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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연극 <잠자는 변신의 카프카> 선보이는 연출가 김현탁 원작 안에 감춰진 아름다움을 찾아
국내외 명작들을 파격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해온 연출가 김현탁이 신작 <잠자는 변신의 카프카>를 선보인다. 김 연출은 그동안 <자전거 Bye Cycle> <메디아 온 미디어> <망루의 햄릿> 등과 같이 원작을 비틀어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번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변신’시킨다.

연출가 김현탁

카프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잠자는 변신의 카프카> 극본은 10여 차례 변신 끝에 완성됐다. 배우들과 공식적으로 연습한 것이 10개 버전이고, 배우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버전도 여럿이다.
“희곡이 아닌 소설을 원작으로 작업한 것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에요. 당초 주인공 잠자를 중심으로 극본을 서너개 썼는데, 너무 막연한 얘기가 나왔어요. 재미도 없었죠. ‘난 능력이 없다’며 자기 학대까지 갔어요. 그러다 카프카로 눈을 돌렸어요. 결국 ‘잠자는 카프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됐죠.”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꿈에서 깨어나보니 벌레로 변해 있었다. 그동안 잠자의 수입에 의지해왔던 가족들은 잠자를 방 안에 가둔다. 가족들의 냉대와 외면 속에 잠자는 죽고, 가족들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산책을 나간다. 김 연출은 카프카가 <변신>에서 진짜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연극을 통해 들려주고자 했다. <망루의 햄릿> 등 그동안 김 연출이 연출했거나 연출할 작품12편이 주제를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된다.
“<변신>의 스토리 자체는 의미가 없어요. 카프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설 안에 조각조각 넣어놨어요. 그 조각조각들과 부합되는 제 작품들이 뭐가 있나 찾아봤죠. 예를 들어 원작에서 엄마는 늘 잠옷만 입고 아빠한테 기대기만 해요. 카프카는 ‘엄마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도 좀 돌아봐줘’라고 강하게 어필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 부분은 ‘햄릿’과 연결되죠.”
<망루의 햄릿> 외에 지난해 김 연출이 무대에 올린 <헤다 가블러>도 등장한다. 헨리크 입센의 원작을 바탕으로, 아이를 낳기 싫어하지만 임신한 여자를 그렸다.
“‘이렇게 살 바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태어나면서 불행이 시작됐다’라는 카프카의 생각이 감지됐어요. 그래서 <헤다 가블러>와 연결했죠. 이렇게 카프카가 글을 쓸때는 소심하게 덮었던 부분들을 걷어내고 싶었어요.”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연극 제목들은 무대 뒤편에 막을 내리고 영상으로 소개된다.
“관객들은 그 연극들의 내용이 무엇인지 몰라도 상관없어요. <헤다 가블러>를 알지 못해도 극중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분명하니까요. 원작을 모르고 제 공연을 보러왔다가 ‘원작이 뭔지 보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연극 외에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도 나온다. 개미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잠자, 베짱이는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동생 그레테를 가리킨다. 많은 사람이 <변신> 하면 ‘벌레’를 먼저 떠올리지만 벌레 형상은 등장하지 않는다. 김 연출은 벌레란 카프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덮는 장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무대에서 잠자가 벌레로 변하는 것은 가장 해서는 안 되는 짓이라고 생각했어요. 배우가 아무리 벌레로 변신 해도 ‘쟤는 사람이야’라고 하지, 벌레로 보기 힘들잖아요. 그럼 원작 밑에 감춰진 아름다움이 올라오기 힘들어요. 확신하건대 <변신>을 무대로 옮길 때 벌레 갑옷을 제작한다면 그 연극은 안 봐도 돼요. 차라리 소설을 보는 게 낫죠.”
김 연출은 배우들의 움직임, 미술, 음악 등을 통해 <변신>의 아름다움을 끌어낼 계획이다. 음악은 마이클 잭슨의 ‘아윌 비 데어(I’ll be there)’가 삽입된다.
“‘잠자는 카프카야’라고 깨닫는 순간 마이클 잭슨의 춤추는 모습이 생각났어요. 마이클 잭슨은 계속 성형수술을 했잖아요. 수술을 안 했으면 오래 살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수술을 안 했으면 사람들이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이렇게 들었을까라는 상상도 해봤어요. ‘변신’을 통해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있다는 점이 카프카와 비슷하죠. ‘개미와 베짱이’ ‘아윌 비 데어’는 이번 작품에 무조건 넣어야겠다고 생각한 두 가지예요.
그는 <변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는 않았다. 난독증이 있기 때문이다. 책 첫 장을 읽으면 이어질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라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힘들다고 한다.
“책을 조각조각 내서 읽고 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읽은 페이지를 접어놓잖아요. 저는 안 읽은 페이지만 접어서 표시해놔요. 접은 페이지는 필요한 단어가 있는지 죽 훑어보죠.”
김 연출에 따르면 카프카가 끝내 말하려고 했던 것은 “오로지 글만 쓰며 살고 싶다”였다. 카프카의 ‘글쓰기’는 김연출에게 ‘연극’이다. 관객에게는 각자가 꿈꾸는 ‘무엇’이될 수 있다.
“카프카가 ‘글쓰기’로 꿈을 꿨다면 저는 ‘연극’이고 누군가에게는 ‘등산’이 될 수도 있겠죠. 등산할 때 이런저런 생각을 하잖아요. ‘내 자식은 대학에 갈 수 있을까’ ‘산 경치 참 좋네’ ‘자식보다 산이 좋네’ 이렇게 가족과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죠. <변신>은 카프카가 그렇게 등산하듯 쓴 작품 같아요.”

동소문동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잠자는 변신의 카프카> 연습에 한창인 김현탁 연출과 배우들.동소문동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잠자는 변신의 카프카> 연습에 한창인 김현탁 연출과 배우들.

명작의 해체를 통한 재창조

<잠자는 변신의 카프카>처럼 김 연출의 작업은 단순한 각색이 아니라 재창조다. 원작자보다 작품을 더 깊게 파고들며 본질이 무엇인지 찾는 것으로 작업은 시작된다.
“많은 사람이 ‘원작을 그렇게 마구마구 해체해도 되느 냐’고 묻는데 ‘마구마구’라는 말은 삼갔으면 좋겠어요. 되게 힘든 작업이거든요. 경건하고 숭고하게 작업하고 있어요. 명작에는 해체해도 필요한 부분이 80% 있고, 나머지 20%는 비어 있어요. 제가 넣고 싶은 것이 들어갈 자리가 남아 있는 거죠. 제가 자유로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 연출의 ‘해체’는 대학 시절 시작됐다. 지도교수가 낮에 자신의 해석대로 작품을 연출하고 가면 그는 밤에 자신의 방식대로 바꿔버렸다.
“‘왜 나는 이렇게 하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없어요. 저한테 좋은 거니까요. ‘해체’와 같은 단어는 알지도 못했어요. 남들이 저보고 ‘넌 이걸 한다’고 하니까 그렇게 아는거죠.”
프랑스 연극학자 파트리스 파비스는 ‘포스트 드라마’ 등과 같은 용어를 그에게 처음 알려준 사람이다. 파트리스 파비스는 2011~201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초청교수로 재직했다.
“어느 날 파비스 선생님께서 제 공연을 보러 오셔서 뭐라고 얘기하는데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어요. 이후에 그분과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제 작품이 어떻게 분류되는지 알게 된 거죠. 제가 직관적으로 좋아서 하던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셔서 무척 감사했어요.”
그는 1996년 대학 졸업 이후 어느 극단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1994년 연희단거리패에서 운영하는 우리극연구소 1기로 들어갔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와버렸다. 혜화동1번지 동인 제의도 받았지만 무리 지어서 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라 사양했다.
한 차례 대중적인 연극을 시도해본 적은 있다. 2001년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연극 <엄마의 치자꽃> 연출을 맡은 것이다. 당시 배우 강부자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많은 관객을 유치하게 울게 하리라’고 결심했는데 완전 실패했어요. 강부자 선생님하고도 많이 싸웠어요. 가정극인데 무대에는 거실이 아니라 모래밖에 없었죠. 못하겠다고 하시는데 어렵게어렵게 설득해서 공연했어요. 이윤택 선생님께서 첫날 공연을 보시고 분장실에 찾아가 강선생님께 좋았다고 하셨나봐요. 강 선생님께서 피자를 먹으러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엄마의 치자꽃>은 흥행에 성공했다. 재공연 제안도 받았으나 그는 거절했다. 이후 자신만의 실험을 이어갔고, 2005년 극단 성북동비둘기를 만들었다. 독특한 시도로 인해 그의 작품에는 항상 ‘파격’ ‘실험’이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저보고 ‘특이하다’고 하는데 전 그게 연극이라고 생각해요. 특이한 것이 일반적이면 좋을 거 같은데…. 정상이 비정상 취급을 받는 것은 전반적인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거예요. 남들과 다른 것은 특이한 케이스로 놓고 ‘주류는 이거다’라고들 해요. 이런 시선을 달리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어요.”
남들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그는 자신의 의지를 굳건하게 지켜갔다. 그 결과 2012년 <메디아 온 미디어>는 한국연극 선정 올해 공연 베스트7에 꼽혔고, 2014년에는 <자전거 Bye Cycle>로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받았다. <메디아 온 미디어>는 2014년 6월 루마니아 시비우 국제연극제, 2014년 7월 싱가포르 아트페스티벌에 초청되기도 했다.
오랜 시간 연극을 해왔지만 이번 ‘남산예술센터 시즌프로그램’처럼 관(官)과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은 두 번째다. 앞서 2013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혈맥>을 공연했다.
“그동안 모든 것을 혼자 해왔어요. 포스터 디자인부터 무대 장치 하나하나까지 손보는 즐거움이 매우 컸어요. 이번에는 그렇게 재미있어 하던 것이 하나하나 빠져나갔어요. 그걸 참아내고 견디는 것이 고통스러웠을 정도예요.”
그렇다고 그가 소극장 무대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대극장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았을 뿐이다.
“남산예술센터는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훌륭한 그릇이에요. 저는 ‘내 와인은 대박이야. 잔이 문제인데. 저 잔은 대박’ 이런 마음으로 다가가요. 하지만 저쪽에서 ‘이 와인은 글쎄’라고 하면 난감하죠.”
극단 성북동비둘기는 2010년 대학로에서 조금 떨어진 성북동에 둥지를 틀었다. 그는 극장 겸 연습실인 ‘연극실험실 일상지하’에서 왕성하게 작품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곳도 월세가 많이 올라 극장은 올해 12월까지만 운영할 계획이다. 극장이 없어지더라도 성북동비둘기의 실험은 계속된다.
“앞으로 <바냐아저씨> <만선>도 하고 싶어요. 오태석 선생님의 <자전거>를 했으니까 이윤택 선생님의 작품도 해야죠. 해외에도 계속 저희 극단의 작품 영상을 꾸준히 보내고 있어요. 내년에는 루마니아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메디아 온 미디어>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문화+서울

글 신수정
헤럴드경제 라이프스타일부 기자
사진 김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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