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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4월호

‘0’과 ‘1’이 만든 세계에 들어서다
미디어아트 길라잡이

누군가 “‘미디어’가 뭔가요?”라고 물으면 거침없이 대답할 자신이 없다. 자주 쓰면서도 사전을 들춰야만 또렷하게 와닿고 제대로 이해되는 단어가 많다. 미디어아트의 세계에는 파사드·매핑·이머시브와 같은 생소한 단어가 있고, 단어의 의미가 머릿속에 들어오면 하나라도 더 즐길 수 있다. 미디어아트 주변을 맴도는 용어를 이해하고 작품을 제대로 즐겨보자.

최근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히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자 하는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그림·조각 등 미술 분야 외에도 다양한 동시대 미술에 대한 관심 또한 커지고 있다. 그 가운데 최신 기술을 이용한 미디어아트가 있다. 사진·영상 등 기술이 포함된 미디어를 미술이 이용해서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여기서 미디어에 대해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대를 ‘정보통신 미디어 시대’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미디어와 미술에서 사용하는 미디어의 개념에 차이가 있는 것일까. 사실 미디어의 의미에 차이는 없다. ‘미디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써 있다. 즉 ‘매체’라는 의미다. 신문과 방송은 정보를 매개하는 매체, 정보 미디어가 되는 것이다.
회화나 조각 등을 지칭할 때 ‘미디엄’이라는 말을 쓴다. 미디엄의 복수형이 미디어다. 미술에서도 미디어, 매체가 매우 중요하게 쓰인다. 작가의 작업 의도를 관람객에게 전달하기 위한 매체가 바로 ‘작품’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작업 의도를 전달하는 방식의 범위가 확장되며 바로 ‘미디어아트’가 떠올랐다. 그래서 혹자는 ‘뉴미디어아트’라고도 말한다.
코로나19라는 역병의 시대가 2년 넘게 진행되면서 기술을 이용한 미디어아트가 더욱 부상하고 있다. 미디어 파사드나 프로젝션 매핑, 이머시브 아트 등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미디어아트 분야뿐만 아니라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메타버스Metaverse 등 비대면 시대에 접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 분야가 많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용어는 미디어아트의 최근 흐름에 걸맞게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물론 깊게 들어가면 어떤 예술도 쉽지는 않다). 우리가 즐기는 미술의 한 가지일 뿐이다. 미디어아트의 세계에서 비교적 최근 등장한 용어를 한번 살펴보자. 이들을 알면 어렵게만 느껴지던 미술관의 작품을 비롯해서 도시를 걷다가 마주치는 미술 작품도 편안하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스퀘어, 줄리언 오피의 <군중>

1. 미디어 파사드, Media Facade

저녁 즈음 서울역 근처를 가게 됐을 때 맞은편에 위치한 서울스퀘어 빌딩을 바라보면 넓은 외벽에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영상과 다양한 빛의 움직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 파사드 작품이다. 원어의 의미를 알면 미디어 파사드를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 파사드는 과거 신전이나 성당 등 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를 일컫는데, 현재는 건축물의 외부 전면부를 지칭한다. 즉 미디어 파사드는 건축물의 외부 전면부를 통해 미디어아트를 보여주는 방식을 뜻한다. 힘을 주어 치장하던 옛 건축물의 전면부처럼, 조명·영상·정보기술 등을 결합한 미디어아트를 선보임으로써 건축물을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할 뿐 아니라, 동시대 예술의 흐름을 산책하면서도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21세기를 맞이해 건축과 미디어아트가 결합한 형태라고 하겠다. 도심의 건축물 외벽을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미디어 파사드는 공공미술의 영역에 포함될 때가 많다.
미디어아트를 건축물의 외벽을 통해 보여주는 데에는 몇 가지 방식이 있는데, 외벽에 LED 조명을 설치해 미디어 영상을 보여주거나, 외벽에 프로젝터로 영상을 영사해서 미디어아트 작품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공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서울스퀘어는 대우빌딩을 리모델링하면서 전면부 타일을 교체했는데, 그 타일에 LED 조명 장치를 설치했다. 빌딩의 넓은 전면부 전체가 미디어 파사드의 스크린으로 쓰이는 것이다. 대중에게 알려진 작품은 영국 yBayoung British artists 출신 아티스트 줄리언 오피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영상이 보이는 <군중>이다. 그 외에도 양만기·김신일·류호열 작가의 미디어아트를 미디어 파사드 작업으로 선보였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로미디어캔버스’ 또한 서울역 근처 만리동 광장 앞 우리은행 건축물 전면부에 설치된 투명 전광 유리 LED 모듈에서 선보이고 있다. 미디어아트와 영상 콘텐츠 등 빛을 발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이곳은 기획 공모로 선정한 다양한 예술가와 시민의 작업을 저녁 시간에 상영해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미디어 아티스트 김형규가 서정원 작가와 함께 2020년 성산동 문화비축기지에서 선보인 <상상초월>은 코로나19 시대에 야외에서 미디어아트를 감상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프로젝터로 영상을 쏘는 방식으로 문화비축기지의 ‘T6’ 건물의 굴곡진 외관 뒷면을 꽉 채워 관람객에게 색다른 예술적 경험을 선사했다.

전시 <빛의 벙커: 클림트> 전경 ⓒ류동현

2. 프로젝션 매핑, Projection Mapping

프로젝션 매핑도 미디어아트의 한 갈래다. 이 용어 또한 단어의 의미를 먼저 파악해 보자. 프로젝션은 투영된 영상을 뜻하고, ‘매핑’이란 말 그대로 ‘지도를 만들다’라는 의미인데, 지도를 만드는 일은 현실의 지점을 지도상에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매핑은 어떤 요소의 짝을 맞추거나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 즉 프로젝션 매핑은 어떤 대상의 표면에 빛으로 이뤄진 영상을 영사해서 그 대상의 표면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미디어 파사드 중 프로젝터로 외벽에 영사하는 방식도 일종의 건물 외벽 크기에 대응한 프로젝션 매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공간·오브제 등 프로젝터로 영상을 쏠 수 있는 모든 것을 스크린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다양한 형상의 오브제에 맞춰 컴퓨터로 조절해 영상을 선보이므로 관람객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
제주도의 빛의 벙커 전시장에서 개최하는 미디어아트 작업에 프로젝션 매핑 기법이 주로 도입됐다. 필자가 찾아간 2019년에는 <빛의 벙커: 클림트>를 열고 있었는데, 빛의 벙커의 내부 구조에 맞춰 클림트 작품을 미디어아트 영상으로 변환해서 음악과 조합해 전시했다. 넓은 공간을 꽉 채운 미디어아트 영상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실제로 클림트 작품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성격의 미디어아트는 최근 많은 전시에서 선보이고 있기 때문에 쉽게 접할 수 있다.
미디어 및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는 아티스트 그룹 뮌이 2005년 제작한 <휴먼 스트림>은 3.5m 높이의 인체 흉상 프레임에 깃털로 덮은 거대한 오브제를 설치하고 이 오브제 형상에 맞도록 미디어 영상이 영사되는 형태의 작품이다. 군중의 모습을 프로젝션 매핑으로 오브제에 맞춘 영상과 흩날리는 깃털의 모습을 통해 모이고 흩어지는 군중의 속성을 시각화했다. 이 작품은 프로젝션 매핑을 이용해 작업의 의미를 표출하는 방식이다.

<핑크 플로이드: 그들의 위대한 유산> ⓒ류동현

3. 이머시브 아트, Immersive Art

런던을 방문한 적이 있다. 팬데믹 이전 시절이다.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서 록 그룹 핑크 플로이드와 관련한 전시가 열렸다. <핑크 플로이드: 그들의 위대한 유산Pink Floyd: Their Mortal Remains> 전시는 핑크 플로이드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로 그들의 음악 생애 전반을 다뤘다. 전시 자체는 별로 색다를 것이 없는 회고전이었지만, 방식이 독특했다. 전시장 앞에서 모든 사람에게 헤드폰을 하나씩 나눠줬는데, 전시장에 들어가 어떤 지점에 다다르면 타이밍에 맞게 음악과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최근 미술과 관련해서 ‘이머시브’라는 단어를 종종 본다. 사전을 찾아보면 ‘(컴퓨터 시스템이나 영상이 사용자를) 에워싸는 듯한’이라는 의미이다. 이머시브 전시라고 하면 전시장을 단순히 시각적으로만 구성한 것이 아니라 음악과 영상, 그 외의 다양한 특수효과로 관람자로 하여금 공감각적 감상을 가능하게 하는 전시를 말한다. 이머시브가 개입된 전시나 작품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오감을 통해 작품을 체험·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음악과 영상의 조합으로 미디어아트 작업을 보여준 <빛의 벙커: 클림트> 또한 일종의 이머시브 아트라고 할 수 있다. 아마 공간을 이용하거나 음악과 같은 요소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미디어아트가 이머시브 아트와 연결될 것이다.

김안나 <Neosurreal(VR)> | 2019 | virtual reality, dimension variable.

4. AR·VR·메타버스

증강현실(이하 AR)과 가상현실(이하 VR)은 이제는 우리에게 꽤 익숙한 개념이 됐다. 미디어아트 분야에서도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AR은 VR의 한 갈래로 실제로 존재하는 환경에 가상의 사물이나 정보를 합성해서 원래 그곳에 있던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컴퓨터그래픽 기법이다. VR은 디스플레이 장치를 통해 실제 세계처럼 가상의 세계를 구현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VR은 일방적인 시뮬레이션과는 달리 관람자와 상호작용이 가능하고 경험을 이끌어내 3D로 제작될 경우 실제와 비슷하게 관람객으로 하여금 몰입하도록 만든다.
사실 이러한 AR·VR 콘텐츠의 대표 예를 꼽으라면 바로 게임이다. AR 방식으로 유명한 게임이 한때 큰 인기를 끈 <포켓몬 GO>다. VR 게임도 많다. 장비를 머리에 쓰는 순간 상상이 넘쳐나는 게임 세계로 몰입하도록 한다. 환상의 세계가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의 리얼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미술에서도 이러한 AR·VR 방식을 도입한 작업이 최근 눈에 띄게 늘었다. 주로 도시 공간이나 건축물 공간 등에 예술적 언어를 AR 방식의 미디어아트 작업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2020년 10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작가 권민호가 <회색 숨>을 AR로 선보였다. 관객이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모바일 스크린으로 3D AR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로비 전시는 종료됐지만, 6월 12일까지 외벽 설치 작품과 AR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얼마 전 스페이스 소에서 열린 <Mix(image)Verse> 전시에 출품한 김안나의 작업은 아예 장비를 쓰고 봐야 하는 VR 작업이다. 자연과 기술의 관계가 어떻게 사회적·심리적 의식을 형성하는지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는 이 의식의 형성을 살펴보는 데 있어 최신 기술인 VR을 도입했다. <Neosurreal (VR)>은 원근법으로 보는 ‘현실 세계’와 시공간의 제약 없이 상상의 세계로 펼쳐내는 ‘가상 세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VR 세계에서 보이는 현실과 가상 세계의 차이, 이들에 대한 경험의 차이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받아들여지는지를 고민한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해서 전시 또한 VR 형식으로 개최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필자 또한 코로나19 이후 몇 건의 해외전시를 VR 전시로 개최했다.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면모를 해외에 소개하고자 기획한 <오감도: 한국미술의 다섯 풍경>이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릴 계획이었는데, 팬데믹 상황으로 디지털 기술을 도입한 VR 전시로 개최한 것이다. 이러한 전시 방식도 미디어아트를 넓게 이용했다고 할 수 있다. VR 전시는 실제 전시가 갖는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사이트에 접속한 관람객으로 하여금 실제 전시장을 걷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전시장과 관람자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해서 호응이 높았다.
최근에는 메타버스가 미디어아트의 세계로 들어왔다. 메타버스는 VR보다 한 단계 진화한 개념으로, 아바타를 활용해 실제 현실과 같은 사회·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다. ‘가상’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라는 단어와 우주,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가 합쳐진 용어다. 특히 코로나19 시대에 대면이 어려워지고, 통신 체계가 계속 발전하면서 이러한 메타버스 등의 미디어아트를 이용한 작업이 대중화하고 있다. 2021년 개최된 아트페어 <더프리뷰 한남>의 아트페어 팀은 일정 기간 개최하고 끝나는 아트페어 행사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네이버 제페토를 이용해 메타버스 속에 작품 이미지를 넣어 관람객들이 작품을 계속 볼 수 있도록 했다.

류동현 미술 저널리스트, 전시기획자 | 사진 제공 울스퀘어, 류동현, 스페이스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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