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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11월호

차분한 목소리에 스며들다
문학 들려주는 사람들

문학 축제가 많이 열렸다. 내용을 보니 문학을 말로 전하는, 독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문학을 듣는 행사가 많았다. 시를 모아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고, 책을 읽어주고, 모여서 수다를 떨기도 한다. [문화+서울]의 기획자 두 명이 문학을 들려주는 콘텐츠를 찾아 체험기를 작성했다.

듣는 인간이아림의
문학 듣는 일상

라디오로 시작하는 하루. 요즘은 아날로그 오디오보다 휴대전화 앱을 주로 이용한다.
(휴대전화 화면은 <김새벽 황인찬의 시로 만난 세계>)

아침 7시. 알람이 울리고도 아직 정신이 들려면 10여 분은 더 걸리겠지만, 좀비처럼 일어나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라디오를 켜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휴대전화의 라디오 앱이고, 10년 혹은 20년 전에는 아날로그 오디오의 FM수신버튼이었다. 라디오 청취는 나의 오랜 습관이다. 바쁜 아침에는 이만한 시계가 없고, 고단한 하루를 잊고 싶은 밤엔 또 이만한 친구가 없다. 특히 혼자 자취를 하면서는 무료한 시간을 잊고 적막한 공기도 채울 겸 뭐든 귀에 들리는 것을 틀어놓곤 한다. 들려오는 이야기나 정보에 집중하다 보면 청소·빨래 등 집안일의 지루함과 귀찮음이 덜어지기도 하니까. 라디오뿐만 아니라 팟캐스트·오디오북 등 듣는 콘텐츠가 점점 다양해진 요즘, 보기보다 듣는 인간인 나의 귀는 바빠졌다. 수건을 개며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는 팟캐스트를 정주행하고, 설거지하는 동안 10분짜리 경제 뉴스를 들으며 세상사에 까막눈이 되지 말자 다짐한다. 집중력 거지인 나도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니, 당최 듣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들리는 시 만세!

종종 오디오 콘텐츠 앱을 켜고 들을 만한 프로그램을 검색하며 여기저기 구독 버튼을 누른다. 당장 듣지 않아도 ‘마음 당길 때가 올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김새벽 황인찬의 시로 만난 세계>(이하 ‘시만세’)도 그렇게 ‘내 리스트’에 저장한 프로그램이었다. “여러 편의 시를 이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이야기를 만듭니다”라는 소개 글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영화에서 주로 낮고 차분하게 말하던 김새벽 배우의 톤을 좋아했고,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황인찬 시인의 목소리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이건 꿀조합이다!’ 싶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어느 휴일 아침, 머리는 떡졌지만 우아한 사람이 되고 싶어 오디오 앱에서 ‘시만세’ 4회를 플레이했다. 두 사람의 음성으로 시 두 편과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른 10분, 나는 잠깐 다른 시간을 산 것처럼 느꼈다. 해당 회의 중심이 된 <나의 프랑스식 엄마>(배수연)와 <내가 듣는 에릭 사티>(장석남)는 전혀 다른 내용의 시였지만, 배경음악으로도 등장한 에릭 사티의 피아노곡 <짐노페디>와 맞물리며 하나의 새로운 오디오드라마로 탄생했다. 마치 단편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랄까. 4회 방송을 두어 번 다시 듣고 다른 회를 더 이어 들었다. 뚜렷한 서사 없이도, 동류의 주제·소재가 스민 시 2~3편이 대화처럼 엮이며 형성되는 특유의 공기가 매력적이었다. 시는 읽을 때보다 들을 때 더 잘 흡수된다는 걸 나는 여러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 있다. 막상 시집을 구입하면 열 페이지도 읽지 못한 채 책을 덮는 일이 많지만, 집중해서 ‘들은’ 시는 잊히지 않는다. 발화되는 언어를 그대로 이미지로 떠올리다 보면 해석의 강박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다음 날 서점에 들러, 시만세에서 여러 작품이 언급된 이제니 시인의 시집을 샀다. 시를 읽을 때는 늘 불가해함에 맞설 용기가 필요했는데, 들어서 좋았던 경험으로부터 산문시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시만세 방송은 10월 현재 50회를 넘겼다. 방송을 조금씩 아껴 들으며 책장에 묵혀둔 시집들을 요즘 호기롭게 하나 둘씩 꺼내 보고 있다.

대신 책 읽어주는 오디오북

오디오 콘텐츠가 다양화되면서 오디오북 수요도 늘었다는 뉴스를 한두 해 전부터 꾸준히 접했다. 책이나 문학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자주 들었지만 책 자체를 귀로 듣는 일에 나는 솔직히 반신반의해 왔다. 짧은 시나 정보성 글이라면 몰라도 호흡이 긴 소설을 과연 처음부터 끝까지 들을 수 있을지, 소설 문체의 매력을 들어서도 느낄수 있을지 당최 상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침 자주 이용하는 전자책 플랫폼에서 일부 도서의 오디오북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한 작품을 골라 들어보기로 했다. 바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결코 녹록지 않은 작품이라고 들은 바 있지만 코로나 시국 내내 숙제처럼 마음을 괴롭힌 작품이었기에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만족도는 80% 정도. 여기엔 숙제를 끝냈다는 성취감이 큰 몫을 하는데, 그 성취가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고도 출퇴근길이나 자투리 시간에 가능했다는 점이 주효했다. 성우의 차분한 목소리는 집중력을 높였고, 눈으로 글자를 따라갈 때와 달리 내 생각을 더 많이 보태며 책을 들을 수 있었다. ‘위드코로나’를 앞둔 시점에 접한 《페스트》는 위로와 착잡함을 동시에 안기는 작품이었다. 그럼 불만족 20%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우선 나는 소설에 한해서는 ‘읽기’에 익숙한 탓에, 읽을 때 발견할 수 있는 언어적 아름다움을 청각으로는 섬세하게 파악하기 어려울 거라는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 또 다른 이유는 낭독의 방식에 있다. 내가 접한 오디오북은 한 명의 성우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톤으로 글을 낭독해, 다양한 등장인물이 대화를 나눌 때 종종 어느 것이 A 또는 B의 말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었다. 참고로 오디오북은 기계가 낭독하는 TTStext to speech,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하는 기술 기능으로도 들을 수 있는데 문학작품에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스릴 넘치는 장면에서 “빨리 와, 서둘러!” 같은 대사를 기계가 아주 밝고 스위트하게 읽는 바람에 긴장감이 와장창 깨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물론 소설의 분위기나 대사를 실감 나게 살리는 오디오북도 많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KBS 한민족방송의 <라디오 문학관>을 추천받았다. 한 회 50분 동안 단편소설 한 편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으로, 글의 따옴표 부분은 성우들의 연기와 효과음으로 살려낸다. 방송사 라디오 앱은 물론 다른 팟캐스트 플랫폼에서도 들을 수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방송과 플랫폼에서 문학은 꾸준히 읽히고 재구성된다. 들을수록 더 읽고(=사고) 싶어진다는 이상한 단점에 통장이 ‘텅장’ 되는 속도가 빨라졌지만, 각각의 매력이 너무나 분명해서 어느 하나 포기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읽는 인간장영수의
문학 듣는 일상

영업당해 구매한 책들(본문에 언급한 책은 전자책으로구매했다.)

나는 [문화+서울]의 글을 다듬는 편집자다.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는 일상에서 두 단어 ‘많은 사람들’을 쓴 많은 사람의 글을 보며 “‘많은’이 이미 있으니까 ‘들’은 중복 표현으로 삭제해야지”라고 수십 번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금 비교적 길게 쓴 지루한 문장에 내 심정을 함축했으니 다시 읽어 속에 담긴 마음을 느껴주길 바란다.
재주가 없어 이렇게 부탁할 수밖에 없는 나와 달리 소설가나 시인은 대단하다. 문장 어디에도 단어 ‘즐겁다’가 없는데 등장인물의 즐거워하는 표정이 머릿속에 떠오르게끔 만든다. 잠깐 딴 길로 새보면, 나는 공감 능력 부족한 INTP다. 성격 유형 검사 MBTI에 따르면 INTP는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서 평범함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누구보다 평범한데 평범하기 싫어하는 똥고집 정도가 적절하겠다.(물론 나를 빗댄 말이지만 동료 INTP에게 미안하지 않다. 아마 그들도 수긍할 거다.) 본론으로 돌아와, 그래서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글에 함축된 감정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람이다. 마치 자신도 직접 겪은 일인 양 안타깝고 즐겁고 무섭고 화내면서 문학작품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라디오나 팟캐스트에서 정말 재미있다며 자신이 읽은 책을 영업한다. 종이에 적힌 글을 보면 고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내게 나긋한 목소리로 문학은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한다. 글에는 분위기와 감정이 녹아 있다고 말한다. 설득당한 나는 그들이 소개한 책을 구매하고 계좌 잔고를 알리는 스마트폰의 진동을 느끼는 일상을 반복했다. 보지는 않았다. 책도 잔고도.

책을 마음에 담은 채 떠드는 사람들

이 체험기는 근 한 달간 나를 설득한 사람들을 나열하는 글이다. 첫 번째는 라디오 방송 <윤고은의 EBS 북카페>에 출연하는 서효인 시인이다. 그가 10월 1일 방송 2부에서 4분 50초부터 7분 18초까지 최진영 소설가의 《내가 되는 꿈》을 소개하며 문장을 읊조렸다. “받는 사람의 주소를 쓰면서 잠깐 망설였다. 1년 후에도 지금 사는 집에 살고 있을까.” 적금 해지한 돈으로 월세를 내면서 살고 있으니
어느 날부터는 이 집에 자신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구절이다. 그러니까 받는 이에게 편지 보내기를 망설인다. 이후에도 낭독은 계속되지만 두 문장을 듣고 이미 내 머리는 책을 읽어볼까 생각했다. 다시 짚겠다. 마음이 아니라 머리가 앞섰다. 이런 나와 달리 서효인 시인은 말한다. “저 낭독하는데 약간 울컥한 거예요. 최진영 작가의 문장이 짧고 간결하고 일상어로 이뤄졌는데 가슴을 후벼파는 그런 게 있네요.”
그가 6분 8초쯤에 목의 울림이 살짝 떨리며 “헛된 꿈같았다”를 말할 때 나는 묘한 부러움을 느꼈다. 어떤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단지 가슴이 미어지는 마음. 그 공감이 부러워 ‘최진영’을 검색했다. 그의 책을 읽으면 나도 애인의 “베란다에서 담배 냄새가 올라와”라는 말에 “창문 닫아줘?” 말고 “머리 아팠지(울음)(울음)”라고 진심으로 대답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나는 《내가 되는 꿈》이 아니라 《해가 지는 곳으로》를 구매했다. 동료 INTP라면 청개구리 같은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누가 추천해서가 아니라 내가 고른 책 내 돈으로 샀다, 라는 심정을 말이다. 책 소개 글에 “최진영이 최초로 선보이는 아포칼립스 소설”이라기에 ‘바로 구매’를 눌렀다.
사실 나는 장르소설을 좋아한다. 그런데 <라디오 북클럽 김겨울입니다>에 《씨네21》 이다혜 기자가 출연해 장르소설의 고전을 소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10월 10일부터 ‘이다혜의 스포일러’가 새로 시작됐다. 이건 못 참지.
진행자 김겨울이 묻는다.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에서 추천할 작품 있을까요?” 이다혜 기자가 답한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는 <검은 고양이>. 초등학교 때 비 오는 날에는 수업 안 할라고 (둘이 동시에)‘선생님. 무서운 얘기 해주세요!’ (웃음)(웃음). 그래서 선생님이 <검은 고양이> 얘기를 해주셨어요. 이야기를 듣다가 다들 놀라서 비명을 질렀던 기억이 있어요. 마지막에 일종의 반전이 있거든요.” 새삼 책을 주제로 녹음 부스에서 이렇게 즐겁게 떠드는 사람들이 있어 덩달아 즐거웠다. 단편은 짧으니까 전자책 구독 앱에서 찾아 바로 읽었다. 밤 12시가 지난 택시 안에서.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한동안 검은 고양이의 이빨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저도 그게 늘 궁금한 부분인데요.” 뜬금없이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신용목 시인이 출연한 라디오 방송 <오늘도 읽음>에서 한 말을 들으며 머릿속에서 박수를 쳤기에 먼저 언급한다. 그 부분을 조금 편집해서 옮긴다.
진행자 송정애 아나운서가 묻는다. “요즘 젊은이들이 시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있을까요?” 신용목 시인이 답한다.
“저도 그게 늘 궁금한 부분인데요. 이런 생각은 늘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인이 출현하면 새로움만으로 기성 시인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패널 반응: “크~~~”) 왜냐하면 시는 그대로 따라 하거나 답습하는 장르가 아니니까요. 그들이 가진 새로움 자체가 현재가 아니라 다음 무언가를 사유할 수 있는 어떤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들의 자유로움, 언제든 결합하고 언제든 떨어질 수 있는, 그 태도가 부럽더라고요. 부러워서 늘 선망하고 흠모하면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그의 시집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가 궁금해졌다.지금껏 느낀 게 있으니 이 시집은 온 힘을 다해 반드시 공감할 것이다. 이미 머리로 공감하겠다는 마음가짐부터가 글러 먹었지만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콘텐츠를 들으며 황정은 《일기》, 마영신 《엄마들》,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등을 구매했다. 여전히 계좌 잔고는 보지 않았고, 앞으로 문학을 읽고 들을 때 ‘종이에 적힌 글을 읽는다’ ‘말을 단순히 듣는다’ 따위의 생각은 머릿속 휴지통에 버리기로 했다.

좋은 기회로 TBS 라디오 <오늘도 읽음> 녹음 현장을 방문했다.

2021 서울국제작가축제 특집 라디오 방송

축제 행사의 일환으로 30여 명의 작가가 TBS 라디오 특집 방송에 출연했다. 서울문화재단 누리집(sfac.or.kr)에서 ‘문학에 물들다 오디오 아카이브’를 검색 해 10월 한 달간 진행한 특집 방송을 들을 수 있다.
링크 url.kr/b8ji7t

글·사진 이아림, 장영수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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