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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언제 어디서나 ‘육재비’

삼현육각. 국악 전공자에겐 더없이 익숙한 표현일 테지만 그렇지 않거나 전통음악에 크게 관심이 없다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단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삼현육각은 전통음악에서의 특정 악기 편성이나 악곡을 의미한다. 서양음악에서 바이올린 2대, 비올라 1대, 첼로 1대를 가리켜 ‘현악 4중주’라 일컫는 것처럼 국악에도 주요하게 활용되는 악기 편성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삼현육각이다. 단어를 뜯어보면 세 가지 현악기(삼현)와 여섯 가지 관악기(육각)를 뜻하는데, 신라 시대 ‘삼현삼죽’이라 하여 세 가지 현악기와 세 가지 관악기를 이르는 악기 편성에서 비롯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삼현육각의 세 현악기와 여섯 관악기는 무엇일까. 대부분 전통음악 개론서에서 밝히길, 삼현은 가야금·거문고·비파였을 것으로 추측하나 현재는 이름만 남아 있을 뿐이고, 여섯 개의 관악기는 향피리 2대, 대금 1대, 해금 1대, 장구 1대, 북 1대를 의미한다. 삼현육각이라고 불리는 악기 편성은 결국 ‘육각’에 해당하는 여섯 가지 악기 구성을 뜻하는 것.

“삼현육각 잡히고 시집 간 사람 잘 산 데 없다”는 말이 있듯 요란하고 화려한 자리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삼현육각이었는데, 1929년 한 잡지에서도 그 실상을 엿볼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 흔히 오월 단오가 되면 청새 홍새 같은 관기들이 관찰부 선화당 뒤울안의 버드나무에 추천을 매고 건너뛰며 삼현육각을 잡히고 놀았다.”
『별건곤』 제20호(1929년 4월 1일)

의외의 사실은, 신라 시대부터 발생했다고 보는 전통이니만큼 관련된 문헌 기록도 역시 상당할 것으로 생각되나 ‘삼현육각’에 관한 온전한 기록이 1920년대 이후부터 발견된다는 점이다. 조선 시대 후기 문헌에도 ‘삼현’에 관한 것만 기록돼 있고, ‘육각’에 관한 기록은 있더라도 의미가 조금 달리 해석돼 온전히 삼현육각에 관한 기록이라 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 편성에 대한 기원을 신라 시대에서 찾고, 조선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했을 것으로 확신하는 것은 문헌 기록은 없어도 그림에 존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정확하고 면밀하게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인 셈이다.

삼현육각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 화첩에 수록된 <무동>을 꼽을 수 있다. 화폭 왼편 하단에 무동이 힘찬 몸짓으로 옷자락을 펄럭이며 춤을 추고 있고 오른편에 악사들이 반원 형태로 둘러앉아 반주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북(1명)-장구(1명)-피리(2명)-대금(1명)-해금(1명) 순으로 여섯 명의 악사가 묘사돼 있는데, 영락없는 삼현육각 편성이다. 민간에서는 이를 가리켜 육잡이 또는 육재비 연주라 부르기도 했다. 이 외에 김홍도의 <평안감사향연도>, 신윤복의 <쌍검대무> 등에서도 삼현육각 편성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그림이 의미하는 것은 삼현육각의 존재뿐만이 아니다. 삼현육각의 쓰임 또한 그림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평안감사향연도>에서는 연회의 주빈이 상을 받기 전에 연주하는 거상악의 편성으로 삼현육각이 사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무동>과 <쌍검대무>에서는 무악에 사용됨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무악은 승무나 살풀이춤과 같은 춤의 반주음악을 말하는데, 이때 ‘염불풍류’라는 일종의 모음곡이 연주된다. 그리고 염불풍류를 춤 없이 감상곡으로 연주할 때 다시 ‘대풍류’라 칭하기도 하는데 이는 삼현육각의 사전적 의미와 연결해볼 수 있다. 사전에 따르면 ‘삼현육각’은 “피리가 둘, 대금, 해금, 장구, 북이 각각 하나씩 편성되는 풍류. 감상의 성격을 띨 때는 ‘대풍류’라 한다”고 명시하기 때문이다. 물론 완벽히 같은 악곡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관현악 중심의 동일 계열 악곡이다. 이 외에도 삼현육각은 굿이나 불교 의식에서 행악의 한 형태로 연주되기도 한다. 즉 삼현육각은 거상악·무악·행악으로 연주되며, 감상음악인 ‘대풍류’이기도 한 것이다.

더 세부로 살펴보고 싶지만, 삼현육각은 꽤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용돼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무악만 하더라도 궁중 정재뿐만 아니라 민간의 살풀이춤·탈춤 등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승 과정이나 연주 용도가 지역에 따라 음계나 리듬, 악곡 구성 등이 저마다 다르게 발전해 지금에 이르기에, 지면상 다수의 전통예술에서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전통음악 요소로만 밝힌다. 지역적 특색에 따라 1985년 인천광역시를 시작으로 나주시(1986년), 전주시(2011년), 서울특별시(2014년)의 삼현육각이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연구와 보존 측면에서 지역별 삼현육각이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고무적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지정까진 어렵겠지만, 해서 지역의 삼현육각에 관한 연구도 많이 이뤄지면서 연구 영역도 비교적 확장되고 있다.

실제 음악으로 돌아가서, 최근에는 삼현육각이 거상악이나 행악으로 쓰이기보다 무악 또는 감상곡으로 연주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한 예 중 하나가 관악기 중심의 관악영산회상이다. ‘바른 정치가 만방에 퍼진다’라는 뜻의 표정만방지곡, 그리고 대풍류라는 아명으로 불리는 이 곡은 영산회상의 한 갈래다. 상령산-중령산-세령산-가락덜이-삼현도드리-염불도드리-타령-군악으로 여덟 곡이 이어지는 모음곡이며, 삼현도드리 뒤에 하현도드리를 붙여 아홉 곡이 이어지는 현악 중심의 ‘현악영산회상’과 비교해볼 수 있다. 더불어 불교 찬가인 ‘영산회상불보살’을 노래하고 춤과 박 그리고 대고를 쳤다는 『악학궤범』1493의 기록으로 영산회상의 역사를 가늠해볼 수 있는데, 노래는 기록으로만 남고 음악만 이어져 전통음악의 주요한 기악곡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전통음악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데 앞장서고 있는 국립국악원은 봄을 맞아 3월 28일과 29일 정악단 정기 공연 <영산회상: 그 깊은 울림>을 연다.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이 바로 영산회상이다. 부제는 ‘그 깊은 울림’이라고 붙였다. 공명통을 울려서 연주하는 관악기의 울림과 깊은 마음. 연지淵旨를 울리는 악곡을 연주하는 무대에 가히 어울리는 제목이다. 전통음악의 주요한 요소로 꼽히는 삼현육각을 맛보고 싶다면 관악영산회상으로 갈증을 달래보아도 좋지 않을까. 언제 어디서나 쓰임에 따라 자리를 빛내는 삼현육각의 한 면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글 칼럼니스트김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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