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낭독은 얼마나 익숙할까. 예로부터 선조들이 소리 내어 글을 익혔듯이 우리도 학교를 다니면서 소리 내어 글을 읽었다. 요즘에는 부모나 어린이집 교사의 육성으로 그림책이 읽히고 있다.
이처럼 우리에게 낭독은 자연스럽게 친숙해졌으나 성인이 될수록 일상에서 잊혀갔다. 앞만 보고 달려온 기성세대나 치열한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은 신세대들이 독서로부터 멀어지고 낭독의 즐거움을 잊어버리는 것은 당연하다. 문화체육관광부, (재)한국출판연구소,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07~201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를 살펴보면 우리의 연간 독서량은 점차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성인의 월평균 독서량이 1권도 채 되지 않는데 누가 낭독에 관심을 가질까. 독서할 여유조차 없으니 가만히 앉아 낭독을 듣는 건 호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문학에는 일정한 독자층이 있고, 그들은 좋아하는 작가의 육성을 직접들을 수 있는 낭독회에 애정과 관심이 많다. 이에 발맞춰 문학 단체, 대형서점, 공공도서관, 출판사 등에서 낭독회를 열어 독자들에게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이러한 행사는 대부분 낭독회의 인기보다는 작가의 인기에 의존해 진행됐다.
또한 EBS FM 라디오 <낭독>, KBS 2TV <낭독의 발견> (2012년 2월 24일 종영) 등이 불특정한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매체들의 낭독 방송은 좋은 문학작품을 소개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인기 없는 채널이거나 심야에 방영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책을 읽지 않는’ 요즘 낭독이 주목받고 있으며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고는 감히 말하지 못한다.
낭독으로 독자에게 다가가기
나는 시인으로서, 문학공연 연출가로서 누구보다 많은 독자와 함께 문학작품을 공유하고 불특정한 대중이 문학의 공간으로 대거 유입되기를 희망했다. 문학은 상품이 아니지만 소비되어야 하는 건 분명하다. 독자가 없는 문학은 존재할 수 없으며 관객이 없는 낭독공연도 불가능하다. 아무리 훌륭한 문학작품일지라도 독자가 읽지 않으면 빛을 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책을 읽어주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기존의 평면적인 낭독회와 달리 입체적인 문학공연을 펼쳐왔다. 즉 작가나 배우의 육성으로 텍스트를 전달하면서 시·청각적인 타 장르 무대예술을 가미시켰다. 그랬을 때 텍스트가 무대에서 살아 움직이며 관객의 흥미와 재미를 끌어냈다. 엄밀히 따지자면 낭독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에서 나는 ‘문학공연’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지금껏 문학공연의 방향은 선명했다. 첫째는 독자에게 낯선 시인, 소설가 등을 주인공으로 앞세워 소개했다. 유명한 문학인조차 일반 대중이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유명하지 않은 문학인을 대중이 어떻게 알겠는가. 작가가 무대에서 문학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을 때 관객은 작가의 작품 세계로 빠져든다. 이렇게 작가를 만난 관객은 독자로 변모해 작가에게 애정을 갖고 책을 찾아 읽게 된다.
둘째는 문학작품을 무대예술로 표현하면서 관객과 문학의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이다. 특히 낭독회가 익숙하지 않은 젊은 층을 위한 낭독의 방식을 고민했다. 시를 랩으로 읽으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에서 젊은층이 즐겨 듣는 힙합을 접목했다. 그런 가운데 2007년 1월 시를 노래하는 팀, 트루베르를 결성했다. 트루베르는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각종 문학공연이나 문학 관련행사에서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셋째는 문학 텍스트 중심의 공연이라는 점이다. 관객에게 무대예술을 선보인다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문학 텍스트의 전달이다. 관객이 텍스트 영상을 읽으면서 작품을 재해석한 퍼포먼스를 감상해야 작품의 힘을 맛볼 수 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세종서적, 2000)에 따르면 낭독의 역사는 서기 1세기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낭독은 작가에게 중요한 행사였으며 작가는 청중의 비평을 듣고 작품을 퇴고했다. 또한 작가는 다양한 낭독 방식으로 관객을 만났다. 작가는 배우처럼 연기하면서 작품을 많은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로마의 작가들이 비평을 위한 낭독을 했다면 지금의 작가들은 책을 발간한 후 책을 알리기 위한 낭독을 한다. 대체로 북 콘서트를 마련해 독자와 소통했다. 앞서 말했듯 북 콘서트 혹은 낭독회는 독자에게 작가의 육성을 듣는 특별한 자리가 되었고 작가는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자리가 되었다.
낭독, 즐거운 놀이처럼
나의 첫 시 낭송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문예반에서 시낭송 앨범(카세트테이프)을 제작하기로 했고, 나는 곽재구 시인의 시 ‘사평역에서’를 떨리는 목소리로 공테이프에 담았다. 내 목소리를 다시 듣는 게 어색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녹음하는 것 자체가 즐겁고 신났다. 어쩌면 그 시절 나는 시를 가지고 놀았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2005년에 등단한 이후 나는 문학작품(시, 소설 등)을 무대예술로 표현하기 시작했고, 시 낭송이나 소설 낭독의 방식을 고민했다. 고교 시절에 느꼈던 놀이의 즐거움을 다시 만끽하고 싶었다.
처음 연출한 문학공연은 2005년 12월 전주 한벽극장에서 펼쳐졌다. 제1회 달빛문학마당 <달빛, 스미다·번지다>였는데 문학작품을 마임, 랩, 애니메이션, 텍스트 영상, 시극, 무용, 노래 등과 접목해 무대예술로 승화시켰다. 모든 게 새롭게 재탄생된 즐거운 작업이었다.
이처럼 타 장르 예술과 접목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술의 심장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종국에는 장르를 넘어선 어떤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종국에 다다른 이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어떤 예술 장르든 서로 비슷한 모습을 발견할 때 공통분모를 짐작할 수 있다. 예술은 인간이 창조하는 세계이며 인간이 만들어놓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한계를 느끼곤 한다. 끝내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라고나 할까. 그 갈증 덕분에 예술가들은 창작에 몰두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없이 고뇌해야만 한다. 이때 타 장르의 예술이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곤 한다. 그래서 문학공연에서 타 장르 예술과 함께했던 작업은 즐거운 놀이처럼 진행됐으며 문학의 힘이 더욱 극대화되었다.
2006년에는 5개 도시의 항구를 찾아다니며 ‘항구에서 함께하는 문학의 발견’(이하 항구의 밤)을 연출했다. 당시 함께했던 젊은 작가들과 공연자들은 문화에 소외된 지역이면서 가장 치열한 삶의 현장이던 항구를 무대 삼아 낭독과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나는 항구의 밤에서 두가지 인상을 받았다. 하나는 전라남도 함평군 주포항(눈물젖은 구름을 먹어보지 않은 자 어서 오라, 2006년 9월 30일)에서 만난 한 관객이었다. 행사가 끝나자 그는 나를 찾아왔다. 그는 “주포항에 잠시 들렀다가 우연히 항구의 밤공연을 관람했다”며 “가만히 앉아 문학작품을 보고 듣는동안 옛 생각에 잠겨 눈물이 흘렀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 문학소녀였던 그는 잊었던 꿈을 다시 찾았던 것이다. 나에게는 문학공연을 계속 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긴 날이었다.
또 하나는 경상북도 포항(나는 멸종하지 않는 종이다, 2006년 11월 4일)이다. 추운 날씨 탓에 포항 시내에 있는 소극장을 대관해 항구의 밤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작가들은 무대에서 연기를 했다. 로마의 작가들처럼 젊은 작가들은 작품에 숨어 있는 풍경과 의미를 끄집어내 온몸으로 표현했다. 당시 작가들은 한 달 동안 매일 연기 연습을 했다. 몸짓이 약간 어색하고 발성이 제대로 되지 않아도 오래오래 추억할 수 있는 무대 경험을 만들었다.
연희문학창작촌에서
그렇게 10년 동안 문학을 바탕으로 놀이처럼 공연해온 나로서는 문학 콘텐츠가 최적화된 공간으로 연희문학창작촌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문학적인 공간일 것이며 이에 걸맞은 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이 아닐까 싶다. 연희문학창작촌은 2009년 11월 5일 개관한 이후 문학인 창작집필실 운영뿐만 아니라 시민에게 열린 공간으로서 문학축제, 연희목요낭독극장, 문학강좌, 문학카페 등으로 시민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2009년 12월 겨울문학축제 <연희와 연애하다>가 진행됐고 이어서 2010년 2월부터 현재까지 연희목요낭독극장이 꾸준히 열리고 있다. 이제 연희목요낭독극장은 연희문학창작촌의 상징적인 문학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연희문학창작촌 매니저는 “문학이라는 것이 종이책으로만 향유할 수 있는 것인데 낭독이라는 입체적인 형태로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자 연희목요낭독극장을 열었다”며 “연희문학창작촌의 아름다운 공간인 야외무대나 은밀한 공간인 문학미디어랩에서 관객들이 문학을 입체적으로 읽고 듣고 느끼고 향유했던 낭독회”라고 설명했다.
나는 연희문학창작촌이 연희목요낭독극장을 진행하면서 낭독이 문화가 되기까지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연희문학창작촌이라는 공간적 특성도 있지만 실무자들의 의지와 노력이 이뤄낸 결과가 아닐까 싶다. 이는 연희목요낭독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반응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2012년 6월 연희목요낭독극장 <0시, 북항에 도착하는 아무튼 씨>의 연출을 맡으며, 2013년 12월 연희목요낭독극장F5 <나무는 라플란드 우체국으로 간다>, 2015년 8월 연희목요낭독극장 <여름이 도망간다는 소문> 등을 연출했다. 내가 연희목요낭독극장에서 만난 관객들은 진지하게 낭독의 즐거움을 향유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는 그들에게서 성인이 될수록 일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잊히고 있던 낭독이 되돌아오고 있다는 희망을 감지했다.
- 글 윤석정
- 시인, 문학공연연출가.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오페라 미용실>이 있다. 트루베르 대표이며 신동엽문학제, 노작문학제, 파주북소리축제, 효석문화제, 연희목요낭독극장 등 다수의 문학공연을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