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각적으로 통통 튀면서도 개념미술적인 작품을 선보이는‘늘 거의 예술가’ 최정화 작가의 작품.
2 이승택 작가의 <Drawings>.
3 글씨 같기도, 그림 같기도 한, 현대 서예가 김종원의 작품 <文紋字-金剛經 그 書的 變相>.
한국 문화의 독창성, 그 시작이 추사
<Dream Society 3 : Originability>, 서울미술관, 9. 5~10. 11
두 전시 중 하나는 오는 11일까지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Dream Society 3 : Originability>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Dream Society>는 현대자동차의 미술 후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화제가 되는 동시대 미술가, 디자이너, 건축가, 공학자를 초청해 미래적이고 융복합적인 전시를 만들어왔다. 올해에도 한마디로 ‘고리타분함의 정반대 끝에 선 인물들’이 전시에 참여했다. 이를테면, ‘늘 거의 예술가’ 최정화, ‘사진조각’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개척 중인 권오상, 스타일리시하게 변형된 생활한복을 선보이는 디자이너 김영진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전시의 시작은 추사의 서예 작품이다. 어찌된 일일까?
“올해의 주제어는 ‘originability(origin+ability)’입니다. 문화적 독창성(origin)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능력(ability)을 합성한 말이죠.” 전시를 기획한 대안공간 루프의 민병직 부디렉터가 설명했다. “이것이 세계적 맥락에서 한국 작가들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부분이고, 이번 전시에선 한국 문화의 독창성을 형성하는 작가들을 다룹니다. 그 시작이 추사인 것은, 문화적 독창성의 모범이기 때문이죠.”
민 디렉터의 말대로 추사를 설명할 때는 ‘법고창신’, 즉 ‘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창조한다’는 말이
따라다닐 때가 많다. 추사는 20대에 청나라로 가서 옹방강과 완원 같은 당대의 손꼽히는 중국 문인들과 사제관계를 맺고 금석문과 종래의 서법을 탐구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장기간에 걸쳐 추사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창조했고, 추사의 글씨는 중국의 문인들이 앞다투어 얻으려 할 정도가 되었다. 이런 추사의 작품이 서두에 내걸린 것은 <Dream Society 3>전의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함축적으로 말해준다.
이 전시에 참여하는 총 10명의 예술가, 디자이너, 건축가 중에 추사와 연관되는 인물로 전위예술가 이승택, 현대 서예가인 김종원이 있다. 김종원은 그를 잘 모르는 관람객이 그의 작품을 보면 서예가라기보다 추상미술가로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의 작품은 글씨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하다.
“김종원의 서예는 서화동체(書畵同體), 즉 텍스트와 이미지가 분리돼 있지 않고, 글씨 너머의 예술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민 디렉터는 설명했다. “한국의 전통은 본래 글과 그림이 분리되지 않은 것인데 서구의 영향으로 현대미술에서 분리되었죠. 김종원의 작품은 그 뿌리를 다시 찾는 노력으로 평가될 만합니다.”
4, 5 추사 김정희의 서예와 우성 김종영의 브론즈 작품은 그들 사이에 놓인 세월에도 불구하고 묘한 조화를 이룬다.
추사의 구축성, 구조의 미에 주목한 우성
<추사 김정희, 우성 김종영: 불계공졸(不計工拙)과 불각(不刻)의 시공>
학고재 갤러리, 9. 11~10. 14
일찍이 추사의 서예를 글씨로만 보지 않고 추상미술로서의 성질을 탐구하고 영감을 받은 예술가가 또 있었다. 그는 바로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인 우성 김종영(1915~1982)이다.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14일까지 진행 중인 <추사 김정희, 우성 김종영: 불계공졸(不計工拙)과 불각(不刻)의 시공> 전시에는 우성의 조각과 추사의 서예를 함께 전시한다.
“우성은 추사의 구축성, 구조의 미에 주목했습니다.” 전시 기획을 도운 김종영미술관 박춘호 학예실장이 말했다. “그래서 추사를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 폴 세잔과 비교하곤 했습니다. 세잔은 큐비즘(입체파)의 선구자로 여겨지니까요.”
하지만 추사와 우성의 공통점은 형태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전시 제목에 나오는 것처럼 추사는 ‘불계공졸’ 즉 ‘기교가 능한지 어수룩한지 계산하지 않는’ 혹은 ‘계산할 수 없는’ 경지를 추구했다. 그것은 당대의 현란한 서법은 물론 금석학을 통해 먼 옛날의 고졸한 서법까지 통달한 후 나온 철학이
었다. 서구 미술에서 갖가지 미술 기교의 발전이 결국 추상으로 환원된 것과 비교될 수 있다. 우성 역시 “오랜 세월의 모색과 방황 끝에 추상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내가 갖고 있던 숙제가 다소 풀리는 듯 했다”라고 말했다. 우성은 ‘불각’ 즉 ‘새기지 않는다’는 말로 ‘사물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게 한다’는 그의 철학을 요약해 표현했다.
그래서 전시에 나란히 놓인 추사의 서예 <자신불>(19세기 중반)과 우성의 브론즈 <작품 80-5>(1980)는 그들 사이에 놓인 100여 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그 고졸한 듯 멋스러운 형태에서나 그 환원적 정신성에서나 놀랍도록 닮았다.
그러니 결국 <추사 김정희, 우성 김종영>과 <Dream Society 3> 전시 모두, 추사 김정희를 통해 한국의 문화예술이 식민지 침략과 근대화를 복합적으로 겪으며 잃어버린 과거와 현대의 연결점을 복원하려는 노력이다. 더 나아가 거기에서 한국 문화예술의 미래를 찾는 것은 관람자의 몫일 것이다.
- 글 문소영
- 코리아 중앙데일리 문화부장으로 영문 미술기사를 주로 쓰고 있으며 중앙일보에 ‘컬처스토리’ 국문 칼럼도 연재하고 있다.
네이버 7년 연속 파워블로그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 <그림 속 경제학>, <명화의 재탄생> 등이 있다. - 사진 제공 서울미술관, 학고재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