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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8월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가족의 대안, 감정 공동체

가족을 기억해 본다. 그 기억의 감촉이 행복인지 불행인지, 감동인지 아픔인지 분명하지 않다. 불투명 유리 뒤에서 아른거리는 그림자처럼 형체는 있지만 또렷하게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억울한 기억과 미안한 감정은 시간이 흘러도 뭉툭해지지 않는다. 가족을 생각해 보니 그렇다. 미련인지 미련함 때문인지 끊어지지 않는 기묘한 감정이 끝을 알 수 없는 길고 긴 꼬리 같아서 문을 닫을 수가 없다.

혈육보다는 양육

빚에 허덕이는 세탁소 주인 상현(송강호)과 보육원 출신의 동수(강동원)는 소영(이지은)이 교회의 베이비 박스 앞에 버린 아기를 몰래 훔쳐 온다. 아기가 필요한 부모에게 돈을 받고 팔아넘길 작정이었는데 갑자기 소영이 다시 나타나면서 이들의 계획은 엉망이 된다. 여기에 형사 수진(배두나)과 후배 형사(이주영)가 끼어들면서 아기를 팔려는 일정은 여행이 돼버린다. 히로카즈 감독은 진짜 가족이란 ‘낳다’에 방점이 찍힌 혈육이 아니라 ‘기르다’에 중심을 잡은 양육으로 결정된다고 말해 왔다. 그래서 〈어느 가족〉에서는 아이를 버리는 진짜 부모보다는 좀도둑질을 시키지만 옆에 끼고 돌봐주는 양부모가 차라리 낫지 않은가 하는 도발적 질문을 던진다. 가족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낳기 전에 죽이는 것보다, 낳은 후에 버리는 것이 낫지 않으냐는 <브로커>의 화두는 조금 더 논쟁적이다.
전작들이 부모 없는 아이들의 꿋꿋한 성장 이야기였다면 〈브로커〉는 감정 공동체로서의 대안 가족을 만들어 모두 아이를 함께 키워보자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각자 불행한 가정에서 제각각 부러진 나뭇가지거나 삐죽 튀어나온 잔가시 같았던 사람들이 한 명의 아이를 위해 울타리가 돼보려 한다. 하지만 공감할 만한 사연을 가진 인물이 없어 누구에게도 딱히 마음이 쏠리지 않는 점은 아쉽다. 게다가 인물들 사이에 서로를 굳이 품어야 할 만큼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처럼 보이지 않아 이야기에 솔깃하게 되는 순간이 부족하다.

그늘 없는 이야기

대안 가족으로서의 이야기는 사실 〈어느 가족〉에서 정점을 찍었다. ‘관계’가 가족의 핵심이라는 이야기의 농도와 맛이 무척 진한 이야기였다. 그런 농도를 기대하고 보자면 〈브로커〉는 조금 밋밋하다. 일본 덮밥 장인이 한국산 재료로 현지 맛을 내려는데 결국 와사비 대신 연겨자를 넣은 것 같다. 히로카즈 감독은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삶과 죽음 같은 갈등 사이에서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 각자의 사정이 보이지 않는, 너무 많은 주인공을 아우르다 보니 각각의 인물에 집착하거나 착취하지 않는 딱 적당한 거리에서 관찰하던 카메라의 시점이 취향에 따라 흔들리는 순간이 있다.
배우 이지은에게 가수 아이유를 지울 기회를 충분히 주면서도 굳이 자장가를 부르는 장면을 넣은 것처럼 차가워야 할 이야기와 따뜻해야 할 정서가 서로 경계를 넘나들면서 감정의 지지선을 지키지 못하고 미지근해진다. 사실 이전까지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냉기가 서린 늦가을에 봄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늘에서 빛을 바라보기 때문에 눈은 부시지만 몸은 서늘하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보고 있자면 심장은 차가운데 마음은 따뜻하다고 느끼는 정서적 아이러니에 빠진다. 그런데 〈브로커〉는 줄곧 쨍쨍한 직사광선 아래 있어 도무지 숨을 곳이 없다. 히로카즈 감독의 오랜 팬들은 이 영화의 미지근한 온도가 아쉽다고 하고, 그의 작품을 처음 본 관객은 공감 가지 않는 뭉툭한 정서를 아쉬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감정 공동체가 가족의 대안이라는 히로카즈의 일관된 어조에는 역시 일관되게 공감이 간다.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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