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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9월호

<겨> 겨 주고 겨 바꾼다
우리는 “겨 주고 겨 바꾼다”라는 속담을 거울삼아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일상의 소리들을 채집 해 가장 많이 나온 단어를 소재로 이미지를 만들고 글을 씁니다. 낱알의 껍질처럼 흩어진 소리의 겨들을 모아 가까이 들여다보고, 짧은 이야기를 상상해봅니다.

__<겨> 포스터와 소개 글 부분(웹진 [비유] 제공)

겨는 벼, 보리, 조 따위의 곡식을 찧어 벗겨낸 껍질을 이르는 말이다. “겨 속에서 쌀 찾기”, “겨 주고 겨 바꾼다”는 속담을 떠올려본다면, 겨라는 건 쓸데없고 하찮고 사소한 것쯤 되어 보인다. 그런데 여기, 흩어지고 버려진 겨를 살뜰히 모으고 살피는 손, 그리고 새로운 알맹이를 빚어내는 손이 있다. <겨> 프로젝트를 이끄는 두 사람의 손, 소설 쓰는 김멜라와 배우이자 영상을 만드는 이해나의 손이다.
그들은 다름 아닌 소리의 겨에 집중한다. 운동장, PC방, 영화관, 집, 공항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곳에서는 늘 소리가 발생한다. 달리고 게임하고 다투고 물건을 사고 문을 여닫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거기에는 개 짖는 소리,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 사람을 찾는다는 안내방송 등도 섞여 있다. 김멜라와 이해나는 녹음기를 켜고 흔한 풍경 속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나 생활소음 등을 채집한다.
<겨> 프로젝트는 크게 세 단계로 흘러간다. 첫 번째 ‘소리의 겨를 줍다’는 언제 어디에서 어떤 소리를 채집했는지 소개한다. 웹진이라는 특성을 백분 활용해 녹음 파일을 실어 그 현장감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소리의 겨를 살피다’는 김멜라와 이해나의 손이 움직이는 부분이다. 말소리를 받아쓰거나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무엇인지 세어본다. 때로는 개의 숨소리를 인간의 언어로, 공항 안내 방송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글로 변환하는 흥미로운 작업을 엿볼 수 있다. 끝으로 세 번째 ‘겨로 만든 미니 픽션’은 앞서 살핀 소리 중에서 하나를 골라내 짧은 이야기로 가다듬어 내보인다.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 채집자는 아이폰을 들고 아이들 소리를 따라 움직인다. 마치 나침반을 손에 들고 북북서로 배의 키를 돌리는 항해 사처럼. 축구 골대와 정글짐, 줄넘기와 술래잡기. 비명, 호명, 용서를 비는 목소리, 너도 나처럼 사과해달라는 목소리. 그렇게 십 분이 흐르자 연출된 배경음악처럼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곡이 들려온다. 쉬는 시간, 끝.

_2화 ‘야’ 부분

영어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갈라시아어, 네팔어, 라트비아어, 마케도니아어와 스와힐리어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언어 중에서 개의 숨소리 ‘흐어흐어’와 비슷한 소리를 찾아보았다. 독일어가 가장 비슷했다. 구글의 번역기는 ‘흐어흐어’라는 소리를 독일어 ‘Hach’(놀람 이나 기쁨을 나타내는 감탄사)와 매치시켰다.

_3화 ‘하크’ 부분

1화 ‘겨 사용 및 취급에 관한 일반적 주의 사항’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길 권한다. 일종의 사용 설명서랄까. 참고를 위해 여기에도 부분을 옮겨둔다.
½. [비유]에 접속한다.
⅓. ‘!(하다)’ 프로젝트의 <겨>를 클릭한다. (이때 누군가의 귓바퀴를 입김으로 간질인다는 느낌으로 클릭하면 겨의 비효율적 사용에 불리함.)
¼. 매 화 제목과 소리 채집 장소에 대한 짤막한 글을 읽는다.
?. 채집한 소리 파일을 클릭한다.
?. 소리 파일을 들은 후 미니 픽션을 읽는다. (이때 누군가의 귓바퀴 모양이 어릴 적 잃어버린 다람쥐 털 무늬의 고무찰흙 열쇠고리와 닮았다고 생각하면 겨의 비효율적 사용에 불리함.)
⅛. 자기 소유의 귀를 한 번 만진다.
※ 어린이의 손이 닿는 곳에 스마트폰을 두고 어린이와 함께 보셔도 무방합니다.

운동장을 뛰노는 아이들이 “야!” 하고 서로를 부르는 소리나 영화관에서 ‘싸우는 영화’를 볼지 ‘감동 실화’를 볼지 고민하는 연인의 속삭임 따위는 주변에서 곧잘 들려오고 금세 흩어진다. 그러나 소리의 부스러기가 <겨> 프로젝트에서만큼은 의미 없이 흘러가거나 힘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겨>를 만든 두 사람의 예민하고 섬세한 귀가 풍경의 겨와 사람의 겨를 향해서도 열려 있는 덕분이다. 이들은 운동장 구석에 자전거를 눕혀둔 주인은 누구인지 궁금해하고, 노인 복지관에서 만난 유모차에 가방과 지팡이가 실려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신비롭게도 거기서부터 온기를 지닌 짧은 이야기가 여섯 편이나 태어난다. 어쩌면 <겨>의 작업은 문학이란 게 일상의 겨가 아니라 ‘곁’에 자리하고 있음을 일러주는 귀한 손이겠다.

글 남지은_시인, [비유]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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