 물어봐야지. ‘왜 그런 거예요?’ 하하하. 그런데 이건 있어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에요. 난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겁니다. 나는 정말 보고 싶어요. 젊은 연극인이 정말 기발한 생각을 가지고 이 연극판을 확 뒤집어 놓는 모습을. 그런 모습을 꼭 보고 싶어요.

이태훈 조선일보 기자
사진 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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