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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7월호

없음의 말들
─ 유감없다

“애인 있어요?” 만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 질문을 들었다. 상대는 초면이었다. 그런 자리가 있다.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을 부르고,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을 부르다 우후죽순처럼 커지고 만 자리. 설상가상으로 애초에 모임을 기획한 사람들이 약속 시간에 딱 맞춰 오거나 사정이 생겨 약간 늦게 된 자리. 그런 자리에는 아는 사람이 부른 이들이 으레 먼저 와 있게 마련이다. 혹시라도 늦어서 민폐를 끼칠까 봐, 혹은 늦은 이에게 쏟아지곤 하는 스포트라이트가 민망해서.

“없는데요.” 나의 말에 상대는 무표정이다. 통성명을 하고 각자의 나이와 하는 일, 사는 곳을 밝힌 후에는 30초가량 침묵이 흘렀다. 입술 너머로 침을 삼키고 상대가 먼저 말을 꺼내기만을 기다리는, 가만하고도 조바심 나는 시간이다. 아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등 빤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난 뒤에는 할 말이 그만 없어지고 말았다. 실은 어떤 말도 생면부지의 두 사람을 단박에 끈끈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좋아하는 대상이 일치하거나 근래 몰두하고 있는 분야가 같지 않다면. 물론 이 또한 취미나 취향에 대한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입을 여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너나없이 문이 있는 방향 쪽을 힐끔거리다가 앞사람과 시선을 마주치던 순간, 난데없이 웃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이 상황이 물고 온 난감함에 픽 고꾸라지고 만 것이다. 그때 상대의 입에서 튀어나온 물색없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다. “애인 있어요?” 재미없음보다야 덜하지만 난데없음은 그 나름대로 곤혹스럽다. 상대의 표정이 자못 진지해서 “왜요?”나 “갑자기요?” 같은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번 새어 나온 웃음은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뇨. 애인 없이 지낸 지 좀 됐어요.” 대답하면서도 나는 이 생각뿐이었다. 애인의 유무와 오늘 자리는 전혀 상관없잖아요!

상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자리에 앉자마자 간파하고 있었다는 듯이. 어쩌면 나를 안쓰럽게 여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혼자인 게 편해서요.” 말하면서도 사족임을 모르지 않았으나, 두서없는 대화에 관계없는 말이 들어선다고 해서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실은 저도 없어요.” 상대가 몸을 앞쪽으로 기울이며 비밀을 털어놓듯 말했다. 이것은 무슨 신호인가. 애인 없는 사람들은 으레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한다는 말인가. 자신과 나는 이제 대등한 관계라는 것인가. 나중에 애인 없음의 공동체라도 만들자는 것인가.

“성가시잖아요.” 상대의 말에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감감했다. 어쩜 저런 말을 저리도 거리낌 없이 할 수가 있지? 그것도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말 없는 나와 달리, 내 머릿속은 잡생각으로 복잡해지고 있었다. 상대가 히죽 웃었다. 그 표정을 보고 실없이 웃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느닷없이 그가 물었다. “우리, 친구 할래요?” 나는 잠시 문가를 바라보며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꾸밈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까? 하릴없다는 듯 두 눈을 감아버릴까? 소용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을까? 어림없다는 듯 코웃음을 쳐줄까? 어처구니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어줄까? 어느덧 약속 시간이 10분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곧 문이 열리고 내가 아는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문제없을 것이다. 누가 와준다면, 그저 와주기만 한다면.

“좋습니다. 친구 하지요!” 나도 모르게 뜬금없이 저 말이 튀어 나갔다. 누가 보면 맥주잔이라도 맞부딪는 줄 알았을 것이다. 호쾌함의 최대치를 경신하며 그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생기니 자리는 금세 편안해졌다. 더 이상 아는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쭈뼛쭈뼛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를 바라보며 누군가가 물었다. “두 분은 원래 아는 사이예요?” “방금 알았어요!”라고 동시에 대답하며 격의 없이 웃기도 했다. 나를 불렀던 친구는 뒤늦게 도착해서 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별일 없었지?” ‘별일’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오늘의 만남은 분명 별일에 해당하는데, 중구난방에 가까운 이런 상황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과 낯선 이들을 만나 관계를 넓혀가는 일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둘 다 존재한다. 나는 후자였다. “별일은 없었고 별의별 일은 다 있었다.” 내 말에 그 친구만이 웃었다. “애인 있어요?”라고 대뜸 물은 뒤 “우리, 친구 할래요?”라고 느닷없이 묻던, 두 시간 전까지는 생판 남남이었던 그 친구만이.

화장실에 다녀오니 그가 낯선 자리에 열없이 앉아 있던 사람들을 바지런히 챙기고 있었다. 여지없는 활동가였다. 한번 열린 판에서 낙오되는 자가 없기를 바라는, 막힘없이 행동하고 꾸김없이 친근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자리가 파할 때쯤 새로 사귄 친구에게 가방 속에 딱 한 권 있던 새 시집 『없음의 대명사』를 선물해주었다. “없음이라…… 빈틈없음인 건가? 아니, 나한테 이걸 주니 아낌없음이겠네! 내가 염치없이 받아도 될는지.” 시집이 임자를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철없음인데, 지금 기분으로는 근심 없음이야!” 친구가 환히 웃었다. 친구의 첫 번째 뜻은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인데, 허물없는 친구가 되는 데는 꼭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난 ‘오래’의 자리에 ‘변함없이’를 집어넣어보았다. 한결 틀림없어진 것 같았다. 그때 친구의 말이 귀에 쟁쟁 울렸다. “두말없이 받겠습니다!”

온갖 없음을 통과한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침대에 눕는데,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이없고 정신없고 뜬금없지만, 동시에 유감없는 날이기도 했다. 마음이 내내 차고 넘쳤다. 이 힘으로 내일을 드팀없이 시작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도 생겼다. ‘유감없다’는 “섭섭한 마음이 없이 흡족하다”라는 뜻이다. 자기 전, 하루를 복기하며 웃을 수 있는 상태야말로 유감없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세상을 수놓는 없음들 중, 그날은 ‘유감없음의 대명사’로 편히 잠자리에 들었다. 다시없을 날이었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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