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어축제와
이건희 기증관
오징어놀이·땅따먹기·딱지치기·자치기. <오징어 게임>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통해 떠올리게 된 우리나라의 전통 게임이다. 오징어놀이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나 나머지 게임은 흙먼지 마셔가며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작은 돌이나 나뭇가지, 달력이나 책 표지 등을 이용해 노는 것으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신나게 놀 수 있었다. 돌이켜 보니 땅따먹기에서는 도전 의식을, 자치기에서는 집중력을, 딱지치기에서는 순발력을 기를 수 있었다. 매일 보는 친구들이지만 함께 어울리면서 사회성도 기를 수 있었다.
나에게 어릴 적 추억을 되살린 <오징어 게임>을 세계인도 환호하고 심지어 즐기기까지 한다니, 우리 문화의 위력을 실감하게된다. 얼마 전 방송에 이탈리아 성인들이 거리에서 딱지치기하는 모습이 나왔다. 손으로 딱지를 내리치는 동작이 어설프지만 흥미로운 반응을 보이는 외국인들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인터넷 게임에 빠진 우리 아이들도 이런 놀이를 해 보면 신체 발육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 2>를 올해 내놓는다고 하니 다시 한번 우리 놀이문화의 도약을 기대해본다.
놀이문화는 동서양 문화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놀이를 통해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점은 같다. 지리적으로 한정된 공간에서만 소비되는 것도 아니다. 이동의 자유와 기술 발달로 사람 간의 직간접적인 소통이 일상인 시대다. K-팝이나 드라마 등 K-컬처에 열광하는 세계인을 보면 우리 문화는 한반도라는 지리적 공간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 새롭게 추가되는 우리말을 보면 이런 우리 문화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김치·비빔밥·불고기·먹방 등 음식 관련 용어는 물론, 오빠oppa·언니unnie·대박daebak 등 일상어도 우리말 발음 그대로 영어로 등재되고 있다. 한류, K-팝, K-드라마 등 우리 문화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지역축제도 빼놓을 수 없다. 강원도 화천군은 외지인들이 부러워할 독특한 지역축제를 하고 있다. 2003년부터 한겨울에 문을 여는 산천어축제다. 구제역과 코로나19가 유행하던 때를 제외하고는 해마다 열리며 매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 올해의 경우, 지난 1월 6일부터 28일까지 23일간 축제 기간에 외국인 8만 명 등 153만 명이 방문했다. 주민 수 2만 3천여 명에 불과한 작은 산골에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사이에 150만 명이 넘게 방문했다니, 성공적인 축제라 할 만하다. 군은 축제 개최로 입장권 수익 20억 원에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파급 효과만 1천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군의 한 해 예산인 4,250억 원의 23퍼센트 수준으로, 산천어축제가 지역 활성화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고 볼 수 있다.
축제의 주무대는 축구장 10개 크기의 화천천이다. 산천어는 영동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물고기로 바다와 먼 영서 지역인 화천군에서는 살지 않아 축제를 위해 전국의 양식장에서 수십만 마리를 공급받아 얼음 두께가 25센티미터 넘는 화천천에 풀어 놓는다. 낚시꾼들은 산천어를 구멍이 뚫린 얼음 위에서 낚고 맨손으로 잡기도 한다.
화천군은 성공적 축제를 위해 해마다 서울외신기자클럽에서 외신을 초청해 축제설명회를 개최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2009년 미국의 ‘타임’지에서 화천군 축제 사진을 금주의 뉴스로 보도하면서 축제는 명성을 얻었고, 2011년에는 CNN 방송에서 세계적 여행잡지인 ‘론리플래닛’을 인용해 화천산천어축제를 겨울철 7대 불가사의로 소개해 세계적 인지도를 쌓았다. 올해 새해 첫날에는 ‘뉴욕 타임스’가 ‘올겨울 아시아에서 꼭 봐야 할 축제 5곳’을 소개하며 화천산천어축제를 가장 먼저 꼽기도 했다.
강원도 산골에서 이렇게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은 건 주목할 만한 일이다. 겨울철이면 도박을 하거나 술에 빠질 수 있는데, 낚시로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강원도 내 기초 지자체에서 하는 축제는 대부분 스키나 스노보드 등 설상에서 이뤄진다. 얼음 위에서 열리는 축제는 산천어축제가 처음이다. 산골이라는 공간적 한계를 다양한 축제 아이디어로 극복하며 지역경제를 살리는 셈이다.
3년 전 고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국보급 문화유산과 미술품 2만 3,181점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전국 40여 곳의 지방자치단체에서 미술관 유치 경쟁에 나선 게 기억난다.
이 회장의 수집품 1호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같은 그림과 도자기, 서화, 금속 공예품 등 고미술품 2만 1,600여 점에다 모네의 그림을 비롯한 서양화와 국내 근현대 미술품 1,400여 점을 기증했는데 감정가가 2조 원 이상으로 추정될 정도로 대단한 컬렉션으로 예술적 가치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
정부는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국민의 높은 관심을 계기로 별도의 이건희 기증관을 세워 국민의 문화 향유권을 확대한다고 했다. 이후 부산·여수·진주·울산 등 전국 40여 곳의 지자체에서 저마다의 인연을 강조하며 이건희 기증관 건립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최종 부지는 서울 종로구 송현동 녹지광장으로 결정됐다. 이건희 기증관은 현재 설계 공모가 진행 중이며, 내년 말에 착공해 2028년이면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로 개관하게 된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도시가 서울이니 서울에 이건희 기증관을 세우는 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결정이다.
하지만 지방 소멸 시대에 이건희 기증관을 지역문화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서울에는 각종 고궁 등 문화유산 자원이 많다. 지방에도 박물관과 미술관 등이 있으나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보급 문화유산이나 미술품은 빈약한 실정이다. 지리적 고유성이 없는 문화유산이라면 서울보다는 비수도권에 전시 공간을 확보해 지방 관광도 활성화한다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글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현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