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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8월호

이유 있는 도시괴담
우물 전설과 물탱크 괴담

기묘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몸집을 키운다. 조선의 우물 전설과 현대 서울의 물탱크 괴담은 친숙하지만 동시에 잘 모르는 캄캄한 ‘우물’의 공포를 이야기로 만든 도시괴담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디서 귀신이 저랬더라’ 유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괴담은 사람을 홀리기는 마찬가지다.

옛날 옛적에 우물에서 소 울음 소리가 들렸다 하더라

조선 시대 수필집 《용재총화》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이야기꾼 성현成俔이 만든 수필집 《용재총화》에는 우물에 관한 이상한 이야기 한 편이 실려 있다.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의 한 고을에는 여느 마을처럼 우물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야기의 주인공이 그 지역을 다스리는 관리로 부임해 보니, 사람들이 그 우물을 무슨 신령 숭배하듯 받들어 모시는 광경을 보게 됐다. 관리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왜 우물을 숭배하는지 물어본 것 같다. 기록에 따르면, 이 지역 사람들은 우물이 굉장히 오래됐으며 영험한 귀신이 산다고 믿었다 한다. 그래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귀신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에, 혹은 그 귀신이 복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우물 귀신에게 기도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우물 속 귀신이 어떤 형체였고 무슨 모양이었는지에 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없다. <링> 시리즈 같은 외국영화와 소설이 워낙 인기를 끄는 요즘에는 우물 귀신이라고 하면 약간 섬뜩하게 생긴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떠올리겠지만, 조선 전기 사람들이 생각하던 우물 속 귀신은 꼭 사람 형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야기 뒷부분의 내용을 참고 하고 정황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아마도 당시 사람들은 우물 속 귀신이 소와 비슷한 모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상상해 보자면, 물소의 모습이나 물속에서 살기에 적합하게 지느러미가 달린 소의 모습, 또는 소와 물고기가 섞인 모습 같은 것을 떠올려볼 수 있다. 관리는 그런 허망한 이야기를 믿어서 기도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그의 처지에서는 우물 신령 이야기를 부정할 필요가 있었다.
관리는 정부의 명령을 받아 다른 고장에서 그 지역을 다스리러 온 입장이었다. 그런데 지역 주민들이 정부의 조치 못지않게 우물 신령을 중시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그의 업무는 힘들어질 수 있다. 만약 관리가 농사를 위해서 냇물의 물길을 남쪽 방향으로 틀자고 주장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어떤 무속인이 “우물 신령이 어제 꿈에 나와서 내게 말했는데 물길을 북쪽으로 틀자고 했다”고 주장하면서 맞선다면 곤란하다. 지역 주민들이 관리와 조선 정부의 권위보다도 우물 신령의 권위를 더 중요하게 여기면 그는 정부에서 바라는 방향으로 고을을 통치하기 어렵다. 그러니 관리에게는 사람들이 우물 신령을 믿지 못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었다.
결국 그는 우물을 흙으로 메워서 없애버리기로 결심한다. 정부로부터 권한을 받은 관리의 명령이면 우물 신령이 사는 곳을 아예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그 지역 주민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주고자 했다. 이야기의 절정은 그다음 대목이다. 우물에 한창 흙을 메우고 있는데, 갑자기 우물 속에서 무슨 우는 소리가 들렸다. 우물 자체가 자신이 사라지는 것을 싫어해서 운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우물 속에 사는 어떤 괴물 같은 것, 신령이 갑자기 위에서 흙더미가 내려오니 울고 있다고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 울음 소리는 마치 소가 내는 울음소리 같았다고 한다. 공사를 진행하던 사람들은 귀신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하고, 혹시 저주를 받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겁에 질리자 관리는 이렇게 말한다.
“슬퍼서 우나 보지.”
그리고 관리는 공사를 강행하라고 지시한다. 우물 안에 신령이 실제로 살고 있어서 설령 지금 울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울음 정도로 조정의 임무를 수행하는 자신을 막을 수는 없다는 의미였다.
마침내 우물은 메워지고, 소 우는 것 같던 그 소리도 멈춘다. 그리고 모든 요사스러운 일은 끝이 났다고 한다. 더는 우물 속에 사는 신령에게 기도하는 사람들도 나타나지 않았다. 정부에서 내려보낸 관리의 권위가 우물 귀신을 이긴 것이다.
우물에 신령이나 귀신이 산다는 유의 전설은 전국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조선 시대 《용재총화》에 실린 이야기와 닮은 이야기로 현대에 조사된 이야기로는 《한국민속문학사전》에 실린 <한우물>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전라북도 남원시의 어느 마을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도 우물에 이상한 것이 산다고 적혀 있다. 특히 그것의 이름을 ‘우룡신’이라고 불러서 용처럼 생긴 소, 내지는 소처럼 생긴 용이라고 하는 점도 《용재총화》의 이야기와 통한다. <한우물>에서는 우룡신이 있어야 할 곳에서 검은 소 형체를 봤다는 서술도 등장한다.
남원의 <한우물> 이야기 역시 결말은 우물을 없앴고 그 신령은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다만 세부 사항에서 약간 으스스한 내용이 덧붙어 있다. 그 신령이 사람 꿈속에 나타나, 자신에게 기도하려면 사람 시체를 구해서 그 머리를 우물에 제물로 던져 넣으라고 했단다. 아마 그런 우룡신의 요구가 너무 끔찍하고 기괴해서, 사람들은 그 요구에 복종 하기보다 우물을 파괴하려고 한 것 같다. 참고로 <한우물> 이야기에 서는 그냥 우물을 파괴했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래도 살 곳을 잃은 신령의 원한을 달래기 위해서 그 후로 마을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말한다.

우물과 무서운 신령,
괴물 이야기가 엮이곤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먹고살기 위해서 우물에서 물을 길어서 사용한다면, 우물은 일상생활에서 항상 접해야 하는 친숙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물은 깊이가 깊고 땅속으로 들어가 있는 구조물이기 때문에 정작 그 캄캄한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알수 없는 대상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우물은 자주 사용하는 곳이지만 물을 긷다 실수로 우물 안에 빠져버리면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곳이라서 위험하다. 꼭 그런 큰 사고가 아니라고 해도, 누군가 물에 더러운 것을 빠뜨린다거나 썩은 것, 독성이 있는 것을 떨어뜨리면 나중에 그 물을 먹는 사람 모두 병들 수도 있는 위험이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해서, 우물은 언제나 접할 수 있어서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이면서도, 잘 보이지는 않고, 동시에 위험이 곁에 있는 대상이다. 그러니 우물을 소재로 이런저런 괴상한 이야기를 지어내고 퍼뜨리는 일이 자주 벌어지지 않았을까?
현대의 서울은 이제 우물을 파서 그 물을 식수나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은 곳은 아니다. 대부분 과학기술과 치밀한 관리를 통해 생산한 수돗물을 사용한다. 수돗물은 거대한 펌프가 뿜어내는 강한 압력으로 집집마다 공급된다. 더는 으스스한 길을 걸어 혼자서 물을 길러 갈 필요가 없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온다.
그런데 고층 빌딩이 많은 서울 도심에서는 빌딩 꼭대기에 설치된 물 탱크가 옛 우물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2000년 무렵에는 서울 강남구의 음식점에 물을 공급하는 건물 물탱크에 사람 시체가 들어 있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다.
예전처럼 우물에 신령이 살고 있으니 제사를 지내며 숭배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인 이야기는 아니다. 대신에 너무나 간편히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는 수도 체계라는 과학기술의 뒷면에 자칫 그 물이 쉽게 오 염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신령이나 괴물 역할을 대신하 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어떤 음식점에서 물을 마실 때 어쩐지 비릿한 냄새가 난 것 같은데. 사실 그 건물 물탱크에 며칠 동안이나 시체가 들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공포를 불러일으킨다는 뜻이다. 당시 돌던 소문 중에는 몇 달 동안이나 그 사실을 모르고 영업했다는 식의 이야기도 있었고, 이야기가 더 괴이하게 변해서 무슨 영문인지 물 탱크에서 시체 10구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이 돈 적도 있다.
이런 소문이 잘 퍼져나가는 원인은 수백 년 전과 유사하다. 수돗물에서 물을 얻는다는 것은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그 수도관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물탱크가 어디에 어떻게 붙어 있는지는 볼 수 없고 알 수 없다. 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보통 물탱크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알지 못한다. 게다가 훨씬 많은 사람이 한 건물에 모여서 생활하는 상황에서 위생·감염·오염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그 알 수 없는 물탱크에 이물질이 들어간다는 것은 무척 강렬한 위험이다. 그러니 도시의 물탱크도 충분히 무서운 이야기가 탄생할 만한 배경이 될 수 있다.

공포는 무지를 이용해 사람들 마음에 두려움을 심는다

이렇게 보면 현대의 도시 전설은 수백 년 전 옛이야기를 옛사람들이 두려워하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생겨나서 퍼져나가는 경향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두렵게 만들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방법은 결국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설령 도시 전설의 공포가 과장되고 부풀려진 점이 있을지 언정, 과연 그런 공포가 생겨나고 퍼져나가는 원인이 무엇인지는 똑똑히 밝혀서 현실에서 대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무서운 이야기가 돌 때, 허황된 소문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 소문의 바탕이 되는 실제 문제를 지목하고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2000년 8월 4일 《중앙일보》 보도를 보면, 2000년 당시의 음식점 물탱크 도시 전설은 실제로 한 음식점에서 임시 물탱크 용도로 사용하던 곳에서 30대 무직자가 사망해 시신으로 발견된 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와전되고 과장돼 생긴 소문이라고 한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물에서 사람을 홀리는 귀신 이야기나 우물 속 물귀신, 물속에 사는 소같이 생긴 신령이 물탱크에도 깃들였을지 모른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떠벌리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어떻게 물탱크를 관리해야 실제로 물탱크 오염 사고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 더 나아가서는 갈 곳 없어서 도시 이곳저곳을 떠도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논의하고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필자는 그런 대책이 21세기에도 우리를 겁주는 우물 귀신의 후예를 효과적으로 퇴치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대책이 진작에 철저히 세워졌다면, 이후에 가끔 벌어진 물탱크와 관련해 실제로 벌어진 사건·사고를 조금은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곽재식 작가 | 사진 제공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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