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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5월호

이상한 봄입니다
갑자기 멈춤 이후의 예술 생태계…

갑자기 멈.추.었. 습니다.
결코 ‘갑자기’는 아니었을 이 멈춤과 함께 우리는 감각의 지진을 겪고 있습니다.
어제처럼 늘 반복돼 온 관성과 딴판의 수칙으로 지내는 오늘이 길어지면서입니다.
익숙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내일을 받아들이자니 꽤 많이 힘듭니다.
당연시했던 일상의 자질구레한 것들이 돌아보니 어마하게 산더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멈추고, 느려지고, 멀어지고 나서입니다.
나의 가정과 일, 준거 집단, 도시와 나라의 작동 방식에 대해
이제껏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어떤 결정을 다 같이 할 때가 왔다는 것을
모두가 몸으로 느끼며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서로에게서 보게 된 경험 말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2미터 간격을 유지한 채 수시로 손을 씻으며
모니터와 마주 앉아 모두가 모두를 대하고 있는 이 낯선 장면과 더불어
우리가 선택해야만 할 지속 가능한 생활과 공동체의 여러 방식 안에는
탈진 상태의 예술 생태계에 속한 예술인‘들’과 문화종사자‘들’이 있습니다.
‘들’이라 쓴 것은 이들 각자가 ‘개별적인 나, 지금, 여기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특징이 있겠으나 세목에서 서로 다른 복합적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문광훈 선생의 책 《심미주의 선언》에 나오듯 사회의 변화에 우선될 것은
‘정책적 입안과 행정적 조치’ ‘제도적 장치와 이를 위한 법률적 구속력’이겠으나
“각자가 공동의 사안에 얼마나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가”가
무엇보다 결정적이며, 이 점에서 다시금 ‘예술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때입니다.

갑자기 멈추고 나서 이 ‘갑자기’가 갑작스러운 게 아니었음을 알아차리며
멈추어야 할 것과 멈추어서는 안 되는 것을 새로 분별하는 감각·생각·표현은
예술인과 문화종사자 개별자‘들’의 자발적 선택‘들’에서 나올 것입니다.

이 자발과 선택‘들’을 뒷받침하는 일이 코로나19 이후 서울문화재단이
우선적으로 집중할 당면 과제이자 중장기 방향을 재설정하는 출발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예술 현장, 지역 현장, 청년 현장의 주체‘들’과 함께 협의하고 숙의해서
같이 결정해 나가는 과정의 경험을 쌓아가는 일이 몹시 중요해질 것입니다.

전염병 방역과 경제위기 방역이 국민의 자발적인 생활 방역으로 가능한지는
정부가 국민과 협의하고 같이 결정하는 과정을 체감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예술 ‘방역’이라는 표현을 쓰며 예술의 전환 또는 예술에 의한 전환이 가능하다면,
역시 사회적으로 협의하고 숙의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이 과정이 시작되면 행정과 공공기관이 먼저 방식을 전환할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방식의 전환에서 핵심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둘러싼 사람과 사람의 관계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돈을 주고받는 방식과 돈을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는 문제입니다.
100만 원을 받는다면 시장의 상품처럼 그 값을 증명하는 방식을 고수할지
각자 자신의 가치대로 100만 원을 사용하는 과정을 신뢰하는 방식으로 할지입니다.

배우 정동환 선생의 말을 빌리면, 우리 사회와 정부가 ‘예술의 값어치’를 시장처럼 매길지,
공공의 철학으로 ‘예술의 가치’를 존중할 것인지 선택하는 일입니다.
예술의 최종 결과물에 앞서 예술의 전 과정을, 그 주체인 예술인의 존재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다 같이 결정하는 일이 됩니다.

언제든 다시 “학교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말을 하며 아이들이 귀가하는 날.
그날과 함께 예술인과 문화종사자‘들’이 예술의 가치와 예술인의 존재로서
공공의 돈을 주고받고 사용하는 새로운 방식도 개시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날이라면 모든 육아와 돌봄의 노동부터 정당한 소득을 보장하는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인,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개별자의 상상‘들’이, 사회적 상상으로 엮이고
정책적 상상의 틀을 만들며 제도의 전환을 견인할 유일한 힘
바로 “예술의 가능성”일 것이며, “정지의 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지의 힘”은 백무산 시인의 시 제목입니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는
“씨앗처럼 정지하라, 그 힘으로 꽃은 피어난다”는 그 힘을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정지의 감각”이라던 시인의 다른 시처럼
지금은 “정지의 감각”부터 정직하게 되찾는 시간이고 이윽고
“정지의 힘”으로 삶의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예술의 가능성”을
힘겹게, 탈나며, 따로 또 같이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합니다.

어김없이 돌아온 화창한 봄입니다.
외투는 갈아입었으나 마음은 스산한, 이상한 봄입니다.
멈추었습니다만, 멈춤 안에서만 가능한 힘으로 피어날
그날의 예술이 지금 이미 시작됐다고 믿습니다.
이상하지만, 점점 더 이상하지 않게 말입니다.

건강 유의하시면 좋겠습니다.

글 김종휘_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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