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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혹은 대담

8월호

지금, 우리의 여행- 좋은 여행이란 무엇인가 인문360, 제8회 인간과 문화 포럼

‘인문360’은 사회와 문화의 다양한 인문 관련 이슈를 만나볼 수 있는 온라인 인문 플랫폼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운영 하고 있다. ‘인문360’에서는 우리 일상과 사회·문화적 변화에 대한 인문적 담론을 확산하기 위해 매달 첫째 주 목요일에 인간과 문화 포럼을 진행한 다. 제8회 포럼에서는 일상에 깊이 스며든 여행에 대한 다양한 인문학적 관 점을 들어봤다. 팬데믹 상황에서 여행에 대한 갈망이 높아지는 가운데, 여행에 어떤 심리적 욕망이 투영돼 있는지, 현시대의 여행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좋은 여행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제8회 인간과 문화 포럼 ‘지금, 우리의 여행-좋은 여행이란 무엇인가’ 현장
일시
2021년 7월 1일(목) 오후 2시~3시 40분
장소
  • 온라인 생중계 (인문360 유튜브 채널 url.kr/lynu9p)
주최·주관
  • 문화체육관광부·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사회
  • 장동석 출판평론가
발제 및 토론
  • 정여울 작가
  • 김다영 히치하이커 대표
  • 김명철 심리학자

장동석
출판평론가

김명철
심리학자

정여울
작가

김다영
히치하이커 대표

발제 1 여행의 쓸모: 삶을 성찰하는 여행, 지속 가능한 여행을 꿈꾸다
정여울 작가

여행할 때 많은 것을 빨리 보고 싶어 하는 제 욕심과 급한 성미를 진정 시켜 주는 문장이 있습니다. ‘너무 빨리 걷지 말라.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어라’라는 아프리카 격언인데요. 우리는 어떤 목적과 목표를 따라가는 여행에 길들어 있습니다. 제 첫 여행도 5개국을 10박 11일에 도는 일정이었어요. 그 여행 후에 짧은 기간에 많은 곳을 방문하는 게 좋지만은 않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마다 성격과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자기만의 여행을 디자인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행은 예술가를 따라가는 여행이에요. 헤르만 헤세나 빈센트 반 고흐처럼 제가 사랑하는 대상이 살았던 흔적을 찾아다니면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하는 여행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됐죠.
코로나 이전에는 과시를 목적으로 하거나 과소비하는 여행에 대한 비판도 많았는데요. 최근에는 여행 문화가 변하고 있습니다. 랜선 여행이 여행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고요.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환경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여행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노르웨이 사람들은 피오르fjord와 같은 자연환경을 관광자원이 아니라 잘 보존하고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아름다운 자연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을 지키는 일이 관광객을 유치하는 일보다 중요한 거죠.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지구를 오랫동안 지킬 수 있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여행하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저는 숙소에 가면 수건을 딱 1개만 쓰겠다는 결심을 해요. 그러면 진짜 1개로 1박 2일을 충분히 지낼 수 있어요. 평소에 사용하는 비누와 샴푸를 챙겨 다니면 일회용품을 안 써도 되고요. 이런 고민을 할 때 환경에 폐를 덜 끼치는 여행을 할 수 있어요. 몇 년 전, 베니스에서 관광객과 현지인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 적이 있는데요. 우리가 그 장소에 가는 여행이 주민분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도 고민 하면 좋겠습니다. 이제 여행의 양을 넘어 내용과 의미를 생각하는 여행으로 이행하는 단계이고, 팬데믹으로 인해 인류 전체에게 ‘새로운 여행의 방식’을 고민할 기회가 생긴 것 같습니다.
여행에 대한 글쓰기나 여행 작가가 되는 법에 대해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도 많은데요. 여행용 글쓰기가 따로 있지 않고, 매일 읽고 쓰는 삶 그 자체를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원래 내성적이고 집에 있기를 좋아했는데요. 여행하면서 제게 없던 외향성과 삶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베를린에서 두 달 정도 살아본 경험이 제 인생을 바꿨는데요. 물가가 저렴한 곳에 살면서 돈 없이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자신이 번 돈을 집이 아닌 자 신의 배움과 여행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는 제대로 한번 놀아본 적도 없이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기 위한 여행만 해왔다는 반성을 했어요. 베를린에서는 베를린 사람처럼, 정말 그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처럼 살아보는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우리는 그동안 너무 목표지에서 목표지로 이동하는 깃발 꽂기 식의 여행을 해왔어요. 우리의 여행이 목표에서 과정으로, 실용적인 목적이 아닌 의미를 찾는 여행으로 바뀌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혼자 생각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작가로서는 혼자 하는 여행이 좋았어요. 글쓰기는 내성적인 사람의 간절한 무기라고 생각해요. 여행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글쓰기를 통해 가능해요. 여행은 그 장소에 대한 글을 한 편 썼을 때 끝나거든요. 사진 10장 찍을 시간에 1장만 찍고 메모라도 해보세요. 때로는 길을 잃을 자유도 필요하고요. 만날 순 없지만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시간 여행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기억됩니다. 언젠가 팬데믹이 끝나고 많은 분이 진 정으로 자신의 자유와 사랑과 희망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발제 2 여행의 형태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김다영 히치하이커 대표

우리의 생활양식은 코로나 이후 많이 변했습니다. 오프라인 활동이 제한돼 온라인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고요. 여러 여행업체에서 랜선 여행 상품을 내놓아 온라인에서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집에 머물면서 일하기 때문에 재택근무 시간이 증가했고요. 전 세계적으로 일과 일상, 여행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고, 지역에서 소비 하는 경향도 강해졌습니다.
먼저 랜선 여행의 사례를 보면, 에어비앤Airbnb에서 진행한 랜선 여행은 보기만 하는 여행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줌Zoom을 통해 참여하면 서 즐길 수 있어서 인기가 높았습니다. 저는 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 립’에서 진행한 랜선 여행을 경험해 봤는데요. 이상하게도 여행지 소개보다 댓글이 더 재미있었어요. 사람들이 여행지에 대한 정보보다 연결에 목말라 있음을 확인한 거죠. 몰입 경험 콘텐츠 플랫폼 ‘리얼월 드’는 이용자가 여행지 현장을 직접 걸으면서 스마트폰 게임을 즐기는 앱으로, 끊임없이 미션이 주어지고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로 풀어야 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여러 명이 여행할 수 없으니 혼자 혹은 아는 사람들과 즐기는 여행이 기술 기반으로 구현되고 있는 겁니다. 두 번째 변화는 재택근무인데요. 코로나 이후 ‘한 달 살기’를 키워드로 한 여행 서비스가 흥했습니다. 한곳에 머무르는 여행을 추구하다 보니 ‘한 달 살기’ 숙소만 판매하는 플랫폼이 많이 성장했고요. 일본에서 는 한 달 동안 전국의 제휴 숙박시설을 옮겨 다니며 살 수 있는 회원제 이동형 거주 플랫폼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마니아층만 좋아하던 독채형 숙소는 코로나 이후 대세가 됐고요. ‘남의 집 홈 오피스’라는 집 한편을 사무 공간으로 대여해 주는 공유 플랫폼까지 생겼습니다. 일 하는 공간, 거주하는 공간, 여행의 공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하고 있고요. 도시가 위험하다 보니 사람들은 숲·산·바다처럼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갑니다. 미국에서 코로나 이후 가장 뜨겁게 떠오른 기업 중 하 나가 캠프 사이트를 예약할 수 있는 ‘힙캠프Hipcamp’라는 스타트업입니다. 한국에서는 노숙과도 같던 ‘차박’이 감성적으로 꾸미는 인증샷 의 배경이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소비는 이제 가치 소비를 기반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조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plogging과 해변에서 쓰레기를 줍는 비치코밍beachcombing이 여행 상품으로 나와 있고요. 여행을 좀 더 건강하고 친환경적으로 하려는 고민이 여행 상품에도 녹아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건강한 소비를 선택할 때 기업도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차량 공유 서비스인 우버Uber는 ‘우버 그린’이라는 친환경 전기차 예약 옵션을 내놨고, 2040년까지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바꾼다는 계획입니다. 실시간으로 최저가 항공권을 찾아주는 스카이스캐너Skyscanner는 최근 친환경 옵션의 가격을 별도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어떤 가치를 기반으로 소비하느냐에 따라 기업이 바뀔 수 있고, 여행 산업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발제 3 과시로서의 여행: 여행 커뮤니케이션의 양면
김명철 심리학자

“황제·국왕·공작·후작·백작·기사·시민들 그리고 여러 시대의 인간들과 여러 지역의 다양함에 대해서 알기를 원하는 분들이여. 이 책을 잡고 읽어보시라. 여기서 여러분은 대아르메니아와 페르시아, 타타르와 인도 그리고 여러 지방의 가장 경이롭고 매우 다른 것들을 모두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베니스의 현명하고 고귀한 시민이신 마르코 폴로님께서 자기 눈으로 직접 본 것에 관해서 우리의 이 책은 그가 말해 주는 순서대로 분명히 서술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베니스의 상인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 록》의 서문인데요. 사람들이 처음 지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 여행은 개인의 행복을 위한 활동이 아니었습니다. 여행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정보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활동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호방한 서문을 마르코 폴로가 쓸 수 있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는 여가와 행복으로서의 의미가 추가됐지만, 여행은 자신의 개성과 긍정적인 특성을 ‘과시’하는 데 쓰인 행위였습니다.
지구상에서 어떤 거리를 이동하는 행동은 굉장히 커뮤니케이션적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여행이 개인적인 의미를 갖기 시작한 이후에도 커뮤니케이션 기능은 강력하게 유지됩니다. 여행을 통해 어떤 모습을 과시하면 사람들은 정말 그렇다고 믿어줍니다. 왜냐면 여행은 굉장히 ‘값비싼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수컷 공작은 화려한 깃털 때문에 잘 걷지도 날지도 못하지만,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평생 먹은 칼로리를 다 투자해 화려한 깃털을 만들어 냅니다. 이 정도로 많은 것을 투자하고 희생하기 때문에 암컷 공작은 깃털을 보고 그 사실을 믿어줍니다. 이것이 값비싼 신호의 개념입니 다. 인간도 자기 신호의 가치를 높이고 싶을 때 많은 투자를 하고 희생합니다. 원래 여행은 힘들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여행을 통해 과시하는 자신의 특성은 다른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1990년대에 자유여행을 다녀온 1세대는 용기 있고 틀에 갇혀 있지 않은 지적인 사람으로 받아들여졌어요. 그런데 요즘은 여행이 더는 값비싼 신호가 아닙니다. 여행하는 방법 자체가 쉬워졌고, 여행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는 비용이 싸졌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접속 환경이 열악하던 시절에는 여행 커뮤니케이션이 굉장히 비싼 활동이었는데요. 와이파이와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하고 여행하면서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비용 자체가 싸져서 이제는 비싼 신호로 기능하지 못하게 됐어요.
여행의 신호가 값싸진 상태에서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살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신호를 다시 비싸게 만드는 거예요. 아직 남아 있는,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곳을 여행하는 것인데 결코 권해 드릴 수는 없고요. 두 번째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만한 의미가 있는 내용을 커뮤니케이션에 담아내는 거예요. 《나를 부르는 숲》은 저자 빌 브라이슨이 친구 한 명과 ‘애팔래치안 트레일Appalachian Trail’ 코스 트레킹을 하면서 스스로 새로 태어나고 자연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가 담긴 책인데요. 여행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살리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이 찾아야 합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이야기, 새로운 사람이 되는 이야기 혹은 몸이 불편하거나 여행을 할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 여행하는 이야기 등 사람들에게 의미를 주는 핵심 콘텐츠를 찾아 나가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여행을 갈망하는 심리
장동석

본격적으로 토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다른 분들의 발제를 어떻게 들으셨는지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정여울

저는 여행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좋아하는데요. 두 분의 여행을 보는 시각이 저와는 다르다는 사실이 재미있었어요. 저한테 편하고 익숙하고 좋은 여행만 했으니 좀 더 모험을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여행은 베블런Thorstein Veblen의 ‘과시적 소비’ 개념과도 통해요. 사실 저는 돈 없이 여행을 많이 했거든요. 처음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을 썼을 때, 항상 여행 경비가 부족했지만 시간강사와 문학 평론으로 아주 조금씩 돈을 벌어 유럽 여행을 한 것이 저에게는 더욱 절실하고 절박한 체험이었어요. 여행을 가서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적응하려고 안간힘을 썼다는 자체가 저 자신을 바꾸는 체험이었어요. 마르코 폴로 시대에 태어났으면 여행은 커녕 동네 밖으로도 못 벗어났을 거예요. 당시 여행은 특권층에게 허락된 아주 제한된 체험이었기 때문이죠. 제가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여성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차별을 받았겠죠. 지금은 누구나 여행할 수 있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행을 할 수 있던 것 같아요. 많은 분이 자신의 존재 해방을 위해 여행을 계획하고 더 좋은 여행을 하면 좋겠습니다.

김다영

저는 두 분 작가님의 여행 사진을 보면서 여행을 갈망하고 순수하게 접근하던 시절이 떠올랐어요. 특히 신호보다는 전달하는 내용에 의미를 담아야 한다는 부분에서 통찰을 얻었어요. 여행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글쓰기거든요. 단순히 경험을 전달하는 것도 좋지만 삶의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서 담을 때 좋은 여행의 긍정적 효과를 더 많이 공유할 수 있습니다.

장동석

토론 첫 번째 질문은 ‘현대인은 도대체 왜 여행을 갈망하는가’입니다. 사실 오늘 이 행사를 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김명철

사실 저는 현대인 중에 여행을 갈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거꾸로 왜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 사진 올리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지에 대해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 해요. 왜 여행이 일반화된 시대에도 여행 갔다 온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지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그 속에서 역으로 우리가 여행에 부여하는 높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데요.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보통 사람이 하기 힘든 놀라운 경험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사람은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새로운 지식과 가치관을 갖게 해주는 것이 여행이기 때문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다영

여행에 대한 열망이 유독 강해진 시점이 있는데요. 바로 그 열망을 현실화하기 쉬워졌을 때예요. 2006년 저비용항공이 나온 시점 부터 진입 장벽이 한번 크게 낮아졌고요. 그다음은 2018년 주 52시간 근무제의 도입입니다. 돈과 시간 문제가 해결되면서 해외여행이 대중화된 거죠. 여행은 새로운 나라로 의식주를 통째로 옮겨가는 행위다 보니 많은 소비를 하게 되는데요. 남의 나라에 돈을 쓰러 가면 그 나라에 대한 인식 자체가 굉장히 달라집니다. 경험은 기억 속에서 열망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거든요. 현대인의 여행에 대한 열망이 커진 것은 진입장벽이 낮아진 것과 직접 경험 소비를 통해 체득한 것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정여울

여행은 감가상각이 발생하지 않는 유일한 소비 체험이 아닐까 싶어요. 여행을 많이 하면 여행이 지겨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여행에 대한 열망이 더 생기거든요. 여행을 많이 한 분들이 더 자주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저는 딸만 셋인 집안의 무서운 엄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항상 긴장된 삶을 살았어요. 그런데 여행을 다니며 수많은 외국 여행자를 보면서 나를 해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여러 경험을 통해 마음이 조금씩 허물어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제가 자유를 꿈꾸는 사람이고 조직 생활을 못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취직을 포기하고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해준 것도 여행이에요. 새로운 꿈을 꾸게 해주고, 제 안의 밝은 에너지를 꺼내주는 것이 여행의 힘 같아요. 많은 분이 저처럼 여행을 갈망하는 것도,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우리 삶이 훨씬 나아지고 좋은 사람이 돼 있을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동석

저는 2000년에 미얀마를 15일 정도 다녀왔는데요. 21년이 지났는데도 같이 갔던 사람들을 만나면 여전히 미얀마 얘기를 합니다. 여행이 주는 묘미에는 우리를 새롭게 하는 경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여행과 일상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입니다.

김다영

지금 유럽 국가들은 단기로 오기 힘드니 일하면서 살라고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만들었어요. 체류형 여행자들이 그 나라에 와서 돈을 쓰면 경제효과가 발생하거든요. 앞으로 일과 여행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다른 공간에서 원격으로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그 지역을 여행하는 형태가 하나의 장르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없어지는 거죠. 우리나라도 지역으로 가서 머물면서 원격으로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그 지역을 깊이 탐험하는 형태의 여행 문화가 확대될 겁니다.

정여울

제가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에서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하고 싶다고 썼는데요. ‘여행을 일상처럼’은 여행이 특별 하지 않도록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면 좋겠다는 의미였고요. ‘일상을 여행처럼’은 똑같은 일상도 여행처럼 매일 새롭게 살아 보자는 얘기였는데 이제 이것이 가능한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저는 여행할 때도 거의 쉬지 않고 글을 쓰거든요. 여행하면서도 일을 계속할 방법을 찾는 분이 많아졌고요. 여행과 일상이 가까워지는 데는 스마 트폰의 대중화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여행 가서도 한국에서 계속 연락이 와서 쉴 수 없다는 단점도 있지만, SNS 등으로 여행과 일상의 경계는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명철

저는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여행과 일상이 융합되는 게 아니라 여행을 잃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여행은 특별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데 여행이 일상이 된다는 것은 특별함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여행을 가서도 도저히 일상에서 탈출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하면 일상과 다른 여행을 할 수 있고, 자신을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여행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장동석

다음으로 시청자분들께 사전 질문을 받았는데요. 먼저 정여울 작가님께 ‘여행에서 얻은 지식이나 통찰을 삶에 적용하는 방법’과 ‘좋은 여행이 끝난 후 정리하는 방법’을 질문해 오셨습니다.

정여울

먼저 현지가 아닌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는 방법이 있어요. 저는 여행에서 아름다운 것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를 봐요. 가지고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할 때 삶이 불행해질 수 있거든요. ‘소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가볍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여행에서 얻은 지식이자 통찰이에요. 여행할수록 내 소유물에 대한 집착이 점점 없어져요.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으니까 요. 짐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이지요. 이제는 물통도 여행 책도 안 들고 다녀요. 그것조차 짐이 되니까요. 두 번째는 여행에 대한 글을 써보는 거예요. 글을 쓰면서 여행을 통해 배운 것을 정리해 보고 시각화하는 거죠. 여행에서 깨달은 것을 삶에서 한 가지라도 바꾸자는 내용을 완성된 문장으로 써보세요. 그러면 좀 더 알차게 여행할 수 있고 내가 느끼는 것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장동석

김다영 대표님께는 ‘비행기가 탄소를 발생시키는데 해외여행을 자제해야 하는가’라며 새로운 시대의 해외여행법에 대한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김다영

여행의 불평등은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주제인데요. 대형 항공기를 타면 제일 먼저 보이는 좌석은 퍼스트 클래스나 비즈니스 석입니다. 사실 호텔과 항공은 요금별로 계급화가 돼 있어요. 해외에서 연구해 보니 여행 산업이 가장 적나라하게 계급 구조화가 됐다고 합니다.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해 여행을 좀 더 평등하게 바라보는 기업을 골라 소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비즈니스 좌석 없이 운항하는 항공사도 있고, 스위트룸 없이 운영하는 호텔도 있거든요. 소비에 대한 기준을 찾는 것을 새로운 시대의 여행법으로 제안해 봅니다.

장동석

김명철 작가님께는 ‘SNS 속의 인생샷이 사회적인 현상, 유행처럼 자리 잡으면서 본질을 흐리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해 주셨습니다.

김명철

여행은 원래 과시하는 것이긴 하지만, 결국 무엇을 과시하는지가 문제가 됩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인생샷에 어떤 인생이 들어가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해요. 인생샷은 배경이 멋져야 한다고 하지만, 에펠탑이 멋지게 나온 사진이 과시하는 내용은 에펠탑이에요. 여행 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멋진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어 실시간으로 올려도 여러분을 과시하지는 못합니다. 인생샷 속에 무슨 내용을 담을지 생각해 보면 스스로를 과시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과시가 여행의 긍정적 의미 중 하나이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지만, 관광지를 과시하고 있었다면 그건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장동석

실시간 댓글로 올라온 ‘코로나 위기 속 우리가 취해야 할 자아 실현의 여행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김다영 대표님께 드리겠습니다.

김다영

요즘 여행은 여행의 본질에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코로나 이후 오히려 주변을 여행하고 지역에서 소비하고 생태 관광을 하고 있어요. 여행자들이 좀 더 건강하고 친환경적인 여행을 찾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봐요. 지역을 살리는 소비를 하고 대기업보다 동네에서 돈을 더 쓰다 보면 여행뿐만 아니라 주변 사회가 바뀌면서 큰 의미에서 자아실현 여행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새로운 여행의 의미 찾기
장동석

여행에는 참 많은 차원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정여울

자신을 발견하는 여행은 생각보다 어려워요. 저도 몇 년 동안 여행하면서도 왜 이렇게 여행을 하고 싶은지 여행에 미쳐 있는지 잘 몰랐거든요.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갈망은 어떤 결핍이었던 것 같아요. 미술관에서 하루 종일 그림을 보다 눈물을 흘리면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여행은 그만하고 즐기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혼자 떠난 여행에서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어요. 여러분도 자신을 사랑하고 발견하고 소중히 여기는 여행,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여행을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김명철

코로나 위기 속에서 여행자는 바이러스 전파자라는 것 외에 세상에 기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질문받는다고 생각해요. 바이러스 전파자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있을 정도의 가치를 내보여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미얀마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셨는데, 여행지와 정서적인 연결을 형성해서 그 여행지가 잘되도록 마음으로 지켜주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여행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오늘날 미얀마에서 군부독재의 만행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얀마를 여행지로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떤 빚을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동석

오늘 못다 한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답을 찾아야 하는 것 이고, 여행을 떠나서 그곳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함께해 주신 세 분과 시청해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 인사드립니다.

정리 전민정 객원 편집위원 | 사진 제공 superb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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