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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우리 시대가 폭력적인 지휘자를 대하는 법

카네기홀에서 자신의 악단을 지휘하는 존 엘리엇 가디너
ⓒChris Lee/Orchestre Revolutionnaire et Romantique

최근 영화 <타르TAR>가 넷플릭스에 서비스되며 다시 화두에 올랐다. 영화는 독재적인 지휘자를 중심으로 클래식 음악계의 이면을 현실적으로 표현한다. 오케스트라 내 노동 착취와 지휘자 입맛에 맞는 부당한 임용, 권위를 이용한 성적 접근… 심지어 그는 다른 음악가를 폭행하기까지 한다. 폭행이라니, 과장일까? <타르>가 국내 OTT에 서비스를 시작한 8월 말쯤, 공교롭게도 유럽에선 비슷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영국의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Sir John Eliot Gardiner가 함께 공연한 음악가를 폭행한 것이다. 현재 80세인 가디너는 그동안 고압적인 언행으로 꾸준히 문제가 제기됐지만, 뛰어난 음악으로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온 지휘자다. 현재 영국 고음악계의 기반은 그가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1964년 지휘 경력을 시작한 뒤 세 개의 악단을 창단하고, 수많은 음반을 냈으며 그에 견주는 수상 경력을 자랑하고, 국가 행사의 연주를 맡거나 음악서를 출간하는 등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이름에 붙은 기사 작위Sir가 그의 위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모든 명성이 이번 사건을 통해 재평가되고 있다.
사건의 전말을 짚자면…
8월 22일 프랑스 베를리오즈 페스티벌에 오른 오페라 <트로이 사람들Les Troyens> 공연이 끝난 뒤였다. 공연 중 베이스 윌리엄 토머스William Thomas가 잘못된 방향으로 퇴장한 것을 두고, 출연진 앞에서 그를 질책하던 가디너가 급기야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다음날 영국 웹사이트 ‘슬립디스크Slippedisc’는 이 내용을 폭로했고, 가디너의 대변인은 “가디너가 프랑스의 극심한 더위로 상태가 좋지 않았고 최근 약을 바꿨는데, 그것이 지금의 후회하는 행동을 촉발했을지도 모른다”고 반응했다.

지휘자 게오르그 숄티 ⓒElfriede Hanak/DG

24일, 토머스의 소속사는 해당 사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모든 음악가는 학대나 신체적 위협이 없는 환경에서 자신의 예술 작품을 연습할 권리가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같은 날 가디너도 사과문을 냈다. “(…) 저의 행동에 대한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윌리엄 토머스에게도 개인적으로 사과했습니다. 이로 인해 발생한 고통에 대해 다른 아티스트에게도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 신체적 폭력은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 음악가는 항상 안전하다고 느껴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저의 행동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일주일 후, 가디너는 2024년까지 모든 스케줄을 취소했다. 소속사는 “가디너는 당분간 자숙의 시간을 가질 것이며, 의료 자문가와 상담을 통해 정신 건강에 중점을 둔 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알리며 맞춤 치료를 받는 몇 달간 그의 사생활 보호를 요청했다. 가디너의 폭력적인 언행은 이 사건으로 인해 지금 화제가 됐을 뿐, 오래전부터 있던 일이다. 2015년 ‘더 스펙테이터The Spectator’는 ‘존 엘리엇 가디너의 무례함’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그가 음악가들에게 행한 여러 이야기를 모았고, 이에 가디너의 측근은 그가 “자존심이 높지만 괴물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2023년 영화 <타르> 리뷰 기사에도 공포스러운 가디너의 모습은 종종 언급된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정작 음악계는 잠잠하다. 영국의 음악 평론가이자 ‘슬립디스크’ 운영자인 노먼 레브레히트Norman Lebrecht는 여러 추측을 남겼다. 많은 연주자가 가디너에게 인생의 시작을 빚지고 있어 그가 무엇을 하든 감사하는 마음이 있거나, 기존 클래식 음악계와 다른 가디너만의 캐스팅 때문에 음악가들이 향후 그와 쌓을지도 모르는 커리어를 생각한다는 것, 무엇보다 가디너만큼 오랜 기간 개인적인 위험을 무릅쓰고 더 많은 음악가를 위해 더 많은 창작 작품을 장려하고 무대에 올린 지휘자가 없다는 것 등이다. 무성한 소문을 뒤로 하고, 업계는 그가 자숙 기간을 거친 뒤 돌아올 것으로 점친다. 그러나 긍정적인 점은, 그가 돌아오더라도 폭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란 사실이다. 수많은 눈이 그를 지켜보고 있다.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백 명이 넘는 단원을 데리고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지휘자의 특성상 이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는 필수다. 오케스트라 위에 ‘군림’하는 능력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도 분명히 있었다. ‘더 스펙테이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휘자가 신이었을 때, 연주는 신의 계시였고 오케스트라 연주자는 기계처럼 정밀하게 훈련된 농노”일 정도로. 20세기의 전설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의 리허설은 전장이나 다름없었다고 전해진다. 1930~1940년대 리허설 녹음에는 고함과 욕설, 주먹을 내리치는 소리가 함께 녹음됐다. 연주자에게 지휘봉을 던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Siegfried Lauterwasser/DG

카라얀Herbert von Karajan도 말년에 독재자로 불렸다. 리허설 중에 실수한 바이올리니스트를 그 자리에서 해고하기도 했고, 연주자의 외모에 대해서도 까다로웠다. 연주를 촬영해야 하는 경우 민머리 음악가에게 가발을 씌우거나, 협연자였던 플루티스트 제임스 골웨이James Galway의 수염이 싫다는 이유로 화면용 대체 연주자를 세우기까지 했다. 로열 오페라와 시카고 심포니를 지휘하는 등 시대를 풍미한 헝가리 출생 지휘자 게오르그 숄티Sir Georg Solti는 생전 ‘비명 지르는 해골’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이 외에도 지난 세기의 폭력적인 이야기는 셀 수 없다. 단지 묻혔을 뿐. 시대가 바뀌었다. 전체주의가 받아들여지던 시대에 전체주의적 사상으로 지휘하던 이들의 방식을, 평등을 누리며 민주주의 가치를 배우고 자란 세대에게 납득시킬 수 없다. 지금 정치계에 독재자가 등장한다면 우리는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클래식 음악계도 같다. 가디너에게 폭행당한 젊은 베이스가 입을 다무는 게 아니라, 소속사를 통해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것도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음악적으로 뛰어나다면 인성은 눈감아줄 수 있다는 마인드는 다분히 구시대적이다. 당신은 지휘자의 폭언과 폭행 사실을 알고도 그의 음악을 고결하게만 들을 수 있는가? 영화 <타르>가 공감을 사는 이유는, 쉽사리 몰락시키지 못한 실제 인물들과 달리 결국 타르는 몰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름 끼치게도 이 글은 폭력에 대해서만 다루었지 성폭력에 대해선 전혀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전윤혜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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