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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세월호를 기록하는 사진작가 홍진훤 기억이 건네는 위로
용산, 밀양, 제주, 오키나와, 후쿠시마 등 국가 폭력으로 공동체가 파괴되고 참사가 일어난 곳에 사진작가 홍진훤의 카메라가 있다. 외신 기자로 일하던 그는 개인 작업을 시작한 2009년부터 꾸준히 사회의 낮고 어두운 자리를 기록하고 있다. 치유까지 바라진 않는다. 단지 기억의 방식을 고민해보자고 작가는 말한다.

테마 토크 관련 이미지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세월호 3주기, 한 권의 책이 나왔다. 김연수의 문장과 홍진훤의 사진이 함께 있는 사진소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다. 책에 담긴 사진은 세월호 학생들이 닿지 못한 수학여행 공간들을 찍은 사진이다. 홍진훤 작가는 이번 작업 이전부터 꾸준히 세월호를 기록해왔다. 안산과 진도와 제주를 찍은 사진들을 전시하기도 하고, 사진을 들고 걷기도 했다. 인간의 나약한 기억에 맞서는 것은 기록뿐이라고 그의 사진은 말하는 듯하다.

세월호 2주기 즈음해서 단원고 학생들의 제주 수학여행 코스를 찍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라는 작업을 공개하셨어요. 이번에 책으로도 나왔고요. 어떻게 시작한 작업인가요?

세월호 현장 기록을 꾸준히 해왔어요. 안산의 기억저장소라는 곳에서 세월호 2주기를 맞아 연락이 왔어요. 제주에서 단원고 학생들의 흔적을 찾아봐달라고요. 안산이나 진도에 대한 기록은 많은데 학생들이 가려고 했던 제주에 관한 자료는 없다는 거죠. 그래서 일단 제주에 가서 작가나 문화활동가 분들께 찍을 만한 곳을 수소문했는데 제주도는 관광지라 모든 게 금방 사라지고 없다는 거예요. 포기하는 마음으로 세월호가 도착했다면 가장 먼저 닿았을 여객터미널에 갔어요. 사람 한 명 없이 텅 빈 터미널을 보면서 ‘왜 이렇게 사람이 없나’ 싶었어요. 그게 저에게는 의미심장했습니다. ‘있어야 할 것들이 없는 것이 이렇게 시각화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원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일정표를 받고 그 일정을 따라가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용머리 해안, 섭지코지, 소인국 테마파크처럼 평소 사람들로 북적이는 관광지를 카메라에 담으셨어요. 하지만 사진 속 공간은 사람 한 명 없고 무척 고독한 느낌이에요.

세월호 이후에 안산이나 진도, 제주의 풍경을 그전처럼 똑같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제주도도 그렇게 느껴졌어요. 제가 핵심적으로 했던 작업이 ‘부재’를 증명하는 것이잖아요. 학생들이 봤을 법한 풍경을 보고 싶었고, 아니면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풍경에 대한 나름의 작업이었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로지 제주의 풍경만 담겼으면 좋겠다 싶었죠. 설정을 했다기보다 그런 장면이 나올 때까지, 사람이 없을 때까지 기다려서 찍었어요. 1~2년동안 혼자 그렇게 제주를 다니면서 세월호 당시 생각도 하고 단원고 학생들 생각도 하다 보니 같이 있는 느낌도 들었어요.

테마 토크 관련 이미지<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_섭지코지>, 제주, 2017

작업을 공개했을 때와 다른 게 있다면, 세월호가 인양되었고 정권 교체를 앞두고 있어요. 이 변화들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뭐가 바뀌었는지 모르겠어요.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지난하고 답답한 시간이 지속될 것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작업하던 게 2주기 전인데 그때는 한창 ‘이제 그만하자’는 식의 말이 많이 나왔어요. 욕을 하고 싸우더라도 ‘그만하자’는 말만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동시에 우리가 언제까지 세월호 참사를 맞닥뜨렸을 때의 감정 상태로 사고를 기억할 수 있을지, 어떤 자세로 기억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감정적인 스펙터클로 세월호를 기억하기에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지워 버리려고 할 수 있어요. 사진을 찍을 때도 감정적인 스펙터클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어요.

2014년에 4시간 16분 동안의 도보 전시를 기획하기도 하셨어요.

액티비즘에 익숙하진 않지만 세월호 사건에 힘들어하는 작가들이 많았어요. 그런 사람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고, 집회가 아니라 전시 콘셉트로 작가들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이 작가들이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 고행을 하면서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잊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사진가 중심으로 하려고 했는데 미술 쪽에서도 연락이 오고 영화 만드시는 분들, 이론 연구하시는 분들한테서도 연락이 왔어요. 각자 자기 작업을 들고 걸었어요. 미술하시는 분들은 자기 그림을 들고, 영화하시는 분들은 태블릿 PC에 자기 영화를 틀어놓고, 이론하시는 분들은 책을 뽑아와 들고.

용산 참사 현장을 찍은 <임시풍경>(2009~2011)을 시작으로 강제 이주 지역을 배경으로 한 <쓰기금지모드>(2016), 근 대화의 상징 같은 휴게소와 고속도로를 담은 <마지막 밤(들)>(2014~2015), 서울문화재단에서 후원하기도 했던,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공간을 찍은 <붉은, 초록>(2012~2014) 등 사회적 아픔을 주제로 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어요. 사회 문제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개인사보다도 사회적인 문제에 더 관심이 많이 가요. 제 이야기를 하다가도 자연스럽게 사회 문제들이 개입돼요. <마지막 밤(들)> 같은 경우는 세월호 작업의 일환이에요. 그때 정말 지쳐 있었어요. ‘속도’가 멈출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거기 처박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득 휴게소가 떠오르더라고요. 고속도로라는 게 사회적 궤도이고 속도잖아요. 그 속도를 멈출 수 있는 곳이 휴게소라고 생각했어요. 휴게소 안 사람들이 아니라 휴게소 자체를 보고 싶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없는 밤에 휴게소 풍경을 찍게 됐어요. 그런 좋은 의도로 시작했는데 생각하지 못했던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밤에는 인공조명이 켜지잖아요. 사실 인공조명이란 게 굉장히 정치적인 거예요. 비추고 싶은 곳을 집중적으로 비추니까요. 그런데 인공조명이 비추는 곳을 보니까 굉장히 이상한 게 많더라고요. 어떤 곳은 전 대통령 치적으로 도배돼 있고 어떤 곳은 태극기, 어떤 곳은 ‘독도 사랑’, 어떤 곳은 탱크, 전투기가 있었어요. 프로파간다적인 게 굉장히 많더라고요. 여긴 정말 쉴 데가 못되는 구나 싶어 ‘그런 곳을 못 찾았다’는 것으로 작업을 종료했어요.

테마 토크 관련 이미지1 김연수 작가와 홍진훤 작가의 사진소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2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_소인국 테마파크>, 제주 , 2016

사회적 아픔을 기억하고 치유하는 데 예술가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사실 치유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고, 스스로 자신을 치유할 수 있을 거예요. 어떤 작업을 보고 누군가가 치유가 됐다면 그건 그 작업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작업에서 무언가를 보고 스스로 치유한 거예요. 예술이라는 게 그렇게 위대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정치, 역사도 마찬가지예요. 세상에 그렇게 위대한 게 있나 싶어요. 세상은 아주 사소한 것들의 집합체일 뿐이죠. 어쩔 수 없이 모인 집합체라면 각자의 일을 건강하게 열심히 해내는 게 사회에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 아닌가 생각해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경우는 많잖아요. 그때 최대한 나쁜 영향을 안 미쳤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도덕심으로 사는 거지, 세상을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작업물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길 바라시나요?

각자의 기억 방식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걸 이렇게 기억하세요’가 아니라 ‘저는 이렇게 기억합니다’ 정도의 마음으로 전시를 해요. 잊지 않겠습니다, 그 약속 안 했던 국민이 어디 있겠어요. 세월호, 안산, 제주, 진도… 이 단어들을 들으면 세월호 사건이 어렴풋이라도 떠오를 텐데 뒤돌아서면 잊히는 거죠. 어떤 방식으로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각자의 방식을 생각해보는 게 작품을 보는 관객의 몫인 것 같아요. 이제는 기억의 싸움이에요.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고, 세월호 문제는 각자가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흘러갈 거라 생각합니다. 기억의 방식에 대해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글 김수빈 사진 손홍주 사진 제공 홍진훤, 사월의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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