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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6월호

대학로 청사 이전의 의미와 기획 방향
서울문화재단의 대학로 시대를 준비하다

서울문화재단이 대학로 청사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하는 2019년은 재단 창립15주년이 되는 해이다. 사람으로 치면 유년기를 지나 에너지 넘치는 청년기의 절정으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학로 이전은 단순한 청사 이전이나 문화 프로젝트 이상의 의미를 띠는, 서울문화재단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다.

문화재단이기 때문에…

사람(자연인이든 법인이든)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평소에는 그냥 잊고 살다가 소위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가 누구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 당연한 것을 법의 문구로 명확하게 확인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 500억 원에 달하는 부동산 취득에 따른 세금 감면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그와 같이 문화재단의 제도상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였다. 구청 세무 담당자도 서 울문화재단이 서울시로부터 예산을 출연받는 기관이므로 취득세 50%를 감면받는다는 데 쉽게 합의했다. 하지만 국가가 설립을 허가한 문화예술 법인이기에 85% 감면 대상이라는 데는 재단 고문변호사의 의견까지 필요했다. 결론적으로 재단의 고유 목적 사업에 사용하기 위해 1년 안에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한다면 취득세의 85%를 면제받을 수 있다. 이처럼 재단 청사의 대학로 이전 과 기본재산 처분은 서울문화재단의 독특한 정체성과 연결된 문제이다.

동승아트센터

동숭아트센터 전경

기관 경영 차원의 이슈

대학로 이전은 재단이라는 비영리 법인체의 경영 토대인 ‘기본재산’의 효율적인 운용에 관한 문제로 시작되었다. 서울문화재단의 기본재산은 2004년 재단 설립 이전에 조성되어 있던 서울시문예진흥기금(300억 원), 총 1,000억 원을 한도액으로 명시한 조례에 근거하여 서울시가 추가로 출연한 출연금(500억 원), 그리고 기부금 등으로 조성된 것이다. 2012년에는 최대 1,275억 원까지 현금이 누적되기도 했다. 서울시의 재정이 악화되면서 2011년에는 ‘일시적으로’ 출연금을 대신하여 기본재산 원금을 재단의 문화사업 예산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이후 기본재산 원금 사용이 매년문화재단 예산 편성의 기본 기조로 지속되어, 누군가가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2022년쯤 완전 고갈될 상황에 이르렀다.1) 문화재단 기본재산의 은행 예치 금리가 서울시가 은행으로부터 빌려쓰는 차입금의 금리보다 낮으니, 먼저 기본재산을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예산 편성’의 논리를 반박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1) 2017년까지 기본재산 원금 사용액 누적 총계는 478억 원이다. 2016년에 서울시 문화본부와 기본재산 원금 사용을 2019년에 0원으로 축소하기로 합의했다.

기본재산의 정책적 의미

지역문화정책의 구조 차원의 이슈

이런 상황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문화재단 중심으로 펼쳐지는 지역문화정책의 구조적인 이슈로 파악할 수도 있다. 서울시 예산 편성 담당자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서울문화재단은 기본재산이 문화도시의 정책적 의지, 국가의 지역문화진흥의 책무, 민간 전문기구의 자율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일정 규모 이상 보전되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단순히 재산을 보전하기 위해 내세우는 명분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전국 지역문화재단들의 정체성과 당면 이슈를 반영한 주장이었다.
서울문화재단은 재정적 실효성 없이 소진되는 현금 기본재산을 부동산으로 치환하여 정책적 의미를 보전하는 전략을 택했다. 2013년에는 공간 사옥 매입을, 2014년에는 TBS 교통방송 건물의 서울시 출연을, 2015년부터는 대학로의 건물 매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대학로의 공연예술을 지원할 공공 인프라 보강을 고려하던 서울시의 시책과도 부합하는 데다 매매 의향도 확인되어 동숭아트센터를 매입했다.
동숭아트센터를 서울문화재단의 기본재산으로 매입하는 것은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의 동의를 전제로 진행되는 일이지만, 시 출연금 예산을 활용한 시책사업과 비교하면 재단 의사 결정의 자율성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다. 대학로 이전은 단순한 청사 이전이 아니라 재단이 주도적으로 결정한 커다란 문화사업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기본재산의 출처와 성격으로도 대변되는 문화재단의 정체성, 즉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기관 운영에 근거한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지역문화정책 주체로서의 행보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15년 차 문화재단의 새로운 출발점

지금의 용두동 청사는 이명박 시장 시절에 성북상수도사업소를 리모델링한 것이다. 오세훈 시장 시절에는 서울시 창작공간들이 서울 곳곳에 만들어졌는데, 현재 서울문화재단의 활동 거점은 용두동 청사 이외에도 서울 전역에 총 19곳이 있다.
지역문화진흥법 시행 이후 국가의 지역문화진흥정책도 문화재단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2004년 재단 출범 이후 2018년까지 14년 동안 예산 규모는 141억 원에서 1,457억 원으로 10배나 증가했다. 연차가 누적되고 예산 규모가 늘어난 만큼 조직이 관료화되지 않으려면, 현장 주체들과의 소통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확대된 예산 규모만큼이나 문화재단이 만나야 할 주체들도 창작지원사업에 참여하는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예술가교사(TA), 생활문화매개자(FA), 자치구 문화재단 등 매우 다양해졌다. 그러하기에 접근성이 낮은 청계9가의 교통 맹지에 위치한 용두동 청사는 2019년 창립 15주년을 맞이하는 서울문화재단이 다시 한 번 도약하는 데 있어 큰 걸림돌이었다.
서울문화재단은 창립 10주년 때 이미 다양한 주체들이 접속하여 창조를 위한 에너지를 얻어가고 또 서로의 에너지를 나누는, 소위 <창조적 공유 플랫폼: Creative Plug-in Station>을 지향한다고 천명했다. 대학로 청사 시대를 여는 창립 15주년 때는 이를 물리적으로도 구현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유 플랫폼’이 유행에 편승한 말에 그치지 않도록, 재단의 행정 원리와 직원들의 행동 양식도 문화예술의 현장에 맞게 재정비돼야 할 것이다. 개관 10년 차에 접어드는 창작공간들의 운영 전략 재편, 생활문화사업 등의 지역문화정책 영역에서 자치구 문화재단 등 다양한 주체들과의 역할 분담, 15년간 확장해온 재단 사업들의 재구조화 등은 창립 15년 차 서울문화재단에게 주어진 숙제다. 서울문화재단의 에너지가 가장 왕성한 시기에 서울의 문화 중심지인 대학로에서 새 시대를 연다는 것은 앞으로 15년, 30년을 내다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 우선 경영 6기부터 준비해온 ‘서울문화정책의 지역화 전략’을 추진할 플랫폼을 마련함으로써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로 청사는 단순한 청사가 아니라 연륜과 함께 숙명적으로 관료화될 수밖에 없는 공공기관의 한계를 극복한 ‘문화현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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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3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문화재단다운 미래 설계

동숭아트센터를 서울문화재단의 대학로 청사로 리모델링하는 건축 프로젝트의 기획은 부동산 매매계약서에 날인한 올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6월까지 진행된다. 재단의 기본재산을 사용하기에 서울시 예산을 사용하는 건축 프로젝트보다 조금 더 융통성 있고 창의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우선 예산 규모의 제약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좀 더 먼 미래까지 고려할 수 있다. 착공 일정은 취득세 문제로 인해 2019년 5월로 못 박았지만, 충실히 시공되도록 준공 시점도 열어두고 진행한다. 공공기관의 행정 행위를 위한 공청회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계 그룹들의 의견을 듣고 전문가들과 깊이 연구하는 모임도 20여 차례 가졌다. 넓고 깊게 소통하고 연구하는 모임은 오는 7~8월에 있을 건축설계 공모와 9~12월의 실시설계 과정에서도 이어질 것이다.
재단 직원들의 대학로시대준비TF도 올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현직 대표이사와 이사진,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가칭)대학로시대준비위원회는 건축 관련 자문뿐만 아니라 재단 청사 개관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학로 시대 설계를 함께할 예정이다.

대학로 문화의 숲에서 문턱 낮은 공유공간이 되기를

서울문화재단의 기본재산을 부동산으로 전환하여 대학로에 공유 플랫폼을 조성하는 일은 한 기관의 ‘경영 자산’을 문화예술계의 ‘공유 자원’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당초 기본재산의 조성 경과를 고려한다면 사필귀정의 과정이며, 기본재산의 실효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말로만 하는 공유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불편하지 않은 플랫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천자문>에서 집은 우주(宇宙)였다. 다양한 주체들이 모일 수 있고, 경계 없는 상상이 가능한 집이어야 할 것이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한순간 무너져 내리는 집은 최소한의 서식처이자 꿈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출발점이었다. 정처를 찾는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언제든 편히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지만, 남의 궁전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기획설계를 위한 자문 과정 중에 동숭아트센터 옥상의 밥집을 그리워하는 연극인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모 기자가 지적했듯 ‘항공모함’ 같은 서울문화재단이 대학로로 들어오는 것에 반발도 있고 기대도 크다. 전국구 정치인의 지역구 집처럼, 서울시 전역을 위한 서울문화재단 사업의 재설계도 좋지만 대학로에 발을 붙이고 있는 이상 대학로라는 독특한 문화집적지에 대한 정책을 고민하지 않을 수없다. 문화지구라는 제도적 장치의 실효성 제고, 중앙 정부와 지자체 정부 간의 협업 같은 거대한 정책 어젠다가 문화재단의 머릿속에 숙제로 떠오른다면 뭔가를 함께 도모해 움직이도록 하는 깨알 같은 스킨십 프로그램이 현장 예술가들의 마음속에 그려질 것이다.
대학로는 조선시대부터 대학의 거리였다. 서울문화재단이 티 나게 무언가를 새로 할 것이 아니라, 대학로의 에너지만 모아도 ‘스파킹’(SFACing)하는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동숭아트센터의 건축 콘셉트는 1988년 처음 지어질 때부터 놀이터였다. 원래 의도를 살려 미래 세대의 요구까지 수용할 수 있는 놀이터가 된다면 공유 창작 플랫폼으로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혜화역 1번 출구에 서면 서울의 문화가 보이고, 서울문화재단 옥상 정원에서 내려다보면 한양도성까지 대학로 문화의 숲이 이어지는, 새로운 대학로의 풍경을 그리며 ‘대학로 시대’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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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해보 서울문화재단 경영기획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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