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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3월호

대중문화가 그리는 ‘반려동물과의 삶’과 현실의 책임감 우리집 고양이에게 선거권이 생긴다면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 비해 점점 나아지고 있다. 만화, 웹툰의 단골 소재로 등장함은 물론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인간과 반려동물의 동거’를 비중 있게 다룬다. 그러나 관심만큼 책임감도 증가한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처방으로 반려동물을 고려할 때, 우리가 더 생각해야 할 많은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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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도 주민등록증 만들고 선거권도 생기는 거야?” 나와 같은 집에서 사는 고양이 두 마리가 올해 18세가 된다.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히딩크 감독의 네덜란드 대표팀에게 ‘오 대 빵’으로 지던 그 시간에 태어나 나름 오래 살았다. 녀석들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생활이 똑같다. 먹고 자고 뒹굴고 싸운다. 요즘은 좀 덜 먹고 조금 더 잘 뿐이다. 그러나 그사이 바깥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개와 고양이, 여러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은 놀라울 정도로 바뀌었다.
“아이고, 저 짐승은 뭐예요? 안 물어요?”18년 동안 월세, 전세를 전전했기에 그때마다 집주인의 눈치에 시달렸다. “내가 고양이 노린내 땜에 살 수가 없네.” 주인 아저씨의 심기가 불편하면 고양이 키우는 나는 죄인이 되었다. 그래서 이사 갈 때는 짐만 먼저 옮기고 고양이는 한밤중에 007 작전으로 밀반입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답답함을 풀기 위해, 그런 편견을 없애기 위해, 고양이에 대한 에세이를 써 책으로 내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내가 사는 전셋집을 구매한 새 임대인이 갑자기 집을 보러 왔다. 임대인은 의자에 웅크린 고양이를 보더니 흠칫 놀랐다. “고양이가 참 크네요.” 그러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대중매체의 주요 소재로 떠오른 반려동물

생각해보니 두세 집 건너 한 집은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집 안에 인간 아닌 동물이 살아도 특별히 신기할것도 없다. 예전엔 고양이를 치료해줄 동물병원이 없어 가축병원을 전전하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애완동물’도 아니고 ‘반려동물’을 극진히 모시는 병원, 호텔, 장난감 가게들이 곳곳에 생겨났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외국 인터넷 사이트에서나 보던 희귀한 품종들도 SNS 여기저기서 쉽게 보인다. 개나 고양이만이 아니다. 카멜레온, 거북 같은 파충류도 많다. 동네 공원에서 아빠와 딸이 열대 새를 한 마리씩 어깨에 얹고 산책 나온 것도 본다.
웹툰, 드라마, 영화에서는 이런 상황의 비율이 더욱 증가한다. 특히 만화가들은 둘 중 하나는 고양이를 키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스노우 캣> <뽀짜툰> <탐묘 인간>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 등은 반려 고양이가 없었다면 태어날 수 없었던 만화다. 웹툰 원작의 드라마 <상상 고양이>에서 볼 수 있듯이, 작품 속 반려동물의 묘사도 훨씬 정교하고 현실적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반려동물을 테마로 한 TV 예능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있다.
JTBC의 <마리와 나>에서는 강호동, 은지원 등이 개, 고양이는 물론 돼지, 라쿤, 페렛 같은 특이한 반려동물을 위탁해서 돌봐준다. 채널 A의 <개밥 주는 남자>는 ‘쓸쓸한 남자들을 위한 구급처방’이라며 강아지와 인연 맺어주기를 한다.
분명 한국에서 인간들과 몸을 맞대고 살아가는 동물들의 숫자는 늘어났다. 그러나 그만큼 반려동물이 살아가기에 좋은 곳이 되었을까? 취향이 그래서인지, 나의 SNS 타임라인은 행복해 보이는 고양이나 동물들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 잃어버린 고양이, 주인 없이 떠돌아다니는 강아지에 대한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사소한 실수로 인한 가출만이 아니다. 케이지 채로 내버린 고양이, 병이 깊어지자 내팽개친 개, 학대받거나 무책임으로 버려진 동물들에 대한 소식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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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만큼 책임감도 커진다면

반려동물의 숫자는 너무 빨리 늘어났고, 그들을 책임지는 환경이나 사회적 공감대는 그걸 따라가지 못했다. ‘혼자 살면 외로우니까 키워볼까’ ‘SNS에 귀여운 사진도 올리며 예쁘게 키워야지’ ‘애들 정서 교육에 좋다니까 키워보자’… 그 동기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나도 그렇게 시작했으니까. 그러나 동물의 귀여운 순간 하나만을 보고 섣불리 집에 들여서는 곤란하다. 그들의 몸과 마음이 아픈 순간, 좁은 공간에서 우리와 부딪치는 순간, 그리고 죽음과 이별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KBS <1박 2일>의 상근이, tvN <삼시 세끼>의 산체… 방송 직후에 그들을 닮은 견종의 분양 문의가 쇄도했다. 하지만 잠깐의 흥미로 데려간 동물을 책임지지 못해 유기에 가까운 처지로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얼마 전 블로그를 통해 시바견을 분양하던 일본인이 더 이상 한국에는 개를 보내지 않겠다는 공지를 올렸다. 잠깐의 충동으로 개를 데리고 간 뒤 실증을 느끼면 바로 다른 개로 갈아타려는 모습에 절망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고양이들이 선거권을 얻는다면 어떤 정책을 원할까? 독하게 마음먹자면 상업적 동물 분양 자체를 엄격히 제한 할 것이다. 사실 개나 고양이는 가정 분양이나 유기 동물을 거둬 들이는 정도로도 수요를 충분히 메울 수 있다. 그리고 동물을 분양받을 때는 동거자 모두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본인의 결혼, 입대, 이주 등의 계획을 상세히 기록해야 한다. 그런 신상의 변화가 있을 때 동물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개의 경우에는 마당이 있는 집, 적어도 가까운 곳에 산책을 위한 공원을 갖춘 경우여야 한다. 다른 특수 종의 경우에는 각 동물의 생태에 대한 시험을 쳐야 하고, 주치의를 미리 지정해야 한다.
그래, 나부터도 그들을 냉큼 데려올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 대부분, 특히 열렬히 반려동물을 원하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그들은 혼자만의 외로운 삶 때문에 살을 맞댈 친구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의 불안정한 삶이 동물의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든다. 인간이 집에 돌아왔을 때 반갑게 맞아 줄 식구를 원하기에, 그 식구가 하루 종일 문 앞에 앉아 인간을 기다리게 한다. 반려동물이 살아가기 좋은 사회는 결국 인간이 살아가기 좋은 사회다. 이 조건을 마련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에게든 선뜻 개나 고양이와 함께 살라고 말하지 못한다.문화+서울

글 이명석
문화비평가 겸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여행의 즐거움과 인문학적 호기심을 결합한 <여행자의 로망백서> <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도시수집가> <모든 요일의 카페> 등의 저서가 있고, KBS 라디오 <신성원의 문화공감>,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에 고정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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