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7주간의 워크숍을 유일하게 경험한 사람들로, 이 경험을 갖고 부모·예술가·일반 시민에게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지 다시 만나서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몸의 접촉과 움직임에서 출발해 예술가의 작업과 아이들의 놀이, 예술가와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질문하고 관찰해 봤는데,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떠오른 생각과 개인의 고민은 다 달랐을 것 같아요.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후의 삶과 작업, 아이와의 관계나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각자 어떤 시간을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컬로퀴엄^Colloquium에 참여하면서 주변에 많이 알려지게 됐고, 주변에서 자기도 하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돌봄 형태에 예술이 어떻게 스며드는지에 관심이 많아졌고요. 돌봄과 예술, 작가와 같은 키워드를 관심사와 엮는 작업이 여기저기에서 움트고 있는 것이 느껴져요. 사람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면서, 저는 이 프로젝트가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저를 위한 것이었음을 느꼈어요. 프로젝트가 끝난 직후에 집안일이 많이 쌓여 있어도 아이와 있을 때는 같이 놀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됐는데요. 사실 몸이 점점 굳어가는 걸 느껴요. 감각이 조금 사라지긴 했지만 접점이 계속 생기다 보니 여운이 이어지긴 했습니다.

오프라인 대면 워크숍과 집 안의 아이들을 관찰하고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는 온라인 형태를 병행하면서 이 두 가지를 엮었는데요. 코로나 상황이 나아졌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랬으면 또 완전히 달라졌을 것 같긴 해요. ‘나를 위한 작업’에서 나와의 관련성에 대해 좀 더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이와 같이 올 수 없었기 때문에 더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를 대하는 제 상태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지는데, 사실 아이는 제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 몰랐잖아요. 제게는 여기에서 얼마만큼 변했고 어떤 상태가 돼서 아이를 만나는지가 주가 된 것 같아요.

클래식 음악계는 아직 이런 이야기의 불모지인데요. 가장 큰 울림은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 만나면서 시야가 넓어졌다는 거예요. 각자 분야는 다르지만 방대한 예술 안에서 모든 것이 촘촘하게 연결 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5살과 2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요. 둘째가 아직 말은 못 하지만 의사 표현은 다 해요. 이 아이를 바라보는 제 모습이 조금 말랑해졌다고 할까요.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면 엄마 입장에서 판단하지 않고, 아이가 그렇게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유연함이 생겼어요. 저는 클래식 예술가들과 같이 해보고 싶어요. 클래식 음악계는 아이 낳고 경쟁하듯이 몸도 다 안 풀린 상태에서 다시 연주하러 나와요. 너무 힘들지만 무대에서 잊힐까 봐 다들 그렇게 해요. 출산과 육아로 공백이 생긴 예술가와 육아를 병행하는 예술가들의 ‘줌’ 온라인 회의 모임에도 가봤는데요. 이 모임에 참석한 20여 명 중 저 혼자만 클래식 음악가더라고요. 이 프로젝트를 하지 않았다면 저 역시 여기에 신경도 안 썼을 거예요.
제 상태가 아이에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저의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어요.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아 개인 프로젝트를 기획해 지원 사업에 신청했는데요. 제 아이를 위한 콘서트, 아이가 관객이 되는 공연을 콘셉트로 했어요. 매번 아이를 맡기고 공연을 하러 가다 보니 정작 제 아이는 제가 연주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예요. 이런 부분이 통했는지 사업에 선정돼서 각자 다른 악기를 하는 엄마 음악가 5명이 모여서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을 연주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의 프로젝트가 제게는 정말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이들에게 많이 집중했지만,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는 일상으로 돌아왔어요. 관점의 변화를 체득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일상생활에 바쁘다 보면 망각을 하니 이런 프로젝트나 교육이 지속돼야 할 것 같아요. 저는 결혼과 육아에 대한 교육이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미혼자를 대상으로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태어난 후 관찰하면서 하기보다는 선행학습이 돼서 아이들에게 적용되면 좋겠어요.

아이들은 실존하는 존재이고, 주체성을 가진 시민이거든요.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집단끼리 모여 있다 보니 아이가 없거나 아이에게 관심이 없으면 지금 얼마나 많은 아이와 공존하고 있는지 잘 몰라요. 예비 부모보다는 시민의 감수성, 존재적 감수성을 회복하기 위해 어린이를 주제로 한 작업을 20대와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부모는 아이를 처음 만나면서 충격을 받잖아요. 부모가 된 이후의 삶은 예측하기 힘든 상태로 밀려서 가고요.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육아의 주체가 돼야 하는 엄마, 도움을 주는 입장이라는 아빠의 위치가 있는데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동안 아이 엄마는 뭐라고 하던가요.

평소에 잘 안 하던 사진과 비디오를 찍으니까 갑자기 왜 그러는지 궁금해했어요. 아빠의 역할과 엄마의 역할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저는 몸으로 놀아주는 것을 주로 하고, 엄마는 책을 읽어주거나 대화 하는 역할을 많이 하고요. 제가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달려와서 안겨요. 침대에 누워 있으면 제 배 위에서 막 뛰고 놀거든요. 그러면서 교감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예술가들의 몸에 대해 질문하고 있어요. 예술가들이 작업할 때 몸을 굉장히 많이 쓰는데, 육아에서도 몸이 중요한 것 같아요. 몸 안에는 그 사람의 이야기와 인식하지 못하는 삶의 방식, 육아의 태도가 다 들어 있거든요. 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본인이 하는 예술과의 상관성에 대해 질문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프로젝트를 하는 과정에서는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몸을 많이 쓰는 직업이라 신체 놀이 등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고요. 오히려 끝나고 나니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고 강하게 남아 있어요. 어릴 때의 기억이 자꾸 생각났고, ‘나는 왜 이걸 기억하고 있지, 그때 우리 엄마는 뭘 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젝트 전에는 아이가 놀고 있으면 같이 놀았는데, 지금은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기’를 해요. 아이가 혼자 무언가를 할 때 이제는 그 공간 자체를 비워줘요. 어 릴 적 놀던 기억에는 그 공간 안에 엄마가 없어도 괜찮았거든요. 저는 프로젝트 후에 제주도에서 워크숍과 공연을 했어요. 무용가와 비전공자가 섞여 있는 공연이었는데, 이때 제가 ‘내버려 두기’를 하더라고요. 기획하신 분이 작년과 다른 저를 보면서 걱정했는데 괜찮다고 했어요. 결국 즉흥으로 하다 보니 무리를 해서 공연 시간이 길어졌지만 저는 나름대로 좋았어요. 7일 동안 워크숍을 하면서도 이 사람이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기보다는 무엇을 할지 기다리는 ‘내려놓음’ 이 생겼어요.
저는 늦게 결혼해서 동생이 먼저 아이를 낳았는데요. 첫 조카가 너무 예뻐서 뭐든 다 해주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반성도 했어요. 이렇게 하면 아이의 주체성을 뺏어버린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어요. 부모들도 첫아이다 보니 다 그렇게 행동했고요. 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예비 부모 교육이 필요해요. 예술이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이 많고, 스스로가 바뀌어야 아이를 대하는 것이 바뀐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육아는 대부분 어떻게 채울지를 생각하지, 어떻게 비울지를 묻는 경우는 없어요. 아이와 부모의 만남은 비움이 좋다는 것을 체감했어요. ‘무엇을 해줄 것인가’는 항상 유아 예술교육의 이슈였거든요. 아이들 각자가 갖고 있는 자발성, 주체성, 내적 충동을 어떻게 존중하고 발현할 수 있게 할지 질문해야 합니다. 유아 예술교육 현장을 보면 어른과 예술가가 제일 바쁘거든요. 정작 아이들은 색깔 고르기 같은 매우 간단한 영역만 하고 칭찬을 받아요. 믿지 않으면 비울 수 없어요. 내버려 두는 것은 책임을 지우는 것이에요.

선생님들이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물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잖아요.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다면 서로 바쁠 필요가 없고, 아이는 어딘가에 집중하고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집중 하면서 다른 것을 할 수 있어요.

아이마다 세계를 접촉하는 독특한 방식과 취향이 있고, 결과적으로 놀이는 자신의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시간이고 관점이에요. 저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왜 한 사람이 태어났을 때 우주가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는지 깨닫게 됐어요. 분명 같은 공간과 시간에 있어도 한 사람이 경험으로 가져가거나 자양분으로 삼는 방식은 다 달라요. 모두 다른 행성에 살면서 한순간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마법같은 일인가요. 연극을 1~2시간 하는 동안, 관객들이 집중하고 교류하는 하나의 경험에 놓이면서 합의되는 순간이 있어요. 예술은 그런 순간을 가능하게 해줘요. 그런 이유로 오프라인 현장은 한 장소에 모이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 프로젝트에서 감각적인 만남은 항상 중요한 요소로 존재해야 합니다. 육아에 대한 감수성도 몸에서부터 나오잖아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나눠서 접촉해 본 경험, 가정으로 돌아갔을 때 내 몸이 달라져서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었던 경험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육아를 하면서 치열하게 작업해 온 다양한 예술가를 만나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연극은 공동 작업이다 보니 엄마들은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 거든요. ‘경단녀’로 지내면서 거의 포기 상태에서 1인극을 하거나 아이 엄마들과 작업을 했어요. 저는 제가 어떤 예술가인지 고민했는데요. 저는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도 하나의 예술이라 여기고 살아왔거든요. 배우로서는 단절됐지만 일상에서 상상하고 시를 쓰며 이야기해 왔어요. 그래서 저는 ‘시적으로 상상하고 존재 하는 배우’라는 결론을 내리고 올해 초 다시 연극을 시작했어요. 집에 있다 보면 저는 남녀노소 다 좋아해서 찢어서 나눠 주는 게맛살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저는 자유롭게 바닷속을 헤엄치던 게였거든요. 제 존재는 달라졌지만 이미지를 상상하면 하나의 자유로운 존재로 몰입이 되더라고요. 시를 써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면서 만족하고, 존재할 수 있는 것에 행복해하며 연명해 온 것 같아요. 프로젝트 이후 12년 지기 친구들과 공동 창작으로 <달팽이 철물점> 공연을 했고요. 시를 쓰고 노래도 부르고 움직임도 하고 있어요. 육아로 인한 2년 반의 공백에 마침표를 찍고 나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공동 작업도 엄마와 아이의 관계와 같았어요. 싸우고 야단치고 삐치기도 하지만 서로 놓지 않는 신뢰와 사랑의 끈이 있거든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런 힘으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생겼고,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아이들을 위한 움직임도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 무용수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데, 세 아이의 아빠이다 보니 거기에서 오는 감성을 반영해 다양하게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만들어볼 계획도 있고요. 요즘은 공연이 많지 않고, 공모 사업은 많긴 한데 손이 안 가더라고요. 최근에 지인과 공연을 준비하면서 저를 찾는 것 같기도 하고 갈증이 조금 해소되는 것 같아요. 연습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과 무언가를 해보려고 해도 여의치가 않아요. 회사원들이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하는 상황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아이와 소통하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거든요. 프로젝트 후에는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이행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습니다.

작년 프로젝트는 영유아기 아이들의 주체적인 감수성을 회복 하는 놀이와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찾아본 여정이었는데요. 이를 통해 일상에서 어린이는 예술가이고, 놀이는 주체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이루고 필요한 것을 가지고 와서 행동하는 것이라는 정의를 새롭게 내릴 수 있었습니다. 결론은 어린이와 예술가가 함께 만나려면 ‘열린 프로그램’이라는 접근 방식을 통해 즉흥적인 탐색 과정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이제 올해는 어떤 작업을 연장해서 할 수 있을지 자유롭게 얘기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본인이 구체적으로 주제를 이어나갈 수도 있고, 예비 부모나 결혼 예정인 부부를 위한 부모 예술교육으로 확장될 수도 있고요. 앞으로 개인적으로 혹은 재단에서 어떤 열린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무 계획이 없는 즉흥이 주는 감동이 있더라고요. 우연히 발견해서 더 몰입하는 순간이 있고요. 그래서 예술가 가족들이 즉흥으로 무언가를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지로 캠핑을 가서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서 가족과 그룹 단위로 만나보는 거죠. 여행은 모험이기도 하잖아요. 새롭고 낯선 것을 경험할 때 어른도 아이도 신나고요.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상태를 자연에서 함께 체험 했을 때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요. 빛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어둠을 느껴보고, 시냇물 소리도 듣는 그런 경험이요.

저는 ‘움직임, 새롭게 하기, 순간을 발생시키기’라고 써봤어요. 저는 여전히 부모가 말랑해지는 프로그램을 제일 하고 싶어요. 사실 첫날 프로그램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이유도 모르게 펑펑 울었거든요. 그 이후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선생님들이 분위기를 만들어주셔서 제가 굉장히 뻣뻣한 사람임에도 할 수 있었어요. 육아하는 사람들이 말랑한 상태를 최대한 계속 만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해요. ‘내’가 바뀌면 보는 것이 달라지니까요. 예술은 열심히 해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만나는 경험인데요. 그 만남의 순간을 계속 발생시켜야 해요. 그 순간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이와 나의 목표가 될 수 있어요. 프로그램을 짜기보다 그런 순간이 발생하는 장치를 많이 만들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것을 하면 좋겠어요.

저는 몸에 관심이 많은데요. 처음에는 기능적인 몸에서 무용을 하면서는 표현하는 몸·재활·건강에 관한 몸으로, 아이를 키우면서는 영양을 주는 몸으로 관심의 지점이 바뀌었어요. 몸의 변화를 경험하고 나눌 수 있다면 달라질 것 같아요. 요즘 앞만 보고 사는데, ‘돌아가 보기’를 하면 어떨까요. 언젠가로 돌아가 잊힌 감수성이나 기억, 그 시절의 ‘나’는 어떤 아이였는지 떠올리는 거죠. 요즘은 제 아이에게 교육을 하거나 경험을 줘야 하는데 제가 그러기에 충분한 경험과 교육이 돼 있는지 질문해요. 부모의 경험이 아이에게 이어지면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아, 부모가 먼저 경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기승전결을 좋아하잖아요. 예술에서도 ‘결’을 봐야 하고요. 그 ‘결’이 어떻든 그만의 ‘결’로 인정해 줘야 하는데, 자꾸 어떤 틀을 바라죠. 공연은 미취학 아동 관람 불가잖아요. 저는 아이들이 공연장에 와서 악기를 접하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는데요. 이 프로젝트를 하고 나서는 못 하겠더라고요. 이전에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감상하는 가이드라인을 줬는데, 이제 더는 아이들에게 가이드라인을 못 주겠는 거예요. 결국 중요한 것은 저의 음악과 본질을 지키면서 아이들에게는 기승전결을 주지 않고 열린 결말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을 정리했어요. 아이들이 음악 듣는 것을 힘들어할 수는 있지만,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만 주고 결말은 아이들에게 맡기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프로젝트를 받아들일 수 있고, 예술가들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끔 열어주는 기관이 많아야 해요. 아직도 예술교육이라는 틀이 있고, 행정 하는 분들은 또 그럴 수밖에 없고요. ‘양육하는 예술가를 위한 양육’이 활발하게 진행돼서, 이런 얘기를 좀 더 편하고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예술가와 아이들의 놀이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도 흥미가 먼저이고 집중하면 창조적 결과물이 나오거든요. 교육의 목적은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지 그 이후의 결과나 창작물은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아이들의 교육은 결국 흥미 유발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영유아에게는 다양한 재료를 소개하고 경험하게 하는 것부터가 출발이고, 결과는 그 이후의 얘기가 될 것이고요. 놀이를 통해 집중하고 창조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성취감이 있을 수 있고요. 자기 나름대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 자체가 자존감을 높이고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발전시킨다고 생각해요. 예술가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려고 하고, 그러면서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어요. 아이들은 새로운 창작물이 나오면 엄마에게 ‘나 잘했지’라고 확인하잖아요. 표현한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행동이 예술가들이 전시를 여는 목적이기도 하고요. 저는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면서 돌·나무·철·흙을 만져볼 시간이 있었는데요. 수업을 통해 재료와 친근해지면서 자기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을 취하거든요. 아이들도 로봇을 만지고 공룡모형을 만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계속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려고 해요. 우리는 교육이라는 말을 쓸 때 결과에 집중하다 보니 기본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요. 아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표현하고 세상을 바라보는지가 중요합니다.

저는 ‘예술가들이 어떻게 아이와 부모를 열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어린이나 중학생 대상으로 움직임 수업을 해 보면 마음을 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아예 열리지 않기도 하고요. 어릴 때부터 해본 경험이 없던 거죠. 저는 교육을 해야 하고 아이들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다 보니 악순환이 돼요. 예술가로서 이 정도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까워요. 제가 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부모·일반인과 공유하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요. 사실 지금은 즉흥 공연을 하자고 해도 나와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아이가 진짜 열려서 하기보다는 부모님이 한번 해보라는 분위기라서요. 예술가 스스로 ‘나’를 도구로 사람들이 열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해요. 접촉과 관련해서는 사실 아빠, 엄마와 손만 잡아도 느껴지는 것이 분명 있어요. 이런 방법으로 시작해서 예술가들이 사명감을 갖고 분위기를 만들어가야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사회가 조금 더 볼 수 있는 눈이 생기지 않을까요. 10여 년 전에 네덜란드에서 아이들과 몸으로 하는 즉흥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프로 그램을 진행했는데 외국 아이들을 지도할 때와 정말 다르더라고요. 아이와 부모를 열어주는 것은 접촉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온라인으로 만났으면 이렇게 얘기를 집중해서 듣기가 힘들었을 것 같아요. 직접 만나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에 대해서는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초기 구성원들이 주는 에너지가 계속 피드백되면 좋겠고, 분야를 정해서 다음 프로젝트로 밀고 나가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