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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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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번째
기념일을 앞둔
네가 자랑스러워”

“죄송합니다.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오래간만에 걸려온 후배의 전화를 받지 못했어. 사는 게 바빠서 그런지 선뜻 수화기를 들기 어려운 상황에서 갑작스레 마주한 그의 이름을 보자 반가움과 기대감이 뒤섞였어. 무슨 일일까. 2년이 지나 일말의 예고도 없이 왜 연락했을까. 서로의 안부조차 물을 사이도 없이 매정하게 응답한 지 몇 분이 흐른 후 이유를 들을 수 있었어.

“어느새 200호를 앞두고 있어요. 그동안 옥이야 금이야 생각한 것도 그렇고, 선배가 떠나기 직전까지 얼마나 애정했는지도 익히 알기 때문에 (원고 집필을) 부탁드려요.”

이제 내년이면 재단이 태어난 지 20주년이 된단다. 남산 자락에서 스물네 명이 모여 첫발 내디딜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스무 살이라니. 성인으로 갓을 쓸 때가 됐다는 ‘약관’, 인생에서 가장 꽃다운 시기라는 ‘방년’이라는 말을 이때쯤 쓰지 않나. 열 돌 축하를 건넨 게 얼마 전이었는데, 벌써 그만큼 또 흘렀구나.

20년을 거치면서 나의 손때가 묻은 사업들이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 갔어. 대학로에 있는 부동산을 샅샅이 뒤져 어렵게 찾은 지하 공간을 개조해 만든 ‘대학로연습실’. 일 년 열두 달 청계천에서 끊이지 않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서울거리아티스트’. 판이 벌어지면 할 얘기가 너무나 많아. 그런데 바쁘다 보니 추억놀이에 빠지는 게 쉽지 않구나.

그래도 네가 200번째의 기념일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누구보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매달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탄생 과정을 지켜보면서 너에 대한 애정을 켜켜이 쌓아왔어. 아마도 밤낮으로 아이템을 위해 고민하는 순간을 내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겠지. 누가 읽을지 확실하지 않지만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오탈자를 허락하지 않기 위해 애간장 태우던 순간들을 몸소 겪었기 때문일 거야.

물론 200번째라는 숫자에 연연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오랜 시간을 버텨온 네가 자랑스럽다. 2004년 재단이 생기면서 그 이듬해였던 것으로 기억해. 옆 부서의 담당자가 너를 아주 소소한 이유에서 만든 것까지 알고 있어. 그리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탄탄하게 자리잡은 너를 바라볼 때마다 재단과 너는 절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 아마도 네가 걸어온 길이 재단의 20주년을 밝혀줄 중요한 기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너는 행정문서에 치여 살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회사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내게 알려줬어.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수많은 사업과는 다르게 너를 대하게 됐어. 글쟁이로서 고민하던 순간들이 가장 힘들었는데, 그때마다 네가 항상 내 곁에 있었기 때문일 거야.

세상이 급변하고 온라인으로 모든 것을 대체하는 신문명 시대를 살아가면서 너에게도 위기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했지. “이제 누가 종이로 보나요?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만 하면 손안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시대인데….” 네가 세상의 빛을 보기 위해 거친 모든 고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하지 않으려 해. 자간, 들여쓰기, 화면 배열, 교열 교정 등 모든 것이 컴퓨터가 알아서 해준다고 오해하기 때문이야. 네가 탄생하는 과정의 산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 하지만 그것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모든 순간을 나는 기억해. 그리고 네가 200번째 기념일을 당당하게 맞이하는 이 순간, 이 감정은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구나.

우리의 친구들은 몇 번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제풀에 지쳐 나가기도 했어.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세종문화회관·충무아트센터의 친구들이지. 적어도 이쪽 바닥에서 탄탄함을 자랑했던 녀석들인데 외부의 변화를 견뎌내지 못하고 무언가의 대체재가 되어버렸다는 말이 맞을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인터넷이 종이를 대체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어. 그렇게 견뎌온 지난 몇 년간의 고비가 있었기에 200번째 기념일은 나에게 남다르게 다가오네.

외부에서 회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 이렇게 물었어. “사진이 가장 잘 나오는 곳이 어디죠?” 어디로 가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보여줄 수 있을까. 네가 매달 인쇄소에서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배달되는 곳. 따끈따끈한 책자가 건네지는 첫 번째 목적지. 그곳은 용두동 청사의 가장 꼭대기인 대표이사실이 아닐까. 대표를 만나기 위해 방문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늘 네 얼굴을 쳐다보게 되어 있어. 대표이사실로 들어가는 왼편에는 네가 태어난 2005년 7월부터 가장 최근 호까지 각양각색의 표지가 벽면을 채우고 있지. 아마도 네 200번째 기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여기가 아닐까 싶어. 20년 가까이 버텨온 시간만큼이나 200개의 표지만 봐도 네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가늠할 수 있을 거야. 다양한 배경의 색감이 전해주는 외형적 의미도 중요하지만, 네가 걸어온 20여 년 때문에 이곳을 추천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200번째 기념일을 앞둔 네가 자랑스러워. 그동안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한 순간들을 견뎌줘서 대견해. 그리고 10년 넘는 세월을 동고동락하면서 나에게 다시 찾아와줘서 고마워. ‘200’이라는 숫자가 무색할 만큼 앞으로도 오랫동안 멈추지 않길 기도할게.”

이규승은 서울문화재단 홍보IT팀(현 홍보마케팅팀)에서 10년 4개월간 근무하며 [문화+서울] 발간을 위한 전 과정을 함께했다. 이후 축제교육실을 거쳐 예술교육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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