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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대한민국예술원을 비판한 단편소설 ‘부장급’ 소설가가 쏘아 올린 예술원 개혁 신호탄

이기호 소설가가 대한민국예술원(예술원)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예술원 개혁을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에 나섰다. 이기호가 격월간 문예지 《악스트》
2021년 7·8월호에 발표한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문학 분과를 중심으로 예술원에 제기되는 비판과 불만을 소개하고 이와 관련한 대책을 제시하는, 그야말로 ‘보고서’ 형식의 소설이다.

대한민국예술원 누리집 갈무리

예술원을 둘러싼 목소리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에서 이기호가 지적하는 예술원의 문제는 크게 세 가지. 회원 상당수가 대학교수 출신으로 연금을 받는 처지에 예술원 회원으로서 매달 정액 수당 180만 원과 각종 회의 수당을 받는다는 사실,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사업은 전무하다는 사실, 신입 회원을 선출할 때 기존 회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친소 관계에 얽매일 수 있다는 사실 등이다. 현재 예술원이 하는 가장 큰 사업이라면 각 분야 원로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한 ‘대한민국예술원상’ 시상(상금 각 1억 원)을 들 수 있고, 강연회 등 행사 관련 예산도 책정됐지만 실제로 집행하는 일은 드물다. 예술원의 기능은 원로 예술가인 회원들에 대한 예우가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기호는 프랑스·미국·독일 예술원의 사례와 비교하며 대한민국예술원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대한민국예술원 중장기 발전 계획 연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08)를 참조한 해외 사례에 따르면, 세 나라 모두 예술원 회원에게 정액 수당은 따로 주지 않으며 미국의 경우에는 오히려 회원들이 연회비를 납부한다. 세 나라 예술원의 사업도 공쿠르상을 비롯한 각종 상의 심사, 신진 예술가에 대한 지원과 교육, 장학 프로그램, 창작 환경 개선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한민국예술원이 회원인 원로 예술인에 대한 예우를 존재 이유로 삼는 반면, 세 나라 예술원은 젊은 예술인을 지원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이기호의 소설이 발표된 뒤 문단 안팎에서는 동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순원 소설가는 ‘대한민국예술원을 폐지하라’는 직설적 제목의 글을 《한겨레》에 기고했고, 송경동 시인도 예술원을 비판하는 시를 실었다. 이시영 시인을 비롯해 적잖은 문인이 이기호의 문제 제기에 동조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보탰다. 관련 기사가 나간 뒤 필자에게 개별적으로 문자메시지와 메일을 보내 공감을 표한 문인도 여럿이었다. 물론 일부 ‘다른’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이기호가 예로 든 세 나라(프랑스·미국·독일)에서 예술원 회원들에게 정액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액 수당을 지급하는 다른 나라의 사례는 누락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예술원 발전전략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6)에 따르면 중국은 1년에 최소 3,000위안(약 50만 원)의 기본 경비를 지원하며, 일본은 연 300만 엔(약 3,100만 원)의 회원 수당을 지급한다. 보다시피 둘 다 동아시아의 이웃 나라들이다. 장유유서라는 유교 질서의 영향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작가 대부분이 작가협회에 소속돼 있고 1급·2급·3급 등 급수에 따라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고 있다. 예술원 회원에 대한 예우 역시 그 연장이라고 이해할 법하다. 유럽과 미국의 예술원이 민간 설립 형태로 운영되는 반면, 일본예술원과 대한민국예술원은 국가 주도로 설립돼 재원도 국가에서 충당한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에게 지급하는 정액 수당 제도 역시 일본을 본뜬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1907년 ‘제국미술원’으로 출발해 ‘제국예술원’을 거쳐 1947년 지금의 ‘일본예술원’으로 이름을 바꾼 역사에서 보듯 일본예술원은 국가(주의)의 짙은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다. 그런 일본예술원을 모범으로 삼아야 옳을까.

예술원의 미래는?

예술원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에는 ‘예우냐 지원이냐’가 자리 잡고 있다. 원로 예술인의 평생 공적을 평가하고 그에 합당한 예우를 할지, 아니면 원로 예술인들의 권위와 영향력을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데에 활용할지의 선택이다. 예술원 회원 가운데에는 교수 출신이 아니고 실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다. 예술원 회장인 이근배 시인도 필자와 전화 인터뷰하면서 “평생을 가난 속에 예술 외길을 걸어온 원로 예술가에게 그 정도 지원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취 지로 발언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이기호는 예의 단편소설에서 대부분 회원 정액 수당인 예술원 1년 예산이 32억 6,500만 원(2020년)인 데 반해 2021년 ‘아르코청년예술가 지원사업’ 총 예산이 9억 6,000만 원에 지나지 않는 사실을 지적했다. 코로나 사태가 겹쳐서 젊은 예술가들이 예술 창작 이전에 심각한 생계 위협에 시달린다는 소식도 연이어 들려오는 실정이다. 여기에다가 예술원 문학 분과 회원인 김원일 소설가의 친동생인 김원우 소설가가 올해 예술원상 문학 분과 수상자로 선정됐고, 미술 부문에서는 창작 역량이 의심스러운 재벌 총수가 수상자로 선정되는 등 예술원 상의 공정성과 적절성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기호는 스스로를 문단의 ‘부장급’ 작가라 소개하며 “부끄러움” 때문에 예술원에 대한 문제 제기에 나섰다고 밝혔다. 그간 예술원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없던 건 아니지만, 이번만큼의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이기호가 쏘아 올린 예술원 개혁 신호탄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궁금하다.

최재봉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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