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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4월호

포탄의 폭음 대신 울리는 선율 전쟁의 비극과 음악

지난 2월 21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향한 진격 명령을 내리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다. 21세기에 일어나는 전쟁에 음악 예술계는 어떤 움직임을 보였을까. 과거의 전쟁과 관련한 음악은 무엇이 있을지 장옥님 칼럼니스트가 설명한다.

독일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한 시기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피아니스트>의 한 장면. 실존한 유대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이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에게 쇼팽의 <발라드 제1번 g단조>를 들려준다.

당초 속전속결로 침략 전쟁을 끝내려던 러시아의 속셈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거센 항전과 우방국의 지원으로 현실화되지 못하고 확전 양상을 띠고 있다. 한 달여 사이 이 전쟁은 여러 면에서 디지털 시대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가짜 정보를 퍼트려 상대를 혼란에 빠지게 하는가 하면, 특정 메이저 외신에 의존하는 대신 전장의 한가운데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시시각각 SNS로 현장의 생생한 소식을 전 세계에 보내고 있다. 이웃 유럽 시민뿐 아니라, 전 세계 시민들은 기꺼이 도움을 주고자 응원하고 러시아 정부를 규탄하며 우크라이나를 위한 성금을 모으고 있다. 각국의 뜻있는 젊은이들은 의용군을 자원해 전선으로 향했다.

회복과 치유, 평화를 추구하는 음악

예술계에서도 당장 친푸틴파 음악인들의 공연을 보이콧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뉴욕 카네기홀에서 예정된 2월 25일의 빈필하모닉 공연은 주최 측에서 친푸틴파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를 교체하는 결단을 내렸다. 대신 조성진을 섭외해 무대 위에 세웠다. 서울의 한 민간 오케스트라 단원인 우크라이나 국적의 베이시스트 지우즈킨 드미트로는 악기 대신 총을 들겠다며 고국의 전선으로 떠나는 심정을 SNS에 올린 바 있다. 폴란드 국경으로 몰려드는 피란민을 위로하기 위해 국경 근처에 이동식 피아노를 가지고 가서 연주하는 독일인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의 얘기 등은 우크라이나의 항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음악은 다른 장르의 예술에 비해 인간의 감성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바가 크기에 예로부터 전쟁에서 심리전에 시용됐다. 전장에선 군악대가 동원돼 아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상대에겐 공포심을 조장해 전투 의욕을 떨어뜨리고자 한 것인데, 이런 실용적인 음악 말고도 전쟁과 관련한 예술적 음악 작품도 상당수 만들어졌다. 시대에 따라 전쟁 음악도 변천해 근대에는 신화와 성서에 나오는 전쟁 영웅을 소재로 한 작품들과 전투에 참여해 공을 세운 장군이나 병사를 기리는 작품이 많았다. 현대로 오면서 전쟁의 규모는 더욱 커지고, 대량 살상 등의 비인간적 행위를 일반인들도 매스컴을 통해 낱낱이 목도하게 되면서 예술 작품은 인간성의 회복과 치유, 평화를 추구하는 등의 성찰적 내용과 함께 반전의 메시지를 담게 된다.

작곡가 미상 <L’Homme arme> ⓒATMA Classique
헨리크 고레츠키 <Symphony of Sorrowful Songs> ⓒDomino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Leningrad> ⓒDeutsche Grammophon
전쟁을 소재로 만들어진 음악

전쟁과 관련해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노래 중에 유명한 것으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무장한 남자들L’homme arme>이란 곡이 있다. ‘아무리 무장을 한 남자라도 전장에 나가면 두려워하기 마련’이라는 내용이다. 그렇다. 아무리 명분이 좋다 한들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고, 피땀으로 일군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전쟁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전쟁사에서 나폴레옹만큼 유명한 인물도 없으리라. 그가 일으킨 전쟁으로 유명한 음악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베토벤이 교향곡에 나폴레옹을 염두에 두고 ‘영웅’이라는 부제를 붙였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독일 시인 하이네는 청년 시절 나폴레옹을 흠모했는데, 프랑스 군대가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크게 패한, 1812년의 전쟁이 끝나고 포로인 프랑스 군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행렬을 보고 시를 썼다. 역시 나폴레옹을 흠모하던 작곡가 슈만은 그 시를 가사로 <두 사람의 척탄병Die beiden Grenadiere>을 작곡했다. 포로에서 풀려난 군인 두 사람은 전쟁에서 패했고, 황제마저 포로가 됐다는 사실을 알고는 괴로워한다. 한 명은 처자식이 있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하고 다른 한 명은 죽어서도 황제를 지키겠다는 비장한 충성심을 프랑스의 국가國歌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의 선율에 실어 노래한다.
전쟁에 관한 음악 중 압권인 작품은 러시아 제국의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으로, 마치 한 편의 전쟁 영화를 보는 듯하다. ‘라 마르세예즈’의 선율로 프랑스군의 진격을 표현했다면 차이콥스키는 러시아 제국 국가의 선율로 러시아군의 반격을 그렸다. 결국 슬라브 민족의 승리와 구원을 알리는 타종과 함께 장엄한 관현악과 합창으로 끝을 맺는,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곡이다.

헨리크 고레츠키Henryk Gorecki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i Shostakovich
우리는 전쟁을 겪고 있습니다

20세기에 일어난 두 번의 세계대전과 관련한 많은 음악이 만들어졌는데, 그중 비교적 현대에 작곡된 두 곡을 소개한다. 먼저 폴란드 작곡가 헨리크 고레츠키가 1976년에 작곡한 <슬픈 노래들의 교향곡Symphony of Sorrowful Songs>이다. 이 작품은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작곡된 것으로, 전체적으로 느린 템포의 세 악장은 매우 여린 소리의 느린 관현악으로 시작해 듣는 이를 고요한 명상의 세계로 이끈다. 이윽고 고전 양식의 대위법과 미니멀리즘이 연상되는 멜로디와 리듬의 반복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소프라노의 노래가 나온다. 그 가사는 나치 수용소에 갇혀 있던 유대인들이 죽음을 앞두고 벽에 새긴 폴란드의 옛 기도문이다. 목가적인 아름다운 선율로 비통함을 토해 낸다.
이 작품과는 다르게 전장의 공포 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엄청난 힘의 분출로 표현한 작품이 있다.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쓴 <레닌그라드>라는 부제의 제7번(op.60) 교향곡이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소련은 독일의 침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결국 ‘레닌그라드 봉쇄’라는 최악의 상황에 몰리고 마는데,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의용소방대원으로 자기가 가르치던 음악원의 지붕에서 보초를 서며 방위전에 참여하고 있었다. 폭격의 공포와 혹독한 추위, 100만 명의 아사자 등 전쟁의 참혹함을 목격하며 그는 온 동포가 함께 겪는 이 전쟁의 모든 것을 다큐멘터리 같은 음악으로 만들고자 했다. 히틀러의 군대가 레닌그라드의 전선을 조여오던 어느 날, 그는 라디오방송에 나와서 작곡 중이던 작품에 대해 말했다. “한 시간 전에 저는 대규모 교향악 작품 중 두 편(악장)의 총보를 완성했습니다. 제가 성공적으로 끝마친다면 이 작품을 교향곡 7번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째서 제가 이런 말을 할까요? 우리 도시의 생활은 정상적이라는 사실을 보여드리기 위해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전장에 있습니다.”
이 곡은 1942년 3월 다른 도시에서 초연된 데 이어 8월 9일에는 봉쇄당한 레닌그라드에서도 연주됐다. 악보는 마이크로필름에 담겨 미국에도 보내져 수십 차례 연주됐다. 그렇게 자유 진영에서는 레닌그라드 시민과 러시아를 응원했던 것이다. 레닌그라드 연주가 예정된 날은 히틀러가 러시아 침공의 성공을 축하하는 연회를 열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봉쇄된 도시의 한편에서는 침략 성공의 축하 연회가 열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굶주림과 공포에 떨면서도 침략에 굴복하지 않음을 알리려는 교향악 연주회가 열린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단원은 이미 뿔뿔이 흩어진 후였으나, 몇 명 남은 단원과 군악대의 연주자로 악단이 꾸려졌다. 그리고 공연 실황은 연주 홀을 넘어 확성기를 타고 레닌그라드의 전선에도 울려 퍼졌다. 도시에 남아 있던 시민들은 이 교향곡을 들으며 이 도시의 정신적인 힘과 구원받으리라는 확신을 느꼈다고 한다. 한편 전선에 울려 퍼지는 이 음악을 들은 독일군은 레닌그라드를 완전히 주저앉힐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고 한다.
1943년에 이르면 전세는 역전되고 러시아는 결국 이 전쟁에서 승자가 된다. 조국과 동포를 사랑했기에 평생을 예술가로서 조국에 헌신했던 쇼스타코비치. 만약 그가 생존해 있다면 자신의 조국이 영토 야욕을 위해 이웃 나라를 침공하고 있는 작금의 사태에 대해 무어라 말할지, 아니 말보다는 음악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자못 궁금하다.

장옥님 _칼럼니스트 | 사진 제공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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