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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3월호

‘같이 살아가기’를 모색하는 다양한 건축적 실험 우리 이렇게 '따로 또 같이' 살아요
아파트는 효율이 극대화된 주거 형태다. 그러다 보니 ‘이웃과의 대화’와 같이 효율과 무관한 요소는 배제되기 일쑤다. 함께 살아가는 게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깨달음은 다시금 젊은 건축가들의 새로운 실험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사회적 공간에 대한 깊고 다양한 생각에 주목할 때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주변은 고요하기만 하다. 뒤에서 누가 몰래 다가올까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 우리 집층수 버튼을 누른다. 문이 닫히니 좀 안심된다. 엘리베이터가 웅소리를 내며 올라가다 1층에 멈췄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들어온다. 이름은 모른다. 갑자기 엘리베이터 안이 너무 불편해졌다. 내 눈은 사면에 붙은 거울을 벗어나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드디어 내가 누른 층에 도착하고, 도망치듯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온다. 최대한 빨리 집 안으로 들어오니 그제야 안도감이 밀려온다. 참 이상하다. 언제부터 이렇게 ‘이웃’을 만나는 것이 어색해졌을까?

같이 살아가는 법을 잊어버리게 하는 도시

연관 일러스트 이미지틈틈집의 중정. 이웃과 빛, 바람을 함께할 수 있는 ‘틈’이 돋보인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골목길’은 그저 지나치는 골목길이 아니라 이웃이 같이 어울려 놀고, 사랑하고, 함께 사는 공간이다. 극중 덕선이네 정환이네 선우네는 마치 내 집 마당인 양골목길에 모여 수다를 떨었다. 굳이 ‘응팔’의 ‘쌍문동 골목길’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그무렵 동네 골목길은 나의 공간이자 우리 모두의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친구들과 구슬치기를 하며, 지나가는 우편배달부에게 인사를 드리고, 가끔은 동네 어르신께 야단도 맞으며 자연스럽게 같이 사는 법을 체득했다. 하지만 지금의 아파트 단지에서 그런 골목길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엘리베이터는 지하주차장에서 내려 최대한 빨리 내 집까지가기 위한 수단일 뿐,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사회적 공간이 아니다. 그렇기에 불편할 수밖에 없다. 비록 마주치는 사람이 내 이웃이라도 말이다.
모델하우스나 주택홍보관에 가면 “평면이 잘 빠졌다”고 광고한다. 공용면적을 최소화하고 전용면적을 최대화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누군가와 만나는 공간을 최소화하고, 나만을 위한 공간을 최대화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공간에서 우리는 서서히 같이 사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있다. 물론 아파트 단지에는 ‘사회적 공간’이 많이 있다. 노인정이 있고, 놀이방과 유치원이 있고, 헬스클럽도 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노인들은 노인정에, 어린이는 놀이방과 유치원에 어른은 헬스클럽에 모여 각각 시간을 보낸다. 같이 어울리는 공간은 고작해야 엘리베이터 정도다. 그 짧은 시간, 그 좁은 공간이 사회적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요즘 지하철이나 음식점에서 뛰어다니는 어느 집 아이를 보고 나무라면, 아이 엄마는 “당신이 뭔데” 하며 달려든다. 어느 사회학자는 “도시에서 좁은 골목길은 중요한 사회적 교육공간”이라 하며, 이런 골목길이 사라진 “단지화된 아파트는 ‘싸가지 없는 놈’을 양산한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파트에서 같이 살아가는 법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함께 사는 법을 찾아가는 건축적 실험

연관 일러스트 이미지때로는 극장, 때로는 놀이터가 되는, 두 가구 사이의 ‘사회적 공간(Common)’.

그러나 최근 들어 같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건축적 실험이 진행 중이다. 건축가 조성욱은 최근 자신의 가족과 친구 가족을 위한 듀플렉스(Duplex)형 주택을 판교에 지었다. ‘무이동(無二同)’이라는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 집은 두 가족이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두 채가 나란히 붙어 있는 이 집에서 제일 흥미로운 것은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일반적인 ‘땅콩집’처럼 두 집 각각의 계단을 유지했다면, 1m 정도의 계단은 옥상으로 올라가는 용도로밖에 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건축가는 두 집을 나누는 벽을 없애고 계단을 하나로 합쳐, 두집 애들이 같이 놀고 같이 영화도 볼 수 있는 공용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옥상은 다시 하나로 모아져, 여름에는 아이들 수영장으로, 때로는 야외 피크닉 공간으로, 겨울에는 심지어 아이들의 썰매장으로 이용된다.
한편 만리동에는 건축가 이은경이 디자인한 협동조합형 장기임대주택, ‘막쿱(M.A.Coop, 만리동 아티스트 코퍼레이티브 Mallidong Artists Cooperative)’이 있다. 대개 아파트는 주어진 옵션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지만, 협동조합형 주택의 경우 같이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먼저 협동조합을 구성한 후, 건축가가 함께 설계 과정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입주 후에는 어떻게 건물을 관리하고 운영할지도 모두 협의를 통해 결정하게 된다.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막쿱 외에도, 작년에 서대문구 홍은동에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이웃기웃’이 문을 열었는가 하면, 2014년에는 공동육아에 관심 있는 가족들이 모여 만든 ‘이음채’가 강서구 가양동에 문을 열었다.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같이 사는 마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성남시 복정동에 위치한 셰어하우스 ‘틈틈집’도 있다. 아키후드(강우현, 강영진)가 설계한 이 집은 전체적으로 방 3개짜리 주택을 가운데 마당을 두고 층층이 쌓아 올린 형태인데, 이름처럼 ‘틈’이 참 많다. 일반적으로 도로변 방향으로 난 아파트의 발코니와 다르게 틈틈집의 발코니는 도로와 90도 방향으로 꺾어 안쪽으로 끌어들여왔다. 각각 틈들은 세대와 세대 사이, 침실과 공용 공간 사이에 위치해 각각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는 역할과 함께 햇빛과 바람을 끌어들이는 환경적 역할과 서로 얼굴도 보고 같이 어울리는 사회적 공간의 역할을 하게끔 디자인되었다.

다시금 사회적 공간을 고민할 때

최근 서울시 건축심의를 들어가 보면, 아파트의 입면 디자인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가곤 한다. 또한 서울시 공동주택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보면, 입면 다양화를 위한 인센티브 등 여러 가지 장치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회적 공간’에 대한 언급은 노인정, 놀이방, 헬스장 등 분리된 공간의 디자인에 국한된다. 아무도 로비와 엘리베이터 홀 그리고 계단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없다. 공동주택으로서 의미를 잃은 아파트를 ‘공동의 주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시금 ‘사회적 공간’을 고민해야 한다. 이미 젊은 건축가들의 제안에 그 답이 있다. 우리는 단지 눈을 열고 귀를 열기만 하면 된다.문화+서울

글·사진제공·그림 조한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이며 한디자인(HAHN Design) 대표로 건축·철학·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간·공간’에 관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건축가 조한의 서울탐구> (돌베개, 201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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