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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
극장가를 강타한 추억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더불어 또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까지 장기 흥행하면서 “한국 극장가에 불어닥친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으로 현상을 분석하는 뉴스가 쏟아진다. 1996년 완결된 <슬램덩크>를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 井上雄彦가 30년 만에 살려낸 이 극장판의 영향력은 만만치 않았다. 소셜 미디어에는 ‘농놀(농구놀이)’이라는 이름으로 <슬램덩크>를 즐기는 문화가 여전하다. 지난 5월 22일에는 인기 캐릭터인 정대만의 생일 축하 광고가 신촌역 전광판에 게시되기도 했고, 서울과 부산에서 생일카페도 성황리에 열렸다. 물론 북산고의 천재 강백호와 주장 채치수의 생일카페도 각지에서 개최됐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국내 개봉일은 1월 4일이며, 6월 중순인 지금까지도 극장에 걸려 있다. 6개월 넘게 장기 상영인 셈인데 이는 <스즈메의 문단속>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보다 뒤늦은 시기인 4월에 개봉한 한국 영화 <리바운드>의 장항준 감독이 최근 유튜브에서 한 말이 상징적이다. “도대체 스즈메는 문을 언제 닫는 거야?”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두 번 보았다. 개봉 첫 주 주말에 한 번, 한 달 후에 한 번 더 봤다. 재미있는 것은 관객의 연령대였다. 첫 주에는 원작 팬으로 추정되는 3040 연령층이 눈에 띄었다. ‘누가 보러 왔나’ 기자의 시선으로 관객석을 둘러보지 않아도, 칭얼대는 아이 손을 잡고 극장 밖을 들락거리는 엄마 아빠가 많아 자연스레 관객층을 알 수 있었다. 북산고와 산왕고의 점수 차이가 엎치락뒤치락, 드디어 정대만이 활약하는 그 순간! 왜 아이들은 그때 화장실에 가고 싶어 하는가. 아이 손을 붙잡고 출입구로 향하는 부모의 뒷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영화가 끝난 후에는 여자친구와 함께 온 남자의 설명도 들려왔다. 여자친구가 묻지도 않는데 신이 나서 “그러니까 북산이 왜 여기서 이겨야 하느냐면 말이지”라며 앞선 서사를 설명했다. (원래 오타쿠들은 묻지도 않은 것을 신이 나서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한 달 후 재관람 시에는 관객층이 조금 달랐다. 원작 연재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을 10대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물론 모든 개봉관을 돌며 연령층을 조사하진 않았으므로 이것은 한 사람의 경험에 불과한 추정이다. 입소문에 원작 팬이 아닌 신규 관객이 대거 유입된 것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주요 관객은 1990년대를 추억하는 3040 팬들이다. 더빙판이 인기가 없는 국내 특성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전체 관객 중 반절 이상이 더빙판을 관람했다. 총관객 수 468만 명 (2023년 6월 기준) 중 디지털 더빙을 본 관객이 234만 명(전체 관객 중 50.2%)이다. 어린 시절 TV에서 방영한 <슬램덩크> 더빙판을 보고 자란 세대가 더빙을 선택한 것이다. 역시 한국 관객들은 강백호·서태웅·정대만·송태섭의 이름으로 북산고의 활약을 보고 싶다.

추억의 영화로 치면 5월 24일 개봉한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는 35만 관객이 선택했는데,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비하면 저조하지만 그간 한국 창작 애니메이션의 관객 수에 비하면 매우 선전하고 있다. 이 영화는 둘리의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고, 1996년 개봉한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을 디지털 버전으로 리마스터링한 영화다.
현재 흥행 중인 추억 자극 영화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이 영화 역시 4월 개봉해 6월 현재 기준 누적 관객 수가 238만 명이니 썰렁한 극장 상황을 비추어 봤을 때 선전하고 있다. <아기공룡 둘리>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가족 관객층이 다수인데, 아이들 손을 잡고 극장 나들이할 때 선택하기 좋은 영화들이다. 부모는 과거에 좋아했던 캐릭터들의 현재 버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어 좋고, 아이들은 새로운 추억을 쌓을 수 있어서 함께 보기 좋으니 말이다. 특히 슈퍼 마리오는 닌텐도를 가지고 노는 아이에게 익숙하고, 일본 여행 코스 중 하나인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에서도 체험할 수 있는 놀이기구의 캐릭터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아기공룡 둘리>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나란히 장기 상영 중인 극장가의 특징은 무엇일까. 이를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 레트로 무비의 인기 혹은 전 연령 관람 등급 영화가 흥행에 유리하다고 정의하기엔 미심쩍다. 극장은 아주 많은 엔터테인먼트 중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하다. 그것도 인당 1만 5천 원이라는 티켓 비용을 치러야 하는.
과거 관객들이 주말 나들이 겸 들르던 공간으로서 극장의 시대는 저물어 간다. 극장은 관객들에게 야외 공간으로 인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답답한 실내에서 두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통제당하는 엔터테인먼트다. 한 달 1만 원 내외의 OTT나 숏폼, 유튜브도 경쟁자지만, 전시회, 공원, 액티비티 스포츠와 여행, 코로나19 이후 선택할 수 있는 야외 활동 역시 극장의 경쟁자다. 이런 상황에서 극장을 오락의 장소로 경험해왔고, 여전히 익숙하고 재미있는 공간으로 인지하는 연령대가 30대 이후로 높아져버렸다. 극장용 영화의 타깃 관객층 역시 3040이 됐다. 관객은 더는 ‘재미없을 가능성’에 투자하고 모험하고 싶지 않다. 실패할 가능성을 줄이려면 내가 익히 알고 있거나 추억이 있는 영화의 시리즈일 때가 안전하다. 1990년대 탄생한 원작이 30년 만에 부활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은 그때 아이들이 자라나 과거에 사랑했던 영화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두 번 세 번 열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김송희 빅이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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