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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9월호

푸른 점화 ‘우주’와 ‘창백한 푸른 점’
김환기

이곳에서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알고 우리가 들어봤으며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람이 살았습니다. (…)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칼 세이건Carl Sagan)

1990년 2월 지구에서 61억km 떨어진 지점에서 우주 무인 탐사선 보이저 1호가 우주 속의 지구를 찍은 사진은 ‘창백한 푸른 점’으로 불린다. 이 사진에서 지구의 크기는 0.12화소에 불과하며, 작은 점으로 보인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별은 은하수가 거느린 3천억 개 별의 하나인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는 행성일 뿐이다.

불멸의 과학책 『코스모스Cosmos』 저자 칼 세이건이 이 사진을 보고 감명받아 쓴 책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은 깊은 성찰을 일으킨다. 보이저 1호의 화상팀을 맡아 지구를 촬영한 칼 세이건은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하다”며 “그저 지구는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그는 “저 점을 보라. 그것이 여기다. 우리 집, 우리 자신인 것”이라며 ‘모래알 같은 지구’에서 삶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느끼게 했다.

그도 알았을까? ‘창백한 푸른 점’처럼 52년 전 ‘푸른 점화’를 그려낸 김환기1913-1974 작가가 있었다.

한국 추상미술 선구자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작가로 더 유명하다. 그가 1971년 제작한 푸른 점화 <우주>는 2019년 11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약 132억 원(8,8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낙찰가 최고 기록을 썼다. 지금까지 이 가격은 깨지지 않고 있다.

국내 최초로 100억 원대를 넘긴 작품가로 ‘가짜 낙찰자’가 출몰하는 등 화제가 됐지만, 낙찰자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진실은 밝혀진다. 2022년 7월, 132억 원에 김환기 <우주>를 낙찰받은 이는 김웅기 글로벌세아그룹 회장으로 확인됐다. 강남의 자사 건물에 전시장을 개관하면서 이례적으로 스스로를 드러낸 김 회장의 발언은 미술계에 안도감을 선사했다. “한국의 걸작이 외국으로 유출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경매에 뛰어들었다”는 김 회장은 그해 10월 “모든 사람이 이 작품을 편하게 볼 수 있기를 바란다”며 <우주>를 일반에 공개했다.

김환기의 <우주>는 점점이 알알이 박힌 ‘푸른색 점화의 절정판’이다. 세로 254cm, 가로 127cm의 전면 점화 두 점이 한 세트를 이룬다. 김환기 작품 가운데 가장 큰 추상화이자 유일한 두 폭 화로 희귀 작품으로 꼽힌다. 김환기 후원자이자 친구, 주치의였던 의학박사 김마태 씨 부부가 김환기에게 직접 구매해 40년 넘게 소장하다 경매에 내놓은 작품이다.

132억짜리 비싼 그림이라고만 여긴 <우주>를 새삼 다시 보게 된 건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서다. 김환기의 40년 예술세계 전반을 살펴보는 대규모 회고전인 《한 점 하늘, 김환기》는 ‘비싼 작가’로만 포장된 김환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그간 도판으로만 확인되던 초기작과 미공개작, 드로잉과 일기 등을 최초로 선보여 김환기가 점화로 심취하기까지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50세에 뉴욕으로 건너간 김환기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1980년 출간)보다 먼저 ‘푸른 점화’에 도달했다. ‘창백한 푸른 점’처럼 보이지도 않는 지구 속 뉴욕 도시 한복판에서 무수한 이방인이자 무명작가의 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날이면 날마다 점을 찍으며 생활을 이어갔다.

오만가지, 죽어간 사람, 살아있는 사람, 흐르는 강, 내가 오르던 산, 풀포기, 꽃잎… 실로 오만가지를 생각하며 내일을 알 수 없는 미래를 생각하며 점을 찍어간다.
(김환기의 일기 중)

어둠 속에 홀로 외로이 빛나는 점처럼 그도 점점 점이 되어갔다. ‘점화’에는 1930년대부터 이어져온 그의 추상 여정이 함축되어 있고, 그 작은 점 하나하나에는 자연과 인간, 예술을 아우르는 보편적 세계에 대한 확장된 사유가 담겨 있다. 푸른 점으로 소용돌이치는 작품 <우주>는 그 어떤 그림보다 뛰어나고 우월하게 세상에 남아 우리를 겸허하게 하고 있다.

뉴욕에서 하나의 점처럼 외롭게 작업하던 그는 1974년 7월 25일 오전 9시 40분 ‘별의 세계’로 떠났다. 화가의 직업병인 목디스크로 수술대에 올라 뇌출혈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내일이 빨리 오기를 기다린다”고 쓴 일기(1974년 7월 12일)가 마지막이었다. 호암미술관 전시는 그가 작고 한 달 전에 죽음을 예감하듯 그린 검은 점화 <17-VI-74 #337>1974로 마무리된다.

‘푸른 점화’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의식의 상징이다. 태양 빛 속에 떠다니는 작은 먼지 같은 존재지만 아주 작게 빛나면서 도전을 계속 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1913년 전라남도 신안군 기좌도(현 안좌도)에서 태어나 화가가 된 김환기는 한국적 서정주의를 바탕으로 한 고유의 미술세계를 정립해 우리의 추상미술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렵던 시절 오로지 새로운 세계를 그린다는 일념으로 세계 미술의 중심지 뉴욕에서 예술의 꽃을 피운 화가 김환기가 소중하고 ‘K-아트’의 위엄을 전하는 이유다.

김환기는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이자 상징 같은 존재로, ‘고전’을 만들고자 했던 작가의 바람대로 그의 예술은 오늘날에도 공명한다. 120점이 전시된 호암미술관 전시는 김환기가 남긴 글과 일기를 함께 선보여 감상의 폭을 넓히고 있다. 그렇게 김환기를 이해하고 나서 전시 마지막 부분의 점화를 보면 감동이 몇 배로 커진다. 1970년 김환기의 점화를 처음으로 알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그림 앞에 서면 전율이 인다. 우리를 무한한 우주 공간과 영원한 시간 속으로 안내하는 그림이다.

‘먼지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라고 했던가. 김환기의 작품을 자신의 분신처럼 사랑했던 부인 김향안은 1992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개관했다. “내 작품은 내 나라에, 서울에, 보내고 싶어” 했던 남편 김환기의 마음을 받든 ‘찐사랑’의 결실로, 한낱 점 같은 ‘보잘것없는 나약한 존재’가 일궈놓은 업적에 경탄하게 하는 전시장이다.

박현주 뉴시스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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