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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묻고 사유하고 위로하다
인문학북콘서트 ‘인지하지 못했던 사사로운 것들’

코로나19가 삶을 한입에 삼킨 지 2년을 꽉 채워간다. 수많은 문화예술 행사가 연기되거나 온라인으로 진행되거나 그마저 여의치 않을 땐 취소됐다. 와중에 가뭄에 단비처럼 반가운 북콘서트가 열렸다. 노원문화재단이 꾸리고 서울시자치구 문화재단연합회가 주관하고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한 인문학북콘서트 ‘인지하지 못했던 사사로운 것들’이 8월부터 10월까지 총 3권의 책을 무대 위에 올렸다.

‘인지하지 못했던 사사로운 것들’은 팬데믹 시대를 관통하느라 미처 살피지 못하고 덮어뒀던 주제와 이슈에 대해 작가와 평론가가 대담하고, 음악가는 그에 맞는 곡을 들려주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책을 무대 위로 소환해 말과 음악으로 한번 더 듣고 보고 사유하게 하는 북콘서트는 적극적인 탐독 방법 중 하나라 할 만하다.
총 3회차로 구성된 북콘서트의 1회차는 《쇼코의 미소》를 쓴 최은영 작가와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집시재즈팩토리가 함께 ‘보편적인 청춘의 문장’이라는 주제로 코로나로 인해 일상을 잃어버린 청년에 관해 이야기했다.
2회차 프로그램에서는 《뉴턴의 아뜰리에》를 펴낸 김상욱 물리학자와 두 대의 바이올린, 한 대의 비올라와 첼로를 연주하는 지박 & VRI 스트링 콰르텟이 함께 ‘경계를 넘어: 예술과 과학’이라는 소제목으로 사고를 확장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 회차인 10월 12일에는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로 알려진 한강 작가와 가수 장필순, 밴드 엔분의일이 ‘오늘, 다시 마주한 우리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과거의 아픈 역사와 오늘에 관해 함께 이야기했다. 그중 마지막 회차의 현장을 직접 찾았다.

인지하지 못했던 사사로운 순간들

보통의 화요일 저녁, 퇴근 후 필자는 부지런히 버스를 타고 노원문화예술회관으로 향했다. 각자의 터전에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꽉 찬 버스엔 노곤한 공기가 가득했다. 정류장에서 내려 공연장에 들어서니 버스에서와는 다른 공기가 감지됐다. 이제는 습관처럼 체화된, 건물 입구에서 실시하는 발열 점검과 손 소독을 마치고 들어간 공연장 로비는 맨부커상을 수상한 세계적 작가 한강과 오랜 시간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견고하게 이어가는 가수 장필순 등을 만나기 위해 일찍부터 걸음한 관객들로 북적거렸다. 한 손에 한강 작가의 신작을 쥐고 바쁘게 좌석의 위치를 확인하는 20대 관객부터 필자처럼 퇴근 후 종종걸음으로 찾아온 30대 관객과 친구와 함께 온 중장년 관객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문화예술 행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설레고 높은 온도의 에너지가 모처럼 반가웠다.
시작은 노원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밴드 엔분의일이 열었다. 밴드의 보컬 신성규는 “공연을 앞두고 한강 작가의 작품에 관해 몇 마디 감상을 적어보려다 이내 글을 지워버렸다”고 밝혔다. 대신 그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곡의 구성에 신경 썼단다. 이런 북콘서트가 마련된 이유도 거기에 있을 테다. 문학을 반드시 언어로만 소화할 필요는 없으며, 감상의 표현이 다양할수록 해석도 풍성해질 테니 말이다. 네 곡을 열창한 엔분의일의 공연이 끝나자 무대 밑에선 한강 작가와 허희 문학평론가가 리프트를 타고 등장했다. 북콘서트에선 쉬 보지 못했던 등장에 관객은 뜨거운 박수로 두 사람을 반겼다.
한강 작가 역시 “신작 출간 이후 여러 매체를 통해 책 이야기를 했지만, 이렇게 독자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자리는 정말 오랜만이라 감격스럽다”며 인사를 전했다. 마음을 다해 반갑게 인사하고 맞이하는 자리를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이 또한 새삼스러운 순간이었다.
허희 평론가의 질문으로 이어가는 두 사람의 대화는 1시간이 훌쩍 넘도록 계속됐다.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를 비롯해 제주 4·3 사건이 배경인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국가 폭력에 의한 아픈 역사를 꺼내게 된 계기부터 소설의 소재로 등장하는 콩죽과 에어컨이 고장 난 무더운 여름의 기억 등 사사로운 이야기까지, 대화의 폭은 넓고 깊었다. 마치 무대 뒤를 살펴보는 백스테이지 투어처럼 소설의 앞과 뒤, 구석구석을 작가에게 소개받을 수 있다는 점이 북콘서트의 큰 장점이 아닐까.
한참의 대화 후엔 작가의 음성으로 《작별하지 않는다》의 한 대목을 들어보는 낭독의 시간도 이어졌다. 소설에 비중 있게 등장하는 눈이 내리는 장면을 한강 작가의 음성으로 듣고 있노라면 겨울 풍경이 눈앞에 명료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그리고 곧이어 가수 장필순이 첫 곡 <아침을 맞으러>를 부르며 무대 위에 올랐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소설을 쓴 작가와 제주에 자리 잡은 음악인, 두 사람의 만남과 인연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것도 퍽 새로웠다. 장필순이 <제비꽃>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등 네 곡을 이어 부르며 행사는 마무리됐다. 사이사이 거리를 띄운 좌석 곳곳을 음악이 마저 채운 두 시간 반가량의 밀도 높은 시간이었다.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를 넘어 무대 위에 책을 올리고 음악을 이어 듣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고 또 찾는 이유는 뭘까. 결국 삶과 사람에 관해 묻고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를 응원하고 싶은 동시대인의 의지가 아닐까.
“사춘기 이전부터 붙들고 있는 여러 의문 중에 하나는 ‘인간이란 뭔가’라는 질문이었다”는 한강 작가는 마지막으로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던 마음을 책 속에 들어와 느껴준 분들과 이곳을 찾아준 분들께 감사하다”며 인사를 전했다.
공연장을 나서며 한강 작가의 마지막 응원이 한동안 마음에 남았다. “요즘은 무탈하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는 것 같다. 모두들 무탈하시라”

김영민 서울문화재단 홍보IT팀 | 사진 제공 노원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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