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사랑한 사람들의 역사
A4 용지 한 장을 꺼냅니다. 좀 더 크거나 작은
종이도 괜찮습니다. 아니 냅킨 한 장 정도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준비되었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립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어보지 않았어도,
공연이나 영화 버전을 보지 않았어도 대강의
줄거리는 모두가 아는 그 유명한 ‘사랑
이야기’ 말입니다. 반목하는 두 가문의 어린
연인이 빚어내는 비극적인 사랑을 상상하다,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멈춥니다. 무덤 장면
말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로런스 수사가 건네준 신비스러운
약을 먹고 가사假死 상태에 빠진 줄리엣이
안치된 그 무덤. 로런스 수사의 편지를 미처
전해 받지 못해 줄리엣이 진짜로 죽었다고
착각한 로미오가 미리 준비한 독약을 삼키고
쓰러지는 그 무덤. 뒤늦게 깨어난 줄리엣이
이미 숨을 거둔 로미오를 보며 단도를
꺼내 드는 그 무덤 말입니다. 저의 스승이자
멘토인 하워드 블래닝Howard Blanning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그 장면을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누구는 납골당을 꽤 그럴듯하게
그렸고, 누구는 빈 무대를 상상하며 가로로
선 하나를 쓱 그어놓기도 했지만, 거의
모두의 그림 속 등장인물은
두 명뿐이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우리의 기억 속 <로미오와 줄리엣>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니까요.
우리의 단순한 착각이 아닙니다. 그건 분명
셰익스피어의 의도였습니다. 극을 시작하며
해설자가 말합니다. “이 극이 벌어지는
아름다운 베로나에 명망이 엇비슷한
두 가문이 있었는데 (…) 이러한 두 원수의
숙명적인 몸에서 별들이 훼방 놓은 두 연인이
태어났고 그들은 불운하고 불쌍하게
파멸하며 부모들의 싸움을 죽음으로
묻었도다”라고. 관객·독자는 ‘두 가문’,
‘두 원수’, ‘두 연인’을 마음에 품고 이야기를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무덤
장면, 그 무덤가에 놓여있는 몸은 사실 둘이
아닙니다. 로미오가 독약을 마시고 줄리엣이
단도를 꺼내 드는 그 모든 순간, ‘두 연인’의
죽음 직전에 죽음을 맞이한 한 사내가
두 연인과 함께 있습니다. 또 한 명의 어린
사내의 죽음이 두 연인의 죽음의 배경으로
자리하도록 셰익스피어는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를 고쳐 썼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로미오와 줄리엣」
1594-96은 셰익스피어가 새롭게 창안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셰익스피어가 직접
참조한 것으로는 아서 브룩Arthur Brooke의
「로메우스와 줄리엣의 비극적 역사The
Tragical History of Romeus and Juliet」1562와
윌리엄 페인터William Painter의 「기쁨의
궁전The Palace of Pleasure」1566이 언급되곤
하지만, 이 작품들도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탈리아의
수사이자 작가인 마테오 반델로Matteo
Bandello, 1554와 루이지 다 포르토Luigi Da
Porto, 1531가 더 일찍이 이 이야기를 썼다고
전해집니다.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생을
마감하고 마는 어린 연인의 사랑 이야기의
진짜 시작, 즉 ‘원조’를 추적하자면 기원전
1세기의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 이야기』에 소개된 바빌로니아 신화
「피라모스와 티스베Pyramus and Thisbe」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겠지만, 원조 찾기는
이쯤에서 마치고 다시 셰익스피어가 쓴
‘무덤 장면’으로 돌아올까 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체 곁에 놓여 있는 어린 사내,
줄리엣의 구혼자로서 줄리엣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납골당을 찾았다가 로미오와
결투를 벌이는 그 사내, 로미오에게
줄리엣 곁에 뉘어 달라고 청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그 사내, 파리스 백작은 이전의
이야기들에는 없던 인물입니다. 다시
말해, 파리스는?로미오의 친구 머큐쇼와
함께?셰익스피어가 추가한 인물입니다.
허니 셰익스피어가 정말로 쓰고 싶었던 것은
그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가정도 그리
과한 억지는 아닐 겁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제목만으로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극을 시작하자마자
‘두 가문의 두 연인’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공표해놓고도, 정작 마지막 장면에 가서는
독자·관객으로 하여금 ‘세 구’의 시체와
마주하게 하는 셰익스피어의 속셈은
무엇이었을까요? 어찌하여 두 가문의 오랜
반목 때문에 이와는 전혀 무관한 머큐쇼와
파리스도 목숨을 잃게 되는 걸까요?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머큐쇼와 파리스는
같은 집안사람입니다. 베로나의 군주,
에스칼루스 대공의 친척들이지요. 하여
모두가 죽고 난 후 “나 또한 당신들의 불화에
눈 감은 대가로 한 쌍의 친척을 잃었다”고
대공은 말합니다. 더욱이 로미오의 친구인
머큐쇼는 말할 것도 없고, 파리스 또한 어린
사내로 짐작됩니다. 10대 중반의 줄리엣은
파리스를 “젊은 백작youthful lord”이라고,
로미오는 “젊은 양반gentle youth”이라고
부르니 말입니다. 결국 몬테규와 캐플릿,
두 집안의 오랜 반목은 그 집안의 젊은이들뿐
아니라 군주 가문 젊은이들의 목숨까지도
앗아가는 셈입니다.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남겨진 벤볼리오를 제외하고 베로나의
모든 젊은이가 죽었습니다. 이 도시는 미래를
잃은 셈입니다.
하워드 선생님은 셰익스피어 당대에
오래도록 반목했던 ‘두 가문’에서
셰익스피어의 속셈을 읽어냅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John
Shakespeare, 1531-1601 또한 평생을 「로미오와
줄리엣」의 인물들처럼 반목하는 두 세계로
인해 요동치던 시절을 살았습니다. 헨리
8세의 이혼 문제에서 시작된 종교 개혁이
여러 번 영국을 통째로 뒤흔든 시절입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이지만, 자세한 설명은
역사책에 맡기고 간략하게 적어보자면,
영국의 국교는 1534년, 1556년, 1558년
세 번에 걸쳐 변경됩니다.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신교에서 다시 가톨릭으로,
그리고 또다시 개신교로 바뀝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는 무너졌으며,
벗들 간의 우정은 깨졌고, 가족들의 관계는
산산이 갈라졌으며, 개인들의 내면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포로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고, 저명한 셰익스피어 학자
스티븐 그린블랫Stephen Greenblatt은 그의
저서 『세계를 향한 의지Will in the World: How
Shakespeare Became Shakespeare』2004에서
말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아버지는 종교
개혁을 적극적으로 이끈 공직자였으며,
어머니는 골수 가톨릭교도였다고도
소개합니다. 결국 오래도록 반목하는
두 세계가 빚어내는 비극을 셰익스피어가
몰랐을 리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구교와 신교의 오랜 갈등이 영국 전체를
얼마나 휘청하게 만들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군주’에게 경고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두 가문’의 오랜
반목은 당신의 집안까지 위태롭게 한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하워드 선생님의 가설이었습니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숨은 의도를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참수형의 도끼날과
화형의 횃불을 피해 ‘사랑 이야기’에 꼭꼭
숨겨놓은 그 속마음을 어딘가에 남겼을 리
만무하니까요. 허나 분명히 셰익스피어는
당대에 알려져 있던 어떤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에도 없던 인물들을 창조해 그들을
로미오와 줄리엣 곁에 뉘었습니다. 첨예한
정치 풍자극으로 독해될 위험한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요. 하워드 선생님의 수업 속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가
‘동시대적으로 읽어낸 고전’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고전’이라고 칭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조차 이미 당대를 위해
새로이 고쳐 쓴 것이라면, 우리가 우리 시대를
마음에 품고 고전을 적극적으로 새롭게 읽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요.
변형되고, 변주되고, 오염되는 것이 이야기의
타고난 운명입니다. 타고난 운명대로 살아,
계속 살아 있게 하는 것이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본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 전영지 공연 칼럼니스트·드라마터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