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예술, 그것이 알고싶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강릉과 서울에서 공연한 삼지연관현악단 현송월 단장의 소속은 어디일까요? 그는 북한의 엔터테인먼트사가 아니라 군대 소속입니다. 북한에는 남한과 달리 엔터테인먼트사가 없습니다. 이유는 예술의 정의가 남한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예술의 목표를 ‘사회주의 세계 건설 과정에서 인민을 교양 ’하는 것에 둡니다. 이런 교양을 통해 인민을 사회주의적·공산주의적 인간형으로 기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와는 다른 북한예술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봅니다
지난 4월 3일 평양에서 이선희와 듀엣으로
1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9월 18일, 평양대극장에서 진행된 환영 예술공연. (촬영 사진공동취재단)
2 지난 4월 3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북남 예술인들의 련환공연무대 우리는 하나’를 관람 중인 북한 관객들.(촬영 사진공동취재단)
북한에서 예술가는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 평양미술대학, 평양연극영화대학 등 관련 예술전문대학을 졸업한 이들을 대상으로 일정한 과정을 거쳐 선발됩니다. 하지만 북한 식당 종업원들은 대부분 평양에 있는 금성제1고등중학교나 금성제2고등중학교 등 문화예술 계통 영재학교를 졸업한 뒤 관련 대학 입학에 실패한 이들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대학 입학에 실패했지만 예술에 재능 있는 사람들은 해외 식당뿐 아니라 공장, 군대의 기동예술선동대 또는 예술소조 등에서 활동하기도 합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소속 공장이나 군대의 추천을 받아 뒤늦게 문화예술 관련 대학에 입학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 예술가들은 경력이 쌓이고 공적이 높아짐에 따라, ‘공훈예술가’나 ‘인민예술가’ 칭호를 얻습니다. 처우도 그만큼 좋아집니다.
3 2007년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 강의실 모습. (촬영 사진공동취재단)
4, 5 학교 정규 교육 외에 예체능, 과학 분야를 교육하는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촬영 사진공동취재단)
입체율동영화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을 강조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4월부터 “우리나라를 발전된 사회주의 문명국으로 빛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사회주의 문명국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전체 인민이 가장 문명한 조건과 환경에서 문화생활을 마음껏 누리는 것”을 꼽았다고 합니다. 이후 북한에는 입체율동영화관을 비롯한 많은 문화시설들이 건설되었습니다.
이런 문화시설은 입장료를 내면 누구나 입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 시대에 들어서면서 북한은 시장 부문을 적극 이용하는 상황입니다. 시장을 통해 중산층도 형성되고 있습니다. 입장권 구입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 등 지도부가 참관하는 작품의 경우 일반인들의 관람에 제한을 둔다고 합니다.
미술품은 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개인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얼마나 많은 개인이 가치 있는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엄청나게 많은 북한 미술품들이 ‘시장’으로 흘러나왔고, 이것들이 다시 남한과 중국으로 팔려나갔기 때문입니다. 굶주림에 지쳤던 당시 상황에서 집에 미술품이 있었다면 이를 시장에 내다팔았을 것입니다. 집에 미술품을 두는 것보다 한 끼 식량을 얻는 것이 더 중요했을 테니까요. 현재는 북한의 경제 상황이 상당히 나아졌으니 다시 미술품을 소장한 사람들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6 2018년 평양 거리 풍경. (촬영 사진공동취재단)
7 2000년 북한의 락원영화관 전경.
8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북평화 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 <봄이 온다> 리허설 모습. (촬영 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은 계몽기 가요를 ‘19세기 말엽부터 광복 전인 1940년대 중엽에 창작·보급된 계몽적 성격의 가요’라고 정의합니다. 북한은 이 노래들을 ‘민족음악예술의 귀중한 유산’으로 평가합니다. 때문에 <봉선화>, <동무생각>, <낙화유수> 등 일제강점기 노래 중에는 남과 북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꽤 많습니다.
그런데 <홀로 아리랑>은 왜 ‘계몽기 가요’가 됐을까요? 독도를 주제로 한 노래이기에 북한에서도 반일 차원으로 널리 전파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남북 간 소통이 거의 없었던 탓에 1990년대 남한 노래라고 하지 못하고, 발표 시기를 끌어올려 계몽기로 가져간 것 같습니다.
지난 4월 남쪽 공연단이 평양에서 <봄이 온다>라는 제목으로 공연하는 등 남북한 교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류가 늘어나면, 앞으로 <홀로 아리랑>도 자기 시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지도/심사는 당 선전선동부 산하 각급 기관/위원회가 하고 있습니다. 선전선동부는 사회주의 체제를 선전하고 사상 교육을 담당하는 조선노동당의 주요 부서입니다.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을 밀착 수행한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부부장이 한동안 이곳에 몸담았다고 합니다.
- 글 김보근 한겨레 기자, 북한경제학 박사
- 사진 제공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