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집 앨범 <재즈 쿠킹>을 발표한 윈터플레이의 이주한.
5분만 쉬면 괜찮아
이주한은 4집 타이틀곡 <Take Five>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폴 데스몬드가 작곡하고 데이브 브루벡 콰르텟이 1959년 처음 발표한 곡으로, 유명 재즈 스탠더드가 되어 국내 광고에도 쓰였다. 원래는 색소폰으로 주선율을 연주하는데, 이주한은 트럼펫으로 연주했다. 원곡과 비슷한 분위기로 연주하다 갑자기 트럼펫을 놓더니 랩을 하기 시작했다. 이주한이 요즘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재즈랩’이다. 리듬을 타며 영어로 읊조리는데, 해석하면 이런 식이다.
“재즈와 함께 쿨해봐/ 리듬은 크게, 스윙비트로 놀아/ 햄버거와 감자튀김, 만두찜/ 왼손에는 달콤한 샤르도네/ 두뇌 신경세포는 천국의 중심에 연결돼 있어/ 이제 알게 됐으니,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ADHD 약 5알, 지구는 G키로 섬세하게 조율돼 있지, 울라라~/ 난 Take 5를 해야 해, Take 5, Take 5~” 뭔 소린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사실 비밀은 지난 3월 12일 이주한과 한 인터뷰에서 들었다. 당시 그는 “<Take Five> 가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말이 안 된다. ADHD 약도 나오고 하는데, 어지럽고 정신없는 내 삶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ADHD를 앓고 있다.
네이버 건강백과에 따르면, 주의력 부족, 충동성, 과잉행동이 ADHD의 핵심 증상이지만, 우리 행동에 대해 실행 지시를 내리는 전두엽 기능에 이상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집중력이 부족하거나 행동이 부산스러운 것 말고도 다양한 증상들을 보인다고 한다. 이를테면 매사에 급하고 참을성과 인내심이 부족하거나, 뭐가 중요한지 모르고 당장 눈앞에 하고 싶은 일만 하느라 중요한 일을 마치지 못하는 것, 정리정돈이 잘 안되고 제한시간 안에 일을 마치지 못하는 것 등이다.
“언젠가 내가 ADHD 성향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심하면 사회 생활도 힘들다. 약을 처방받고 고쳐야 한다. ADHD 증세가 있어도 그걸 재밌게 풀어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Take Five, 5분만 쉬면 괜찮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머릿속에선 정리가 잘되지 않지만 음악으로는 정리가 된다. ADHD 성향의 사람들은 하나에만 집중하면 대단히 깊게 파고들게 된다. 내 경우엔 그게 음악이다.”
그는 실제로 ADHD 성향을 가진 예체능계 인사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 밴드 마룬 파이브의 보컬 애덤 르빈, 팝스타 저스틴 팀버레이크, 에이브릴 라빈 등이 대표적이다. 흠결이 될 수도 있는 병력을 공개하고 이를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함으로써 그는 다른 ADHD 환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고 했다.
재즈랩, 노래, 유튜브로 이어진 새로운 도전
윈터플레이는 이주한(트럼펫), 혜원(보컬), 최우준(기타), 소은규(베이스) 4인조로 2008년 데뷔했다. 이후 소은규, 최우준이 빠지더니 2016년엔 혜원도 솔로 가수로 독립해 이주한 1인 체제가 됐다. 이주한은 이제 트럼펫 연주는 물론 재즈랩을 구사하고 몇몇 곡에서는 직접 노래까지 한다. “1인 체제가 된 이후 밴드를 살리기 위해 뭐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 없어서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에 과감히 도전해봤다. 랩도 하고, 3년 전부터 발성 연습도 했다. 노래는 아직도 한참 멀었지만, 재즈랩은 반응이 괜찮은 것 같아 다행이다.” 노래는 멀었다고 겸손을 떨지만, 이날 공연에서 마지막 곡으로 직접 부른 <All About Love>는 꽤나 근사했다. 이주한은 몇 달 전 새로운 도전을 했다. 유튜브에 ‘이주한 재즈 쿠킹’이라는 채널을 열고 영상으로 대중과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음악과 요리를 결합한 토크쇼 영상을 4월 15일 현재 9편까지 올렸다. 남무성 재즈 평론가를 초청해 음악과 사는 얘기를 나누고 미트볼 스파게티를 만들어 함께 먹는 식이다. 기획·촬영·편집을 스스로 다한다. “전에는 관심이 없었다가 어느 순간 ‘이젠 포털이 아니라 유튜브에 내 이름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0대인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영상을 보고 ‘이주한 바보 아냐?’라고 할까봐 겁도 났지만, 살아남기 위해 큰 용기를 냈다. 이미 저질러서 되돌릴 수도 없으니 되든 안 되든 계속 가는 거다.” 조회 수는 기껏해야 몇 백 건 수준이다. 그래도 꾸준히 올린다. 그걸 보며 나도 자극받고 용기도 얻는다. 조회 수로는 따질 수 없는 가치다.
- 글 서정민_한겨레 기자
- 사진 제공 라우드픽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