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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1월호

조쉬 분 감독의 <안녕, 헤이즐> 우리 별도 잘못하지 않았어
※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파서 청춘인 것은 아니다. 청춘이라 아프기도 하고, 아픈 청춘도 있겠지만, ‘아픔’이 청춘의 전유물인 것처럼, 청춘이니 감당해야 한다는 듯 표현하는 것은 무책임한 기성세대의 언어 같다. 솔직히 삶을 감당하고 버텨 살아내야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숙제다. 때론 힘들지만 가끔은 웃고 행복하기도 하고, 싸우고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여전히 살아야 하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일 것이다. 조쉬 분의 영화 <안녕, 헤이즐>은 몸이 아픈 청춘의 이야기다. 물론 몸이 아파서 마음도 그만큼 아프다. 하지만 <안녕, 헤이즐>은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짧은 삶을 살아야 하는 아이들을 동정하지도 않고, 훈계하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무척 현명하고 따뜻하다.

아픔과도 소통하며 자라는 청춘

<안녕, 헤이즐>은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지만, 청춘 영화의 공식 속에 명민하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깔아두고, 울컥하는 눈물과 잔잔한 감동, 포근한 감성까지 놓치지 않는다.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아이들이 여전히 그 나이 또래의 고민과 사랑을 겪으면서 훌쩍 자라는 성장담이며, 그런 아이들을 감싸는 부모들의 마음까지도 다독거린다. 그렇게 <안녕, 헤이즐>은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과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는 풋풋하고 따뜻한 사랑을 예찬한다.
예상대로 헤이즐이 그토록 원했던 작가 피터와의 만남은 예측을 벗어난다. 이는 다시 한 번 삶을 각성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그런 점에서 ‘안네 프랑크의 집’ 장면은 헤이즐과 관객들이 함께 겪어야 하는, 초조하고 숨 막히면서도 동시에 극복 가능한 성장담이 된다. 안네 프랑크의 집에서 녹음된 목소리는 계속 이렇게 되뇐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네가 삶의 일부분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빛과 희망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안녕, 헤이즐>은 어떤 의미에서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결말을 향해 정해진 방식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뻔해 보이는 이야기는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잔잔한 감동으로 이어진다. 마저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추도식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 그리고 잔잔한 감동은 도식적이지만 따뜻한 진심을 담고 있어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아이들의 삶을 애써 포장하거나 미화하지 않는 덤덤한 화법은 신선하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가 데이트를 즐기는 해골 놀이터처럼, 영화는 죽음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조쉬 분 감독은 죽은 후 망각으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것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헤이즐이 그토록 존경해 마지않던 작가조차도 스스로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알코올 의존자이자 찌질이일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리고 자신이 죽고 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헤이즐의 과도한 집착이, 죽은 자를 기억하기보다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위로해줘야 한다는 성찰로 이어지는 극의 구성은 단순한 청춘 영화 이상, 삶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안녕, 헤이즐>은 아프니까 청춘이지, 라는 기성세대의 언어를 사용하는 멘토 대신, 실연당한 친구를 위해 계란을 준비하는 친구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 영화가 너의 친구가 되어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소박한 마음이 영화의 밀도와는 또 다른 감동으로 이어진다.

원작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The Fault in Our Stars)

자칫 신파에 빠지기 쉬운 이야기를 기막힌 청춘의 성찰로 끌어가는 데는 존 그린의 원작에 힘입은 바가 크다.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매끈하고 경쾌한 로맨스로 풀어내는 작가의 빼어난 문구들은 영화가 자칫 유치해지는 순간, 영화 속 명대사가 되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담배를 물고만 있는 소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을 폭탄이라고 생각하는 소녀의 캐릭터도 입체적이고, 소박한 이야기 속에 삶의 성찰을 담아내는 문장들은 감탄을 자아낸다.
원작소설의 제목인 <The Fault in Our Stars>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서 인용했다. 시저의 암살 음모를 주도한 카시우스의 “잘못은 우리 운명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네”라는 말에서 나왔다. 개인에게 닥친 행운과 불운은 운명의 탓이 아니라, 결국 본인이 과거에 내린 결정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원제를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로 의역한 한국어 제목은 매력적이지만, 존 그린은 원작을 통해 우리의 삶의 변수는 운명이 아닌,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가 미처 품어내지 못한 더 매력적인 이야기는 책으로 꼭 확인해보길 권한다.

글 최재훈__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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