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막일에 진행된 해외 작가들의 강연 중 한 장면.
2, 3 오프닝 퍼포먼스 무대에 오른 ‘1024 아키텍쳐’는 프로젝션 매핑 공연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락페(록 페스티벌) 온 것 같네요.”
빈지노의 라이브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무료 칵테일 행사부스 앞에서 개막식에 참석한 한 기자가 말했다. 앞서 개막공연에서 ‘리세션(Recession)을 선보인 ‘1024 아키텍쳐(1024 architecture)’의 팬이될 것 같다고 이야기한 터였다. 개막식은 오후 4시부터 전시 관람과 해외 작가들의 렉처(강연)를 시작하고, 7시에 오프닝 행사를 시작해 끝나자마자 야외에서 빈지노의 축하 공연이 열리는 식으로 촘촘하게 진행됐다. 주최 측 추산 700명의 참가자가 강연을 듣고, 전시를 보고, 공연을 즐겼다.
이것이 락페라면? 헤드라이너는 ‘1024 아키텍쳐’
오프닝 퍼포먼스 두 번째 무대에 오른 ‘1024 아키텍쳐’의 프로젝션 매핑(프로젝터를 사용해 평면에 영사하던 방식을 넘어 굴곡이 있고, 형태가 있는 3D 오브제에 영사하는 방식이다. 3D 입체에 영상을 실시간으로 투과함으로써 사람들의 반응에 따른 인터랙션도 가능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공연은 실제로 국내 여름 페스티벌 여러 곳에 초청받은 헤드라이너들의 EDM(Electric Dance Music, 전자댄스음악) 무대와 흡사했다. 두 명의 퍼포머는 커다란 스크린 뒤에서 매핑과 디제잉(?)을 동시에 선보이며 때로는 무대 중심에 섰다. 이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는 스크린 위 단순한 빛들의 점멸로 시작돼 인공적인 오브제들이 무한히 확장되는 신비한 공간으로 관객을 인도했다.
공연을 보고서 개막식 직전 진행된 그들의 렉처(강연)가 왜 사전신청자들로 가득 찼는지 이해할수 있었다. 음악에 맞춰 실시간으로 시각 이미지를 변주하는 기술은 단순히 프로젝터를 활용한 여타 예술 작품들과 차별화됐다. 실제 존재하는 사진들을 활용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세계를 창조해낸 예술적표현의 영역에서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프로젝션 매핑 기술의 최첨단을 경험하는 관객들의 눈은 스크린에 고정돼 있었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까 그 기자의 마음속 헤드라이너(록 페스티벌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팀. 포스터나 브로슈어에 이름이 가장 크게 표기된다)는 ‘1024 아키텍쳐’였을 것이다.
미디어 전시, 개막일만은 미디어 파티
한 갤러리에 약 4시간 동안 700명의 관객이 작품을 감상하러 왔다고 생각해보자. 게다가 전시장에 놓인 작품 대부분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그냥 지나칠 수도 없다. 로봇이 사람을 더듬고(블라인드 로봇), 피아노를 치면 연주를 분석한 칵테일을 제조해주고(센티멘테일), 심지어 뇌파를 쏘거나(겁에 질린 표정), 병실에 누워 가상의 죽음을 체험해볼 수 있다(가상현실에서의죽음).
그래서 금천예술공장 전시실, 특히 체험 가능한 작품이 전시된 3층은 작품마다 형성된 대기선과 그 줄을 궁금증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로 계속 붐볐다. 그 속에서 칵테일을 들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문득 서양식 파티에 참석한 기분이 들었다. 국내 작가들은 작품
옆에 서서 체험 방법을 직접 설명하며 자연스럽게 해외 작가들 및 예술계 관계자들과 네트워킹을 이어갔다. ‘국제 교류’라는 것이 그 거창한 이름만큼 딱딱하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 생각하고 있는 필자의 곁으로 조금 흥분한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종종걸음으로 지나다녔다.
4 코드블루 <센티멘테일>.
5 디지털 히피단 <가상현실에서의 죽음>.
6 루이-필립 데메르 <블라인드 로봇>.
내년 가을에도 꼭 만나고픈 미디어아트 축제
허르만 콜겐(Herman Kolgen)과 1024 아키텍쳐의 개막 퍼포먼스 중간, 개막식 무대에 오른 20명 가까운 작가(팀)들은 최두은 예술감독과 함께 행사장에 가득 찬 관객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인사했다. 개막식 전에 작품 옆에서 밝은 목소리로 작품을 설명하던 작가들이었다. 앞서 시상식 단상에 오른 서울문화재단 조선희 대표는 “전시와 퍼포먼스를 보면 21세기는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단상에 올라와서 시상식을 진행하니 20세기로 돌아온 느낌이다. 내년에는 전시와 퍼포먼스 분위기에 맞춰이 순서도 조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빈지노의 공연을 함께 지켜보던 한 중견 작가는 전시 소감을 묻자 이렇게 되물었다. “재밌게 봤어요! 그나저나 못 보던 작가들이 많네요?” 초청 작품만 전시한 것이 아니라 신진 작가 아이디어를 선정해 제작 지원을 했다고 설명하자, “아 그래서 그런지 작품들이 생각보다 완성도가 높네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역 주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축하 공연은 9시를 기점으로 칼같이 끝났다. 하지만 전시는 10시까지 이어졌다. ‘가상현실에서의 죽음’을 체험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한 창작공간 매니저는 놀라움 반 부러움 반 섞인 목소리로 “금천은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했다. 6년 전만 해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특히 미디어 아트 분야의 국제교류에서는 최고 수준에 오른것이 아닌가 하는 평가였다.
내년 가을이면 3년째를 맞는 이 페스티벌, 왠지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질 것 같다.
- 글 이준걸
- 서울문화재단 홍보팀
- 사진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