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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6월호

경계에 선 예술가의 이야기
시대를 초월한 디아스포라 작가 소개

최근 미국 출판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여성 작가와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1세대 디아스포라 작가를 소개한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시기, 이민 자유화 이후인 1970년대, 다문화 가족이 증가한 1980년대. 태어난 시기만큼 이주를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도 다른 작가들에게서 긴 시간을 관통하는 보편적 디아스포라 정서를 감지할 수 있다.

한국계 미국인: 미국인인 듯 미국인 아닌

미셸 자우너와 캐시 박 홍은 각기 펴낸 책이 미국에서 잇따라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파친코》를 쓴 이민진과 함께 주목받고 있다.

《Crying in H Mart》,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 Michelle Zauner
《H마트에서 울다Crying in H Mart》

인디 뮤지션이자 작가인 미셸 자우너는 백인 미국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반’ 한국계이다. 1989년 3월 서울에서 태어나 생후 9개월에 인구 대부분이 백인인 미국 오리건Oregon주 유진Eugene으로 이주했다. 《H마트에서 울다》(2021)는 어린 시절부터 한국 문화를 접하게 해준 엄마와 이모를 암으로 떠나보내고, 엄마와 함께 장을 보던 H마트에서 한국 식재료를 구입해 직접 요리해 먹으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H마트는 미국 14개 주에 70개의 매장이 있는 미국 속 한국 대형 식료품점이다. 자우너는 책에서 “나는 두 세계 중 어느 세계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었다. 노상 반만 인정받고 반은 이방인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고 썼다. 자우너는 미국에 살면서도 생일에 미역국을 먹고, 삼겹살을 구워 쌈을 싸 먹고, 간장게장 같은 한국 음식을 먹는다. 그는 엄마가 살아 있을 때 함께 방문했던 한국으로 신혼여행을 와 남편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조각을 맞춰나간다. 《뉴욕타임스》에서 “디아스포라적 삶의 반향을 보여준 회고록”이라고 평한 이 책은 2022년 2월 말 한국에서도 출간됐다.

나는 지난 5년 사이 이모와 엄마를 모두 암으로 잃었다.
그러니 내가 H마트에 가는 것은 갑오징어나 세 단에 1달러 짜리 파를 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두 분에 대한 추억을
찾으려고 가는 것이기도 하다.
두 분이 돌아가셨어도, 내 정체성의 절반인 한국인이 죽어버린 건 아니라는 증거를 찾으려는 것이다.”
《H마트에서 울다》 중에서

《Minor Feelings》,
《마이너 필링스》

캐시 박 홍 | Kathy Park Hong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

《마이너 필링스: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Minor Feelings: An Asian American Reckoning》는 이민 2세대인 캐시 박 홍이 아시아인으로서 겪은 미국 사회를 이야기한 자전적 에세이다. 서양의 백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아시아계 여성으로 살면서 느낀 ‘소수적 감정’을 정확히 묘사해 많은 독자의 공감과 함께 반향을 일으켰다. 작가는 197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65년 미국으로 이주한 그의 부모가 집에서 한국어만 썼기 때문에 학교에 가기 전까지 영어를 제대로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이민 1세대와 달리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지만 차별받는 유색인종으로 살아온 작가는 책에서 미국 내 아시아인의 지위를 ‘모범 소수자’ ‘인간 같지 않은 존재’ ‘존재감조차 없는 존재’로 표현했다. 《마이너 필링스》는 2020년 2월 출간돼 각종 유력지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으며, 작가는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2021년 8월 국내 출간 기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인종적 정체성 때문에 백인이고 싶어 하거나 자신을 의심하지 않기를 원했다”며 책을 쓴 계기를 밝혔다. 1《한국일보》 “나는 왜 백인이 아니란 말인가” 한국계 작가의 물음, 2021.08.19.

“우리가 목청을 높이지 않으면 우리의 수치심은 억압적인 아시아 문화와 우리가 떠나온 나라에 의해 초래된 것이고,
미국은 우리에게 오로지 기회를 주었을 뿐이라는 신화를 영구화하게 된다.”
《마이너 필링스》 중에서
뉴욕의 이방인: 타국에서 세상을 떠난 예술가

같은 미국 뉴욕 이민자이지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와 31세의 나이에 요절한 차학경과 한국을 떠나 타국에서 창작 활동을 하며 100세 가까이 장수한 포 킴은 작품의 분위기만큼이나 상반된 삶을 살았다.

《딕테Dictee》의 첫 페이지에 실린 한글 낙서

차학경 〈통로/풍경 Passages Paysages〉(1978)

차학경Theresa Hak Kyung Cha | 1951~1982

차학경은 사후 40년인 2022년 재조명받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예술가이다. 2022년 1월 10일 《뉴욕타임스》가 뒤늦은 부고를 심층 기사로 냈고,2《The New York Times》 ‘Overlooked No More: Theresa Hak Kyung Cha, Artist and Author Who Explored Identity’, 2022.1.10.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는 “한국계 미국인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야기한 차학경에게 영향받았다”고 했으며, 캐시 박 홍은 《마이너 필링스》 중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글에서 차학경의 죽음을 다뤘다. 차학경은 부모와 본인이 겪은 이주로 인한 정체성 혼란과 모국어 상실의 경험을 글, 비디오, 필름, 공연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실험적으로 표현한 작가다. 차학경은 1951년 3월 4일 6·25 전쟁 중 피난을 간 부산에서 태어나 1962년 가족과 함께 미국 하와이로 이주했다가 1964년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에서 비교문학·예술 등의 학위를 취득, 1976년 파리에서 1년 동안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와 1980년 8월부터 뉴욕으로 이주해 활동했으며, 1982년 5월 미국인 사진작가와 결혼했다.3차학경의 이력은 자료마다 조금씩 달라 작가의 아카이브를 관리하고 있는 버클리미술관 큐레이터(Lawrence Rinder)의 기록을 기준으로 했다. oac.cdlib.org/findaid/ark:/13030/tf238n986k 생전에 모국은 1979년과 1981년 두 번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어·영어·불어 3개 국어를 구사하던 그의 대표작 《딕테Dictee》는 언어와 장르를 넘나드는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이산 문학의 대표작이다. “엄마, 보고 싶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라고 쓰인 한글 낙서 이미지로 시작해,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광복 후 미국으로 이어진 어머니의 험난한 이주 여정을 통해 이민자의 삶과 디아스포라를 포함하는 한국사를 이야기했다. 작가는 《딕테》 출판 직후인 1982년 11월 5일 건물 경비원에 의해 살해됐다. 무명에 가까웠던 예술가의 작품 세계는 사후 미국에서부터 점차 조명되기 시작했다. 1993년 뉴욕 휘트니미술관 개인전을 시작으로 2001년 9월 ‘차학경 아카이브’를 관리하고 있는 캘리포니아대 버클리미술관 퍼시픽 필름 아카이브BAMPFA의 기획으로 회고전 〈관객의 꿈A Dream of the Audience4<The Dream of the Audience: Theresa Hak Kyung Cha(1951-1982)>전 보도자료, bampfa. org/press/dream-audience-theresa-hak-kyung-cha-1951-1982. 이 열렸다. 미국 5개 도시 순회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서울(2003.9.5~10.16, 쌈지스페이스)을 찾으면서 한국에도 본격적으로 소개됐다. 《딕테》는 1995년과 2001년 미국에서 재발행됐고, 한글판은 2004년 4월에 나왔다. 《딕테》를 원작으로 한 연극 〈말하는 여자〉가 1998년 6월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초연되기도 했다.

포 킴 〈탑 Pagoda〉(2000)

포 킴 〈날아가는 새와 물고기 Flying Birds and Fish〉(2006)

김보현Po Kim | 1917~2014

김보현(포 킴)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2014년 2월 7일 미국 뉴욕에서 97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1937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유학한 후 1946년 귀국해 조선대 미술대학 교수로 임명됐으나 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서 고초를 겪다가 1955년 일리노이주립대 교환교수 자격으로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했다.
1세대 한인 화가로 고국과 단절되면서 느낀 상실감과 외로움, 일본과 미국에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자유와 해방의 상징인 새와 물고기에 투영해 표현했다. 60년 가까운 타지 생활에도 한국인이라는 뿌리와 정체성을 잃지 않고 한복·호랑이·단청·탑과 같은 한국적 모티프를 사용했으며, 서양의 추상표현주의에 동양의 서예 기법을 접목해 유토피아적 세계를 구현했다.그는 고국을 떠난 지 38년 만인 1995년 10월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원로작가 초대전을 계기로 한국과 다시 연을 이어갔다. 당시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나이가 드니 어릴 적 놀던 고향 생각이 자꾸 난다. 그림을 그릴 때도 고향의 정취가 저절로 묻어난다”며 조국에 대한 향수를 드러냈다.5《한국경제》 [인터뷰] 김보현 재미화가, 38년 만에 고국서 ‘개인전’, 1995.10.02.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을 비롯해 뉴욕에서 교류했던 김환기와의 인연으로 환기미술관 등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었다. 생전에 340점의 작품을 조선대에 기증하기도 했다. 마침 그의 후기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 〈지상의 낙원을 그리다-뉴욕의 한인화가 포 킴〉이 6월 12일까지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에서 열린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까지의 회화 23점을 만날 수 있으며, 온라인 전시장(online.hakgojae.com)에서도 관람할 수 있다.

전민정_객원 편집위원 | 사진 제공 버클리미술관 퍼시픽 필름 아카이브(BAMPFA),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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