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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9월호

하루 축제로 거듭난 남이장군사당제

17세에 무과에 합격하고, 26세에 병조판서 자리에 오른 자. 태종이 자애하는 외손자이자 이시애의 난과 여진족 토벌에 공을 세워 세조의 총애를 받은 자. 바로 세종 23년1441에 태어난 남이 장군이다. 그가 남긴 시구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에서 읽히는 그의 기개와 기세는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역모죄로 효시되는 지경에 이른다. 뼈대 굵은 가문도, 그간 쌓아 올린 무공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훗날 그를 기리며 전해지는 소설과 설화에서는 그의 출신이나 역사적 배경보다 뛰어난 무예와 귀신을 보는 특별한 능력이 두드러져 있다.

‘그는 뱀의 원혼이 환생한 것이다.’ ‘어린 시절 어느 종이 가져가는 작은 상자에 분을 바른 여자 귀신이 있는 것을 보고 따라갔다가 권람의 집으로 가게 됐다. 잠시 뒤 그 집의 여식이 갑자기 죽었는데, 그가 들어가 여식의 가슴을 타고 앉았던 귀신을 쫓자, 여식이 살아났다.’

약 200년이 지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상업지로 번창한 한강 일대의 상인들은 부군당을 세우고 민속신앙을 통해 사람들의 구심점을 구축하고자 했고, 이때 1818년 복권된 남이장군사당이 세워졌다. 남이장군사당터는 여러 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17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용산구 용문동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사당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1990년대 중건하면서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고즈넉한 사당은 아파트 사이의 화려한 사당으로 변모했지만, 사당의 핵심으로 꼽히는 당내 무신도는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사당 정면의 남이장군 무신도를 중심에 두고 좌우로 발상 내외, 호구아씨, 삼불제석, 최영 장군 등 총 25점의 무신도가 봉안돼 있다. 사당의 무신도는 격이 높은 신을 상단에 두고 격이 낮은 신을 하단에 그리는 일반적인 방식에 따라 채워져 있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보통 한 분을 모시는 별상신이 10명이나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이곳을 통해 전염병을 막고 마을 주민의 안녕과 건강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보여준다. 화려한 색감과 훌륭한 보존 상태를 자랑하는 무신도를 통해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채 등에는 활을 메고 위엄 있게 앉아 월도를 빼든 남이 장군과 좌우 신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 무신도는 그 숫자와 종류 그리고 엄정한 배열까지, 여러 측면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남이장군사당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내실內實있게 한다’라는 말에서 내실의 실제와 가치적 의미를 동시에 마주한 것과 같은 셈이다. 역사적 실제와 환상이 공존하고 대동적 바람과 기대가 깃든 남이장군사당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1일, 사당제를 올린다. 10월 초하루면 용문동 일대가 들썩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5일간 열리는 사당제는 마을축제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당주 무녀가 사당 입구에 황토를 뿌리고 소나무를 끼운 금줄을 걸어 삿된 기운과 부정한 이의 출입을 막으면 비로소 사당제가 시작된다. ‘걸립-꽃 받기- 유식제의-사당굿-대동잔치’ 순으로 이어지는 순서나 내용은 일반 서울굿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남이장군사당제만의 특별함이 곳곳에 담겨 있다.

걸립은 당제와 당굿에 필요한 제물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3일간 용문동 일대에서 이뤄진다. 당주 무녀와 풍물패가 용문시장을 돌며 집안의 번영과 무병장수를 기원해주는데, 100여 가구가 참여해 음식과 재물을 내놓는다.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당제 전날 제에 쓸 음식도 함께 준비하는데, 이 같은 마을 주민의 적극적 참여는 1983년 남이장군사당제가 용문동부군당을 넘어 서울을 대표하는 마을제로 지정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해가 지면 당주 무녀는 본전에 있던 연꽃을 가마에 태우고 길을 나선다. 사제무와 풍물패를 비롯한 100여 명이 도보로 부군당을 향해 이동하는데, 예를 갖추고 서로 꽃을 교환하고 되돌아와 받은 꽃을 사당에 올리면 ‘꽃 받기’가 마무리된다. 이는 사당제가 축제화되면서 생긴 과정으로, 신성에 대한 공간적 확장이자 연대의 강화를 표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어지는 유식제의는 보통 당제 하루 전날 유교식으로 차리는 제를 의미한다. 지금은 사당제 당일에 올리며, 구청장이 초헌관으로 참석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유식제의가 끝나면 장군 출진이 행해진다. 남이 장군이 여진족을 정벌하러 가는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유가돌기가 하나의 축제처럼 변화한 것이다. 도심 한복판의 행렬이 큰 볼거리를 제공했지만 2020년 코로나19 상황 이후 사당제가 간소화되면서 행해지지 않고 있다. 올해부터 다시 재연 예정이라고 하니 오랜만에 볼거리가 넘치는 사당제의 전모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사당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당굿은 본격적인 굿을 시작하기에 앞서 정화 단계에 속하는 주당물림부터 굿판에 모시지 않은 하위 신을 살피는 뒷전거리까지 이어진다. 1997년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남이장군사당제의 보유자로 지정된 이명옥과 그의 제자들이 굿거리를 이어가며, 여기에서도 특색있는 굿판이 벌어진다. 바라에 돈을 받고 대추를 주며 복을 나누는 불사거리나 신장기를 뽑아 기의 색에 따라 공수를 해주는 신장거리, 창부신을 모시는 창부거리 등은 대부분 서울굿에서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마을 내 모든 성주신을 모아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안녕을 비는 황제풀이나 화살을 사방으로 쏘아 액을 물리는 군웅거리는 남이장군사당제가 마을굿임을 강조하는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당주 무녀가 본굿에 부르지 못한 하위 신을 모시는 뒷전거리까지 끝이 나면 북어를 사당 밖으로 던지는데, 북어 머리가 사당 밖으로 향하면 굿이 잘 치러졌다고 여긴다. 이는 삼지창에 준비한 돼지를 꿰어 세우는 것으로 굿을 받는 신이 만족했는지를 점치는 별상사실세우기와 맥을 같이 한다. 이때 창이 쓰러지지 않고 잘 서 있으면 만족한 것으로 여겼다. 굿판이 여기서 끝났다고 여기면 곤란하다. 아직 사례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당굿이 행해진 다음 날, 당주 무녀는 신성한 사당을 더럽히고 시끄럽게 한 것을 사죄하는 의미로 사례제를 올린다. 이때 치성을 드리고 개별 소지를 호주 성명을 부르며 복을 기원하는데, 팬데믹 이전에는 사례제 후에 4차선 도로를 막고 1천여 명의 마을 주민이 어울리는 잔치를 벌였다.

남이장군사당제가 지닌 진정한 가치는 태초에 사당이 세워졌을 때의 목표와 연결된다. 함께하는 이들의 화합과 안녕이다.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마마신을 내부에 봉안하고,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축제로 변화를 꾀했다. 지난 3년간 사당제가 간소화된 채 맥을 이어온 터라 화려한 대동의 의미가 무색해지진 않았을지 걱정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남이장군사당제가 지닌 두 가지 가치와 정체성은 언제나 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김보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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