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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2월호

일상은 어떻게 기록이 되고 가치가 될까 응답하라, 서울!
잃어버릴 시간을 찾아서
우리에게 시간이 머물다 간 일상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삶이란 많은 것을 시간의 강물 위에 띄워 저편으로 끝없이 보내는 일일 것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멈춰 서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볼 때 비로소 가치가 매겨지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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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의 무엇이 우리를 열광케 했나

그때는 그 가치를 몰랐다. 집에 놓인 유선전화기 앞에서 사랑하는 누군가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던 시간, 마음을 글 몇 줄에 담아 적어보던 편지들, 그리고 이어폰 한쪽씩 나누어 듣던 워크맨 노래의 가치를. 그저 좁은 골목은 더럽게만느껴졌고, 골목 한 켠에 놓인 평상에 앉아 골목으로 들어오는 아이들 하나하나에 인사하고 참견하던 이웃 아주머니들의 오지랖이 불편하게만 생각되었다. 하다못해 왁자하게 떠들며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아이들도 그저 시끄럽기만 한 성가신 존재로 여겨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 골목을 싹 밀어낸 자리에 세워진 말끔한 아파트에 살아보니 이제 알겠다. 그것이 꽤 그리운 시간이었음을.
<응답하라 1988>(tvN)이라는 드라마가 건드린 정서적 뇌관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지금은 사라져버렸거나 혹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1988년의 쌍문동 골목에 옮겨놓은 것. 이제 보니 그 골목은 사람과 사람을 얇디얇은 벽으로 막아놓은 아파트와는 달리, 사람과 사람이 골목으로 연결된 정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그 골목에서 함께 놀며 자랐고 부모들에겐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이웃인지 가족인지 알 수 없는 정을 나누고 살았다. <응답하라 1988>의 그 쌍문동 골목은 작금의 차가운 디지털 세상의 풍경에 결핍된 어떤 것들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지금의 대중은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

절정에 다다른 복고 열풍, 지나간 시간에 가치 부여

아마도 <응답하라 1988>은 우리네 복고 열풍의 절정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복고는 끊임없이 그 양태만 달리해 지속되어왔다. 영화 <써니>(2011)가 1980년대 복고를 끄집어낼 때 영화 <건축학개론>(2012)은 1990년대 복고를 불러일으켰고, 일련의 ‘응답하라’ 시리즈는 1980~90년대 복고 트렌드를 주도했다. MBC TV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는 아예 1990년대 활동하던 가수들의 음원을 현재의 차트로 역주행시키는 시간 여행(?)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슈퍼스타K>(Mnet)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도 결국은 복고의 전조였다고 생각된다. 이 오디션 프로그램 속에서 무수한 옛 노래들이 지금의 젊은 세대의 목소리로 다시 불렸다. 그렇게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은 시절에 나온 노래들에 젊은 세대가 익숙해지자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오는 노래들도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었다. 복고는 복고를 부르고, 그렇게 하나씩 쌓여가며 더 거센 복고의 바람을 이어갔다.
복고의 이런 지속적인 열풍 속에는 새로운 욕망과 감성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것은 속도전을 하듯 앞으로만 달려온 시간에 대한 새로운 욕망과 감성이다. 멈춰 서서 특정 시간대를 되돌아보며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싶어진 것이다. 1990년대 세계화의 끝단에서 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며 느끼던 정서적 공황을 다시 되돌아봄으로써 그래도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치열했던 삶 속에서도 따뜻한 일상이 우리를 보듬고 있었다는 걸 우리는 시간을 되돌림으로써 기억해낸다. 그때는 모르고 지나쳤던 일상이 새로운 가치로 피어난다.

시간을 담은 물건들, 그 손때 묻은 이야기

시간을 즉물적으로 보여주는 건 물건이다. 좀이 잔뜩 슬고 먼지가 덮인 옛 앨범을 꺼내보면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지나간 추억이 어른거린다. 아주 오래전 읽은 책을 펴면 거기 밑줄 그어진 글월들이 시간을 되돌려 그때의 나로 돌아가게해준다. 창고 깊숙이 처박아놓아 그것이 있는지도 몰랐다가 발견한 옛 카세트 데크나 턴테이블, 워크맨은 그걸로 들었던 음악과 그 음악을 함께 들었던 친구들, 그리고 연인의 이야기를 한가득 우리의 기억 속에 다시 흩뿌려놓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편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이상하게까지 보이는 그 물건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삐삐와 같은 물건은 그 불편함 때문에 더 애틋했던 사람과의 소통을 떠올리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는다. 스마트폰과 SNS로 누구나 연결되어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편지지는 편리함만큼 사라져버린 절절한 마음으로 그 가치가 되새겨진다. 버튼만 누르면 불이 척척 들어오는 가스레인지가 없던 그 시절 석유 곤로는 불을 붙일 때마다 풍기던 그 매캐한 냄새를 마시며 자식들 밥을 챙겨주시던 엄마의 사랑을 상징하는 물건처럼 여겨진다. 겨울철이면 광에 한가득 채워져 있길 바라던 연탄은 또 어떤가. 그것은 추운 겨울 우리를 따뜻하게 지켜주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셨지만 지금은 다 타버려 뒤편으로 멀찍이 물러나 계신 아버지의 헌신을 떠올리게 한다. 물건에는 기능과 쓸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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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고 사멸하는 물건들, 사라지는 이야기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물건에는 당대의 문화가 이야기로 녹아있기 마련이다. 아마도 지금 내가 쓰는 노트북을 100년 후쯤 내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소장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남다른 의미가 부여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소장되는 물건은 그리 많지 않다. 그 많은 사라지는 물건은 많은 이야기 또한 사멸시킨다.
그나마 이런 물건들을 보존하는 공간이 박물관이다. 하지만 박물관 역시 지금껏 일반 시민의 평범한 소지품에는 그다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물론 원시시대의 유물이야 그 희소성 때문에 가치가 부여되지만 무수히 많은 근·현대의 물건들은 박물관에 소장되지 않는다. 그 많던 물건이 다 사라지고 몇 개 남지 않게 되었을 때나, 혹은 매우 특별한 사람의 소장품만 박물관에 남게 될 뿐이다. 소장되지 않는 물건과 함께 ‘보통사람’의 이야기는 사라진다.
서울문화재단이 서울시와 함께 ‘박물관도시 서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은 그런점에서 특별하다. 서울시민의 일상생활 주변에 숨어 있는 동시대의 문화 자원을 발굴해서 가치를 부여하고, 우리 사회가 공유하도록 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기획이다. 그동안 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 박물관이 이제는 ‘우리의 물건’으로 채워진다. 사진, 책, 장난감, 교복 등을 미래의 유산으로 인증해주는 박물관에는 예술 작품만이 아니라 우리네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담긴 물건까지 소장된다. 이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미래의 유물이 될 현재 일상의 이야기를 보존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 기획을 통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지금 우리가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그 당시를 느끼듯, 소장된 물건을 통해 지금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지 않을까.

우리들의 ‘잃어버릴’ 시간을 찾아서

복고는 한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시간을 멈추려는 본질적인 욕망이다. 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을 어찌 멈출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기억의 힘을 동원한다. 물리적인 시간은 뒤에서 앞으로 속절없이 흘러가지만 기억은 앞에서 뒤로도 갈 수 있고 어느 시점에 멈춰 서기도 한다. 결국 복고의 두 가지 축은 시간과 기억이다. 시간은 잔인하다. 모든 것을 결국은 사라지게 만든다. 거기에 아름다움이나 따뜻함 따위는 없다. 하지만 기억은 다르다. 이 잔인한 시간을 아름답게도 따뜻하게도 만들어낸다. 복고는 그래서 언제나 기억의 왜곡을 동반한다. 당시만 해도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운 첫사랑과의 이별은 지나고 기억해보면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지나간 것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의 기억은 저 쌍문동 골목처럼 어떤 공간에 남겨지기도 하고, 그 골목 한 귀퉁이에 붙어 있던 당대의 영화 포스터 속에 남겨지기도 한다. 때로는 그때를 함께했고 그 인연이 지금껏 이어져 함께 살아가는 누군가의 주름진 얼굴 속에 남겨진다. 그 남겨진 아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는 일.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처절하게 사멸하는 와중에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말미암아 행복하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기를 바란다. 내가 지금 쓰는 많은 물건이나 내가 누군가와 함께한 많은 시간은 모두 그 기억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라. 훗날 당신의 기억이 될 많은 것이 당신 앞에 놓여 있다. 많은 미래의 이야기를 그 안에 담아놓은 채.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가치가 부여될 그 일상이. 문화+서울

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영화, 방송, 음악 등 다양한 대중문화를 통해 우리네 현실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저서로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등이 있다.
그림 손민정
사진 제공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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