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파란에서 부활로!> 재해석, 재조명
※이번 호에 실린 공연·행사 등 일정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하여 변경 또는 취소될 수 있습니다.
양경렬 <Empty spots-Between them>, Oil on linen, 194×260cm, 2020
70여 년 선거 역사 자료와 현대미술의 만남 <새일꾼 1948-2020: 여러분의 대표를 뽑아 국회로 보내시오> | 일민미술관, 신문박물관 전관
일민미술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새일꾼’전은 기존의 선거를 주제로 한 전시와 다르다. 이 전시의 중심 콘텐츠는 선관위 기록보존소에 소장된 300여 점의 선거 사료와 신문 기사 등 자료다. 1948년 5·10 제헌국회의원 선거부터 2020년 4·15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73년 선거의 역사가 담겼다.
자료 성격상 박물관에 어울릴 것 같지만, 현대미술관에 오면서 내용도 달라졌다. 시간순으로 구성된 기존의 문법을 깨고, 2020년 한국 사회에 와닿는 주제를 중심으로 사료를 재해석했다. 총 5개 주제가 미술관 각 층에서 펼쳐진다. 순서대로 ‘애국자가 누구냐’ ‘한 표 찾아 팔도강산’ ‘지금 대단히 ○○○한 투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선거 24시’ ‘미디어라운지’다.
제목은 다소 난해하지만 실제로 전시를 보면 이해가 된다. 선거 제도가 일상에 가깝다는 것도 이해에 도움이 된다. 우선 첫 도입부에서부터 선거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
1층 전시장 입구에서 ‘애국자가 누구냐’는 커다란 붉은 글씨가 관객을 맞이한다. 1948년 당시 너도나도 자신이 ‘애국자’라고 주장한 후보자들의 홍보자료가 이어진다. 그다음은 2020년의 시민이 생각하는 저마다 다른 의미의 ‘애국’에 대한 의견이 영상으로 펼쳐진다. 같은 시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천차만별의 의견이 쏟아진다.
1940년대만 해도 애국이나 독립운동 같은 단순한 지향점이 정치의 목표였다면, 이제는 애국뿐 아니라 교육·복지·주거는 물론 환경·동물권·소수자 인권까지 무수히 다양한 욕망이 펼쳐지는 장이 바로 선거다. 욕망의 각축장인 선거가 70년 넘게 어떻게 좌충우돌하며 다듬어졌는지 잘 구성된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전시 기간에 이어지는 관객 참여 프로그램도 기대가 된다. 소수자 계층을 위한 토론 무대, 전자음악가의 ‘미래세대 유권자에게 들려주는 노래’, 매주 새로운 주제의 ‘위클리 보트’ 등이 열린다. 선거가 멀게 느껴지는 10~20대 관객에게 추천하고 싶다.
류인 <부활-조용한 새벽(Resurrection-Calm Dawn)>, bronze·iron, 350×130×228cm, 1993
요절한 조각가의 뜨거운 작품을 한자리에 <류인-파란에서 부활로!> | 소마미술관 1관 1~5전시실 및 야외 공간
한국의 중견 작가군은 한국 미술사 정립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 가장 활발한 연구와 조명이 필요한 집단이다. 그런데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들은 주로 원로 작가, 해외 작가, 혹은 신진 작가를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2018년 황창배에 이어 조각가 류인을 조명하는 소마미술관의 ‘작가 재조명’ 전은 무척 반가운 전시다. 기획 취지나 내용 측면에서, 한국 미술을 제대로 알고 싶은 관객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필자도 전시 개막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여파로 전시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쓰고 있다. 4월에는 전시가 열려 부디 관객을 만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전시는 류인의 작품과 자료 100여 점을 소개한다. 수년 전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전시가 열린 적이 있지만, 이번 전시는 공공 미술관에서 열리는 회고전이며 그 규모도 크기에 의미가 다르다. 첫 작품인 <자소상>(1980)부터 류인 특유의 강렬한 표현이 돋보이는 인체 조각 <지각의 주>(1988)와 <급행열차-시대의 변>(1991)을 볼 수 있다. 예술의전당이 소장하고 있는 <부활-그 정서적 자질>(1993)도 대형 작품인데, 처음으로 자리를 옮겨 소마미술관에 전시된다. 공모전에서 첫 상을 받게 해준 <여인입상>(1983)도 작가가 작고하고 최초로 관객을 만난다.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면서 꽉 막힌 틀을 벗어나려는 인체, 신체의 일부만 강조된 표현들은 오히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의 시대 조건을 반영하고 있어 감동을 준다. 이데올로기적 분열을 벗어나 지극히 개인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43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런데 15년 남짓한 기간에 7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짧지만 온몸으로 시대를 고스란히 받아내 뜨겁게 불탄 열정을 만나볼 수 있을 전시다.
- 글 김민_동아일보 기자
- 사진 제공 일민미술관·소마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