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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

당신의 수식어는 무엇인가요?
‘코리안 디아스포라’라는 정체성에 대하여

코로나19로 인한 각종 규제가 완화되자 사람들이 다시 이동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세계 일주를 꿈꾼 이는 다시 비행기에 오를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해외여행을 떠나 어느 도시를 거닐다가 갑자기 현지에
사는 한인을 마주쳤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과 비슷한 외모를 지녔지만 표정과
자세에서 왠지 모를 이국적 정취를 풍긴다. 그 역시 살짝 당황하지만 모국에서
온 것 같아 보이는 당신에게 (한인 특유의 옷차림새, 표정, 제스처는 해외에서
분명 눈에 띈다) 우호적 눈길로 인사를 건넨다.

한반도 안과 밖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코리안’

나는 쿠바에 배낭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쿠바 한인 3세를 만나 인생의 축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앞의 시나리오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모국인 한국이 아닌 미국에 사는 또 다른 해외의 한인이라는 점이다. 혹시 대한민국 밖 한인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아마 없지는 않을 것이다. 먼 친척 중 누군가가 외국에 산다거나, 교과서에서 미국과 중국 등지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십시일반 모금을 했던 선조에 대해 배운 기억이 있다거나, 아니면 TV를 통해 해외에서 국위선양을 하는 동포에 대한 소식을 모두 한 번씩 접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궁금하다.
흔히 ‘재외동포’라고 일컫는 그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듯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다. 나는 감사하게도 한국에서 유년기를 보냈기에 한국 정서에 친숙하고 한국어를 무리 없이 구사할 수 있지만 미국 내 많은 재미 한인 친구는 그렇지 않다. 현지화돼 한국말이 미숙하고 한국의 문화와 시사에 밝지 못하다.
대한민국에 사는 이들이 스스로 부르는 말인 ‘한국인’은 아쉽게도 대한민국 국적자에 한정된 단어이다. 영어로 ‘코리안’이라는 공통 호칭이 있지만 공교롭게도 우리말로는 재외동포 전체까지 아우르는 단어가 없다. 한반도 밖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조선족, 자이니치(재일교포), 고려인, 재미교포, 재독동포, 한인 입양아, 탈북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릴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에 들어온 타 국가 출신의 이민자도 온전한 한국인으로 불리지 않는다. 외국인, 이주민, 다문화, 결혼이주민 등의 수식어에 머물 뿐이다.
나는 스스로에 대한 수식어가 무엇인지 오랫동안 고민하던 중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을 접했다. 처음에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을 지칭하는 표현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떠나 미국에 살면서, 여러 국가에서 자신을 코리안으로 소개하는 다양한 친구와 마주치면서, 디아스포라가 유대인뿐만 아니라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인 본국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를 통칭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쿠바에서 쿠바 한인들과 촬영했다.

디아스포라, 각자의 자리에서 온전히 존재하는 주체

이들에 대해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발레리 한Valeriy Khan 교수는 어느 석상에서 “우리 디아스포라는 결국 사라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어둡지만 희망을 염원하는 그의 질문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 민족의 문화, 언어, 역사, 기억, 존재가 본국을 떠나며 희미해져 없어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발레리 한 교수의 질문을 곱씹다가 나는 또 다른 질문을 던져봤다. “디아스포라가 실제 존재하더라도 그들에 대한 인식, 담론, 이야기가 부재한다면 그들이 과연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단어 ‘디아스포라’가 한반도 안 사람들에게 생소함과 왠지 모를 위화감을 주는 것처럼, 나 또한 한반도 밖 코리안으로서 직접 디아스포라를 체험하고 그 개념을 구체화하기 전까지는 디아스포라에 대해 무지했다. 내가 그 일원이었음에도 말이다.
재외동포와 디아스포라는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언제, 왜 한반도 밖으로 향했는지 각자의 이유가 다르고 자신이 정착한 현지 국가의 정치 체제, 경제 상황, 민족 구성에 따라 자신을 인식하는 양상이 다르다.
하지만 한반도를 떠나면서부터 이민자 혹은 이민자 자녀, 소수자, 이방인이 됐던 그들의 경험은 비슷하다. 낯선 환경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묻고, 자신의 수식어를 찾는 몸부림이 닮아 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졌다. 그들과 나의 존재를 설명하는 여러 수식어 중 ‘코리안’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한반도 밖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대한민국의 한국인, 아니 한반도 안의 모든 이와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할까?
나는 디아스포라를 나라 밖에 있는 어떤 대상으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온전히 존재하는 주체로 인식한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의 충돌과 혼합으로 발현되고 내재된 그들의 디아스포라라는 정체성, 수식어에 매료됐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재외동포의 존재, 그들의 정체성, 디아스포라적 사유 방식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글·사진 전후석_〈헤로니모〉 〈초선〉 감독, 《당신의 수식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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