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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혹은 대담

11월호

2017 서울무용센터 청년무용담(靑年舞踊談)춤추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

서울문화재단 서울무용센터는 그동안의 틀에 박힌 토론 방식에서 탈피해 청년 무용예술가들이 직접 터놓고 얘기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토크 콘서트 청년무용담(靑年舞踊談)을 개최했다. 청년무용담은 기존의 소셜미디어를 통한 온라인 모임이나 학교 중심의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청년 무용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무용계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최근 청년 무용예술가들이 삶의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는 창작환경, 지원사업 등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고민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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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차진엽(안무가, 콜렉티브에이 예술감독)
토론 |
김승록(안무가, 쌍방 공동 대표), 김보경(공연기획자, 언프레임스튜디오 대표)
한정미, 강수빈 외 다수 참가자
일시 |
2017년 9월 22일 오후 6시
장소 |
서울무용센터 야외 잔디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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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돌직구, 이런 짓까지 하다니

차진엽 오늘 첫 번째 질문은 ‘대놓고 돌직구, 이런 짓까지 하다니’입니다. 무용을 하면서, 아니면 각자의 분야에서 내가 정말 생존과 작업을 위해 이런 짓까지 해보았다 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먼저 김승록 씨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김승록 우선 제가 지금 몸담고 있는 ‘쌍방’에 대해 얘기하면서 같이 참여했던 ‘먼쓸리 퍼포먼스’(Monthly Performance)라는 월례움직임 프로그램을 설명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쌍방’은 제가 올해로 5년째 운영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저희는 갓 졸업한 대학생이었고 어떻게 활동해야 할지 막막했던 상황이었어요. 같이 고민하던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만든 단체예요. 처음 모였을 때는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어요. 다짜고짜 스터디를 하면서 움직임 수업을 공유하고 ‘아 우리가 이런 것들을 배웠지’라고 했던 것들이 착실히 쌓이다 보니 어느새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워크숍으로 발전되었고요. ‘쌍방’이라는 이름으로 국립현대무용단에서 공연도 했어요.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좋은 작업과 나쁜 작업들은 항상 뒤섞여 있는 것 같아요. 안무가와의 의견 조율, 선후배 관계, 타 장르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문제 등을 애매하게 겪으면서 ‘쌍방’에서 내렸던 결론은 ‘조금 더 길게, 느슨하게’였어요. 우리는 항상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하면서 살고 있는데 단기간에 모인 프로젝트에서 얼마나 협력할 수 있을까요? 협업은 정말 힘든 것 같아요. 처음에 해본 건 ‘또 봐요 프로젝트’였어요. 작업을 하고 나면 어느 순간 ‘다시는 보지 말자’ 이렇게 되어서예요. 열띤 토론을 하고 작업을 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전형적인 실패작이 되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던 협업이 너무 이상적이었거든요. 척하면 알아듣는 이상적인 것들을 시도하다 보니 실패했던 것 같아요. 이게 결과적으로 나쁜 작업이 되었죠. 그렇다면 좋은 작업은 어떤 걸까요? 대안으로 한 것이 ‘먼쓸리 퍼포먼스’입니다. 이 작업은 개인 작가들을 조금 더 인정해주고, 초반에 하고 싶었던 아이디어들을 조금 더 느슨하게 실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느슨한 연대를 통해 작가들이 자기 작업을 발표하고 피드백도 하면서 느슨한 협업이 되었던 것 같아요. 협업을 통해 창작자들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김보경 말씀하신 내용은 이상적일 수도 현실적일 수도 있는데, 저는 굉장히 극단적인 사례가 될 것 같아요. 여러 장르의 아티스트들과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무용 일을 할 때 힘들었던 것은 다른 장르에 비해서 기획자의 역할을 조금 다르게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게 처음에는 굉장히 소모적인 다툼으로까지 이어졌어요. 새로운 안무가와 작업할 때 처음에 항상 저는 어떤 역할이라고 얘기하면 당연히 다 알고 있다고 얘기하세요. 근데 조금만 더 들어가보면 굉장히 다른 지점들이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2시간 넘게 기획자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게 되었어요. 논쟁을 벌이고 난 뒤로는 역할이 무엇인지 알겠다고 하더라고요.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다시 한 번 체크를 하고 작업하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차진엽 저도 한국에서 작업할 때 좋은 기획자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창작, 안무, 공연을 다 하다 보니 어떨 때는 기획자의 마인드를 가져야 하고, 어디 가서는 영업사원 마인드를 가져야 잘할 수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아직 그런 부분이 부족해요. 누가 내 작품을 사거나 초청하지 않으면 공연을 못하는 거잖아요. 나는 작업에만 몰두하고 싶은데 두 가지를 다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보니 괴리감이 생겨요. 이 주제에 대해 여기 계신 분들도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아요.

참가자 저는 댄스프로젝트 ‘점, 선, 면’이라는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고, 상수동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10년 정도 했는데 그 길로만 빠지는 것 같아 싫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두고 나니 돈을 못 버는 거예요. 심각하게 돈을 못 벌어서 지금은 카페를 하고 있어요. 카페에서 돈을 벌고 그 돈을 작업에 모두 쏟아 붓고 있습니다. 저도 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인맥이 좁고 기획자분들을 만날 일도 거의 없어요. 기획사나 기획자를 찾아서 전화했는데 아무도 저를 기획해주지 않더라고요. 저 역시 이것저것 다 하고 있습니다.

차진엽 사실 이게 모든 예술가들의 고민 같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것인지, 생계를 위해 업을 바꿔야 하는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진로 고민을 합니다. 저는 운이 좋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저의 앞가림을 하고 있는데요. 다른 장르 분들도 이런 고민을 할 것 같아요.

참가자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2년 정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어요. 요즘 지원사업이 많은데 예술하는 분들은 이런 시스템을 모르거나 기획서 쓰는 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기획서가 부실해서 안 되는 경우도 있고요. 아직까지는 지원사업을 아는 분들보다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차진엽 저는 지원서를 항상 제가 썼어요. 뭔가 부족해도 무용수가 솔직하게 쓰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밤을 새가면서 썼는데요. 지금은 전문 기획자들의 도움을 받지만, 그래도 그런 부분들을 알아야 기획자와 얘기하고 요청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내 역할이 아닌 다른 부분도 알게 되면 조금 더 소통하기 쉬울 듯해요.

김보경 저는 기획자이기 때문에 기획서를 많이 쓰지만, 무용 공연 기획서는 정말 쓰기 쉽지 않더라고요. 새로운 작업을 만났을 때 안무가, 무용하는 분들의 언어가 외계어로 들릴 때가 많았거든요. 저는 안무가나 무용수들이 지원사업의 존재는 알고 있되, 기획서 쓰는 법은 몰라도 될 것 같아요. 정말 적은 금액이라도 분리해서 기획하는 분들은 기획하고, 작업하는 분들은 작업을 하되 안무가와 기획자들의 표현 방식이 다른 지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참가자 저는 올해 초까지 무용 잡지 기자로 일했고, 기자를 하기 전에는 무용 기획을 했습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있고요. 안무가와 기획자가 협업한다는 생각으로 작업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는 보통 어려운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이를 알아듣기 좋게 이야기하고 설득시키는 과정, 기획자는 그 작업 방식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협업이 중요하고 그런 작업들이 이후에 호평을 받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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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 VS 현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해야 하는 것

차진엽 두 번째 주제는 ‘로망 VS 현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생각했던 것이 지금 나이에서 그 방향대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현실과 로망의 간극을 줄이면서 균형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승록 무용가들이 보통 생각하는 로망이 ‘공연으로 생활이 가능할까?’, ‘유명해질 수 있을까?’, ‘해외공연도 하면서 명예와 부를 얻을 수 있을까?’일 텐데요.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획자를 만나지 못한 젊은 창작자들은 스스로 맨땅에 헤딩하듯 지원서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요. 운이 좋게 선정되어서 통장에 2,000만 원이 모여도 또 금방 사라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전에 어떤 기획자와 이야기할 때 충격을 받은 부분은 소규모 극장에라도 공연을 올리려면 무대 준비, 스태프 비용, 무용수들의 노동량 등을 가늠했을 때 4,000~5,000만 원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원사업 중에 5,000만 원짜리는 없죠. 때문에 우리는 이보다 적은 금액에 맞춰 기획서를 씁니다. 나머지 금액은 어디에서 충당할까요? 사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청년 예술가들이 감내해야 할 열정페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고육지책으로 ‘나 좀 도와줘, 다음에 도와줄게’라는 인맥팔이를 할 때도 있고, 스스로가 1인 다역이 되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춤만 추고 싶은데 기획자 일도 해야 하고 무대감독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지식도 쌓아야 하죠. 공연을 올리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많은 소모적인 일들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 비용은 안중에도 없이 작업에만 몰두하는 일이 빈번해집니다. ‘작업=돈’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예술가는 없겠지만,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는 유지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저를 포함해 많을 것입니다. 우리들 스스로가 꿈을 너무 높게 잡고 있진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실현 가능한 정도의 기획을 하는 것에 아직 훈련이 안 되어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김보경 저는 아티스트로서의 작업도 해보았는데, 처음 시작했을 때는 너무 좋았어요. 한 달에 한 편씩 1년을 하면 열두 작품을 찍어내는 식의 사업을 했습니다. 하고 싶어서 지원사업을 했는데 결국은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되더라고요. 그 안에서 제가 찾은 열쇠는 로망과 현실 사이에서 찾아야 하는 균형감이었습니다. 아직도 열심히 찾고 있기는 한데,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 같아요. 제 스스로는 예술을 하면서 먹고살 거라는 생각으로 다른 일들을 엄청 벌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가지치기하면서 방향을 넓히다 보니 지금 와서는 현실적으로 연결시키면 좋을 지점들이 보이더라고요. 돈이 안 되더라도 재밌고 열정이 넘쳐서 스스로 만족하면서 했던 작업도 있고, 돈을 벌기 위해 했던 작업들 안에서 재미있는 요소들을 찾아내는 즐거움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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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엽 예전에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이 이런 인터뷰를 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 3을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것 7을 해야 한다.” 발레는 오전에 1시간 30분 정도 기본 클래스를 하지 않으면, 공연 때 부상을 당하거나 몸에 무리가 가기 쉬운데요. 그 클래스는 건너뛰고 싶은 재미없는 과정이거든요. 몇 십 년 동안 똑같은 것을 매일 해야 하니 그게 너무 하기 싫다는 거예요. 근데 그것을 해야만 리허설을 해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거죠.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고 싶은 로망이 있지만, 하기 싫은 것, 꼭 해야만 하는 것, 아니면 돈 때문에 해야 하는 것 등 저도 그런 것들을 하거든요. 그런데 아예 마음을 비우고 하니까 즐거워지더라고요. 나중에 뭔가를 배우고 얻기도 하고요. 사실 하기 싫은 것은 내가 못하고 자신이 없어 피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하기 싫은 것도 즐겁게 하고 있어요. 그래야 내 가능성이나 밖으로 꺼내지지 않은 숨겨진 재능 등을 경험하게 되더라고요.

참가자 저는 현재 가림다현대무용단 단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지금 5살 딸아이가 있는데요. 정말 로망과 현실 사이에서 살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무용을 포기할까 했는데 안 되겠어서 다시 무용단에 왔고 지금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공연하고 춤추면서 돈을 벌지는 못하고 있죠. 아이를 키우면서 극과 극의 삶을 살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무용을 계속하는 것이 아이에게 미안해지더라고요. 내 만족을 위해 아이를 포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요. 오늘 제 안에서 균형을 잡고 생계를 위해 나아가야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어요.

차진엽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죠. 여자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결혼과 출산, 육아, 특히 몸을 쓰는 무용수에게는 어찌 보면 치명적인 과정일 수 있는데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참가자 저는 작곡을 전공해서 우연찮게 방송국에 입사하게 되었어요. 14년째 영상을 보면서 음악을 넣는 작업을 하다 보니 몸이 상했는데요. 몸을 좀 써보자고 해서 알아본 것이 무용학교여서 이렇게 무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지금 회사를 그만두려고 서서히 준비하고 있는데요.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전혀 다른 분야로 가보고 싶어서 지금은 무용에 관심을 갖고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공부하고 있어요. 일반인이 무용을 접하면 다른 어떤 것보다 치유되는 순간이 많더라고요. 내 몸이 움직이는 것 자체가 아름답게 생각되면서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정신적으로도 나아졌고요. 버스를 타고 있더라도 그 안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하다 보니 시무룩했던 인상이 밝게 바뀌었어요. 솔직히 무용가에게 레슨을 받아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지만요. 지나가는 역할이라도 좋으니 배경이라도 되고 싶은 욕망도 있습니다.

차진엽 이런 분들 보면 대단한 것 같아요. 30년 넘게 춤을 춰서 그런지 다른 걸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용기는 없고 내가 잘하는 건 이것이라는 착각에 계속하고 있는데요. 한 번 사는 인생에서 이런 도전을 해보고, 미련 없이 새로운 것에 몸담을 수 있는 의지가 대단한 것 같아요.

참가자 저는 배우 겸 안무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원치 않는 작업을 할 때가 너무 많아요. 연극이나 뮤지컬 안무가는 극을 위한 안무를 짜야 하니 제 의견보다는 콘셉트에 맞는 춤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더라고요. 그 작업을 하지 않으면 돈을 못 벌고, 내 작업을 하자니 돈이 없고 추진력도 없다 보니 고민이 늘 많아요. 할 수 있는 것은 무대 위에서 대사하고 춤추거나 안무 창작하는 것 밖에 없고요. 서류 작업에는 어려움이 많더라고요. 대학에서 이런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도 아니고요. 주위에 다 연기하고 춤추는 사람밖에 없다 보니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거죠. 어느 순간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이제는 내려놓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아티스트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결국엔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게 지금 느끼는 현실 같아요. 개인 작업을 위해 사람을 모으려면 최소한의 자본이 필요한데, 자본이 없으면 결국 혼자인 거죠. 어느 순간 혼자서 할 수 있는 춤이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제는 나서지 않으면 함께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니까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나와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피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어요.

차진엽 사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저도 혼자 춤을 추다가 이번에는 무용수들이랑 큰 작업을 하고 싶어서 일을 벌여서 작품을 했는데요. 협업의 어려움을 겪을 때면 이번 공연이 끝나면 솔로 공연을 해야지 하다가 고독해지고 또 누군가와 작업을 하고, 왔다갔다 하는 것 같아요. 기획자 분들도 항상 무용가들과 작업하지만 홀로 하는 기분일 것 같아요.

김보경 많은 아티스트들이 기획자를 못 찾는다고 생각하고 저희 또한 아티스트를 찾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년에 다양한 장르의 기획자들끼리 길드를 만들었어요. 매니지먼트도 의뢰받곤 하는데 저는 매니지먼트에 취약하거든요. 누군가를 직접 소개해줄 수도 있고, 이런 성향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하면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인력풀을 만들고 있어요.

참가자 저는 춤과 관계없이 30년 가까이 살다가 우연한 기회에 무용을 시작하게 되었고 춤에 빠져서 본업과 취미가 전도되다 보니 취미가 업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무용단에 들어가 기획자로 일하기 시작했는데요. 아이러니한 것은 업이 되고 나니 춤을 출 수 없더라고요. 저는 춤추는 3시간으로 나머지 21시간을 살던 사람이었거든요. 사무실에만 있어야 하고 춤출 시간을 잃어버리게 되어 무용단을 그만두고 6개월 동안 여행을 했어요. 다시 오니 할 수 있는 게 원래 일밖에 없더라고요. 지금은 음악 기획사에서 일하면서 무용단에서 제작 PD로도 일하고 무용 칼럼을 쓰면서 추고 싶던 춤을 3시간 동안 추고 있습니다. 저는 남이 보건 말건 혼자 춤을 춰도 되고요. 속으로는 무용이 본업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실 20대 때 거의 클럽에서 살았거든요. 30줄에 들어 한국무용을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클럽에서 춤추는 게 쑥스럽더라고요. 도시에는 학원이나 특별한 공간이 아니고서는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아직까지 남들 앞에서 춤을 추기는 쑥스럽지만 예전에 친구들하고 팀을 꾸려서 서강대교 밑에서 춤추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는데요. 그때가 그립기도 하고 도심공간에서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차진엽 갑자기 승록 씨에게 궁금한 점이 생겼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원래부터 무용을 하셨나요?

김승록 제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무용하는 사람 맞느냐, 배우 아니냐?”고요. “일반인 같은데 어디에서 교육을 받으셨어요?”라는 얘기도 많이 들어요.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시작했고, 예고와 예대를 나왔어요. 제 로망 안에 있는 몸은 제 앞에 계신 무용가들일 수 있어요. 저는 남성이고 무용을 늦게 시작했지만, 저와 동급의 여성 무용수들은 이미 많은 무용 경력이 있는 전문 인력이잖아요. 그런 전문 인력이 활동할 수 있는 폭이 좁은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별거 아닌 무용가지만 의뢰가 많이 들어와요. 무대감독, 드라마터그(dramaturg), 배우, 커피 심부름도 하고요. 실제로 느꼈던 로망과 현실 안에서의 타협은 제 작업에 대해 정의내리는 것이었어요. 누군가에게는 ‘매년 1년 열두 달 공연을 해야지’가 계획이겠고, 또 누군가에게는 ‘1년에 한 편을 열심히 만들겠어’도 계획이겠죠. 작가들이 자기 작업을 표현하는 데는 한두 편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제 작업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사람들에게 알려질 어떤 작업을 만들 때까지 어떻게 버티고 살아야 할까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어요. 해답은 여러분 각자 찾아야겠지만, 가능성이 보일 때마다 작업을 꾸준하게 하는 것이 방법일 수 있어요. 자신의 템포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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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걸까, 아직일까, 내 인생의 전성기

차진엽 마지막 주제는 ‘늦은 걸까, 아직일까, 내 인생의 전성기’예요. 이번에는 참가자 분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볼게요.

참가자 저는 어렸을 때 발레를 먼저 시작했고 그 이후 뮤지컬 연기, 현대무용, 학원무용 등 손댄 것이 많은데요. 춤을 너무 좋아하는 저도 마찬가지로 겪는 일 같아요. 저도 연기를 하다 중간에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면서 10년 정도 쉬다가 다시 시작한 경우거든요. 막상 와보니 저랑 같이 시작했던 사람들은 이미 포기했거나 무대에 서 있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감수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현실적으로 금전적인 문제가 힘들어요. 중간중간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원치 않는 배역도 해야 하고요.

참가자 저는 처음으로 공연한 때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요. 이후 계속하다 보니 군대도 가고 학교도 가게 되면서 ‘이대로 졸업하면 좋은 자리가 오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춤추는 팀에 들어가서 1년 동안 있었는데 막상 들어가니 다르더라고요. 팀 내 규율이라든가, 페이라든가 그런 부분들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팀을 나오고 개인 작업을 하면서 인도에 3개월 정도 다녀왔어요. 여행을 다녀와서 느꼈던 점이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어요. 여행을 가기 전에는 무용이 끝일 거라 생각했는데, 다녀오고 나서는 아직 나에게 한 방이 오지 않았구나, 좀 더 열심히 준비해서 기회를 봐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저를 포함해서 ‘늦은 걸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김승록 저는 ‘전성기가 올까’보다는 ‘전성기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전성기는 뒤에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앞에 지나간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전성기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자기 작업에 대해 좀 더 느끼고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전성기일 것 같아요. 현재 선진국 기준으로 보면 국가에서 예술계에 지원하는 비용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은 이제야 돈을 많이 주려고 하는 편이거든요. 예전에는 외국에서 건너온 무용들을 답습하고 자기 안에서 소화해서 뱉어내는 공연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지금 세대들은 훨씬 더 다양성이 있어요. 학교에서 배웠던 방식뿐만 아니라 많은 경험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직업을 전환해서 춤을 추는 것이 가능할까를 생각하는 여러분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기존의 무용 교육을 받고 공연을 하고 전문가가 되어서 교수가 되는 수순이 아닌 내 작업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여러분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 공연계의 전성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보경 전성기의 기준은 다들 다르겠지만, 저는 만족감에서 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국립단체에서 공연을 준비하다가 나와서 제 이름을 걸고 새롭게 만든 단체에서 기획을 하게 되었어요. 이때 지원서를 정말 못 썼어요. 몇 천만 원 지원임에도 불구하고 100억 원 정도 되는 내용으로 썼더라고요. 당연히 지원을 못 받았고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하면서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부모님이 주신 보증금을 제 작업에 보탰고요. 그랬을 때 그 작업을 하기 전과 후를 제 전성기인가 아닌가로 나눌 수 있거든요. 스스로가 만족감을 느끼면서 작업을 하고 있고 그 순간이 전성기라고 생각하면 그게 정말 확고해요. 예술 쪽에 있는 사람들은 만족감에 의해서 많은 것들이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그 만족감을 느끼면서 전성기를 이어나가면 좋겠습니다.

※ 토론 내용은 서울문화재단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니며 [문화+서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리 전민정_ 객원 편집위원
사진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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