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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2월호

아시아 아르젠토 감독의 <아리아> 과잉은 결핍이 꾸는 꿈
희망도 변화도 없는 지옥의 한철 같은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이 있다. 홀로 세상과 맞서야 하는 아이들은 동화 같은 해피엔딩을 꿈꿔보지만 결국 절망의 순간이 오롯이 견뎌내야 할 현실이라는 사실을 흉터처럼 마음에 새기고야 만다. 그렇게 어린 시절은 아련한 추억이 아닌, 지독하게 벗어나고 싶은 수렁이기도 하다. 토드 솔론즈 감독의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에 나오는 대사처럼 말이다.

주저 없이 사람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은 행복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그렇지 못했고 그 시절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을 뿐이다. 다만 지금은 그 지옥에서의 한 시절을 잊을 수 있기에 사람들은 그때가 행복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시절의 결핍

아시아 아르젠토 감독의 <아리아>는 소녀의 마음속으로 쑥 들어간 영화다. 보편적 공감보다는 개인의 갈급함에 바짝 다가서 있다. 아리아는 오직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자신을 봐달라고 계속 외친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바르게 바라봐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성장 영화들은 훌쩍 큰 주인공의 속내와 마음에 주목하고 달라진 현실을 보여주지만 <아리아>는 좀 다르다. 일련의 소동을 겪은 후에도 아리아의 생활은 한 치도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9살 소녀 아리아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엄마, 그리고 유명한 배우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 아빠와 엄마가 각각 다른 두 언니 사이에서 아무런 존재감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리아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의 사랑과 관심, 이해다. 하지만 가족 중 누구도 아리아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던 중 엄마와 아빠가 크게 싸워 따로 살게 되고, 아리아는 엄마와 아빠의 집을 오가는 떠돌이 신세가 된다.
알려진 것처럼 아역배우 출신의 영화감독 아시아 아르젠토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감독 다리오 아르젠토와 배우 다리아 니콜로디 사이에서 태어났다. 몇몇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아리아>에는 그의 자전적 경험이 깔려 있다. 자식보다 자신의 일을 더 사랑하는 부모 밑에서 평범한 가정의 아이처럼 충분한 사랑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시아 감독은 그런 자신의 경험, 그리고 어린 시절 모두가 겪어봤을 오해(incompresa: 영화의 원제)와 사랑받고 싶은 갈증을 아리아라는 소녀를 통해 회상하는 것처럼 보인다.
16mm 카메라를 통해 담아낸 화면의 질감은 오래된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아련하고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한다. 또한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알록달록한 색감과 배경은 애정 결핍에 시달리는 아리아의 황량한 내면과 그 결핍을 달래기 위한 상상이라는 상황을 효과적으로(어쩌면 역설적으로) 담아낸다. 빈티지한 가구와 분위기 역시 관객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효과적인 소품이다.

그 시절의 과잉

결핍이 심할수록 상상력은 풍부해지는 법이다. 무채색을 제외한 모든 색감을 한데 모아놓은 것 같은 영화의 질감은 아리아의 황량한 내면의 또 다른 표현이 되어, 아리아의 건조한 마음을 드러낸다. 부모의 집에서 쫓겨나듯 나와 거리를 떠돌지만, 거리에서 만난 부랑자들과 어울리며 즐거워하는 아리아의 모습은 흡사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처럼 보인다. 추위와 무관심을 극복하기 위해 성냥팔이 소녀는 성냥을 하나씩 켠다. 성냥이 켜질 때마다 소녀는 자신의 처참한 현실과는 다른 환영에 빠진다. 하지만 성냥불은 너무 빨리 사라진다.
행복과 배려가 결핍된 인생을 살다 보면 그렇게 상상력이 넘쳐 과잉이 되는 법이다. 아리아가 처한 건조한 현실과 대비되는 화려하고 노골적인 색감은 너무나 건조해 숨을 쉬기 어려운 소녀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환영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아리아의 엄마로 나오는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여전히 건조하고, 깡마르고, 깊다. 세계적인 뮤지션 세르쥬 갱스부르와 배우 제인 버킨의 딸로 자라난 그의 성장기도 감독 아시아 아르젠토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역시 <아리아>의 지울리아 살레르노처럼 1985년 클로드 밀러의 성장 영화 <귀여운 반항아>를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성장 환경과 그의 영화 <귀여운 반항아>는 자연스럽게 한 소녀의 지독한 성장담 <아리아>와 오버랩되면서 묘한 기시감과 오라를 만들어낸다.
결국 어느 곳으로도 도망가지 못하고 현실이라는 구심점으로 되돌아오는 현실, 아무런 추진력 없이 현실의 틈새를 부유하고 마는 소녀의 이야기는 그 뒷맛이 떫다. 그리고 그 마음이 너무 공허해 그저 아득하기만 하다.

글 최재훈_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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