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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4월호

요즘 브랜드 누리집에서 읽는 소설 기업과 소설가의 협업

어떤 브랜드나 상품을 이용하고자 마음먹을 때 그것을 먼저 사용한 주변인의 경험을 참고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험을 들려주는 사람이 소설가라면 어떨까? 왠지 색다른 시선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줄 것만 같다. 실제로 소설가가 관심 있게 사용한 제품이 소문이 나 판매가 증가하거나 서비스 이용이 늘어나는 사례가 있다. 최근 국내 기업과 소설가 협업한 예를 정리했다.

먹고 사는 일에 누구보다 진심인 작가들의 일상 속 음식 이야기 《요즘 사는 맛》

띵동, 주문하신 글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4차 산업 기업의 면면을 탐구하고 글을 써보도록 요청하는 것은, 우아한형제들만의 부름이 아니라 시대의 부름이기도 한 것이다.”
배달 주문 서비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배민다움’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박서련 소설가의 글 <ep.1 주문하신 소설가 왔습니다>의 한 대목이다. <ep.1 주문하신 소설가 왔습니다>는 박서련 소설가가 배민다움 사이트에 총 5회에 걸쳐 쓴 ‘입사 체험 에세이’ 중 하나다. 이에 이어 <ep.2 채식도 개발이 되나요> <ep.3 훈련은 실전처럼,실전은……. 싫어요> <ep.4 용기를 가져가겠습니다> <ep.5 The 큰 집으로, 더 Next Level로>까지 총 다섯 편의 글을 통해 전 국민이 일상에서 친숙하게 이용하고 있는 배달의민족이라는 서비스를 에세이로 풀어낸다. 피플실, 서비스 장애 대응팀, 배민그린 등 업무 견학에서부터 음식 가게 주인과 고객까지, 배달의민족을 만들고 이용하는 사람 40여 명이 소설가의 펜 끝에서 생생하게 묘사된다.
소개 페이지에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공장 이야기를 쓰고, 알랭 드 보통이 히스로 공항 이야기를 쓴 것처럼 소설가가 우리 회사 이야기를 쓴다면?”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적혀 있다. 위 문장의 설명처럼, 배달 스타트업이라는 기업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 기업과 소설가의 협업은 낯선 만남이 아니다. 기업 사보에 작가들이 글을 보태왔던 것처럼, 온라인 사이트로 옮겨갔을 뿐 소설가의 글로 기업 철학과 조직 문화를 알리겠다는 취지는 같다.
배달의민족이 자사 브랜딩을 위해 작가를 기용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배달의민족은 박서련 소설가의 기업 체험 에세이에 앞서 자사 뉴스레터인 ‘주간 배짱이’를 통해 음식 에세이를 연재했다. 김겨울·김혼비·박정민·요조·임진아·핫펠트 등 지명도 높은 저자들이 커피·치즈처럼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일상에 대해 글을 썼다. 이 글은 《요즘 사는 맛》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어 출간됐다.

현대식품관 누리집에서 읽는 정세랑 소설가의 단편 소설

소비자와 소설가가 변하고 있다

기업과 소설가의 협업이 전에 없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특히 이커머스E-commerce 업계가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해 소설가나 콘텐츠 업계와 손잡는 일이 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초부터 식품 전문 온라인몰 ‘현대식품관 투홈’에서 식품을 주제로 한 소설과 수필을 매달 한 편씩 선보이고 있다. ‘현대 식품 문학’이라고 이름 붙인 이 매거진에서는 정세랑·김연수·오은·김금희·박준·김중혁 등 유명 작가들이 투홈에서만 판매 중인 식품을 주제로 쓴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김연수 작가의 짧은 소설 <아직은 봄이니까 미나리는 얼마든지>는 경북 청도군 특산물인 한재 미나리를 소재로 한다. 주인공이 대학 신입생 시절 미나리를 먹고 힘을 얻은 과거를 회상한다는 내용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자연스레 미나리 구매 링크와 소설에 등장한 미나리 물김치 레시피가 등장하는 식이다.
이외에도 <허무주의자를 위한 크리스마스 레시피>(김중혁) <고요와 소란 사이, 무화과의 맛>(박준) <여름의 앤초비>(김금희) <감칠맛이 보상이라니>(오은) 등 음식과 작가들의 다채로운 컬래버를 만나볼 수 있다.
온라인 식재료 판매 업체인 마켓컬리 역시 소설가의 글을 활용한 마케팅을 선보였다. 마켓컬리는 2021년 11월 마켓컬리 사이트에서 특정 키워드를 검색하면 김영하·장류진·김중혁 ·김겨울 등 작가 4명의 글을 읽을 수 있는 ‘Love Food, Love Moments’ 캠페인을 진행했다. 마켓컬리 사이트 상품 검색창에 ‘좌절’ ‘희열’ ‘분노’ ‘치유’ 네 가지 감정 키워드를 검색하면 각각 김영하 작가의 <좌절에는 토마토>, 김중혁 작가의 <두부의 희열>, 김겨울 작가의 <분노의 당근파티>, 장류진 작가의 <치유의 감자> 작품이 상품열과 함께 검색되는 식이다. 작품 상세 페이지에는 작가 소개와 함께 작가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정보가 나오고 글을 다 읽고 나면 구매 상품평을 쓰듯 감상평도 작성할 수 있게 했다.

엔씨소프트가 진행한 ‘FICTION PLAY’에 참여한 소설가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배명훈, 장강명, 김금희, 김초엽, 박상영, 편혜영, 김중혁.

호텔에서의 경험을 여덟 편의 단편소설로 모은 《호텔 프린스》

제품의 이야기를 발견한 소비자

‘상품’만큼이나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은 이커머스 업계의 공통 전략이다. 쿠팡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쿠팡플레이를 론칭하고 다양한 동영상을 제공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신세계백화점은 2020년 교보문고와 제휴한 후 약 50만 종의 도서를 자사 쇼핑몰에서 판매한 데 이어 2021년 4월부터는 전자책 대여 서비스 ‘신백서재’도 선보였다.
특히 현대백화점이나 마켓컬리 같은 유통회사가 문학 콘텐츠에 눈을 돌리는 것은 온라인몰을 방문하는 소비자의 성향 변화와 관련이 있다. 기존의 온라인몰 방문 소비자들이 단순 상품 구매를 위한 ‘목적형 소비자’였다면 최근에는 콘텐츠를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상품을 사는 ‘발견형 소비자’ 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에 다양한 콘텐츠를 포함하는 전략을 통해 소비자를 묶어두는 ‘록인Lock-in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실제 현대 식품 문학을 선보인 후 투홈 사이트의 1인당 고객 체류 시간은 30%가량 늘었고, 이는 판매 증대로 이어졌다.
꼭 유통회사만 소설가들과 협업하는 데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게임 전문 기업 엔씨소프트는 2021년 6월 한 달 동안 자사 블로그에 단편소설 프로젝트 ‘픽션 플레이Fiction Play’ 를 공개했다. 장강명·배명훈·김금희·박상영·김중혁·김초엽·편혜영 일곱 명의 작가가 ‘즐거움의 미래’를 주제로 쓴 단편소설과 인터뷰 영상, 오디오북, 전시회도 함께 선보였다. 이렇게 발표된 단편소설은 《놀이터는 24시》라는 단행본으로도 출간됐다.
대중문화의 첨단이라 할 수 있는 게임 회사가 한국문학과 협업을 시도한 데는 최근 달라진 한국문학 이미지가 한몫을 했다. 진지함에서 탈피하고 젊은 독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최근의 한국문학이 게임 회사의 지향점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본 것이다. 작가 입장에서도 게임 회사와의 협업은 새로운 도전이다. 김금희 작가는 “문예지라든지 일반적으로 소설이 유통되는 경로가 아니라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국내 작가들의 소설이 소개된다고 하니 너무 신나고 기대가 됐다” 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국내에서 소설가와의 협업을 오랫동안 진행하는 곳 중에는 호텔도 있다. 서울 명동에 위치한 서울프린스호텔은 2014년부터 ‘소설가의 방’을 운영하고 있다. 윤고은 작가가 신춘문예 준비를 위해 서울프린스호텔에서 합숙 훈련을 한 경험을 담은 산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소설가의 방’은 집필실을 원하는 작가들에게 호텔방을 제공한다. 등단 10년 이내, 최근 1년 내 출간 계약이 된 작가를 선정해 4~6주에 걸쳐 객실을 무상으로 내준다. 박상영·장류진·김초엽 등 2014년부터 현재까지 80명이 넘는 작가가 이 방을 거쳐갔다. 2015년부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협력해 진행하며, 2017년에는 이곳에 숙박한 소설가들이 집필에 참여한 《호텔 프린스》라는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한소범_《한국일보》 기자 | 사진 제공 우아한형제들, 현대백화점, 엔씨소프트,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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