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두 개의 목소리> 포스터와 소개 글 부분(웹진 [비유] 제공)
두 사람이 작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 사람의 말이 끝날 때까지 또 다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인다. 커피의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둘은 고요한 얼굴로 침묵을 지키기도 한다. 깨지기 쉬운 유리공을 주고받듯이 대화는 이어진다. 옆 테이블에 당신이 앉아 있다면, 잔잔한 물결처럼 들려오는 목소리에 당신의 귀를 가만히 맡겨둘지도 모른다.
여기 그런 목소리를 가진 두 사람이 있다. 정윤은 영상을 만들고, 미선은 그림을 그린다. 둘은 4년 전 한 워크숍에서 만난 사이로, 산책하듯 느릿느릿하지만 멈춤 없이 대화를 해왔다.
두 사람에게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말들이 있었다. 도저히 목구멍을 넘기지 못하는 말, 보통의 장소에서는 절대로 담기지 않는 말, 누구에게도 가닿지 않는 말.
<두 개의 목소리> 프로젝트는 미선과 정윤,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조각이다. 그 조각이 조금은 아프되 특별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누군가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작업이자 기록이기 때문이다. 미선은 동생 현숙을, 정윤은 친구 문희를 떠나보냈다. 미선은 동생이 스스로 생을 마친 후로, 정윤은 친구가 테러 사건으로 인해 사망한 후로 하루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한다. 둘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죽은 동생과 친구가 남긴 사진이나 글을 꺼내어 보기도 하고, 그들의 죽음에 관해 떠오른 생각과 기억을 시, 그림, 영상 등으로 풀어낸다.
_4화 ‘기록’ 부분
_5화 ‘남겨진 말들’ 부분
_7화 ‘다가오는 목소리’ 부분
미선과 정윤은 세상을 떠난 이들이 남겨두고 간 말과 기억을 오랫동안 각자 지니고 있었다. 혼자서는 열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둘은 마침내 <두 개의 목소리>에서 마주앉아 먼지를 후후 불어본다. 그 과정이 쉬울 리 없다. 정윤은 연재 마지막 화에 와서야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알고 있는,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정말로 사실인지, 혹여 내가 잘못 알고 설명하면 나의 친구와 그 가족에게 누가 될까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한참을 망설이다가 문희를 앗아간 테러 사건 기사를 힘들게 다시 찾아봤어요. 뉴스 기사와 제가 정확히 알고 있는 사실만을 연결하여 연대기를 세 줄 적었어요. 그리고 든 생각은, ‘단 세 줄로 어떻게 이 사람을 설명할 수 있을까?’였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어요.”
“어둑어둑해진 숲속을 더듬거리며 걸어가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두 사람이 계속해서 죽음에 대해 대화하고 작업하고 기록해나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그 끝에 무엇을 만났을까. 죽음을 말할수록, 죽은 이에 대해 말할수록 선명해지는 건 삶이고, 자신이었다고 두 사람은 말한다. 실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이들의 목소리가 항상 어둡거나 무겁지만은 않다. <두 개의 목소리>를 읽어나가면서 또렷해지는 건 이를테면 이런 바람이다. 누구라도 용기를 내어 죽음과 고통과 슬픔을 공적인 자리로 드러내고 함께 애도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정윤과 미선의 대화는 또 하나의 목소리로, 빛으로 당신에게 닿을 것이다.
- 글 남지은_시인, [비유]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