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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6월호

2022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에서 제외될 위기에 놓인 국악 교과서 음악/국악교육의 사회적 합의에 대한 근원적 질문

‘2022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 1차 시안’이 발표된 4월 이후 국악 교육과정과 관련한 사안이 사회적 공론의 대상이 됐다. 국악계는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에 누락됐던 국악 고유 개념 요소를 담을 것을 요구하며 대대적 캠페인을 펼쳤다. ※ 지난 5월 17일 교육부는 2022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에서 국악 관련 내용을 현행 수준으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편집자 주)

‘전 국악인 문화제’ 현장

“음악은 만국공통어다”라는 관용어가 있다. 언뜻 옳은 듯 보이는 이 관용어는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언설로 서구 제국주의와 서구의 자문화중심주의에 기반한다. 서양음악은 어디서나 통용되는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우월성의 과시이자 ‘보편’이 되었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서양음악의 보편화는 제국주의의 그림자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지난 세기 기독교 선교사, 초국적 음반산업, 음악교육을 통해 보편적 ‘음악’의 지위를 독점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점령지의 음악들은 ‘(서양)음악과 나머지’로 명명됐다.

‘전 국악인 문화제’ 포스터

음악교육의 근대적 기원과 본질적 문제

음악 교과서 논란을 국악계의 야합 혹은 밥그릇 싸움으로 바라보면 음악교육 문제의 본질과 핵심을 놓치게 된다. 21세기에 전 국악계가 나서서 항의 시위를 벌이게 하는 일은 가혹한 것이며 “국악 요소를 넣어주면 되지 않느냐”라는 답변은 참담하다. 현장의 전수조사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대책도 문제의 근원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음을 보여준다.
교육대 교원의 수와 전공자 수에서 압도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때로 서양음악 전공 교사가 국악을 가르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음악교육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서양음악 전공 교사로 국악교육을 위해 직접 국악을 배우는 열정을 가진 분도 많다. 현재 국악교육 환경은 교수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다양한 멀티미디어 자료가 국립국악원 등의 기관을 통해 제공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주권을 잃고 식민 통치를 경험한 치욕의 역사가 있다. 나라를 잃은 이유를 근대화와 문명화에서 찾았으며 근대는 서구화를 향한 문명화와 동의어였다. 음악音樂,온가쿠은 ‘Music’의 번역어로 일본에서 만들어진 조어造語이다. 근대 용어 ‘음악’은 조선으로 들어와 일본화된 ‘양악’을 지칭했다. 악樂, 소리, 풍류 등 여러 이름으로 지칭되던 이 땅의 다양한 음악은 ‘조선악(훗날 국악)’으로 명명됐다.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공적 음악교육은 일본식 서양음악 ‘창가’를 교육했고, 조선악은 학교 공교육에서 배제됐다.
광복 이후 미군정기에도 음악교육의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미군정기 음악교육은 일제강점기 음악교육의 틀을 유지해 창가에 기반한 근대 동요에 군가풍 노래를 추가했다. 물론 어떤 노래도 ‘국악’은 아니었다. 음악 교과서에 담긴 내용만으로 보자면 음악에서 우리는 주권을 다 잃은 상태로 현대를 맞았다. 첫 국정 음악 교과서에도 국악은 없었다. 음악 교과서의 기득권인 서양음악이 국악에 자리를 ‘일부’ 내어주기까지 50년 이상이 걸렸다. 오랜 투쟁을 거쳐 국악은 현재 30%의 지면을 할당받을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음악 교과서 보통학교 창가집

전국국악교육자협의회 성명

내면화된 서구중심주의를 넘어 성찰적 미래의 음악/국악교육으로

한국에는 콘서트홀,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오페라단도 많고 클래식 팬도 많다. 이미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양악도 이 땅의 음악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유럽 작곡가들이 작곡한 작품만을 인류의 보편적 음악으로 규정하고 표준으로 삼는 일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반문해야 한다. 서양음악을 음악의 보편적 지위에 놓을 때 가장 심각한 일은 서양음악과 ‘다른’ 많은 음악이 ‘비非음악’이 된다는 데 있다.
음악교육은 음악의 3요소를 리듬·화성·선율이라 가르친다. 이 서양음악 3요소를 기준으로 하면 국악은 ‘화성을 갖추지 않은 비음악’이 된다. 그런데 전 세계 음악 중에서 화성이 중요한 음악은 서양음악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국악은 화성 구조가 필요 없는 미학을 추구하는 음악이다. 음악에 있어 박자는 시간 개념이라는 점에서 보편적이지만 그것을 지칭하는 용어와 정의는 문화에 따라 다르다. 장단이 리듬과 다른 이유다.
그런데 여기서 더 위험한 일이 벌어진다. 서양음악을 보편의 위치에 그대로 둔 채 국악이 다른 ‘다문화’ 음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다. 지난 교육과정 연구를 진행한 교수의 발언이다. 비서구 음악 연구를 통해 서구 음악의 우월성을 증명하고자 했던 20세기 초반의 비교음악학을 떠오르게 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 음악의 타자화는 제국주의와 닮아 있다. “모든 음악은 동등하다”는 전제하에 서양음악도 인류의 많은 음악 중 하나임을 인정할 때 음악교육은 보편성·특수성·다양성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런데 제국의 시선이 여전히 음악계와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때가 많다. 서양음악을 둘러싼 계급의식과 허위의식은 현재의 사태와 깊이 연동돼 있다. 왜 국악에는 화성이 없느냐, 그러니 국악은 열등한 음악이 아니냐는 질문을 들은 적이 많다. 서구중심주의를 내면화한 굴절된 근대화의 결과다. 국악의 배제를 지속하게 한 허위적 계급의식이라는 괴물이다.
한국 문화의 글로벌 지위는 상승하고 있다. 한국 문화의 글로벌 수식어 ‘K’에 대한 무비판적 자문화중심주의는 경계해야 하지만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한 근대적 문명화에 대한 열패감의 망령이 자부심으로 바뀌고 있음을 방증하는 기표라는 점에서 양가감정을 갖게 한다. 현재의 교수자와 미래 세대가 성장할 한국, 글로벌 환경은 다르다. 이들은 국악에 대한 편견도, 양악에 대한 허위의식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간의 국악교육의 성과로 이미 미래세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이냐는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음악교육으로 미래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왜,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 내면화된 우리의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지난 20세기의 한국 문화를 성찰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현재 국악교육의 이슈는 음악교육에 관한 새로운 성찰과 사회적 합의를 요구한다. 음악의 보편적 지위를 서양음악에 내주는 일이 온당한지 반문하고, 국악은 국악 전공자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자각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김희선_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음악인류학 박사 | 사진 제공 김희선, 전국국악교육자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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