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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침묵,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선언 전쟁과 <백조의 호수>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러시아 정부의 입장과 다르게 보도해 오던 러시아의 민영 방송사 도쉬티Дождь, Rain에서 직원들이 사퇴를 선언한 후 <백조의 호수Лебединое Oзеро, Swan Lake>를 방영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치적 맥락에서 <백조의 호수>의 의미를 살피고, 현 두 국가의 사태를 문화 지형과 역사의 관점으로 접근해 살펴보고자 한다.

3월 4일, 러시아의 민영 방송사 도쉬티는 직원들이 자진 사퇴를 선언하는 모습을 보여준 후 발레 <백조의 호수>를 방영했다. 이들의 사퇴는 본 방송사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전쟁’ ‘침공’으로 보도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정부와 입장이 달라 탄압받았기 때문이다. <백조의 호수> 방영은 현 러시아 정부를 향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 것일까? 현 사태를 단순히 블라디미르 푸틴이 벌인 전쟁으로만 볼 수 있는 걸까? 미국과 서유럽 국가 중심의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 소비에트연방국가에 속해 있던 국가 간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해와 역사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서구권의 언론에서는 단순하게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다.
전범 사태까지 흘러온 기저에 일방적 사고 흐름은 없는지 비평적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러시아 예술가들이 자진 사퇴를 하거나 사임되고 있으며 러시아 문화예술이 순식간에 ‘당연히’ 지워지는 현시점에서 그 맥락을 향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복잡하고 다난한 여러 입장에 대한 이야기를 최근 러시아의 언론탄압으로 직원들이 단체 사퇴한 후 방영한 <백조의 호수> 사건으로 시작해 보겠다.

<백조의 호수>로 기억되는 과거

러시아에서 <백조의 호수>를 방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2년 11월 10일에 소비에트연방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의 사망 당일, 1984년 2월 9일 소비에트연방 공산당 서기장 안드로포프의 사망 당일에도 <백조의 호수>를 송출했다. 소비에트연방의 붕괴에 결정적 사건인 ‘8월의 쿠데타’가 일어나던 당시 3일간 러시아 방송에서는 <백조의 호수>가 송출됐다.
당시 러시아인들은 <백조의 호수>를 보고 국가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음을 예측했다고 한다. 본 작품의 예술성과 달리 방송을 통한 송출로 정치적 퍼포먼스가 이뤄지는 맥락에서 러시아인들에게 <백조의 호수>는 일종의 불길한 징후로 인식돼 온 것이다. 외부의 시선으로는 “러시아답다” 혹은 “‘이해할 수 없지만 아름답다”라고 볼 수 있겠지만 러시아인들에게 언론이 정치적 사건을 언어화할 수 없을 때 <백조의 호수>를 과거부터 동일한 방식으로 방영해 왔다는 데에서 그 체감은 매우 다를 것이다. 혹은 이러한 인과관계가 없는 사건과 예술 작품이 만남으로써 기이한 아름다움이 발생하기도 한다.

러시아의 자랑, <백조의 호수>

러시아의 발레는 프랑스로부터 수입한 춤이다. 표트르 대제1672~1725 시대에 러시아의 근대화를 서구를 모델로 하며, 북방전쟁의 승리로 영토를 서구로 넓히고, ‘서구를 향한 창’으로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는 등 발레의 유입과 더불어 국가 차원에서 러시아의 서구화가 활발히 진행됐다.
발레는 러시아 궁정의 후원을 받으며 발전했다. 그리고 프랑스 발레교사 마리우스 프티파1818~1910에 의해 러시아의 고전발레가 탄생한다. 그중 <백조의 호수>는 러시아의 백조 전설을 기반으로 블라디미르 베기체프와 겔쳐가 대본을 쓰고, 차이콥스키1840~1893가 작곡하며, 마리우스 프티파가 1, 3막을, 레브 이바노프가 2, 4막을 안무해 완성됐다.
이 작품은 러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의 발레 작품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으며, 소비에트연합국 시절 외교 활동의 일환으로 해외에서 내방한 손님에게 <백조의 호수>를 관람하도록 하는 등 러시아가 추구하는 극도의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보여줬다.
러시아는 수입한 춤을 단순 답습하거나 전승하는 것이 아닌 춤을 ‘러시아화’해 러시아만의 것으로 승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는 발레를 수입해 온 프랑스에 러시아의 고전발레와 낭만발레를 거쳐 발레 뤼스Ballets Russes를 역수출하는 우월함을 보여준다. 러시아 발레의 근간에는 러시아와 서유럽의 역사, 러시아의 근대화 정책이 있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문화 또한 러시아 문화로 승화시켜 넓혀가는 양상을 볼 수 있다. 발레는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프랑스로, 러시아를 거쳐 다시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권으로 확장된다.

도쉬티 방송국의 <백조의 호수> 방영은 침묵인가, 발언인가?

<백조의 호수>는 러시아가 자랑하는 발레 작품이자 프랑스 발레를 러시아만의 스타일로 승화시켜 전 세계의 레퍼토리로 인정받은 작품이다. 그러한 작품이 러시아인들에게 불길함, 불안함을 야기하는 상징으로 기능하게 된 것은 아름다움으로 가려진 공산주의의 비판이었을까.
왜 하필 <백조의 호수>인지에 대한 추측은 여러 가지다. 차이콥스키가 작곡을 마친 당시가 부활절 이후 추모 주간이었다는 설, 이 작품에 죽음의 모티프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 등이 있다. 이 작품의 결말은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버전이 제각각 다르기도 하다. 구소련 시기에는 지그프리드 왕자의 승리로 마법이 풀리는 해피엔드 버전이 무대에 많이 올랐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해피엔드는 승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선이 악을 이기고 승리할 것으로, 도쉬티가 우크라이나 승리의 편에 선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설을 뒤로하고 <백조의 호수>가 극장 공연이 아닌 TV 매체로 방영될 때 붕괴와 죽음, 해체의 상징을 지닌 맥락에서 이번 사건은 구소련이 해체되던 당시 침묵하기 위한 방편으로 방영했던 것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도쉬티 방송국이 러시아 정부 입장과 다른 시각을 보도했다는 점에서 <백조의 호수>는 현재 푸틴 정권의 붕괴를 선언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푸틴은 자신의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러시아의 보수적 맥락을 잡고 있으나 러시아의 상당수 시민은 이미 서구화되고 민주주의화돼 그 거꾸로 가는 태도를 따르지 않게 된 것은 아닌지, 더 나아가 설득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내부 분란으로 오히려 러시아 민족성의 긍지마저 해체시키는 사건은 아닌지 앞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양은혜_웹진 [춤in] 편집장 | 사진 www.niemanlab.org

※본 원고는 지면 관계상 편집되었습니다. 원문은 웹진 [춤:in]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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