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사랑의 거리
사라 폴리 감독의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는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 속에 있지만, 각자 다른 기억과 감정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때는 서로가 세상의 모든 것 같았던 뜨거운 사랑을 지나 새로운 사랑을 만났을 때, 자신의 감정을 저울질하느라 진심이 뭔지 들여다볼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쓸쓸한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혼 5년 차인 프리랜스 작가 마고(미셸 윌리엄스)는 요리책을 쓰는 다정한 남편 루(세스 로건)와 행복한(행복해 보이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일로 떠난 여행길에서 대니얼(루크 커비)을 만나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데, 알고 보니 그는 앞집에 사는 이웃 주민이다. 만날 기회와 시간은 많아졌고, 감정을 숨길 시간과 기회는 점점 줄어든 셈이다. 감독은 섬세한 시선으로 마고의 일렁이는 감정을 바라보고 쓰다듬는다. 흔히 앞뒤 가리지 않는 격정적 사랑을 기대하지만, 마고와 대니얼의 사랑은 더디게 진행된다. 마고는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루에게 자신을 잡아달라는 신호를 보내지만 루는 변하지 않는다. 루는 장난스럽게 자신의 사랑을 전하고, 마고는 그가 조금 더 진지하길 바란다. 대니얼에게 육체적으로 끌리지만, 마고는 루를 놓치고 싶지 않아 주춤거린다. 그리고 다그치는 법 없이 그를 기다리던 대니얼이 지쳐 떠난 후에야, 그제야 마고는 루를 놓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죄의식과 후회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던 마고가 대니얼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자, 영화는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한다. 레너드 코헨의 <Take This Waltz>가 흐르는 동안 왈츠를 추는 것처럼 마고와 대니얼을 빙글빙글 돌아가던 카메라는 뜨거운 욕정의 순간과 사랑이 점점 낡아가는 순간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보통의 영화라면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는 시점에서 또 다른 해피엔딩을 위장하며 끝을 맺겠지만, 이 영화는 뜨거웠지만 다시 낡아지기 시작하는 사랑을 목도한다.
삶, 혼자 추는 왈츠
나를 치유하는 방법이 상대방의 따뜻한 심장이 아니라, 계속 되짚어가야 하는 나의 기억과 감정이라는 사실은 공허하다. 각자 다른 기억과 바람은 빈틈이 되어, 삶의 공허함을 키워간다. 그리고 반짝인다고 생각했던 짧은 사랑의 기억은 멈춰서는 순간 현실을 각성하게 하는 놀이기구처럼 삶에 균열을 만든다. 같은 시간을 지나면 함께 있는 거라 생각하지만, 명쾌한 답이 없는 각자의 기억과 태도는 두 사람을 다시 갈라놓는다.
영화 속에서 마고는 명백히 불륜을 저질렀지만, 감독은 그를 꾸짖지 않는다. 관객도 갈팡질팡하는 그의 마음에 굳이 편을 들진 않더라도, 그 마음의 모서리 정도는 동의하게 되는데, 이는 미셸 윌리엄스의 내밀하고 섬세한 연기 덕이다. 세스 로건은 유머러스하지만 섬세하지 못한 루가 비난받거나 동정받지 않도록 단단하게 중심을 끌고 간다. 관객은 버려진 루가 일상을 묵묵히 살아내며 상처를 극복하는 시간을, 낡아가는 새로운 삶을 묵묵히 견디는 마고의 시간을 함께 응시한다.
프롤로그에서 마고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실루엣으로 한 남자가 등장하는데, 흐릿해서 누군지 알 수 없다. 이 장면은 영화를 맺는 에필로그가 되어 영화를 동그랗게 말아 하나로 뭉친다. 영화의 끝, 마고는 남자의 뒤로 다가가 그를 껴안는다.
그 남자가 대니얼인지, 또 다른 남자인지, 어쩌면 과거의 루였는지는 알 수 없다. 마고는 남편인 루에게 늘 그랬던 것처럼 남자를 뒤에서 끌어안는다.
마고는 남자를 껴안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의 표정이 무서운걸까? 그는 늘 뒤에서 남자를 안는다. 서로를 바라보지도, 같은 방향을 보지도 않는 백허그는 그처럼 서로의 표정을 숨긴, 고독한 사랑 같다. 낡아가는 사랑을, 허물어지는 관계를, 달라진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마고의 사랑법은 혼자 추는 왈츠같이 쓸쓸하다. 그리고 마고의 마음처럼 우리도 빙글빙글 흔들린다.
- 글 최재훈_
-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