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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

책 《노멀 피플》과 《내 휴식과 이완의 해》밀레니얼 세대의 고독과 사랑
누구나 통과해 온 시간이지만, 우리는 청춘을 잘 알지 못한다. 과거의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고, 그 시절의 고통도 외로움도 흘러간 사랑도 반짝거리는 좋은 추억으로만 남아버린다. 밀레니얼 세대를 그린 소설로, 세계적인 화제를 낳은 20대의 두 젊은 작가가 있다. 한국에 갓 상륙한 그 소설을 소개한다.

<빛의 벙커: 반 고흐> 전시장 전경

지긋지긋한 우리의 관계도 사랑일까 《노멀 피플》 | 샐리 루니 지음, 김희용 옮김 | 아르테(arte)

1991년생, 맨부커상 후보작, ‘밀레니얼 세대의 데이비드 샐린저’란 수식어. 표지에 줄줄이 적힌 찬사만으로도 압도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 소설은 찬사에 기대지 않아도 충분히 놀라운, 새로운 세대의 전혀 다른 방식의 연애소설이다.
18세부터 22세까지, 고교에서 시작된 4년간의 지긋지긋하고도 끊을 수 없는 인연에 관한 이야기인데 설정은 상투적이다. 엄청난 부잣집 딸이지만 외모에 자신 없고 성적은 톱이고, 아웃사이더인 메리엔, 메리엔의 집에서 청소를 하는 싱글맘의 아들인 소위 노동자 계급의 축구부 주장인 코넬. 주민들 서로 속속들이 대소사를 아는 작은 마을에서 둘은 부끄러워 서로의 관계를 숨기며 가까워진다. 이른바 잠은 자지만 사귀지 않는 사이. 메리엔과 코넬 사이에 흐르는 계급 격차는 완벽한 솔메이트인 둘 사이를 결코 접착시키지 못한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에 진학하며 고향을 떠나지만, 둘은 전혀 로맨틱하지 않고 우연의 마법조차 작동하지 않는 질긴 인연을 이어간다.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면서도 서로에게서 찾는 위로와 위안을 결코 대체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불안한 대학 생활 동안 이들은 특별해질 수 없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보지도 않고, 마치 부유하듯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사랑을 갈구하지만, 경제적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담벼락(페이스북) 세대의 세태는 1991년생의 젊은 아일랜드 작가인 샐리 루니가 그리면서 더욱 특별해진다. 경제적 붕괴를 겪었고,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혁명 서사가 언제나 떠도는 동시에 상류층 자녀들이 가득한 캠퍼스. 요즘 세상에선 아무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 예술과 학문 속으로의 도피는 이들이 선택하는 출구 중 하나다. 여기에 정치적 냉소가 아일랜드 작가의 소설에서 빠질 수 없으니, 바로 이 지점에서 동시대 청춘의 자화상을 그려낸 탁월한 소설이 탄생한 것이다.
밀레니얼에게 가장 값싸고 쉬운 일은 그저 육체 관계를 맺는 일이고, 가장 값비싼 일이자 고통스러운 일은 가족을 견디는 일이자 가족이 되는 일이다. 그 때문인지 소설 속 모든 가족은 이상적이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두 사람에게 고독은 삶의 상수이며,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랑뿐이다. 내가 평범해지지 못할까 늘 불안하고, ‘노멀 피플’이 되고 싶어 물속에서 발을 허둥대는 시간. 그 시간을 이 소설은 탁월하게 묘사해 낸다.

나는 1년간 잠을 자기로 했다 《내 휴식과 이완의 해》 |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약물중독 같은 거 아니야. 잠시 쉬고 있는 거야. 지금은 내 휴식과 이완의 해거든.”
밀레니얼 세대를 설명할 수 있는 건 사랑만이 아니다. 우울에 관해서라면, 이 소설보다 탁월한 작품은 만나기 힘들 것이다. 1981년생인 이 젊은 작가는 첫 장편 《아일린》으로 펜/헤밍웨이상을 수상했고,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18년 발표한 이 두 번째 소설에 쏟아진 찬사도 만만치 않다.
잠에서 깰 때마다 밤이건 낮이건, 24시간 영업을 하는 잡화점으로 가 대용량 커피 두 잔을 사서 크림과 각설탕 6개를 넣은 후 첫 번째 잔은 아파트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단숨에 들이켠다. 두 번째 잔은, 크래커와 함께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복용한 후 천천히 마신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세탁물 수거가 이뤄지도록 조치하고, 모든 공과금은 자동 납부로 돌리고, 재산세도 1년치를 선납했다. 눈을 뜨면 음식을 먹고 비디오를 보면서 다시 잠들기를 반복하며 하루에 두세 시간만 깨어 있다. 샤워조차 일주일에 한 번쯤 했다. 예금 계좌에는 2~3년은 살 만큼 충분한 돈이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도입부부터 깜짝 놀라게 하는 주인공은 26세 무렵 ‘동면’에 들었다. 유산을 물려받고, 좋은 학벌과 아름다운 외모 등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주인공이지만 세상을 향한 냉소와 염세로 일상과 관계에 지루함을 느낀다. 마침내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고 일상의 루틴을 촘촘하게 짠 뒤 1년간 동면에 들어가는 계획에 착수한다. 잠에서 깨어나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대하며. 낮이나 밤이나 내내 잤고 중간에 두세 시간 정도만 깨어 있게 되자 ‘참 좋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만 염세의 늪에 빠진 건 아니다. 신경안정제 처방을 남발하고 신비주의 사상에까지 경도된 정신과 의사 터틀, 겉모습은 훤칠한 금융인이지만 연애 관계에서는 불쾌하고 일방적인 성행위만 요구하는 전 남자친구 트레버도 정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인물들의 뒤틀리고 병적인 면모를 보면서도 웃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타는 섬세한 심리 묘사와 어딘지 뒤틀리고 어둠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인공이라니.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소설이 아닌가. 무엇보다 읽다 보면 부러워지기까지 한다. 우리에게 과연 ‘휴식과 이완의 해’라는 게 있었던가.

글 김슬기_《매일경제》 기자
사진 제공 아르테(arte),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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