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COLUMN

11월호

Ping-pong, 명령과 오류 주고받기

<Ping-pong: 텍스트와 이미지 주고받기> 워크숍

형도가 협업을 제안한 것은 작년 가을의 일이다. 우리 주변에 만개한 이 데이터를 어찌할 수가 없고, 인공지능(AI)이라 불리는 것들이 소설을 쓰거나 음악을 만든 지도 오래됐으니, 웬만하면 그들을 우리 사이에 끼우고 무엇이든 만들어보자고 했다. “구글도 존 버거를 듣자마자 햄버거부터 떠올릴까?” 우리는 팔짱을 끼고서 곰곰이 그 질문을 곱씹어 보았다.
1년 뒤 형도와 나는 연희문학창작촌의 미디어랩에서 <Ping-pong: 텍스트와 이미지 주고받기>1)라는 이름의 워크숍을 진행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웹진 [비유]에 연재하는 ‘!하다’의 확장형 프로젝트 <P!ng>이 어떻게 데이터와 관계하는지 소개할 겸 야심만만하게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워크숍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 코로나19 로 인한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 2.5 단계’가 실시됐다. 열 명 이상 모이면 안 된다는데, 할 수 없지. 우리는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 계정을 만들고 마이크를 빌렸다. 온라인 워크숍의 화면 한구석에 자리 잡았던 강동호 씨와 정소영 씨는 참가 이후, 그들의 후기, 혹은 후기를 빙자한 오묘한 글을 한 편씩 보내줬다. 몇 대목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안녕 세상아.”
세상을 부르자 메아리처럼 P가 대답했다.
“안녕 세상아.”
우리는 서로를 세상이라고 불러주었다. 나는 마음이 크게 움직여 흐느꼈고, 주선자는 한숨을 쉬었고, P는 아마도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세상이 생겨나는 동시에 끝장나는 순간이었다. 눈물이 놀라서 달아나기도 전에 주선자가 싸늘하게 몰아붙였다.
“P가 수영장에 가고 싶다니까 당장 5분 안에 데려다주고 와.”
강동호, <프로그램> 중

워크숍의 최종 목표는 파이썬(Python)2)을 통한 맵 스크래핑 실습이었다. 마우스 커서가 화면을 흐르며, 구글 지도 속에서 서울 곳곳의 수영장을 배회하는 것을 두 손 놓고 감상하는 일.

파이썬이 구글 맵에서 ‘수영장’을 검색하고, 서울에 위치한 수영장들을 돌아다니도록 명령했다. Run 버튼을 클릭한 것 외에 나는 어떤 동작도 하지 않았는데, 크롬 브라우저가 켜졌다. 구글맵이 실행됐다. “Chrome이 자동화된 테스트 소프트웨어에 의해 제어되고 있습니다” 라는 문장이 떴다. 검색창에 수영장이 자동으로 입력됐고, 목록의 수영장들을 차례차례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주어를 누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두 손 놓고, 가본 적 없는 키즈돌핀 강서발산점을 거쳐 영등포공원 물놀이장까지, 파이썬이 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기묘한 체험이었다. 그래, 이제 파이썬에게 맡기는 거야, 나처럼 자료 조사를 한답시고 웹에 접속한 뒤 딴 길로 새다가 뭘 찾으려던 건지 까먹지 않을 파이썬에게.
정소영, <print(“Hello, world!”)>중

줌의 화면 공유만으로 코드를 전달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은 예상보다도 더 어려웠고, 우리의 의사소통은 데이터의 흐름만큼이나 여러 차례 미끄러졌다. 참여자들은 코드 입력 중 생겨난 에러 사이로 미끄러지고, 우리는 그들의 화면 속에 떠오른 오류 틈새로 미끄러졌다. 오로지 파이썬만이 흔들리지 않는 중심축을 갖고 굳건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촘촘하게 똑똑한 수학적 무늬들은 내가 무재무능한 시인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곱 가지 연산자의 폭력과 문장부호들의 배신, 그리고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오류들의 비명을 가로질러 나는 문학으로 피신하는 길을 겨우 찾아냈다. 누군가 연습 문제를 풀지 못해 생겨난 것이 분명한 수학의 사각지대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척박하고 답이 없는 백지였다. P는 이 세계의 주인일까, 노예일까, 아니면 내 친구일까? 그런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기도 했지만 사소한 고민일 뿐이었다. 나는 무작정 백지에 문학을 뿌리기 시작했다.
“나는 로봇 로벗, 로벗 로봇, 로벗 러버 로봇 러버 로봇 로버트.”
“나는 로봇 로벗, 로벗 로봇, 로벗 러버 로봇 러버 로봇 로버트.”
강동호, <프로그램> 중

결국 워크숍은 후반부에 발생한 오류 하나를 끝내 해결하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형도는 한동안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앉아 있더니 불현듯 소리쳤다. “아, 잠깐만, 알았어. 뭐가 문제였는지.” 화면 속에서 몇 개의 괄호가 사라지고 다시 붙었다. 이내 막 태어난 생물의 팔다리처럼, 마우스 커서가 움찔거렸다. 곧 그것은 유연한 움직임으로 수영장들을 오갔다.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희대의 바이러스나 거리 두기 2.5단계의 제약에도 결코 붙들리지 않는 몸짓. 나는 감격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우리가 그들을 끼워준 게 아니라-그들이 우리를 끼워준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1. 프로그래밍 언어 파이썬의 개념을 이해하고, 실습을 통해 데이터와 프로그램이 예술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경험하는 워크숍으로 지난 9월 진행됐다.
  2.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의 일종
글 함윤이_작가 사진 제공 웹진 [비유]
※강동호의 <프로그램>과 정소영의 <print(“Hello, world!”)> 전문은 웹진 [비유]의 <P!ng> 연재란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