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023 서울, 서울문화, 서울문화재단
가장 아름답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스무 살 서울문화재단이 앞으로 나아갈 20년을 기대하며.2003년 7월 제정된 「서울특별시 재단법인 서울문화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에 따라 설립 근거를 갖춘 서울문화재단은 2004년 3월 15일(창립기념일) 법인 등록을 마쳤다. 이어 5월 18일에는 재단 출범식을 열었다. 옛 안기부 부속 건물(중구 예장동 4-6)을 임시로 고쳐 사무실을 만들었다. 초대 이사장으로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을 지낸 정연희, 대표이사로 중앙대학교 교수이자 배우 유인촌을 임명했다. 서울 문화예술 정책의 일정 부분을 담당하는 재단은 일단 살림 규모만 놓고 보더라도 그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2004년 설립 당시 전체 사업 예산이 82억 원가량이던 것이 2014년에는 560억 원이며, 2024년에는 1,300억 원에 이른다.
“재단이 설립되기까지 이런 형태의
기관 운영에 대해서는 서울시도 전례가
없었다. 결국 재단 운영에 적합한
이상적인 문화행정 시스템의 사례를
우리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공무원이 아닌 민간 영역의 문화행정
기관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초기에 이러한 것을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설립되자마자 주어진 사업들을
수행하다보니 당장 발등에 떨어진
일들을 해치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급했다.”(김영호)
“설립 초기는 그야말로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폭주하던 시기였다고
본다. 기발한 사업 아이템과 발상들이
쏟아졌다.”(김홍남)
실연 심사를 도입한 신진 예술가 지원사업 NArT
서울문화재단의 등장은 문화예술계에 단비 같았다. 당시만 해도 예술지원기관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 유일했기에, 서울에 집중된 예술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새 주체로서 재단에 거는 기대가 상당했다. ‘예술지원’은 서울문화재단의 가장 중요한 목적사업이자 비전 그 자체였다. 재단이 그간 추진해온 사업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이고 근원적인 사업 영역인 것. 재단은 설립 첫해 서울시로부터 시민문예지원, 무대공연작품 제작 지원 사업을 이관해 운영했고, 집중육성 지원사업(다년간 지원)을 개시했다. 이후 재단은 새로운 예술지원 프로그램을 구별하고 서울형 예술지원 제도를 구축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정부에서 문화예술계에 20년 넘게 지원했는데 그동안 남은 게 뭡니까. 그것은 결국 지원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택해 집중 지원을 할 방침입니다. 한 번 지원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3년짜리 장기 지원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단체당 지원액은 늘겠지만, 지원 예술가의 절대 수가 줄어들게 돼 난리가 나겠지요. 하지만 어떻게 해요. 그렇게 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유인촌, 2004년 5월 21일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서울열린극장 창동
2004년 문을 열어 2011년까지 약 8년간 운영된 서울열린극장 창동은 879석 규모의 국내 최초의 대형 상설 천막 극장. 최첨단 이동식 텐트로 만들어진 서울열린극장 창동은 대형 뮤지컬 공연은 물론, 어린이 공연 등을 통해 가족 단위 관객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며, 국립발레단·국립오페라단 등 단체와 함께 서울 동북부 지역에 또 다른 문화 환경을 조성하는 큰 역할을 했다.
2003년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2004년 하반기부터 단계적으로 주 5일, 주 40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며 여가 시간이 증가하고 서울시민에게 문화의 중요성은 점점 더 강조됐다. 서울시는 서울광장과 청계천이라는 거대한 공공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었고, 이에 재단은 이러한 공간을 주무대로 삼아 문화 콘텐츠를 이식하게 된다. 2004년 5월 문을 연 서울광장을 시민에게 환원하고자 그해 6월부터 서울광장 예술프로그램 ‘일상의 여유’를 추진했고, 첫해 55회 공연을 열어 2만 5천 명 시민이 공연을 관람했다. 이 프로그램은 2008년까지 이어졌고, 2000년대 후반 서울문화재단을 서울시민에게 각인한 여러 광장 프로그램의 토대가 됐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일상의 여유’
재단의 예술지원사업은 서울시 문예진흥기금이 폐지됨에 따라 기존 사업을 승계하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초기에는 재단의 고유한 브랜드 사업을 개발하고 그것을 지속하는 시스템을 정착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때 탄생한 것이 집중육성 지원사업, 신진 예술가 지원사업 NArT, 사후지원사업이다. 특히 ‘나트NArT, New Artist Trend’는 활동 경력이 풍부하고 우수한 예술단체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지원사업에서 탈피해, 경력은 짧지만 신선하고 역량 있는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활동 기회를 확대하고자 했다. 이에 각 장르에 새로운 흐름을 제시할 만한 실험적인 작품을 선정했으며, 이때 쇼케이스 형식을 통한 실연 심사를 도입해 주목받았다. 더불어 사후지원제도는 기존 지원 체계의 대안으로 급부상한 방법으로, 신청한 모든 작품을 대상으로 하되 서류 심사를 제외하는 등 과정이 주목받았다. 이후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지원 규모는 점차 성장한다.
도심 곳곳에서 시민과 만난 청계천아티스트
서울 도심 한복판을 관통하는 약 11킬로미터 길이의 하천인 청계천은 서울의 문화 정체성 찾기에 공헌한 또 하나의 공공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사업에 따라 시민 곁으로 돌아온 청계천은 22개의 문화의 다리와 청계광장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공간을 갖추고 있었다. 재단은 새롭게 태어난 청계천에 불어넣을 서울의 문화 콘텐츠로 거리예술을 택했다. 이에 ‘청계천아티스트’를 공모, 두 번의 공개 오디션을 통해 총 54개 팀, 200여 명의 거리예술가를 선발했다. 재단은 이들에게 활동 인증서와 함께, 거리에서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수령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소규모 음향 장비를 지원하고 보험에 가입하며, 안내요원을 배치하는 등 조치도 뒷받침됐다. 이들 아티스트와 함께 청계천은 거리예술의 낭만이 흐르는 도심 하천으로 변모하며 시민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10월 한 달간 운영할 계획이었으나 시민들의 성원으로 12월까지 연장해 진행했다. 이 사업은 점차 청계천에서 서울의 주요 거리로 확대되면서 ‘서울거리아티스트’라는 이름을 얻어 2012년까지 이어졌다.
2005년 6월 정책 무크지로 창간, 2007년 월간지로 전환하며 꾸준히 서울의 문화예술 소식을 전해온 [문화+서울]은 2023년 10월, 200호를 발간하며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재단은 서울의 문화예술 환경을 가꾸는 데 기여한 기업 또는 개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문화서울후원상’을 제정하고 제1회 수상자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선정했다. 고故 박성용 회장 시절부터 문화예술에 대한 다양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펼쳐 재계와 문화계의 모범이라고 평가했다. 이듬해 제2회 수상자는 르노삼성자동차(문화가꿈상)와 하나은행(문화나눔상), 제3회 수상자는 GM대우(가꿈상)와 한화그룹(나눔상)이다.
동대문구 용두동 청계천로에 위치한 옛 성북수도사업소를 리모델링해 서울문화재단 청사로 공개했다. “예쁘고 크게 고치는 리모델링이 아닌 기존 건물을 최대한 활용하는 도심 재생 프로젝트”로, 주민과 예술가가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이때 환경디자인 개념을 도입, 청계천과 접하는 건물 앞부분에 멋스러운 가림막을 걸었다 미술가 최정화가 감독을 맡아 전면에는 건국대학교 건축디자인대학원생들이 만든 색색의 타폴린 천을 격자처럼 엮어서 시공하고, 옆면에는 지역주민들이 직접 그린 그림 140여 장을 이어 붙였다. 사업명은 ‘C-9 생생 프로젝트’. 청계9가Cheonggyp 9, 문화culturp, 창조creatiop, 공동체communitp,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p 등 의미를 엮었다.
주민과 예술가가 함께한 C-9 생생 프로젝트
『서울의 밤문화』 발간
서울문화재단이 기획한 서울 담론서 시리즈 ‘서울문화예술총서’의 첫 번째 책. 20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100여 년간 이어진 서울의 다채로운 밤 풍경을 펼쳐놓았다. 일제 강점기의 기생문화부터, 이제는 과거가 된 통행금지, 그리고 지금의 유흥문화로 이어지는 서울의 밤문화를 각종 문헌과 인터뷰 등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일간지 기자로 일한 김중식·김명환이 공동으로 집필했다. 2007년 『문학 속의 서울』(김재관·장두식 저), 2008년 『서울사람들』(권기봉 저) 발간으로 이어졌다.
제2대 이사장으로 소설가이자 명지대학교 교수인 박범신, 대표이사로 예술의전당 예술사업국장 안호상을 임명했다.
“서울의 문화 활동이 도시의 규모에 비해 넘친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전시나 공연 수준이 양적으로 적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문화가 넘쳐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 갭의 원인은 시민들이 스스로 해독, 이해할 수 있는 문화예술 부분이 적기 때문입니다. 저는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문화예술을 읽어내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안호상, 2007년 2월 3일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서울시민의 문화 향유를 확대하고 서울을 문화도시로 가꾸는 매개가 돼주었던 또 하나의 공간이 ‘고궁’이다. 고궁을 활용하고자 하는 재단의 첫 시도는 2006년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중 ‘고궁 음악회’였다. 고궁의 단아함과 클래식 음악의 우아함이 어우러져 고궁의 대표 문화 콘텐츠가 된 이 공연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됐다. 경희궁 일대 고궁을 활용해 창작뮤지컬 개발을 추진한 ‘고궁뮤지컬’은 서울의 역사적 자원을 문화공간으로 환원하면서도 외국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측면에서도 꽤 성공적이었다. 2013년 서울문화재단 인지도 조사 결과 77%가 ‘고궁뮤지컬’을 인지하고 있을 정도로 우수한 성과를 보인 것이다. 이때 발표된 창작뮤지컬은 정조대왕의 꿈과 사랑을 그린 <화성에서 꿈꾸다>2007, <공길전>2007, <명성황후>2008, <대장금>2008-2010, <왕세자 실종사건>2011, <천상시계>2012 등이다.
2007년 열린 고궁뮤지컬 <천상시계>
2006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설립되고 국내 문화예술교육 현장이 점차 확장되면서 재단 역시 2007년부터 전담 부서(문화교육팀)를 신설했다. 재단은 2007년 사회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 시민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을 위탁 운영하는 데서 시작해 고유한 예술교육 모델을 만들고자 했다. 이에 링컨센터 프로그램을 모델로 삼고, 교육자(예술강사)가 강사로서 해야 할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폭넓게 활동할 수 있도록 인력 양성 프로그램, 즉 TATeachinp Artist 제도를 만들게 된다. 이후 재단의 주요 창의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어린이를 위한 ‘예술로 돌봄’, ‘예술로 플러스’, ‘생각하는 호기심 예술학교’, 청소년을 위한 ‘서울창의예술 중점학교’, TA와 문화매개자 대상의 서울창의예술교육 아카데미 등이 운영됐다.
‘대학로 사랑방’ 서울연극센터
서울광장을 중심으로 확산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는 서울광장을 중심으로 시민이 축제의 주인공이 되는 종합 축제를 지향했으며, 2008년과 2009년은 예술감독제를 운용하며 축제의 콘셉트와 운영 전반을 좀 더 전문적으로 강화했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인사였던 안은미 무용가를 예술감독으로 선임했는데, 그때 한강르네상스와 서울 천만 관광객 목표 도달이라는 시정과 맞물려 서울시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지원을 받게 됐다. 일 년에 네 번 축제를 운영한 것인데, 봄에는 궁 축제, 여름에는 한강에서 축제, 가을에는 서울에 있는 축제를 전부 모으는 축제, 겨울에는 빛 축제를 하자는 계획이 세워졌고, 그렇게 2008년 한 해를 보냈다. 결과적으로는 그때가 하이서울페스티벌이 제일 많이 성장한 시기로 볼 수 있다.”(김영호)
일 년 내내 축제가 이어지는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2008년과 2009년 축제는 엄청난 호응과 긍정적 평가를 얻었다. 페스티벌이 하나의 색깔을 갖기 시작했고, 전문성을 확보했으며, 독특한 장소성이 부각된다는 것. 2010년부터는 시민 참여형 공연예술축제로 그 성격이 변화하면서 거리예술의 성격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축제와 공간을 연계하는 것을 넘어 예술의 대중화까지 확장하는 방향을 고민하게 된 것. 이어 2016년부터는 서울거리예술축제로 이름을 바꿔 이어가고 있다.
2003년 시작해 다양한 형식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명실공히 서울의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한 하이서울페스티벌의 전성기는 2008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재단보다도 1년 먼저 출발해 재단의 핵심 사업으로 자리잡은 하이서울페스티벌은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해 지정한 ‘서울시민의 날’(10월 28일)에서 시작해 2002년 한일 월드컵 거리응원문화를 거쳐
서울 시민을 한데 불러모은 하이서울페스티벌
서울 시내의 낡고 버려진 공간을 재활용하는
도심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한
서울시창작공간이 하나둘 개관하기 시작했다.
예술을 통해 사람과 도시를 연결하고,
예술 장르 간 통합과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지역의 문화를 활성화하는 것은 물론,
시민의 예술 참여를 실천하는 공간으로
등장한 것. 「폐교재산의 활용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토대로 국공립 미술관을 중심으로
창작스튜디오(레지던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서울시의 컬처노믹스 전략의
일환으로 해외 ‘아트팩토리ARTfactorp’ 사례와
맞물려 재단 역시 빠르게 사업을 추진했다.
가장 먼저 서교예술실험센터가 문을
열었고, 같은 해 금천·신당·연희까지
총 네 개의 창작공간이 개관을
알렸다. 이듬해에는 문래·성북·관악,
2011년에는 잠실창작스튜디오가 이관됐으며
홍은예술창작센터가 리모델링을 마치고
개관했다. 사업을 본격화한 지 1년 만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향후 공간을 바탕으로
각 장르에 대한 지원을 분리해 운영하기도 했다.
더불어 재단은 그해 10월 ‘세계적인 창작공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전망’이라는 주제 아래
서울시창작공간 국제심포지엄을 열었고,
2016년까지 서울시창작공간 페스티벌을 열어
공간을 활성화했다.
창작공간 페스티벌 일환으로 열린 아트마켓
예술지원사업 체계화 및 확대
2009년 들어 2배 이상 폭증한 예술지원사업의 관리와 누적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행정 전산화가 절실히 필요했고, 이에 재단은 전국 문화재단 중 최초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협력해 예술지원 전산관리시스템을 개발, 2010년 들어 안착시켰다. 이때 재단은 전국의 모든 예술지원 관련 정보를 모아 한자리에서 제공하는 서울예술지원박람회200p~2010를 열기도 했다. 2010년에는 예술지원사업을 ‘창작활성화’, ‘시민문화’로 구분해 체계화하고, 연구, 평론, 작품집 발간, 문학 연계 콘텐츠 등 예술가가 지원할 수 있는 분야를 확대했다. 이 시기에 ‘서울예술축제지원’이 처음 생겨나기도 했다.
금천예술공장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금천구 독산동의 옛 인쇄공장을 리모델링한
금천예술공장은 개관과 동시에 ‘산업에
영감을 주는 예술’을 개발하기 위한 ‘다빈치
아이디어 공모’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융합예술
창·제작지원까지 이어지고 있는, 금천예술공장
대표 사업이다.
다빈치 아이디어 공모는 아이디어 구상
단계부터 전시까지 지원하며, 전문가만 아니라
일반인도 대상으로 했다. 일반적으로 소요되는
제작비에 산업체 후원이나 기술 자문 등까지
포괄해 기업체의 자금과 기술, 부품 후원
등을 유치하며 예술가와 산업이 만나는 실제
접점을 찾는 데 주목했다. 또한 금천예술공장은
국제교류가 활발해, 실제 해외 유명 레지던시에
입주하고자 금천예술공장 입주작가에 지원하는
예술가가 상당했다고 전해진다.
청계천 복원사업을 추진하면서 주변 상인들의 이주 상가를 마련하기 위해 건설된 동남권 유통단지로, 이곳의 활성화를 위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서울문화재단이 위탁받아 가든파이브 문화특구 사업을 진행했다.
성북예술창작센터2021,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2021 개관
2021년까지 운영한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
잠실창작스튜디오 오픈스튜디오
서울시장애인미술창작스튜디오는 서울시가 송파구 종합운동장 내 공간을 재활용해 장애인 전용 창작공간으로 조성한 곳으로, 2011년부터 서울문화재단이 ‘잠실창작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며 장애예술인의 창작 활동을 활성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국내 유일 장애예술인 창작 레지던시로, 장애예술인의 전업작가로의 성장만 아니라, 장애아동의 재능을 발굴하고, 장애예술 분야 전반의 인프라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업 후원과 연계한 장애아동 창작 지원 ‘프로젝트A’, 장애·비장애 동행 프로젝트 ‘같이 잇는 가치’ 등 대표 사업을 운영해왔으며, 2022년 대학로로 임시 이전하며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로 명칭을 변경했다.
홍은예술창작센터
제4대 이사장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을 지낸 김정헌, 대표이사로 소설가이자 한국영상자료원장을 역임한 조선희를 임명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래도 10년이 됐다고 하면 확실히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앞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바깥 시선도 그렇고 내부 생각도 그렇다. 서울문화재단의 지난 10년간은 체계를 세우고 인프라를 갖추는 기간이었다. 문화정책의 전달 체계가 행정부와 자치단체, 문화재단 사이에 구축되는 과정이었다. 이외에도 재단은 15개의 예술창작공간을 운영하면서 문화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지역 거점을 마련했다. 앞으로 10년은 이 인프라를 잘 작동시켜 문화정책과 사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고 대시민 문화 서비스의 질을 더욱 높여야 할 시간이다.”(조선희, 2014년 3월 23일 뉴스1 인터뷰에서)
서울문화재단의 예술교육 사업은 예술교육 전문가를 길러내는 것과 시민 모두에게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두 축으로 나뉜다. 재단은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TA 양성 이후 다양한 예술교육 사업을 ‘서울형 창의예술교육’이라는 큰 전략 틀에 나눠 전개하기 시작한다. ‘서울형 창의예술교육(서울창의예술교육)’이란 미적체험을 통해 예술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체험교육을 지향하고, 통합예술교육으로 깊이 있는 예술의 이해와 다름을 통한 소통을 실천하는 재단의 예술교육 통합 브랜드다. 이 시기에는 서울시와 문화부로부터 위탁받은 시민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꿈꾸는 청춘예술대학’), 서울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사회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지원),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 꿈다락토요문화학교 사업이 운영됐다.
2009년 남산예술센터를 개관하면서 재단이 내놓은 목표는 다음과 같다. 창작 초연 중심의 현대연극 제작극장, 시대의 맥박을 느낄 수 있는 동시대 공연장,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극장. 한국 연극사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을 운영하는 일이기에, 재단 역시 운영 방식에 있어 동시대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공공 제작극장으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지향하고자 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자체 제작공연은 물론, 민간 극단과 공연장이 공동 제작하는 프로그램이 극장 운영의 큰 축으로 움직였다. <푸르른 날에>, <됴화만발>, <살> 같은 작품이 이 시기 남산예술센터만의 색깔을 명료하게 보여줬다.
동시대 연극의 장, 남산예술센터
재단은 2004년 발족 당시부터 문화기부와 제휴 사업을 담당할 부서를 운영했다. 문화 기부는 재원 조성 외에도 예술의 가치를 기업과 시민이 나누는 활동으로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2012년은 본격적인 메세나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한 시기로, 민간 기업의 후원금에 지원금을 매칭 지원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기부와 문화 제휴 사업의 다각화를 모색했다.
국제공연예술협회 ISPA의 지역 총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재단은 2009년부터 유치 활동을 시작해 꾸준히 네트워크 활동을 이어왔고, 2012년 ‘문화변동’을 주제로 열린 서울 총회에 34개국 96개 도시 432명의 공연 관계자가 참석해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재단은 광역과 기초 문화정책 주체와 상생 협력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왔다. 사업 수행을 위한 협조 차원에서 더 나아가, 지역 문화 분권과 문화 거버넌스를 지향하는 정책 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 2007년 창립한 서울문화예술회관연합회를 시작으로, 2013년부터는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에 따라 가칭 ‘서울지역 문화정책 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했다. 서울시 및 25개 자치구 문화정책 담당 부서장과 기관장이 모여 협력하고 역량을 개발하고자 했으며, 2014년에는 서울문화플랜 지역의제를 발굴하기도 했다.
아트캠페인 ‘바람난 미술’
‘춤추는 서울’이라는 슬로건 아래 서울 시민을 춤바람나게 하는 댄스 페스티벌이 펼쳐졌다. ‘서울댄스프로젝트’는 춤을 통해 희망의 몸짓을 나누고 삶의 활력과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생활 속 문화예술 프로젝트. 단순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5월 ‘춤바람 선포식’을 시작으로 8월 ‘춤야유회’, 9월 ‘춤나눔 소셜다이닝’, 10월 ‘서울무도회’ 등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을 지향했다. 첫해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시민 춤꾼 ‘춤단’과 시민기획단, 춤바람 커뮤니티 586명, 일일춤단 178명 등 11만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이 사업은 2016년까지 진행됐다.
춤추는 서울, 서울댄스프로젝트
예술에 다가가는 시민의 심리적 거리를 줄이고 예술적 감성의 촉발을 돕는 ‘도시 게릴라 프로젝트’가 2013년부터 도시 곳곳을 찾아갔다. 창립 초기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한 재단의 공공미술 사업 경험이 빛을 발했다. 기발한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일상에 재미와 활력을 제공하는 취지에서 출발한 도시 게릴라 프로젝트는 예기치 못한 예술 작품이 도시의 풍경과 우리의 일상을 좀 더 생기있게 만드는 프로젝트로 자리매김했다.
시민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메모리[人]서울 프로젝트
‘당신의 목소리가 서울의 역사가 됩니다’ 서울 시민의 미시적 기억과 이야기를 발굴하고 기록해 새로운 형태의 시민 중심 문화 콘텐츠를 구축하고자 한 사업. 서울에서 흘러가는 일상적 삶의 기억과 이야기에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고, 소통과 공감의 유대 문화를 조성하는 ‘지혜의 보고’가 된 프로젝트다. 재단은 이 프로젝트로 삼풍백화점 참사를 기록해 안숙선의 창작판소리 <유월소리>를 공연하는가 하면, 단행본 『1995년 서울, 삼풍』을 발간하고 기획전시를 열기도 했다.
시민의 문화 향유 실태를 좀 더 면밀하게 파악해 재단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서울시민 문화향유 실태조사’ 설문조사와 통계 분석을 실시했다. 2014년에는 세대별 문화 활동 특성을 구분해 현실에 대한 불안을 문화로 극복하는 ‘문화 열광족’(20대), 문화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화려한 싱글녀’와 문화 최전방에서 물러나 육아의 행복에 빠진 ‘육아맘’(30대), 성장하는 자녀와 집 근처에서 놀고 싶은 ‘프렌디’, 본인은 문화 소외층이지만 아이를 위해 문화를 찾는 ‘컬처맘’, 30대처럼 화려하지만 조금 외롭고 피곤한 ‘블루 싱글녀’(40대), 양육의 그늘에서 벗어나 문화 강좌에 열공하는 ‘낭만족’(50대), 문화 만족이 삶의 만족으로 연결되는 행복한 ‘액티브 시니어’(60대)로 구분하기도 했다.
기업만 아니라 일반 시민도 자유롭게 기부에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기부 플랫폼 ‘아트서울! 기부투게더’를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운영해 문화예술 기부 캠페인을 확대해나갔다.
‘미스터 기부로’와 함께하는 문화예술 기부 캠페인
제5대 이사장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김광림을 임명했다.
재단은 설립 11년차를 맞이하는 해
5개 창작공간을 중심으로 한 장르별 통합
지원체계로 개편했다. 장르별로 재정지원과
공간지원, 발굴육성지원을 총괄해
예술지원체계를 구축, 각 공간이 능동적인 창작
플랫폼으로써의 역할을 하게 한 것이다.
이에 서울연극센터·홍은예술창작센터·문래예
술공장·서교예술실험센터·연희문학창작촌이
각각 연극, 무용, 음악·전통·다원예술, 시각예술,
문학 분야 예술지원을 담당했다.
마음약방 1호점
도시 게릴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치유 캠페인 ‘마음약방’을 개시했다. 자판기에 500원을 넣은 뒤 20가지 마음 증상 중 내게 적용되는 번호를 누르면 증상에 따른 예술처방이 나오는 독특한 아이디어. ‘미래막막증’, ‘꿈 소멸증’, ‘월요병 말기’, ‘헬조선’, ‘문송합니다’, ‘청년실신’ 등 현대인이 느끼는 고단함을 재치 있는 증상으로 유형화하고, 상황에 따라 영화·도서·그림 처방이나 서울산책지도를 제안한다. 마음약방 자판기 1호점은 시민청에 설치,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2만 명 넘는 시민이 이용했다. 그리고 이 수익금을 모아 서울연극센터에 2호점을 설치했다.
제6대 대표이사로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이자 방송 프로듀서로 활동한 주철환을 임명했다.
재단은 더 많은 예술가가 창작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공공 지원금을 받은 적 없는 신진 예술가를 위한 ‘최초예술지원’과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소규모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소액多다컴’을 선보였다. 최초예술지원은 지원금 수혜 경력이 없는 35세 이하 예술가를 대상으로 1명(팀)당 200만 원을 지원하며, 작품 창작만 아니라 사전 연구 활동도 인정했다. 작은예술지원 ‘소액多다컴’은 홍대 일대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 활동에 대해 1명(팀)당 100만 원을 지원, 두 지원제도 모두 선정자의 정산 과정을 생략해 절차를 간소화했다. 이러한 재단의 시도는 이후 ‘예술기반지원’ 등 새롭게 등장한 예술지원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포가압장을 리모델링한 서서울예술교육센터
재단은 기존 예술지원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예술인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청년예술지원사업을 개시했다. 청년예술인에게 창작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젊은 실험과 탐구, 시도를 통해 독립된 예술 영역을 구축해나갈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도록 지원하는 것. 이때 맞춤형 지원 시스템을 내세우고, ‘최초예술지원’의 대상 연령을 39세 이하 또는 데뷔 10년 이하로 확대했다.
지휘자 금난새와 함께한 서울생활예술오케스트라
「서울특별시 생활문화 진흥에 관한 조례」에 따라 일상 곳곳에서 생활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재단은 생활문화지원단을 출범했다. 예술 활동 장르별 네트워크와 지역 동아리 네트워크, 자치구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생활문화주간과 연간 캠페인 등을 운영하며, 시민이 어디서나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공간지원을 더했다. 이러한 생활문화 활성화 사업은 시민 일상의 변화와 함께 개편을 거듭하며, 현재 ‘지역문화’ 사업과 통합해 생활권 중심으로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세계 28개 도시, 100여 명 회원 도시 대표단과 문화정책 전문가가 모여 교류·토론하는 국제 문화정책 네트워크인 세계도시문화포럼 총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아시아 최초 개최로, ‘창조도시를 넘어서: 문화시민도시에서의 문화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의제를 공유했다.
제6대 이사장으로 소설가이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낸 이경자, 제7대 대표이사로 성북문화재단 대표를 역임한 김종휘를 임명했다.
어린이와 함께한 삼각산시민청 개관식
재단은 서교예술실험센터를 중심으로 인디음악 생태계 전반을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하고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서울라이브’를 시작했다. 서교예술실험센터는 2013년부터 민관 거버넌스 모델인 공동운영단으로 운영되는 곳으로, 2023년까지 ‘서울라이브’를 통해 인디 신scene의 다양한 기획과 활발한 교류를 지원했다.
다양한 음악의 발견, 서교레코즈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함께 나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재단은 함께하는 문화예술 포럼과 다양한 프로젝트 기획을 통해 담론을 형성·확산하고 있다. 첫해인 2019년에는 ‘일상의 공존’과 ‘창작을 위한 공존’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두고 대화를 펼쳤으며, 2020년에는 ‘일상의 조건’과 ‘창작으로의 연대’라는 주제로 두 번의 포럼과 세 편의 기획전시를 열었다. 2021년에는 프로젝트를 확대해 기술 발전과 장애에 대한 다양한 관계를 환기하는 라운드테이블과 다양한 워크숍을 여는 등 그 범위와 담론을 꾸준히 확장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는 ‘같이 잇는 가치’
서울문화재단은 성과 중심의 예술창작 지원제도를 창작 주체 중심인 ‘예술창작지원’과 ‘예술기반지원’으로 재설계했다. 이때 가장 큰 변화는 생물학적 나이로 구분되던 기준을 없애고, 예술활동 경력 단계별로 지원사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 그뿐만 아니라 실제 작품 발표에 드는 준비 과정을 지원하는 예술기반지원을 꾸려 예술가를 중심으로 폭넓은 지원이 가능하게 했다.
시민 곁에 다가가는 ‘서울스테이지11’
제7대 이사장으로 배우이자 서울예술대학교 교수로 강단에 선 박상원, 제8대 대표이사로 마포문화재단 대표이사와 강동아트센터 관장을 지낸 이창기를 임명했다.
지원사업에 신청하는 예술가가 막막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온라인 지원 시스템. 재단은 광역 단위 최초로 예술인 지원사업 전산 시스템인 ‘서울문화예술지원시스템SCAS’을 구축, 공고부터 신청과 심사, 정산까지 한 번에 할 수 있게 했다.
재단은 2018년 동숭아트센터 부지를 매입, 리모델링을 거쳐 2021년 대학로센터를 열었다. 용두동 소재 본관의 기능 일부를 이전, ‘신대학로 시대’를 선포하고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임시 이전 및 서울연극센터 재개관과 더불어 대학로 창작 클러스터를 조성하고자 했다. 지하에는 블랙박스 공연장인 대학로극장 쿼드가 들어섰다.
신대학로 시대를 여는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
다양한 장르와 콘셉트로 구성된 재단 주최 예술축제가 시민은 물론, 국내외 관광객에게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도록 ‘아트페스티벌 서울’이라는 브랜드를 구상하고, 2022년 하반기 5개 축제를 묶어 소개했다. 이듬해에는 사계절에 각기 편성된 7개 축제를 아우르며 45일간 예술가 1,644명과 218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28만여 명 시민과 만났다.
한강노들섬발레 <백조의 호수>
재단은 옛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을 리모델링해 다양한 장르의 공연예술 작품을 실험할 수 있는 블랙박스 공연장,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QUAD를 열었다. 쿼드는 창작초연 중심의 1차 제작·유통 극장으로, 공연예술로 하여금 동시대적 가치를 미학적으로 구현하며 예술가와 관객의 변화를 이끄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서울문화예술포럼 개회를 선언하는 이창기 대표
재단은 창립 이래 서울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예술인의 창작 활동을 지원해왔다. 이를 통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예술가를 성장시키고,
다양한 예술 실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예술계 활성화의 발판을 다졌다. 예술가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 곧 예술계 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서울예술상은
재단의 지원사업과 함께 성장한 예술가를
격려하고 우수한 작품을 선정해 유통하기 위한 예술계 선순환 제도로 등장, 첫해 전통예술가
허윤정에게 대상을 수여했다.
서울희곡상은 새롭고 우수한 창작희곡을
발견해 연극 생태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극작가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창작
활동을 독려하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공모는
등단 여부와 관계 없이 미발표 창작 장막 희곡을
대상으로 하며, 첫 공모에 178편이 응모하는 등
높은 관심을 끌었다. 제1회 수상자인 극작가
이실론의 작품은 이후 대학로극장 쿼드에서의
공연 제작까지 지원한다.
제1회 서울예술상 시상식
*더 많은 내용은 서울문화재단에서 펴낸
『서울+문화+재단+10년』2014, 『서울문화재단20년』 2024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